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遲耘보다 初峰.

최선두에서 민족의 자존심을 외치던 나를 보며, 동지들은 비로소 나를 ‘초봉(初峰)’이라 명명했네.

작성자無耘|작성시간26.06.22|조회수0 목록 댓글 0

초봉 김철수 선생께서는 도쿄 유학 시절, 일본 경찰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던 또 하나의 거침없는 설전(舌戰)에 대해 다음과 같이 흥미진진하게 회고하셨다.

"하루는 대형 맥주 회사에서 발간하는 잡지를 사서 읽다가, 그 회사에서 주최하는 여름 수련회 소식을 접하고 참가하게 되었네. 그곳에 가면 시원한 맥주를 제한 없이 마음껏 마실 수 있어 유학생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기회였지.

행사 도중 독자들을 대상으로 10분씩 단상에 올라 자유롭게 강연을 할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되었네. 나는 주저 없이 단상으로 걸어 나가 사자후를 토했지. 그 당시 나는 국제 정세 속에서 인도의 민족해방운동을 깊이 주목하고 있었네. 방대한 인도가 영국의 압제에서 벗어나 독립을 성취한다면, 그 거대한 도미노 효과로 우리 조선의 독립 또한 저절로 앞당겨질 것이라 확신했기 때문이지. 나는 단상에서 당당히 외쳤네.
'현재 인도는 대영제국이 강점하고 있으나, 역사의 도도한 흐름 속에서 결국 인도는 인도인의 것이 될 수밖에 없다!'

내가 이어서 다음 말을 이어가려던 찰나였네. 청중석 맨 앞줄에 앉아 있던 한 일본인 학생이 나를 비웃고 곤경에 빠뜨릴 요량으로 얄미운 어조로 말을 가로챘더군.
'그렇다면 조선도 결국에는 조선인의 것이란 말인가?'

조선의 식민지 처지를 빗대어 나를 조롱하려던 간악한 수작이었지. 하지만 나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단상 위에서 그 일본 학생을 매섭게 내려다보며 청천벽력처럼 응수했네.
'그렇다! 네 말이 백번 옳다! 조선 역시 결국에는 우리 조선인의 것이다!'

나의 거침없는 기개와 정문일침에 장내는 순식간에 얼어붙었고, 나를 놀리려던 일본 학생은 전율하며 말문을 잃고 말았네. 나는 당당하게 단상을 내려왔으나, 그 길로 신주쿠(新宿) 경찰서의 고등계 형사들이 내 하숙집으로 들이닥쳐 사상 조사를 벌이고 돌아갔지.

돌이켜보면 당시 도쿄 유학생 사회에는 타협을 거부하는 과격파, 즉 '절대독립파' 청년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네. 당연히 식민지 당국과 일본 경찰은 나를 가장 위험한 인물로 지목하며 증오했으나, 우리 유학생 동지들 사이에서 나의 인망과 인기는 날로 대단해졌지.

이 '맥주 수련회 설전'을 목도한 친구들은 나를 결코 평범한 유학생으로 보지 않았네. 나를 사상적으로 옹호하고 목숨을 함께하겠다는 동지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지. 그 엄혹한 감시 속에서도 늘 두려움 없이 최선두에서 민족의 자존심을 외치던 나를 보며, 동지들은 비로소 나를 ‘초봉(初峰)’이라 명명했네. 언제나 가장 앞에서 험난한 고개를 넘어 일하는 자라는 뜻이었지. 내 이름 '초봉'은 일제의 압제에 맞서 단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았던 청춘의 훈장이자, 동지들이 보내온 찬란한 경의의 표상이었던 셈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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