CAFE

遲耘보다 初峰.

'초봉(初峰) 선생님 전(前)'

작성자無耘|작성시간26.06.22|조회수0 목록 댓글 0

["勝勝念爲上勝" : 토담집에서 나눈 일생의 문답과 스승의 칭찬]

내가 백산의 토담집에서 김철수 선생을 모시던 그 무렵, 선생께서는 묵향이 은은히 배어나는 글씨 한 점을 손수 쓰시고는 내게 보여주셨다. 하얀 화선지 위에는 굳센 필치로 다음과 같은 글귀가 선명하게 적혀 있었다.

"勝勝念爲上勝 芝雲" (승승념위상승 지운)

당시는 평생의 벗인 의제 허백련 화백이 아명의 음을 빌려 '더디게 밭을 간다'는 뜻의 지운(遲耘)으로 개명해 주기 전이었다. 선생께서는 어린 시절 서당 은사이신 서택환 선생이 지어주신 본래의 이름, 즉 지초 지(芝) 자에 구름 운(雲) 자를 쓴 ‘지운(芝雲)’을 필명으로 사용하고 계셨다. 선생께서는 휘호를 가리키며 나를 시험하시듯 담담하게 물으셨다.

"이 글귀를 자네가 한번 해석해 보겠는가?"

나는 선생께서 쓰신 여섯 글자를 가만히 살피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선생님, 이 구절은 도합 여섯 글자로 이루어져 있어 전통적인 한문의 대구(對句)나 정통 문법에는 다소 어긋나는 듯 보입니다."

그러자 초봉(初峰) 김철수 선생께서는 빙그레 웃으시며 말씀하셨다.
"그려, 이길 승(勝) 자가 무려 세 개나 연달아 들어가니 문법에는 어색할지 모르겠네. 하지만 그 안에 담긴 뜻만큼은 온전히 드러나지 않는가? 자네는 대체 어디서 한문을 익혔기에 글의 구조를 이리도 명민하게 짚어내는가?"

"저는 어릴 적 지리산 벽소령 산막에 머물 때, 팔현 김득수 선생으로부터 《천자문》과 《명심보감》, 《추구》를 배웠습니다. 그 후 팔현 선생께서 산청의 덕천서원(德川書院)과 함양 운림동에서 서당을 하실 때 그 가르침을 따라 《사서(四書)》를 읽었습니다."

내 대답을 들은 선생의 안색에 깊은 신뢰와 반가움이 스쳐 지나갔다.
"아, 덕천서원이라니! 그곳은 영남 남명학파의 정통 한학을 올곧게 가르치는 유서 깊은 곳이 아닌가. 참으로 훌륭한 도장에서 제대로 학문을 닦았구먼. 그렇다면 자네가 배운 실력으로 이 글귀를 다시 한번 제대로 새겨보게나."

선생께서는 내 어깨를 도닥이시며 한마디를 덧붙이셨다.
"이길 승(勝) 자가 세 번 반복되는 이 구절처럼, 내 본명인 김철수(金錣洙)에도 쇠 금(金) 자가 무려 여섯 번이나 겹쳐 들어간다네. 글자 수가 많고 적음보다 그 안에 담긴 기운을 보는 것이 학문의 묘미이지."

선생의 독려에 용기를 얻은 나는 글귀를 다시금 깊이 음미한 후 마침내 해석을 올렸다.
"'남을 이기고자 하는 마음(勝念)을 스스로 이겨내는 것(勝)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으뜸가는 이김(上勝)이 된다'는 뜻으로 새겼습니다."

내 해석이 끝나자 선생께서는 무릎을 탁 치시며 대단히 기뻐하셨다.
"자네의 한문 식견이 나보다 훨씬 낫네!"라며 아낌없는 극찬을 건네주셨다. 그리고는 내 손을 잡고 이 휘호에 담긴 당신의 평생 철학을 준엄하게 일깨워주셨다.

"정신적인 영역에서는 타인을 꺾고 이기려 드는 탐욕스러운 승념(勝念)을 스스로 제어하고 이겨내는 것이 최상의 승리가 되네. 그러나 육신적인 영역, 즉 우리가 처했던 대일항쟁기나 현실의 전쟁터에서는 반대로 적을 이기고 또 이기겠다는 불굴의 투지와 훈련이 되어 있어야만 비로소 최상의 승리를 거둘 수 있는 법이지. 이 두 가지 이김이 조화를 이루어야 참된 인간이라 할 수 있네."

그 깊은 가르침을 가슴에 새기며 고개를 들었을 때, 문득 선생의 책장에 첩첩이 쌓여 있는 편지봉투와 연하장 더미가 눈에 들어왔다. 전국의 수많은 동지와 인사들이 보낸 그 수많은 서신 위에는, 단 한 통의 예외도 없이 한결같은 글씨로 선생을 향한 깊은 경외심을 담아 이렇게 적혀 있었다.

'초봉(初峰) 선생님 전(前)'

말년에 선생께서는 스스로를 낮추어 '지운'이라 부르며 은거하셨으나, 세상의 역사는 선생을 여전히 가장 높은 곳에서 길을 밝히던 '첫 번째 봉우리', 즉 '초봉'으로 기억하고 칭송하고 있었던 것이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