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출생과 청년기 (초봉의 시대)
- 1893년 (1세): 5월 25일, 전라북도 부안군 백산면 원천리에서 출생. 서당 스승인 서택환 선생으로부터 지운(芝雲)이라는 아호를 받음.
- 1912년 (20세): 인촌 김성수의 안내로 일본으로 건너가 와세다대학 정치학과(실과)에 입학. 이 시기 대일항쟁기 전반에 걸쳐 초봉(初峰)이라는 호를 사용하며 항일 운동에 투신함.
- 1915년 (23세): 도쿄에서 반제국주의 비밀 결사 단체인 신아동맹당(新亞同盟黨)을 결성하고 반일 투쟁 전개.
2. 대일항쟁기 독립운동과 사회주의 활동
- 1920년 (28세): 최팔용, 이봉수 등과 함께 국내 최초의 사회주의 비밀결사인 사회혁명당(社會革命黨)을 조직.
- 1921년 (29세): 상하이에서 임시정부 국무총리 이동휘 등과 합류하여 고려공산당(상해파) 창립에 주도적으로 참여. 중국 공산당 창립기 진독수, 모택동 등과 교류.
- 1926년 (34세): 일제의 대대적인 검거 선풍(6·10 만세운동 직후) 속에서 제3차 조선공산당(ML당) 책임비서로 취임하여 당을 재건함. 코민테른 파견 대표로 선임됨.
- 1927년 (35세): 모스크바를 방문하여 스탈린을 독대하고 코민테른으로부터 조선공산당의 정통성을 승인받음.
- 1930년 (38세): 일제 경찰에 체포되어 징역 10년형을 선고받고 가혹한 옥고를 치름.
- 1940년 (48세): 출옥했으나 전향을 거부하여 다시 구금되는 등 일제강점기 동안 총 13년 8개월간 옥고를 치름.
3. 해방과 은퇴, 그리고 낙향 (지운의 시대)
- 1945년 (53세): 8·15 광복 후 조선공산당 재건에 참여했으나 박헌영 계열과의 노선 갈등, 좌우 대립과 이념 투쟁에 환멸을 느끼고 정계 은퇴를 선언함.
- 1946년~ (54세~): 호남 지역으로 낙향. 의재 허백련 선생의 주선으로 스승이 지어준 호의 음을 그대로 따되, '늦게나마 풀을 메고 숨어 산다'는 뜻의 지운(遲耘)으로 자호(自號)를 변경함.
- 1960년대 (70대): 고향인 부안 백산면 원천리 인근(수성리 토담집, 이안실 등)에 손수 흙집을 짓고 평생을 청빈하게 은거함.
- (※ 이 시기인 56년 전, 22세의 김명환 선생이 수성리 토담집으로 찾아와 큰절을 올리고"무운" 과 '연관'이라는 호를 받으며 사제의 인연을 맺음)
4. 열반과 추모 사업의 전개
- 1986년 (94세): 3월 16일, 전북 부안군 백산면 자택에서 열반. 부안 내소사에서 49재를 봉행함.
- 1987년: 열반 1주기를 앞두고 부안 동지들을 중심으로 '지운추모사업회'가 조직되어 익산 황등면 신라석재의 화강암으로 묘비를 건립함.
- 1989년: 김철수 선생의 육성 녹음 및 노트 등 귀중한 독립운동 사료의 공론화·발표 방식을 두고 추모사업회 내 노선 갈등 발생. 이에 김명환 선생이 탈퇴 후, 외연을 확장한 '지운김철수선생기념사업회'를 독자 조직함.
- 1990년: 1월 1일 기념사업회 회보 창간. 자료 고증을 통해 대일항쟁기 공식 활동명이 '초봉'이었음을 확인하고 단체명을 [초봉김철수선생기념사업회]로 정정하여 명칭의 역사성을 바로잡음.
- 2005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대일항쟁기 독립운동 공훈을 인정받아 건국훈장 독립장(3등급)이 추서되고 국립현충원에 안장됨.
다음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