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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2026년도 법회

“일본불교 임제종의 수행가풍”-(종무행정지원단장 원지스님)불기 2026년 6월 교육법회 봉행!

작성자법연 이동엽|작성시간26.06.14|조회수371 목록 댓글 1


일본불교 임제종의 수행가풍”-(종무행정지원단장 원지스님)불기 2026 6 교육법회 봉행!

 

삼보에 귀의 하옵고_()_

 

  1. 법 회  개 요                          

 

 “일본불교 임제종의 수행가풍”
 : 2026 6 12()저녁700
 조계사 극락전
 원지 스님(조계사 종무행정지원단장)
 기획부장 월도 임병웅
참석자: 대경 박수정 회장 외 65명 참석
 신행부 수석차장 보공 김지영

 


  2. 법 회  식순                          

 

 개회사 삼귀의 우리말 반야심경  인사말(대경 박수정 회장)음성공양(또 한송이의 모란, / 기도를 멈추지 않으리라)청법가 

입정 법문(종무행정지원단장 원지 스님발원문(신행부장 거연 강민구 공지사항 사홍서원 산회가 폐회사  기념사진 촬영

 

 

조계사 일주문은 사찰의 첫 관문입니다. 이 문을 지나며 세속의 번뇌를 내려놓고 부처님의 세계로 들어간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조계사불교대학 총동문회 53선지수 합창단 음성공양

곡명 : 기도를 멈추지 않으리라/ 지휘 : 박경태교수 / 반주:안희정 /포교부장: 고정숙 여실심

 

  3. 법 회  이모저모                          

 

조계사 극락전, 불교대학총동문회 6월 교육법회 봉행

 

6월 12일 저녁 7시, 조계사 극락전에서는 불교대학총동문회 동문들이 함께한 교육법회가 봉행되었습니다. 부처님오신날은 지났지만 조계

사 도량에는 여전히 형형색색의 연등이 아름답게 빛나며 수행과 자비의 의미를 되새기게 했습니다. 이날 법회는 조계사 종무행정지원단장

원지 스님을 법사로 모시고 진행되었으며, 동문 불자 65명이 참석한 가운데 여법하게 봉행되었습니다.

 

법회에 앞서 불교대학총동문회 대경 박수정 회장은 인사말을 통해 “오늘 귀한 법문을 전해주실 종무행정지원단장 원지 스님과 참석해 주신

모든 동문님들께 감사드립니다. 동문회는 수행과 공부를 넘어 이웃과 사회에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하는 포교와 봉사를 실천하고 있습니다.

오늘 법문을 통해 지혜와 자비를 키우고, 더 많은 동문들이 함께하는 인연의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라고 전하며 동문회의 포교와 봉사 원

력을 다졌습니다.

 

이날 법회에는 대경 박수정 회장을 비롯하여 대덕심 김영숙, 경담 이원굉 고문, 평전 하용수, 법연 이동엽, 환희지 권종순, 도안심 이순화, 문

수행 정은희 자문, 명심등 주숙자 감사, 법연지 김영수, 법연심 안영란, 여해심 이성숙, 대덕행 이후남 부회장, 청송 방성렬 문화, 세정화 설

민경 총무, 여실심 고정숙 포교, 월도 임병웅 기획, 거연 강민구 신행, 반야월 강승희 봉사, 청정화 김애숙 재무부장, 운봉 이금재 홍부수석차

장을 비롯한 여러 임원진과 동문 불자 65명이 참석하여 더욱 뜻깊은 자리를 함께했습니다

 

이어진 원지 스님의 법문은 영화 「팬시 댄스」를 중심으로 일본 불교와 선불교의 정신을 쉽고 흥미롭게 풀어내며 큰 호응을 얻었습니다.

스님은 일본 불교가 형식과 의례 중심의 모습을 많이 보이고 있지만 임제종과 같은 일부 전통에서는 지금도 엄격한 수행이 이어지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또한 선불교의 핵심 정신인 살불살조(殺佛殺祖), 무심(無心), 분별을 내려놓는 삶을 소개하며 깨달음은 개념과 형식에 집착

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 속에서 자비와 보살행을 실천하는 데 있음을 강조했습니다.

 

특히 백척간두진일보(百尺竿頭進一步)의 가르침을 통해 두려움과 집착을 넘어 새로운 한 걸음을 내딛는 용기야말로 수행자의 자세라고 설

하며 참석 대중에게 깊은 울림을 전했습니다.

 

연등이 수놓은 조계사 도량에서 열린 이번 교육법회는 수행과 실천의 의미를 되새기는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불교대학총동문회는 앞으로

도 배움과 수행, 포교와 봉사를 통해 부처님의 자비광명을 사회 곳곳에 전하는 데 앞장설 것입니다.

“분별을 내려놓고 한 걸음 내딛을 때, 그 자리가 바로 수행의 길입니다.”

 

글 정리 : 자문위원 법연 이동엽 합장

 

  4.  공 지 사 항                          

 

 

  6화엄신중 단오재 화기애애

일 시 : 2026 06 19() 오전 1030

장 소 : 대웅전 앞

 

하안거 선원대중공양

일 시 : 2026 07 27 0630

장 소 : 조계사 일주문 출발 (통도사)

 

2026년 백중 연화미 마지공양

일 시 : 2026 07 24() 09:00

장 소 : 조계사 대웅전

 

 2026 인경봉사

일 시 : 2026 0629~728

장 소 : 조계사앞 마당

 

 양기충전 대동한마당, 1, 2

1: 619()조계사 앞마당 오후130(윷놀이, 제기차기

2: 620(), 조계사 앞마당 오후1(시상식)

문 의 : 총무부장 세정화 설민경 010-3789-8621

 

 

천수다라니기도법회

일 시 : 2026 07 24 저녁7

장 소 : 조계사 극락전

문 의 : 신행부장 거연 강민구

 

 7월 운영위원회의 

  : 2026 07 09()요일 저녁 7

   : 추후 공지 예정

문 의 :총무부장 세정화 설민경 010-3789-8621

 

 2026 7월 교육법회
일 시 : 2026년 07월 10일 (금)저녁 7시
장 소 : 조계사 극락전

법 사 : 종무행정지원단장 원지스님

주 제 : 미국불교업과 윤회(리틀붓다 1993) 

 

2026년 동문회 임원모집
자격: 2026년 졸업예정자 및 졸업 동문(신청서는 동문회 사무실에 비치)
문의:총무부장 세정화 설민경 010-3789-8621

 

 7월 만발봉사

일 시 : 2026 07 04 10~14

장 소 : 만발공양간

문 의 :봉사부장 반야월 강승희, 010-2292-3533

 


총동문회 합창단 모집 및 연습
53선 지수합창단 상시 모집합니다. (즐겁게,아름답게,행복하게)
조계사불교대학 동문이면 누구나 가입하여 음성공양 할 수 있습니다.
 :매 월 :1, 3, 4()1300~2 30분까지
두 번째주()오후5~630
장소:안심당 지하 합창단실
문의:포교 부장 고정숙 여실심, 010-9983-5778

동문회비 및 정기법회 보시 계좌 안내
동문회비:연회비-5만원,평생 회비-50만원
하나은행111-054579-03005.예금주 대한불교조계종 조계사
임원회비:회장(3백만원),감사,부회장(50만원),부장(30만원)
수석차장(15만원),차장(10만원)
하나은행, 263-910588-27607,예금주:박수정(조계사 불교대학 총동문회)
문의:재무부장 청정화 김애숙 010-8736-0372


