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紀念事業會年譜

초봉김철수선생기념사업회(初峰金錣洙先生紀念事業會) 연보

작성자無耘|작성시간26.06.23|조회수1 목록 댓글 0

독립운동가이자 사회주의 운동가였던 초봉(初峰)·지운(遲耘) 김철수 선생과 56년에 걸친 깊은 인연, 그리고 선생의 서거 이후 추모 사업 과정에서 일어난 역사의 파편들을 생생하게 기록한 귀중한 자료입니다. (작성자 무운)

 

1. 김철수 선생과의 첫 만남 (56년 전)

  • 만남의 장소: 부안 원천리에서 처음 만나 논길을 걸어 수성리 토담집으로 이동.
  • 당시 상황: 작성자(김명환, 당시 22세)님이 김철수 선생께 큰절을 올리며 사제의 인연을 맺음.
  • 아호 하사: 김철수 선생은 제자에게 '무운(鷡耘)'과  '연관(憐觀)'이라는 이름을 직접 지어주심.

2. '지운추모사업회'의 결성과 묘비 건립

  • 계기: 김철수 선생 열반 후 부안 내소사에서 49재를 마침. 부안 유천리 이명우 선생 자택에 동지들이 모여 장례 후 남은 조의금 600여 만원의 처리를 논의함.
  • 결정: 선생의 열반 1주기에 맞춰 묘비를 건립하기로 하고 추모사업회를 조직함.
  • 초기 조직 구성:
    • 회장: 정진석
    • 부회장: 이명우
    • 총무: 최기원
    • 기획총무: 김명환 (작성자)
    • 재무: 김기중
    • 감사: 이현기
  • 묘비 제작 과정: 당시 익산 원불교 중앙총부에서 재무·건설과장을 겸임하던 작성자님이 황등면의 '신라석재' 화강암을 추천함. 임원들과 함께 원불교 신문사 사장이자 월간 원광 주필인 이종원 선생(김철수 선생과 1960년대부터 교류, 박항식 국문과 교수와 동행) 사무실을 방문한 뒤, 신라석재에서 견적을 받아 부안 동지들을 중심으로 묘비 건립을 진행함.

3. 노선의 갈등과 '초봉김철수선생기념사업회'로의 독립

  • 갈등의 원인 (자료 공개 방식):
    • 작성자 (김명환): 선생의 육성 녹음과 노트 등 귀한 자료를 사업회에서 회보 등으로 먼저 정리·발표한 후 세상에 공인된 형태로 공개해야 한다는 입장.
    • 회장 (정진석): 좋은 취지라면 회의를 통한 공론화 없이도 누구에게나 즉시 자료를 제공해야 한다는 입장.
  • 결과: 의견 차이로 작성자님이 지운추모사업회를 탈퇴함. 이후 부안 중심의 단체를 넘어 전라북도, 광주, 서울 지역의 회원 및 지인들을 모아 외연을 확장한 새로운 단체를 조직함.

4. '초봉(初峰)'으로 명칭을 정정한 역사적 배경

  • 회보 창간: 1990년 1월 1일, 독자적인 회보를 창간하고 자료 정리에 착수함.
  • 역사적 발견: 선생의 일본 유학 시절 및 대일항쟁기(독립운동기) 모든 활동 자료에는 '지운'이라는 이름 대신 '초봉(初峰)'만 존재함을 확인해냄.
  • '지운' 명칭의 유래:
    • 본래 어릴 적 서당 스승인 서택환 선생이 지어준 이름은 지운(芝雲)이었음.
    • 해방 후 모든 정계에서 은퇴한 선생이 의재 허백련 선생의 주선으로, 음은 같되 뜻을 바꾸어 '늦게나마 풀을 메고 산다'는 의미의 더딜 지(遲), 지심멜 운(耘)을 써서 지운(遲耘)으로 고쳐 사용함.
  • 명칭 변경의 결론: 후대인들이 선생의 가장 숭고한 업적인 '대일항쟁기 독립운동과 사회주의 이념 활동'을 정확하게 기억하고 받들게 하려면, 당시 사용했던 호인 '초봉'을 전면에 내세워야 한다는 취지하에 단체명을 [초봉(지운)김철수선생기념사업회(初峰(지운)金錣洙先生紀念事業會)]로 정정하고 현재까지 활동을 이어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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