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共産增煇1923~1927

오늘은 6·10 만세운동(1926. 6. 10)이 일어난 지 100주년이 되는 날이다

작성자無耘|작성시간26.06.20|조회수0 목록 댓글 0

 

오늘은 6·10 만세운동(1926. 6. 10)이 일어난 지 100주년이 되는 날이다

그리고 6.10만세운동을 처음 기획한 조선공산당 창당(1925. 4. 17)은 금년이 101주년이 되는 해이다.

6·10 만세운동은 1926년 6월 10일 순종 황제의 장례일(인산일)을 계기로 일어난 전국적인 독립만세운동이다.

뉴스에도 오늘 광화문 광장에서 기념식을 한다고 합니다.

나는 뉴스를 보면서 100년전의 6.10만세사건과 통하는 국민들의 마음속의 6.10 대일항쟁이다. 라고 생각하면서

그 동안 나의 스승인 초봉(지운) 김철수선생 기념사업회를 이끌면서 살아생전 6.10만세운동에 관한 녹음한 것을 중심으로 몇편 역어보았다.

물론 그 때 6.10만세운동에 참가한 공산주의 계열과 민족주의계열과 사회주의 계열에서 참가 주도하였으나

지금 쓴 나의 글은 그 당시 조선공산당 책임비서(당수)를 지낸 초봉(지운) 김철수선생과 내가 일문일답으로 녹음한 것을 중심으로 쓴 것이니 이 글은 어디까지나 사회주의계열과 공산주의계열의 중심에서 본 내용일꺼라 여겨진다.(무운)

 

610.만세운동에 대하여 녹음을 좀 할까합니다.

 

"그려, 이태왕 장사지낼 때 힘을 모은 것이 6.10 만세사건이여!

이태왕 장사지낼 때가 1926년 6.10일이니 2년전인 1924년 4월 조선노동총연맹과 조선청년총연맹이결성되고

전조선민중자대회가 개최되고

그리고 재경조선 해방운동자 재회가 개최됐었어

그당시 우후죽순격으로 많은 단체들이 생겨났어

모두 사회ㅣ 동맹이라는 것을 만들어가지고 이것이 소위 西.上合作이다 그랬어"

 

그러면 6.10만세운동의 주역은 누굽니까?

"그 당시 사회운동단체들이 모두 주역이지

그 때 조선공산당 간부들이 모여 6.10일 이태왕 장사지낼적에 공산당이 주동해가지고 3.1만세하듯이 하자 그랬어

그당시 조선공산당 간부들이 신의주사건으로 105인이 잡히고 그 중에 4명이 고문으로 사망하고 또는 검거를 피해 해외로 도망가고 해서 당을 살려야 하기에 6.10 만세운동은 조선공산당 청년회에서 하라고 그랬어

권오설씨가 공산청년회 회장이니 그 곳에서 하라 하니 권오설이가 그러면 제가하겠다고 공산청년회에서 하겠다고 그랬어

그래서 결론나기를 공산청년회에서 독단으로 해야지 당(조선공산당)은 건드리지 말라 그랬어"

 

구체적으로 그 때 대표인물은 누굽니까?

"6.10만세운동의 주역은 조선공산 청년당에서 하기로 했어 아마 권오설(權五卨)동생인 권오직이도 참여했고 ·박내원(朴來源)·민창식(閔昌植) 그런 사람들이여!"

 

그러면 6.10만세운동의 결과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제2차 조선공산당(1925.12 강달영 책임비서)당수가 잡혀 고문당하여 미쳐버렸어 경남 진주사람인데 조선일보 지국장을 하였었지 6.10만세나고 100여명 잡혀가서 사실상 해체되었지

그동안은 일본제국주의 박멸, 반일 민족유일전선 조직, 조선독립, 인민공화국 건설을 주장한 강령과 ‘조선공산당선언’ 발표하면서 민족통일전선운동 추진. 하다가 6·10만세운동으로 100여명 검거로 사실상 해체되었는데

그 때 나는 숨어서 잡혀가지 않아 그 뒤에 공산당원들이 비밀히 모여 3차 조선공산당 재건을 하였었지 그 때 내가 당 책임비서가 되었었어

당간부 회의시에 화요계 당 간부는 대부분 잡혀 갔으니 상해파 계열에서 맡아라고,

그래서 이봉수도 나를 추천하고 그래서 내가 제3차조선공산당 책임비서가 되어 당을 이끌었지"

 

1차 조선공산당은 왜 해체되었나요?

"고것이 참 묘하여 언제나 큰일을 할려면 심사숙고하고 입을 잘 다물어야 하는데 저 신의주에서 공산당원과 일본검사가 식당에서 싸움이 났는데 공산당간부가 팔뚝을 걷어 붉은 천을 보이면서 너희 일본놈들은 곧 우리들에게 망할 것이다 하면서 구타사건이 생겼는데 그로인해 발각되어 많이 잡혀가서 그렇게 되었었어"

 

그러면 그 때 신의주에서 공산당원이 잡혔는가요?

"그 때는 잡히지 않했지 그 구타사건이 생기고 나서 종로경찰서장 미야라고 미야겐유라고 하는 유명한이가 있어

그놈이 그 뒤 서서히 염탐해가며 모두 잡아버렸지 미야겐유라고 우리이름으로 하면 삼용(三龍)인가?"

 

그러면 6.10만세운동의 뿌리는 조선공산당인가요?

"처음 주동하고 연결해서 민족주의자들과 사회주의자들과 활동한 것을 보면 그렇게도 볼 수도 있지만 공산당 청년회는 모다 잡혀서 큰 성과는 없었어"

 

그러면 6.10만세운동의 뿌리는 어느 곳인가요?

" 6.10만세운동의 뿌리는 3.1운동이고 삼일운동의 뿌리는 사회혁명당이고 사회혁명당의 뿌리는 2.8독립선언이고 2.8독립운동의 뿌리는 열지동맹이고 열지동맹의 뿌리는 곡귀단이여!이 곡귀단은 3.1운동 나기 5년전의 일이여

모르는 사람은 고종이 죽어서 3.1운동이 일어난 것으로 알어 3.1운동은 그것이 아니여!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월슨14조약 발표되면서 민족자결주의 그 기운을 타가지고 11월 부터 준비를 했어

1919년 고종황제가 죽은 것을 인연하여 3.1 운동이 일어난 거여

1926년 순종황제가 죽은 장사날에 6.10만세운동이 나고

부안 죽산사는 정노식이도 삼일운동48인에 한사람이고 나에게 와서 태극기 만들 돈을 줄라해서 내가 좀 주고 그랬었지

그 사람도 참 열성적으로 했지 고향사람으로 결국은 그 부인도 가난해서 굶어죽고....

그리고 기꺼이 한 목숨 바치자고

열지동맹(裂指同盟)을 1915년에 결성해 갖고 우리가 일곱사람이 그 때 일본서 유학하던 이들이 모여 손가락 찟고 피를내어 돌려가며 마시고 동맹했어 어느 곳에 가서 살든지 조선독립을 위해 힘쓰자고...

비밀결사한 곳은 '다마가와'였어 마치 도원결의와 같이 엄숙하게

그리고 국내에서는 아마 처음일꺼야 곡귀단(哭鬼團)이라고...

죽어서 귀신이 되더라도 조선독립을 위해 울자고 날자도 단기를 쓰면 잡혀가니 기원으로 적고해서 활동했지

귀신도 곡소리 나게 하는 단체라고 누가 그랬어...."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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