장학기금 후원(조계사 불교대학 총동문회 장학회)
조계사 불교대학 동문이면 누구나 월1천 원 이상의 장학기금 후원 가능
장학회 정회원 조건:출자금10만 원 월1천 원 이상 후원하시는 분
후원계좌:신한은행100-030-532200 (조계종 조계사 불대총동문회)
문의:장학회 총무 세정화 설민경 010-3789-8621

어르신 배식 봉사
일시: 7 31(),10~14
종로노인종합복지관
문의:봉사부장 반야월 강승희 010-2292-3533

 
총동문회 행복 나눔터
참기름(12,000)들기름(13,000)볶음참깨(6,000), 약조청1kg(50,000)

각버섯(10,000), 버섯가루(10,000
하나은행: 263-910588-28207,예금주 박수정(조계사 불교대학 총동문회)
문의: TF팀 대덕행 이후남(010-2325-6719) 여해심 이성숙(010-3897-4568)



  5.인 사 말  회장   대경 박수정          

 

 

안녕하세요?

 

오늘도 동문회 교육법회에 부처님 지혜와 자비의 말씀을 전해주시려 귀한 걸음 해 주신 종무지원단장 원지스님께 감사의

인사 드립니다.

 

그리고 참석해주신 동문님들께도 감사인사드립니다.

 

부처님께서는 "한 사람의 마음이 밝아지면 그 밝음이 세상을 비춘다"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우리가 법회에 모이는 이유도

바로 자신의 마음을 살피고 다스리며, 지혜와 자비를 키우기 위함일 것입니다.

 

우리는 역할을 동문회 안에만 머물러 있지 않고, 아직 불법의 인연을 만나지 못한 이웃들과 외롭고 힘든 삶 속에서 위로와

희망을 찾는 많은 분들에게도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달하려 대외 포교에 힘쓰고 있습니다.

소외된 이웃을 향한 대외 포교와 나눔의 실천은 선택이 아니라 불자의 사명이라 생각합니다.

학번이나 나이, 성별을 구분하지 않고 자비의 마음내시어 좀 더 많은 동문님들께서 봉사팀에 함께 해주시기를 부탁드립니

그리고 불교대학을 졸업하고 함께하지 못하시는 동문님들도 조계사 도량에서 같이 공부하고, 봉사 할 수 있도록 함께

챙겨주시길 바라겠습니다.

 

오늘 스님의 귀한 법문과 배움을 통해 자신의 마음을 돌아보고, 동문 간의 인연을 더욱 돈독히 하며, 세상을 향한 자비의

원력을 다지는 소중한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불기 2570년(2026년) 06월 12일

[조계사 불교대학 총동문회 회장 대경 박수정 합장 ]

  6.  발 원 문                          

 

 

발 원 문

 

지극한 마음으로 삼보에 귀의하옵니다.

 

온누리에 지혜의 광명으로 오신 부처님!

번뇌와 무명 속에서도 늘 중생을 향해 손을 내미신 그 자비를 생각하며, 저희들 진참회하고 서로를 향한 따뜻한 시선과 깊

은 이해의 마음을 일으키기를 발원합니다.

 

부처님의 지혜와 자비로 우리 사회의 어두운 마음을 밝히시어 분노와 대립은 줄어들고 서로 존중과 공존으로 이해와 배려

하는 평온한 일상을 누리게 하소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삶 속에서 실천하며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을 내려놓고 맑고 밝은 지혜의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살아

갈 것을 발원하옵니다.

 

동문들의 발심으로 전법하는 현장에서 발걸음마다 청정하고 따뜻한 마음으로 불자들에게 희망과 위로를 전하는 존재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오늘 감로수와 같은 선지식의 부처님 가르침을 듣고 함께한 동문들과 주변의 인연들에게 안전과 평화를 비추는 부처님 지

혜의 빛으로 항상 평온하시길 서원합니다

나무 석가모니불 ()

나무 석가모니불 ()

나무 시아본사 석가모니불 ()

 

불기 2570년 6월 12일

[조계사 불교대학 총동문회 신행부장 거연 강민구 합장]



조계사불교대학 총동문회 53선지수 합창단 음성공양

곡명 : 또 한송이 나의모란/ 지휘 : 박경태교수 / 반주:안희정 /포교부장: 고정숙 여실심



 


  7. 법  문   일본불교 임제종의 수행가풍    

 

주 제 : "일본불교 임제종의 수행가풍

법 사 : 조계사 종무행정지원단장 원지스님

 

[팬시댄스,  일본불교 임제종의 수행가풍에 대한   교재]

 

1.팬시 댄스(ファンシィダンス), Fancy Dance(뜻, 화려한 댄스). 1989년作.

으랏차차 스모부(1992), 쉘 위 댄스(1996)의 수오 마사유키 감독의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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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본의 불교는 고대 아스카 시대·나라 시대에 고구려, 백제, 신라와 중국을 통해 전래된 뒤, 일본의 신토·민간신앙에도 영향을 주며 현지

화되었다. 중세에는 신불습합이 일반화되어 신과 불보살이 한 공간에서 모셔졌고, 사찰은 학문·의례·지역 공동체의 거점이 되었다. 근대국

가 형성 속에서 ‘장례불교’라 불릴 만큼 의례 기능이 확대되었다.

 

대처승 중심의 불교. 신랑감 선호도 1위 - 부유한 절, 데릴사위.

 

종파불교 - 화엄종, 법상종, 율종, 성덕종, 일련종, 창가학회, 천태종, 정토진종, 임제종, 조동종, 진언종 등

 

불교계 대학으로는 고마자와대학, 류코쿠대학, 다이쇼대학(동국대학교와 자매결연), 교토여자대학 등이 있다. 승려 양성과정도 각 종단에

속한 대학들을 중심으로 이뤄진다. 그래서 일반인이 승려가 되려면 원하는 대학에 합격한 뒤 불교학과에 있는 승려 양성 코스를 거쳐야 한

다.

 

승가 교육 커리큘럼 자체부터 한국과 무척 다르므로 일본에는 ‘행자승’에 해당하는 계급이 없고, ‘도쿠도시키(得度式)’라 부르는 삭발 수계

식이 끝나면 바로 정식으로 승복과 가사를 착용할 수 있다. 다만 정토진종이나 밀교 계열의 경우 장삼 자체의 색상으로 계급을 구별한다.

 

일본 선종은 사무라이(무사계급)의 취향과 요구를 많이 반영하면서 전통을 만들어 나갔다. 이런 영향으로 선종은 공포와 검도 등 무술과 함

께 결합하기도 했다. 그래서 일본 선종은 보살행이나 자비행보다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의 극복과 딜레마 상황에서 발휘하는 결단력 및 순

발력을 유독 중요하게 여기는 경향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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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입산 참배하고 괘탑(掛搭)을 청하옵나이다 - 일본 사찰에서 행하는 괘탑 의식의 일부다.

 

‘괘탑’이란 ‘발우를 걸어놓는다’는 뜻으로, 승려가 절에서 대중과 함께 지냄을 뜻한다.

 

입방 - 행자 - 일부러 괴롭힘? 진심이 있는지 의지가 있는지 살펴보는 단계

 

조계종 행자교육원 21일을 마치고 원지스님이 심학사에 돌아와 처음 한 일. 과자 사먹기. 발우공양 시간에 발우를 떨군 이야기. 벌점이야기.

