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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화(聖畵)]5월26일[성체축일]복녀 에바 동정

작성자유안젤라|작성시간07.05.25|조회수38 목록 댓글 0

 

The Last Supper - LEONARDo da Vinci.

1498. Mixed technique,460x880cm Convent of Santa Maria delle Grazie,Milan.

 

 

축일:5월26일(3월14일)

복녀 에바 동정

Bl. Eva of Liege

Beata Eva Reclusa di s. Martino di Liegi

1205/1210-1265

Eva = colei che da vita, dall’ebraico = the one who that gives life, dall’ebraico

 

 

에바는 히브리어로 ’생명을 주는 자’란 뜻이다.

성녀 율리아나(축일:4월5일)가 꼬르닐롱 산의 원장으로 있을 때,

그녀의 벗 한 사람이 성덕이 매우 뛰어났다고 했는데,

그분이 바로 리에쥬의 에바이다.

 

에바는 특히 성체 축일이 제정되는데 큰 기여를 하였는데, 우르반 4세 교황이 그녀의 소원을 들어 주었다.

이 교황은 에바의 신심을 높이 평가하여 그리스도의 성체 축일을 제정하였을 뿐만 아니라

성 토마스 아퀴나스가 편찬한 이 축일의 성무일도 등을 인정하는 칙서까지 하사하였다.

(성바오로수도회홈에서)

 

 

*성 토마스 아퀴나스 사제 학자 축일:1월28일.게시판1590번.

*시조 아담과 하와(에바) 축일:12월24일.게시판1536번.

http://home.catholic.or.kr/gnbbs/ncbbs.dll/chinchang

 

 

 

 

 

축일:4월5일(4월6일)

코르닐롱산의 복녀 율리아나

Bl. JULIANA of Cornillon

Beata Giuliana di Liegi

Beata Giuliana di Cornillon o di Liegi

Also known as

Juliana of Mount Cornillon; Juliana of Liege

Retinne, presso Liegi (Belgio), 1191/1192 - Fosses (Belgio), 5 aprile 1258

 

 

플란데르 리에쥬 교외 러틴느에서 태어난 그녀는

5세 때에 고아가 되어 코르닐롱 산(Mount Cornillon)의 수녀들의 도움을 받고 성장하였다.

그녀는 어려서부터 환시를 경험하였는데, 그때마다 주님께서는 성체를 공경하는 축일이 없다고 지적하셨다.

 

그후 그녀가 수녀가 되었고, 1225년에는 원장으로 선출되면서부터

자신의 환시 내용을 기초로 축일을 만들려는 활동을 전개하였다.

이런 저런 오해도 많았고 제재를 당하였으나,

마침내 리에쥬의 주교가 교구내에 "주의 성체 축일"을 도입하였다(1246).

그러나 그 주교가 사망하면서부터 그녀를 반대하는 기운이 일어나, 율리아나는 자기 수녀원에서 쫓겨났다.

그후 나무르의 씨토 수도원에 피난처를 마련하였으나, 이곳마저 헨리 2세의 군인들이 파괴하였다.

그녀는 일생동안, 성체 축일 제정과 그 축일의 보급을 위하여 활동하였다.

(성바오로수도회홈에서)

 

 

 

Last Supper-DUCCIO di Buoninsegna

1308-11. Tempera on wood, 50 x 53 cm. Museo dell’Opera del Duomo, Siena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이동대축일):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은 1247년

리에즈에서 몽 꼬르니용(Mont-Cornillon)의 쥴리앙이라는 한 수녀의 열성에 의해 처음 드려졌다.

1208년 환시 중에 주님께서

제대의 성체성사를 공경하는 연중 축일이 빠져 있음을 자신에게 알려주셨다고 그녀는 말하였다.

 

얼마동안의 시간이 지난 후 리에즈의 주교와 특히 후에 교황 우르바노 4세가 된(1261)

쟈끄 빤딸레옹 대부제가 이 계시를 호의적으로 받아들였다.

 

오르비에또(Orvieto) 근처 볼세나(Bolsena)에서 일어난 성체성사 기적에 감명 받은 우르바노 4세는

1264년, 오르비에또에서 교서 "Transiturus"를 반포하는 가운데 새 대축일을 제정하였으며,

이 대축일은 성령강림절 팔부 다음 목요일에 성체성사를 기념하여 지내게 되었다.

 

쥴리앙은 몽 꼬르니용의 한 젊은 수사에게 새 축일 시간전례 기도문을 만들 것을 부탁하였었다.

하지만 우리 시대까지 사용되고 있는, 교황의 교서에 함께 붙어 있는 시간전례 기도문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근대의 연구는, 이 축일을 위한 미사와 시간전례 기도문은

성 토마스가 만든 것이라는 전통적 견해를 지지하고 있는 경향이다.

 

교황이 새 축일을 서방 교회 전체가 지키도록 자신의 권위로 명한 것은 이것이 처음이었다.

오랫동안 이 축일은 "새 대축일"이라 불렀다. 또한 성체성사 축일, 하느님 축일,

지극히 고귀한 성사 축일, 그리스도의 몸과 피 대축일로도 불렀다.

우르바노 4세가 새 축일을 세운지 두 달 후에 죽은 까닭에 그의 교서는 실현되지 못하였다.

 

클레멘스 5세(1311-1312)와 요한22세(1317)가 이 교서를 새로 확인한 다음에야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이 전 교회에 받아들여졌다.

이 축일을 진작시킨 세 교황 가운데 성체 행렬에 대해 언급한 이는 아무도 없었다.

여러 지역에서는 빠스카 아침 지성소의 그리스도의 "무덤"에 빨마 가지를 든 채

성체를 모시고 행진하거나 또는 성대하게 성체를 옮겼다.

본래 의미의 성체 행렬(성체 거동)은 13세기 말 산발적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풍습은 14, 15세기에 퍼져나갔다.

로마교회는 15세기에 이를 받아들였다.

(꼰벤뚜알 프란치스코회홈에서)

 

*그리스도의 성체성혈대축일(이동대축일): 게시판1235번,1815번

http://home.catholic.or.kr/gnbbs/ncbbs.dll/chinch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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