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遲耘대신初峰

우리는 마땅히 역사의 명분을 바로 세우기 위해서라도 이제 선생을 ‘지운’이 아닌 ‘초봉’이라 불러야 마땅합니다.

작성자無耘|작성시간26.06.22|조회수0 목록 댓글 0

우리 세대가 초봉(初峰) 김철수 선생을 기억하고자 할 때, 가장 먼저 상기해야 할 것은 선생께서 현실 정계를 떠나며 남기신 준엄한 결단의 말씀입니다.

과거 선생께서는 해방 정국의 참담했던 기억을 다음과 같이 술회하셨습니다.
"북조선노동당이 남한의 사회노동당 결성을 두고 '적의 반동정책에 발맞추는 중대한 범죄이자 좌익정당의 분열을 조장하는 짓'이라는 결정서를 통보해 왔네. 그 독단과 왜곡에 가슴이 찢어지는 듯하여 자살을 기도했다가 미수에 그쳤지. 그때 완전히 정계를 떠나 고향으로 내려왔다네."

또한 선생께서는 "해방정국에서 내가 조국을 위해 바랐던 모든 희망이 허사로 돌아가고, 끝없는 배신과 모함, 파벌주의와 당파주의의 늪을 벗어나지 못하는 현실에 절망하여 생애 두 번째로 목숨을 끊으려 했네. 지금껏 그때 죽지 못한 것이 천추의 한이 될 뿐이네"라는 피맺힌 고백을 남기신 후, 평생 단 한 번도 정치의 장에 발을 들이거나 입에 담지 않으셨습니다.

이러한 선생의 처사는 가시나무 숲에는 고결한 난새가 깃들지 않는다는 ‘기극비란(枳棘非鸞)’의 고사성어 그대로였습니다. 혼탁한 현실 정치의 진흙탕에 물들지 않고, 당신의 온전한 지조를 지켜내겠다는 노투사의 가슴 시린 결심이었던 것입니다.

정계를 떠난 선생께서는 고향 선산에 토담집을 짓고 완전히 은거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유년 시절의 이름이었던 ‘지운(芝雲)’을 바탕으로, 평생의 지기(知己)인 의제 허백련 화백이 발음은 그대로 둔 채 뜻만 바꾸어 지어준 이름, 즉 ‘지운(遲耘, 더디게 밭을 간다)’으로 평온한 여생을 보내셨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선생을 직접 만나거나 유묵을 통해 접하게 된 이름은, 이렇듯 투쟁의 짐을 내려놓은 노년기의 한가롭고 목가적인 이름일 뿐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선생의 역사적 행적을 올바르게 규명하고, 엄혹한 대일항쟁기 동안 보여주신 숭고한 독립운동 정신과 천하를 구제하고자 했던 대동(大同)의 사상적 대의를 후세에 온전히 전하고자 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선생을 기념하고 닮고자 하는 경우라면, 본명인 김철수 대신 그 찬란했던 역사적 상황에 가장 부합하는 호칭인 자(字), ‘초봉(初峰)으로 불러드리는 것이 마땅한 예의이자 도리일 것입니다.

더구나 "대일항쟁의 최전선에서 언제나 남보다 먼저 나서서 험난한 고개를 넘는다"라며 생사를 함께했던 동지들이 헌정한 ‘초봉(初峰)’이라는 자(字)는, 선생의 온 삶을 통틀어 가장 소중하고 값진 역사적 훈장이기 때문입니다.

노년의 은거가 담긴 ‘지운(遲耘)’이라는 사적인 이름보다, 일제의 총칼에 맞서 불꽃처럼 살아 숨 쉬던 선생의 위대한 발자취가 우리에게 훨씬 더 가깝고 소중하게 다가오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선생의 사상과 민족적 정신이 ‘초봉(初峰)’이라는 거대한 상징성에 온전히 깃들어 있다면, 우리는 마땅히 역사의 명분을 바로 세우기 위해서라도 이제 선생을 ‘지운’이 아닌 초봉이라 불러야 마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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