시계보며 종치기 / 참회 - 천배, 삼천배 / 조계종 강원 4년 / 해인사 용맹정진 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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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삼종정육(三種淨肉)

 

첫째, 자신을 위해서 죽이는 것을 직접 보지 않은 짐승의 고기

 

둘째, 남으로부터 그런 사실을 전해듣지 않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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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쪽)

 

 

4.셋째, 자신을 위해 살생했을 것이란 의심이 가지 않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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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상좌승 - 모두의 본보기가 되는 역할. 서기-상좌승의 보좌. 하지만 안거기간동안 절의 모든 일정을 정하는 실권을 쥐고 있다. 코우키가 조

련사. 요헤이는 원숭이.

 

조계종 선방소임 / 유나(維那) : 총림의 모든 규율·규칙을 총괄하는 소임 / 선덕(禪德) : 선원 대중스님들 중에 연세가 많든 덕 높으신 스님 /

선헌(禪軒) : 포교일선에서 종사하다 선원으로 들어오신 연세 많으신 스님 / 한주(飯主) : 결제 대중의 모범이 되는 스님 / 열중(悅衆) : 결제

대중을 통솔하는 소임자 스님 / 청중(淸衆) : 열중스님을 보필하면서 대중 통솔하는 스님 / 지전지객(知殿知客) : 대중스님의 큰방을 정리

정돈하는 스님 / 지객(知客) : 모든 객을 대접, 안내하는 스님 / 명등명등(明燈明燈) : 선원에 모든 전기를 관리하는 스님 / 마호마붕 : 대중스

님들의 풀을 깎이는 스님 / 야순야순(夜巡) : 야경에 순시를 책임지는 스님 / 소지소지(掃地) : 선원밖에 청소를 담당하는 스님 / 간병간병(看

病) : 대중스님들의 건강을 돌보는 스님 / 욕주욕주(浴主) : 대중스님들의 목욕물을 책임지는 스님 / 수두수두(水頭) : 대중스님들의 세면장

을 책임지는 스님 / 화대화대(火臺) : 선원 방 온도를 조절하는 스님 / 정통정통(淨桶) : 선원 화장실 청결을 책임지는 스님 / 시자(侍者) : 위

어른스님을 시봉하는 스님 / 다각다각(茶角) : 대중스님들을 위해 차담을 책임지는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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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큰스님의 방구소리 = 임제의 할, 덕산의 방

 

바람에 펄럭이며 나부끼는 깃발을 보고 한 승려는 “깃발이 움직인다”고 했고, 다른 승려는 “바람이 움직인다”고 했다. 그것을 본 조계대사는

“당신들의 마음이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라고 했다.

 

무문스님이 이 문답에 평하기를 “깃발도 바람도 마음도 움직이는 게 아니다”라고 한다.

 

무문스님의 말을 알겠는가. 우선 스스로가 깃발이 되고 바람이 되어 무심코 펄럭거리며 나부껴보는 것이다.

 

(큰스님의 방구소리, 뿡~. 방귀 뀐다고 타박 말아라 중생들아. - 큰스님 글씨)

 

뿡~소리가 부처의 뜻이다. 백일의 설법도 방귀 한 방에 날라간다. 이 말은 석가가 마지막으로 묵하게 됐던, 말하고 말하지 않음의 오묘한 지

점을 가리키는 것이다. 나의 방귀도 석가로부터 내려오는 방귀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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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법전식(깨달음의 인가)에서 하는 문답의 개수는 작은 절에서는 다섯 개의 화두에만 답하고 끝내지만, 큰 절의 경우에는 25개의 화두를 통

과해야 한다.

 

고승이 머무르는 절이고, 참선 납자가 수행에 진지하게 임하는 사람이라면 법전식도 엄격하게 이루어지지만, 대부분의 사찰에서는 요식행

위가 되어 사전에 “짜고 치는” 연기를 주고받는 식으로 법전식을 진행하는 경우가 많다.

 

법전식을 통과해야 주지를 할 수 있다.

 

형식적인 깨달음의 인가 의식.

 

 

---

 

(2쪽)

 

8.종용록 제14칙 - 곽시자가 찻잔을 건네주다(麻谷過茶) 곽시과차

 

종용록(從容錄)은 천동각화상송고보은노인시중(天童覺和尚頌古老人示衆)이라고도 부른다. 천동각화상(天童覺和尚)이라는 분이 고칙

을 찬송(讚頌)한 것과 그 송고(頌古)에 대하여 만송노인(萬松老人) 또는 보은노인(報恩老人)이 종용암(從容庵)이란 곳에서 평창(評唱) 혹

은 시중(示衆)한 것을 합편(合編)한 것이다.

 

스님께서 이르시다.

“옛부터의 성현들은 어디로 가셨습니까?” 하니 마치 마주보면서 크게 어긋난 것 같으나 덕산이 이르기를 “무엇? 무엇?” 하였으니, 덕산은

풀 숲에 몸을 숨기고서 망원경을 드러낸 격이다.

 

옛날에 일곱 현녀(賢女)가 시다림(屍多林)을 지나다가 한 여자가 이르되 “시체는 여기에 있는데 사람은 어디로 갔을까?” 하니 한 여자가

“무엇? 무엇?” 하며, 여자들이 서로 돌아보면서 모두가 도를 깨달아 하늘이 감동하여 꽃을 뿌려 공양하는 상서를 얻었다는데,

 

덕산이 이 한 토막의 기연을 써서 길을 빌려 지나간 것이니 결코 그렇게 알지는 말아야 한다. 그러기에 이르기를 “거기엔 돌 불과 번개 빛으

로도 더디다” 하였다.

 

덕산인들 어찌 시자가 지신을 놓아주지 않으려는 것을 몰랐으리오마는 섭자(燮子)를 놓아 소식(消息)을 구하면서 본전에 집착해서 이익만

을 도모했으니, 과연 그의 거푸집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갑자기 어떤 사람이 만송에게 묻되 “어디로 갔는가?” 한다면 아무지게 뺨을 때리면서 “여기에 있도다” 하여서 나는 용, 절름발이 자라로 하

여금 목을 움츠리고 발꿈을 감추게 할 것이며, 시자와 덕산으로 하여금 칼날을 거두고 혀가 굳어지게 하리라.

 

덕산노장을 알아보려는가? 젊어서는 용과 뱀의 싸움까지 말린 적도 있지만 늙막에는 도리어 아이들의 노래에까지 귀를 기울이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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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법전식 / 살활자재(殺活自在) - 살고 죽는 것을 자유롭게 한다.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겠다.

 

①문 깨달음을 얻은 자가 헤매게 될 때는 어찌되는 것입니까?

 

답 아직 이러한 사람은 본 적이 없다.

 

문 갑자기 그러한 이가 나타난다면 어찌합니까?

 

답 헤맴과 깨달음을 엄격히 구별하지 말지어다. 그것은 다른 것이 아님을.

 

문 과연 탁견입니다(卓見)

 

답 그것 보아라, 궁극의 진리가 그러하다.

 

 

---

 

(3쪽)

 

 

문:실로 귀하신 말씀(珍重)

 

답: 좋지 아니한가(萬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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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어떤 의미에서 ‘곽시과차(麻谷過茶)’ 이야기를 하셨는지요?

 

답 필생의 깨달음을 보여주기 위함이다.

 

문 듣고보니요. 그 필생의 깨달음, 과연 어떠하였나이까

 

답 쌍지필멸 회자정리. 어찌한 앵생이라 한들 한 평생이란 찰나의 순간과 같거늘.

 

문 그래서 결론이 무엇이오?

 

답 언덕 밑에 쓰러져 죽은 꽃 역시도 한 평생이었다. 거기에 덧붙여 하나 더. 자네, 새겨들어야 할 것이다!

 

문 스님, 중생들을 위해 도대체 무슨 말을 하겠다는 것이오? 잘못 하다간 경을 칠 수도 있소이다.

 

답 집어 치우라! 제발로 민초들에게 섞이기로 하였으니. 화도합수(昏頭昏頭)가 되기도 한다. 중생과 함께라면 어쩔 수 없는 일.

 

문 스님, 후운산의 제1좌에 오르신 분으로서, 바람언덕 장대 끝에서 한 걸음 내딛지 않을 것을. 실로 귀하신 말씀(珍重)

 

답 좋지 아니한가(萬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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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수좌는 수행중인 몸이면서 틈틈이 사람들 눈을 피해 여인을 만났던 듯 한데, 어떤 마음으로 그리 하였는가?

 

답 보시는 그대로. (주장자를 던진다. 주장자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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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가 나온다. 저런 다리 때문에 넘어지려는 여자를 돌봐준다. 여자와 키스한다. 이 모습을 보기 싫은 스님들은 자리를 떠난다. 상황을

깨달은 요헤이가 모든 걸 포기한 듯 무릎꿇고 쓰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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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큰스님의 말씀

 

거기까지. 요헤이 짝의 패배다. 그 여인의 승리로다. 아직도 수행이 모자르구만. (방구 소리 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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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지막 대사

 

나는 장대 끝에서 한 발짝 내딛은 것 뿐이었다. 한 발 내밀어 떨어질 만큼 떨어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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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팬시 댄스》(1989)는 일본 임제종 수행문화를 소재로 한 작품입니다. 한국 선불교와 일본 선불교의 수행 전통을 비교·이해하기 위한 교육 목적으로 영화의

일부 장면을 인용하였음을 양해 부탁드립니다.

(4쪽)

 

 

 

[ 법     문 ]

주 제 : "일본불교 임제종의 수행가풍

법 사 : 조계사 종무행정지원단장 원지스님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이제 부처님오신날도 지났고, 우리 총동문회 사회법회가 열심히 노력해 주셔서 목표도 달성하시고 아주 좋습니다. 감사드리고 고생 많이 하

셨습니다. 쓸데없는 얘기를 하다 보면 시간이 지나가니까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야 될 것 같아요.

영화를 어떻게, 좀 보셨습니까?

혹시 영화 안 보셨어도 괜찮으니까 그냥 오세요.

영화 안 보셨어도 그거를 바탕으로 거기에 나오는 또 다른 이야기들을 하려고 하는 거니까요.

 

일반 사람들도 이제 불교를 이 정도는 이해하고 있잖아요. 그런 것들을 우리가 이제 함께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갖는 겁니다.

재미있는 영화도 보고, 저는 사실 이 영화를 강원 다닐 때 봤는데요. 강원 다닐 때 주인공 스님들이 거기서 하기 힘든 것도 하고, 막 억지로

하기도 하잖아요. 그렇게 수행할 때 이 영화를 봐서 진짜 배꼽 잡고 웃고 그랬었습니다.

아무튼 주제는 '일본 불교 수행 풍토'라고 했지만, 좀 그럴싸하게 보이려고 제목을 잡은 거고, 사실 일본 불교는 대부분 형식주의적인 불교의

모습을 많이 띠고 있습니다.

의례·의식을 아주 전문적으로 지도하는데, 일본에서는 이런 말이 있대요.

"태어났을 때는 성당에 가고, 결혼할 때는 신사에 가고, 죽어서는 절에 간다."

그런데 태어날 때, 결혼할 때, 돌아가실 때...

돈을 언제 제일 많이 쓰십니까? 장례식장에 갈 때, 그리고 매년 제사도 지내야 되고 그렇잖아요.

그래서 그런 쪽으로 장례와 제사를 전문적으로 담당하는 아주 전문직으로 인식되고 있고, 일본 사람들의 90% 정도가 "부처님의 가르침은

의미가 있다. 배울 만하다." 이렇게 생각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스님을 믿느냐?" 하고 물어보면, 한 10퍼센트 정도만 스님을 믿는다고 나온대요.

일본은 대처승이고, 결혼정보회사에서 스님이 딱 등장하면 1등 신랑감이라고요. 굉장히 인기가 있어요. 그만큼 안정적인 수익 구조를 가졌

다는 뜻이에요.

실제로 제사를 잘 지내고 그렇게 잘되는 절은...

 

영화에서 봤듯이 집 안에 실내 테니스 코트도 있고 그런가 봐요. 아무튼 그런 것들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중에 일부 임제종이라고

특별히 얘기했는데요.

여러분, 제가 나눠드린 링크 안에 들어가 보시면 참고 자료가 있습니다. 거기에 일본의 실제 임제종 스님들이 수행하는 모습이 있는데, 그

영상은 자막이 없어요. 영어로 되어 있어서 그냥 듣다 보면 조금 이해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거 보면 진짜 열심히 수행하고 있고, 우리나라 백양사의 서옹 스님 계시죠? 들어보셨죠?

물론 돌아가셨지만 서옹 큰스님이 계셨는데, 이 서옹 큰스님께서 젊었을 때 일본 임제종 선원에서 한때 정진하셨고, 거기서 책도 쓰셨습니

다. 그 책이 너무 뛰어나서 아직까지도 교재로 쓰이고 있을 정도라고 합니다.

그래서...

일본 불교가 지금 150개가 넘는 종파가 있다고 그래요.

물론 주요 종파는 제가 여기 기술해 놓은 것처럼 화엄종, 법상종, 성덕종, 일련종, 창가학회, 정토진종, 진언종, 조동종 등이 있는데, 150개

가 넘는 종단들이 있다고 합니다.

그런 많은 종단 중에서도 대부분은 대처승이지만, 몇몇 소수 종단에서는 결혼도 하지 않고 아주 열심히 수행합니다.

부처님이 맨발로 다니셨다고 그 스님들은 한겨울에도 맨발로 다녀요. 일본에서 한겨울에 발바닥이 갈라지고 터져도 양말을 신지 않아요. 그

런 곳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다양한 불교 전통을 간직하고 있다고 생각해 주시면 되겠습니다.

일본 불교 이야기가 나왔으니까 말씀드리면, 학교도 많이 세웠어요. 또 동국대학교와 자매결연을 맺은 학교도 있고, 우수한 불교대학도 많

이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한 것이 일본 불교의 모습입니다.

그리고 여기 나눠드린 프린트물의 2번 끝을 한번 보시겠어요?

 

 

2번 끝을 한번 보시면, 밑에서 네 번째 줄에 "일본의 선정은 사무라이 계급의 취향과 요구를 많이 반영해서 전통을 만들어 나간다."라고 되

어 있는데요그 영향으로 참선은 궁도(활쏘기), 검도와 한 덩어리로 묶여 있다는 거예요.

 

우리는 참선하면 검도나 활쏘기 같은 이미지가 같이 떠오르지는 않잖아요. 그런데 일본에서는 그런 것들이 함께 떠오른다는 거죠.

그러면서 일본 선종은 보살행이나 자비행보다도 죽음에 대한 두려움의 극복과 딜레마 상황에서 발휘되는 결단력 및 순발력을 중요하게 여

겼습니다선종의 선문답 같은 것을 보면 굉장히 순발력이 뛰어나다는 말이에요. 그런 것들을 보면서 사무라이들이 대단하다고 생각했는가

봐요.

 

그래서 그런 쪽에 맞춰 그러한 가치들을 중요하게 여기는 영향이 생겨났다는 것입니다.

우선 이렇게 일본 불교에 대해서 잠깐 간단하게 말씀드렸습니다.

혹시 여러분들, 그 영화 보시면서 궁금하셨던 것 있으세요?

이 장면이 이해가 잘 안 됐더라. 이거는 내가 좀 물어보고 싶었다.

아무 말이나 괜찮은데, 그러면 그냥 제가 준비한 대로 쭉 갈게요.

1번 보시면 〈팬시 댄스〉. 문구점, 팬시점 이렇게 얘기하잖아요. '화려한'이라는 뜻이 있더라고요. 화려한 댄스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고

요. 여러분, 〈쉘 위 댄스〉 혹시 보셨어요?

그거 만든 감독이 이걸 만들었습니다.

1번은 영화에 대한 설명이었고요.

3번에 보면 형제가 나오는데, 형은 가업을 물려받아야 해서 어쩔 수 없이 여자친구가 있는데도 지금 대학교 4학년이거든요.

대학교 4학년짜리가 이런 데 가고 싶겠어요? 그런데 어쩔 수 없이 끌려가다시피, 군대에 끌려가는 것처럼 끌려가고 있는 상황이고, 동생은

자기가 그냥 하고 싶은 거예요.

그러면 형제가 있으면 둘 중 하나만 가업을 이어받으면 되잖아요. 그런데...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동생이 형이랑 같이 수행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싶어요.

아무튼 형 입장에서는 굉장히 억울한 상황이 됐죠.

"야, 그럼 네가 물려받으면 되잖아."

"아니, 난 형. 나는 다른 절에 양자로 가고 싶어."

이게 무슨 얘기냐면, 다른 절의 주지를 하고 싶다는 얘기예요.

"우리 아버지 절은 형이 해. 나는 다른 절에 가서 주지 하고 싶어."

그래서 어쨌거나 둘 다 가게 되는 장면입니다.

거기 들어가서 3번 첫 번째를 보면, "입산 참배하고 괘탑..."이라고 되어 있는데, 괘탑이라는 것은 발우, 즉 스님들이 밥 먹는 그릇인 발우를

걸어놓는다는 뜻이래요.

 

6번부터 제대로 된 내용을 한번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여러분, 아무튼 이 주인공이 여러 가지 사건·사고를 겪다가 상좌(上座)가 되죠. 최고 높은 자리를 차지한다는 뜻이에요.

이제 아마도 얘가 제일 문제아니까 얘를 고생시키기 위해서 이렇게 해 준 것 같아요.

무슨 얘기인지 아시겠어요? "그래, 너 한번 고생해 봐."

왜냐하면 이걸 통과하지 못하면 집안 가업을 이어받지 못하거든요. 어쨌거나 얘는 가업을 이어받으려고 하잖아요. 그런데 상좌가 됐는데도

이걸 통과하지 못하면 가업을 이어받지 못해요.

그래서 엄청 고생시키려고 상좌를 준 거다. 잘해서 준 게 아니고요.

그래서 그 내용 중에서도 엄청 어려운 것이 8번에 보면 **종용록**이라고 있는데요. 이게 굉장히 어려운 책입니다. 선림원 다니신 분들도 이

건 안 배우셨을 거예요.

그런데 아무튼 거기에 14번째 이야기로, 곽시성을 가진 시자 스님이 덕산 스님에게 "스님, 차 한 잔 드십시오."라고 하면서 찻잔을 드리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 이야기를 가지고 이런저런 해설을 붙여 놓은 거예요.

그런데 종용록은 천동정각 화상이 옛이야기에 자신의 평창(評唱)을 덧붙였어요.

그러니까 곽시성을 가진 시자 스님이 덕산 스님에게 차 한 잔을 드린 이야기에 자기 해설을 쓴 거예요.

그런데 거기에다가 또 뒤에 만송행수 선사가 다시 주석을 붙였어요.

무슨 얘기인지 아시겠어요?

6번부터 볼게요. 아무튼 그런 어려운 것을 일부러 고생시키려고 준 거예요.

그런데 요헤이(陽平)가 큰스님한테 가서 "이게 무슨 얘기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하니까, 큰스님이 설명을 좀 해줍니다.

둘만 있는 방에서 했던 이야기가 바로 이 6번 이야기예요.

여러분, 육조단경 배우셨죠?

육조단경에 보면 바람이 불고 있고 깃발이 펄럭이는 것을 보면서 둘이 싸우죠.

"저건 바람이 움직이는 것이다."

"아니다. 깃발이 움직이는 것이다."

하고 막 싸워요.

거기서 혜능 스님은 뭐라고 하셨죠?

"마음이 움직이는 것이다."

그랬어요.

그런데 마음이 진짜 움직이는 거예요?

마음이 "깃발아 움직여라." 그러면 깃발이 움직이고, 마음이 "바람아 불어라." 그러면 바람이 부는 걸까요?

선은 굉장히 매력적입니다.

그런데 선의 매력은 극단적으로 얘기하면 살불살조(殺佛殺祖)라고 말할 수 있는 데 있어요.

살불, 즉 부처를 죽이고, 살조, 즉 조사(祖師)를 죽인다는 뜻입니다.

우리나라로 치면 성철 큰스님, 서옹 큰스님 같은 분들까지도 다 죽여 버리라는 뜻일까요?

아니에요. 어떻게 그렇게 얘기할 수 있겠어요?

우리는 부처님 가르침을 믿고 살고, 큰스님 가르침을 따라서 사는데 어떻게 죽이라고 할 수 있겠어요?

그런데 선에서는 그런 말이 가능해요.

그게 선의 매력이에요. 이걸 좀 이해하셔야 돼요.

이걸 이해하지 못하고 글자에 매몰되면,

"글자대로라면 깃발이 나부낀다."

"바람이 부는 것이다."

또는 육조단경의 글자대로 "마음이 움직인다."

그러면 여러분은 무엇이 맞다고 하시겠어요?

 

보기 중에서 1번, 2번, 3번 중 하나를 골라도 다 틀린 거예요.

너무 어렵습니까? 선은 그래요. 살불살조잖아요.

다 틀렸어요.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곳이 선이에요.

무슨 얘기냐, 한번 볼게요.

"바람에 펄럭이며 나부끼는 깃발을 보고 한 승려는 '깃발이 움직인다'고 했고, 다른 승려는 '바람이 움직인다'고 했다. 그것을 본 조계대사 육

조 스님은 '당신의 마음이 움직이고 있는 것입니다'라고 했다."

그런데 여기에 이제 무몬은 일본식 발음이에요.

무몬 스님은 이 문답에 평하기를,

"깃발도, 바람도, 마음도 움직이는 게 아니다."

무몬 스님은 육조 스님이 틀렸대요. 자기가 육조 스님보다 더 뛰어나다는 거예요.

이런 것을 볼 때 여러분이 선어록을 보시면서 "그러면 육조 스님도 틀렸나 보다." 하면 어떻게 되는 거예요?

글자에 속게 되는 거예요.

결국 무몬 스님도 마찬가지예요.

글자대로 가면 무슨 얘기인지 아시겠어요?

**금강경에 보면 비유가 나오죠. 금강경의 핵심 논리 가운데 하나가 즉비(卽非)의 논리입니다.

"보살은 보살이 아니기 때문에 그러므로 보살이라고 부른다."

중생들에게 보살을 알려줬어요.

"이런 사람이 보살이야. 어떤 것에도 집착하지 않고 보살행을 하는 사람이 보살이야."

그런데 중생은 "아, 이것이 보살이구나. 나는 보살행을 해야지." 하면서 또 거기에 집착해요.

보살은 무조건 침착해야 돼. 보살은 무조건 들어줘야 돼.

여러분, 친절하게 한 번 많이 들어주잖아요.

그런데 이것도 무조건이라는 게 있을까요?

무조건이 되는 순간 괴로워집니다.

여러분은 살불살조를 알아야 돼요.

아무튼 그래서 금강경에서는 집착하지 말라고 얘기해 줬어요.

그랬더니 "아, 보살행에 집착하지 말아야 되는구나." 하고 또 거기에 집착해요.

그래서 금강경에서는 "보살행에 집착하지 말라는 것에도 집착하지 말라."고 해요.

그런데 중생은 또 "보살행에 집착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에도 집착해요.

그러면 또 어떻게 할까요?

거기에 또 집착해요.

그래서 선에서는 살불살조를 해야 된다고 말하는 거예요.

다 죽일 줄 알아야 된다는 거죠.

넘어가겠습니다.

그러면서 큰스님이 뭐라고 하시냐면, 그런 것들에 속지 말고 우선 스스로가 깃발이 되고 스스로가 바람이 되어서 무심코, 무심결에, 집착 없

이 살아보라는 거예요.

무심은 집착이 없다는 뜻이에요.

무심히 펄럭이며 나부껴 보는 것이다.

여러분, 제가 지난번에 "아제 아제 바라아제" 이야기를 했고, 또 영화 **만다라**에서도 나왔던 이야기가 있었죠.

그 섬에서 한 스님, 즉 주인공의 도반 스님은 전염병이 돌 때 산속에 천막을 쳐 놓고

"관세음보살님, 제발 이 중생들 좀 살려 주십시오."

하면서 기도했어요.

그런데 지산 스님은 어떻게 했다고요?

병자들을 돌보고, 전염병이 돌고 나서 열 명 중 한 명이 죽어 가는 상황 속에서 시신을 염하고 염불을 해 주고, 아파서 누워 있는 사람에게 물

을 갖다주었죠.

그게 바로 우선 스스로가 되는 거예요.

생각이 너무 많으면 그렇게 할 수 있을까요?

"나 죽을지 모르는데…"

아닌 거예요. 생각이 있으면 그럴 수 없어요. 그래서 우선 스스로가 깃발이 되고 바람이 되어 무심코 펄럭이며 나부껴 보는 것, 이게 그때 지

산 스님의 행동인 거예요.

여러분, 아무튼 그래요.

그래서 큰스님이 그다음에 방귀를 뀌죠.

이 큰스님의 방귀는 임제 스님의 할(喝)과 덕산 스님의 방(棒)과 다르지 않습니다.

같다고 하면 좀 수준이 떨어지니까, 다르지 않다고 하겠습니다.

임제 스님의 할은 소리를 지르는 거예요.

"할!" 하고 외치는 것이죠.

그리고 덕산 스님은,

"이게 손바닥이라고 해도 30방을 얻어맞을 것이고, 이게 손가락이 아니라고 해도 30방을 얻어맞을 것이다. 대답해 보십시오. 이게 뭡니까?

이걸 뭐라고 불러야 됩니까?"

이런 식으로 사람을 몰아붙이죠.

아무튼 이게 덕산 스님 이야기예요.

그런데 그거랑 이거랑 같다는 거예요.

영화에서 정말 재미있는 장면이 있죠.

큰스님이 그러고 난 다음에 하얀 수건 같은 것을 걸어놓는 것 보셨어요?

그거 기저귀 팬티예요.

너무 힘들어서 방귀 뀌다가 똥을 쌌다는 얘기예요.

그래서 그 똥 묻은 기저귀를 걸어놓은 거예요.

그게 나중에도 또 나오죠.

그러면서 앞에 족자를 떨어뜨리죠.

거기 족자에 뭐라고 써 있어요?

"방귀 뀐다고 타박 말아라."

중생들은 이렇게 생각할 것 같아요.

"큰스님이 미쳤나 봐. 법문하다 말고 방귀를 뀌네."

그렇죠. 전혀 격이 안 맞잖아요.

그런데 큰스님은 그걸 다 깨고 싶은 거예요.

"그대는 격조 있는 자리에서 격조 높은 법문을 해야 한다."

라고 하는 생각마저 다 깨버리고 싶은 거예요.

살불살조를 하고 싶은 거예요.

그러면서 하는 얘기가,

"뿡" 소리가 부처의 뜻이다.

"악!" 하고 방망이질하는 것과 "뿡!" 하는 방귀 소리가 다 같은 부처의 뜻이라는 거예요.

여기 백일 설법도 그렇습니다.

여러분, 53선지식 법회 엄청 열심히 하셨죠?

이걸 바꿔서 얘기해 볼까요?

"53선지식 법회도 방귀 한 방에 날아간다."

이러면 좀 와닿습니까?

열받지 않아요?

우리가 얼마나 고생고생해서, 몇 년을 들여서 53선지식을 해냈는데, 이게 방귀 한 방에 날아간다고?

그런데 이렇게 볼 줄도 아셔야 되는 거예요.

"백일 설법도 방귀 한 방에 날아간다."

이 말은 석가가 마지막으로 혹했다는 그 자리,

말함도 아니고 말하지 않음도 아니며, 유도 아니고 무도 아니고, 무가 아님도 아닌,

그 오묘한 지점을 가리키는 것이다.

여러분,

"석가가 마지막으로 혹했던 것이 무엇입니까?"

그게 화두가 되는 거예요.

그런데 여기에도 속으시면 안 됩니다.

넘어가겠습니다.

 

나의 방귀도 석가로부터 내려오는 방귀인 것이다.

여러분, 이 6번의 말과 앞에서 "아제 아제 바라아제"에서의 순녀의 보살행, **만다라**에서 지산 스님의 보살행, 그리고 제가 얘기했던 **금

강경의 "A는 A가 아니므로 A라 한다."라고 하는 즉비(卽非)의 논리는 서로 맞닿아 있습니다.

한 패로 꿰어져 있다고요. 이걸 이해하셔야 돼요.

그다음에 법전식이 나오죠.

이거는 영화에서도 설명하듯이 작은 절에서는 형식적인 다섯 가지만 하면 "이제 부처님 법을 알았다, 깨달았다." 말하자면 "내가 주지의 자

격이 있다."라고 하고 주지가 되는 거예요.

주지가 되기 전에 하는 일종의 의식 같은 거죠.

그런데 큰 절에서는 스물다섯 가지나 해야 되는 거예요.

거기에는 25명의 스님이 있고, 문답을 굉장히 소리를 질러 가면서 하잖아요. 그 장면을 보셨을 텐데요.

"짜고 치는 연기이지만, 보는 사람들이 감동을 느끼게끔 진심을 담아서 연기해라."

그렇게 하잖아요.

그런데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는 불교를 공부한 사람들답게 그 진정한 뜻이 뭔지 어느 정도는 알아야 되겠죠.

그래서 자막이 나와 있는 8번은 너무 어려우니까 그냥 넘어갈게요.

그런데 아무튼 제가 앞에서 6번에 설명했던 뜻을 알면 8번의 뜻도 알 수 있습니다.

9번 법전식입니다.

법전식 하기 전에 살활자재(殺活自在), 즉 살리고 죽이는 것을 자유자재로 하겠다고 하면서 큰스님이 주장자 하나를 딱 주잖아요.

그러면서 받으면서 "살활자재!" 이러면서 받거든요.

그러니까 내가 이제 활구(活句), 즉 살아 있는 법문을 통해 부처도 죽이고 조사도 죽이는 그러한 이야기를 하겠다는 뜻이에요.

그리고 주장자를 받았어요.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겠다는 거죠.

그러면서 첫 번째 문답이 되죠.

"깨달음을 얻은 자가 헤매게 될 때는 어찌 된 것입니까?"

헤맨다는 것은 여러분, 제가 만약 지금 이 자리에서 부처가 딱 됐어요.

그럼 제가 일본말을 자유자재로 할 수 있을까요?

아니죠. 아니에요.

여러분, 그런 건 없어요.

일체지(一切智)를 얻는다고 해도, 일체지 안에는 교육을 통해서 얻어야 하는 지식까지 들어 있는 것은 아니에요.

그런 것은 포함되어 있지 않아요.

중생들의 업이나 전생, 다음 생 같은 것이 보인다고 하더라도 말이에요.

물론 그런 것들 가운데 사심통(他心通)이 있다고는 하지만요.

그래서 제가 일본말을 못하는데,

"스님, 일본말로 이건 뭐예요?"

하고 물어보면 제가 헤매는 거죠.

이건 깨달은 사람에 대한 제 생각이에요.

이걸 설명하려고 "깨달음을 얻은 자가 헤매게 될 때는 어찌 된 것입니까?"라고 물은 거예요.

그랬더니 대답하기를,

"아직 그런 사람은 본 적이 없다."

여러분, 유튜브 동영상 같은 것을 보시면 진제 스님이 젊으셨을 때 어느 선원을 방문하시면, 납자들이 나와서 스님과 선문답하는 장면들이

나옵니다.

그럼 이제 이렇게 딱 한 번으로 끝나요. 예를 들어서 뭐냐, 우리가 이제 선어록에 봤듯이 "스님, 불교의 대의가 무엇입니까?"라고 했더니, 스

님이 뭐라고 그래요? "저 뜰 앞에 회화나무니라."

조계사 도량에 회화나무 있잖아요. 저 회화나무이니라 그래요.

우리는 여기서 끝나는 것 같잖아요.

임제 스님이 그 앞서서 이런 대화가 너무 유행하고 선이 막 대유행을 하니까 사람들이 답을 막 외우는 거예요.

답을 막 외워서 해요. 그러면서 "아, 너 좀 선을 아는 거다." 막 서로 이렇게 얘기하는 거예요.

 

그래서 임제 스님이 삼구(三句)를 얘기해요.

"그다음 것은 뭐냐?"

또 대답하면 "또 그다음 것은 뭐냐?"

여기까지 대답을 해야 진짜인 거예요.

외워서 하려면 이게 안 돼요.

그런데 여기서 딱 끝나 버리거든요.

한 번 묻고 대답하고 딱 끝나 버리거든요.

그런데 그게 아닌 거예요.

여기는 또 묻고 있잖아요. 이렇게 가줘야 되는 거예요.

일본은 형식만 남았지만 우리가 공부하며 배워야 될 게 있다.

이 속에서 그래서 한 번 더 묻는 거예요.

"아직 그런 사람 본 적이 없다." 했는데 갑자기 나타나면, 아니 아직 못 봤지만 그래 어쨌거나 나타나면 어떻게 할 겁니까?

 

그랬더니 "헤맴과 깨달음을 엄격히 구별하지 말아라. 그것은 다른 것이 아니다. 중생과 부처가 둘이 아니다."

제가 그냥 억지로 해석한 겁니다.

그랬더니 "아, 탁견입니다."

"그것 보아라. 궁극의 진리가 그러하니라."

이렇게 이런 식으로 서로 짜고 치는 고스톱을 하는 거예요.

그러면서 마지막에 다 끝나고 25번째 질문을 자기를 괴롭히던 그 스님하고 하는 거죠.

"어떤 의미에서 곽시과차 이야기를 하셨는지요?"

이게 8번 내용이에요.

아무튼 "어떤 의미에서 8번의 이야기가 있습니까?" 했더니 답하기를 "필생의 깨달음을 보여주기 위함이다."

그랬더니 "그 필생의 깨달음이란 무엇입니까?"

그랬더니 생자필멸(生者必滅), 태어난 사람은 반드시 죽는다.

회자정리(會者定離), 만난 사람은 반드시 헤어진다.

무상의 도리를 얘기하고 있죠.

우리는 태어났으니 죽을 것이다.

우리 총무원장 스님 선명상에도 그 말 나오죠?

아무튼 그런 어떠한 왕생이라 한들 한평생이란 찰나의 순간과 같다.

다 흘러가고 다 생로병사하고 다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고, 우리는 다 변해 간다.

그 변해 가는 것에 집착하지 말아라.

집착하면 고통이 발생한다.

고통에 빠진 중생이여, 이것을 알아라.

했는데 그래서 결론이 뭐야?

그랬더니 또 얘기하고 있죠.

그랬더니 언덕 밑 툇돌 밑에 작게 피어난 들꽃 있죠.

바위틈새에 이만큼 피었다가 지는 꽃 있잖아요.

그런 꽃도 역시 한평생, 나의 인생 생로병사, 100년을 살든 하루살이가 일주일 살고 3일 살고 죽든 다 똑같은 한평생이다.

어찌 그것을 모르느냐?

했더니 "스님, 중생들을 위해 도대체 무슨 말을 하겠다는 거예요?"

그러면 하루살이 우리 중생들의 삶이 하루 살았다는 거예요?

그렇게 하찮다는 거예요?

말 한마디 잘못하면 경을 칠 수도 있어.

여기 내용이 그랬더니 뭐라 그래요?

우리는 여기까지 가면 "이거 어떻게 하지?" 이렇게 할 거 아니에요.

그랬더니 "집어치워라."

 

제발 내 발로 민초들, 중생들과 섞이기로 했으면 아니 진흙을 뒤집어쓸 생각을 해야지 진흙을 하나도 안 뒤집어쓰고 중생들과 함께 살아갈

것이냐.

 

"분별하지 말아라, 이놈아. 분별하지 말아라."

그겁니다.

중생과 함께라면 어쩔 수 없다.

여러분, 제가 끝내야 되는데 거기서 끝났으니까요.

여러분 스님들 품평회 좀 하시죠.

이 스님은 어떻고 저 스님은 저쩌고 이 스님은 뭐 어쩌고.

품평하지 말라고 제가 그럽니다.

스님들 품평하지 마시라고.

다 깨달은 큰스님을 볼 줄 알아야 되고 다 이런 거예요.

내가 분별심이 있으니까 큰스님이 큰스님으로 보이고, 작은스님이 작은스님으로 보이고, 하찮은 스님으로 보이고, 좋은 스님으로 보이고 그

러는 거예요.

내가 분별심이 있으니까.

결국 그 분별심을 떠나면 우리는 지산 스님이나 그 순녀처럼 보살행을 할 수 있게 된다.

영화상의 이야기이긴 하지만 진정한 보살행은 그때 가능하다.

이런 얘기를 하고 있는 거예요.

그러면서 얘기하고 이제 인정을 하죠.

마지막에 우리 상좌에 오르신 분으로서 바라볼 건데, 장대 끝에서 한 걸음 내딛지 않을 것을.

여러분, 백척간두진일보 해 보신 적 있으세요?

저 거기서 진짜 한 걸음 내디디려고 엄청 노력해 봤는데 안 되더라고요.

이 끝에서 진짜 한 발짝만 더 나가면 될 것 같은데 이게 안 돼요.

정말 미친 듯이 그러고 싶은데 안 돼요.

죽을 것 같아요. 진짜.

그러면 그 상황에 빠지면...

그런데 아무튼 이러고 끝났어요.

그런데 영화상에 아니꼽게 보던 스님이 있었죠.

그 스님은 주인공을 왜 이렇게 싫어했을까요?

제가 봤을 때는요, 제 분별인데 자기는 못 가진 물려받을 절도 있고 여자친구도 예쁘고 주인공도 잘생겼고 나한테 없는 걸 다 갖고 있어서

미워한 것 같아요.

그래, 아무튼 그랬어요.

그 스님이 "이거 이렇게 하면 안 돼요."

근데 여기다 초를 치고 있죠.

이거 딱 하면서 "수좌하고 수행하는 사람이 남들 몰래 여자를 사귄 것 같은데 어떤 마음으로 그리했습니까?"

그런데 이 요헤이가 쓱 일어나더니 "주장자를 이렇게 탁 던지면서 보시는 그대로..." 이거는요...

 

"뜰 앞의 잣나무"랑 똑같은 거예요.

"보시는 그대로."

그 대화를 나눌 때 앞에 잣나무가 있었어요.

지금으로 하면 만약에 지금 저한테 "그 불법의 대의가 무엇입니까?" 하면 "빨리 가서 잡아."

이렇게 해도 되는 거예요.

아시겠어요?

아무튼 그거예요.

그건데 "보시는 그대로." 한 방 했어.

그랬는데 갑자기 여자애가 일어나더니 다리가 저래서 뒤뚱뒤뚱거리니까 그걸 딱 알아주죠.

자기 여자친구니까.

그런데 갑자기 키스를 한 통에 다리가 풀려서 저기다 주저앉으면서 어때요?

완전 판을 다 이겨 놓고도 딱 끝나 버렸죠.

그러니까 큰스님이 거기까지 하면서 "그대가 수좌가 패했다. 저 여인의 승리로다. 아직도 수행이 모자라는구나." 하면서 방귀를 뽕 또 낍니

다. 그랬는데 그러면서 이 영화가 이제 끝나죠.

그런데 마지막 대사가 이렇게 나오죠.

마지막 대사가 "나는 장대 끝에서 한 발짝 내디딘 것뿐이다."

이거는 물론 제가 경험한 그것과는 다른 것이고요.

어쨌거나 영화상에서는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계속 이 백척간두진일보(百尺竿頭進一步)라고 하는 화두가 이 영화 앞에서부터 계속 등장하고 있거든요.

"나는 거기서 디딜 수 없는 그 자리에 한 발을 디뎌 본 것이다.

내가 죽을지 모르지만 그래도 한 번 디뎌 봤다.

그래서 죽은 거다."

말 그대로 죽었죠.

대폭망했죠.

한 발짝 내디뎌 떨어질 만큼 떨어진 것이다.

망신당할 만큼 망신당한 것이다.

이러면서 영화가 끝이 납니다.

결론이 없어요.

결론이 없는데 그래도 선이라는 것이 정말 매력적이고, 이 선의 마음으로 살아갈 때, 분별 없이 살아갈 때 우리는 매 순간 부처의 마음으로

살아날 수가 있습니다.  딱 보면 남자다 여자다, 딱 보면 늙었네 젊었네, 딱 보면 스님이네 아니네, 딱 보면 잘생겼네 못생겼네 하는 게 아니

고 누구나 다 부처로 볼  수 있는 거예요.

분별이 없으면 다 부처인 거죠.

그러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질문 받고 싶지만 지금 제가 질문 받으면 밥 먹으러 못 가니까요.

 

오늘 법회에 참석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PS. 다음 법회에서는 영화 「리틀 붓다」를 통해 업과 윤회에 대해 함께 공부하겠습니다.]

 

다음 주제는 이제 미국 불교인데, 선불교는 여기서 종결을 짓겠습니다.

미국 불교, 이거는 업과 윤회잖아요.

여러분, 우리는 전생에 여러분 뭐였어요?

사람이었을 것 같아요.

여기 이 영화 **Little Buddha**에는 굉장히 유명한 배우가 젊었을 때, **Keanu Reeves**가 나옵니다.

부처님으로 나옵니다.

키아누 리브스가 겁나 잘생겼습니다.

그런데 아무튼 여기에 제가 스토리를 이야기하지만,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한 사람이 죽었잖아요.

그런데 이 사람의 후신으로 세 사람이 나와요.

한 사람이 죽었는데 어떻게 세 사람이 나와요?

결론부터 얘기해 주면 큰스님의 신구의(身口意) 삼업이 각각 한 사람씩 윤회한 것으로 나옵니다.

여러분, 이렇게 윤회를 생각해 본 적 있습니까?

우리 다 일대일이라고 생각했죠.

한 사람 죽으면 한 사람 가고, 얘 죽으면 여기 가고.

그거는 정확하게 힌두교식 윤회입니다.

미국 사람도 윤회를 그렇게 생각하는 경우가 많아요.

한 사람이 죽었는데 업이 돌고 도는 거잖아요.

뭐가 영원히 돌고 도는 게 아니고 신구의 삼업이 각각 이어지는 것이라니까요.

불교에 대한 이해가 깊어질수록 우리가 불교 공부를 열심히 해야 되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아무튼 그런 이야기가 다음 편입니다.

자, 그럼 오늘 저는 여기까지 하도록 하겠습니다.

 

2026년 6월 12일

[조계사 종무행정지원단장 원지스님 합장]

 


사진은 홍보부 수석차장 운봉 이금재님께서 촬영한  사진을 사용하였습니다.

 

"거짓 말, 이간질하는 말, 거친 말, 쓸모없는 말을 삼가며 멀리하고 없애 버리고 하나하나 제거하면서 

고귀한 마음을 지니고 버뇌가 없는 마음을 지니며 고귀한 도와 관련된 바른 언어가 있다. 

이것을 출세간의 바른 언어라고 한다. - (아함경 인용)

 

불기2570년 (2026) 6월 14일

[조계사 불교대학 총동문회 자문위원 법연 이동엽 합장]

 

 

#조계사 불교대학 총동문회 #조계사 종무행정지원단장 원지스님 #법문 # 법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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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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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법연 이동엽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6.06.14 팬시댄스를 통해 일본 불교 살불살조를 알게 되었습니다.~
    앞으로는 지혜와 자비의 보살행을
    실천할 것을 다집합니다
    원지스님 감사드려요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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