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포지역 신앙못자리, 선교 전진기지라고 일컫는 공세리 성당.
110년의 전통을 말해주듯 요즘 보기드문 서양식 고딕양식의 건물
(충청남도 지정 문화재 제 144호)
햇볕에 반사되어 눈이 부시는 성체현시의 모양을한 종각,
멀리 아산만을 바라보는 야트막한 언덕위의 뾰촉탑,
500년 이상의 수령을 자랑하는 아름드리 나무가 성전을
감싸 안은듯 하다 ,
제대 중앙벽엔 본당 수호 성인인 베네딕도 성인상,
베네딕도 성인상 아래에 나무 십자가가 있고
왼쪽엔 성부자상이 오른쪽엔 성모자상이,
제2차 바티칸공의회(1962~1965) 이전에 벽을 바라보고
미사를 집전하던 제대, 성체 난간틀과 양쪽 벽의 소제대,
성가대틀, 고해소 등은 옛 성당의 모습을 그대로이다.
성당의 역사
공세리는 조선시대에 충청도 일대에서 관곡을 수합하여
서울로 운송해 가던 창고집이 있던 곳이다.
이 창고 건물은 1523년(중종 18년)에 건립 되었다가
고종때 퍠쇄 되므로 80간 짜리 건물이 헐리고 그 자리에
1897년 구 본당및 사제관건물이 들어 섰다.
공세리 성당의 오늘이 있기 까지는 이 본당의 초대 주임
파리외방전교회 에밀리오 드비즈(한국명 성일론) 신부의
열정적인 사목 활동 덕분이리라.
이 건물은 드비즈 신부님이 직접 설계하고
중국인 건축 기술자를 불러들여 1922년 완공했다.
순례객을 맞는 성가정상
드비즈 신부님은 이곳에서 34년간 사목하면서
본당의 기반을 굳건히 하고 가난한 지역민을 위해
교육사업과 의료사업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이신
드비즈 신부는 직접 한방 의술을 활용, 한약을 조제했으며
이명래 고약으로 유명한 이명래(요한)씨에게 고약 비법을
전수시켰다.
멀리 아산만 바다를 바라보고 계신 성모님,
성당정면
사제관
삼위 순교자 현양비
치명일기(致命日記)
387 박의서(사바스) 388 박원서(마르코) 389 박익서(세례명 미상)
세 분 순교자의 묘가 있다.
이 분들은 모두 걸매리에서 살다가 병인박해가 일어난
이듬해인 1867년에 체포되어 수원에서 순교한 분들이다.
박의서, 박원서, 박익서, 세 분의 순교자는 옛날 걸매리에 살던
밀양 박씨 의암공파의 후손이다.
이 집안에는 이미 치명일기에 기록된 이 세 분의 순교자 말고도
이 마리아, 박인서, 박제환, 박홍갑, 조 모니카, 박화진,
이씨 부인 등 일곱 분의 순교자가 더 있다.
그리고 그 주변 마을에서 살던 순교자들이 12명이나 더 있다.
공세리 성당은 굳이 신자가 아니라도 수 많은 영화장면속에서
tv드라마를 통해 아름다운 성당의 모습이 잘 소개되어 있는 곳,
공세리 성당을 찾아 6시간을 쉬지 않고 달려왔다.
사순시기를 중반으로 넘기면서
다람쥐 체바뀌 도는 생활의 연속이
사람을 많이 나태하게 만들어 버리는것 같은 의구심 때문에
단순한 여행이 아닌 예수님이 지신 십자가의 의미를 찾고 싶었다.
순레지는 내포지역(충청권)대전교구에 산재해 있는 순교지를
찾아서 맨 먼저 가장 위쪽에 자리한 공세리 성당에서 합덕으로
내림길을 택했다.
순례는 침묵과 기도의 여정으로 잡았다.
성당을 나와 왼쪽으로 14처가 마련되어 있다.
피 묻은 님들이여
詩: 이 해인
보이지 않아도 나날이 미더웁고
나날이 친숙해 온
피 묻은 님들이여
목숨을 걸고 사랑한 죄로
칼을 받아야 했던 피묻은 얼굴들이
태양이 되어
아직도 그 빛 안에
우리가 살고 있음이여
어둠과 비애의 폭풍이 잦아
갈수록 슬퍼진 땅에
살기 위해 죽어서
우리도 묻혀야 할 이 그리운 당에
지금은 얼굴을 묻고
귀먹고 눈도 멀어
열리지 않는 가슴을
통곡하다 지쳐 버린 후예일지라도
남겨주신 그 신앙
생명의 피로 아픔을 씻고
또다시 희망속에 웃고 싶음이여
피묻은 님들이 있어
더욱 확연히 터인 하나의 길로
영원히 살고 싶음이여
피정의 집
주차장 마당에서서 성모님을 올려다 보며
다음번엔 꼭 하루쯤 묵어면서 성체조배실에서
예수님과 독대도하고 이곳에 누워계신 순교 선열들과
더 많은 이야기도 나눠야지 하고 .....
아쉬운 마음 뒤로 하고 "솔뫼"로 향해 발길을 돌린다.
♬~~순례자의 노래/이종철 역사
|
다음검색
댓글
댓글 리스트-
작성자안산 바오로 작성시간 07.10.23 11월3일날 레지오 간부 피정 갈예정인데```감사 합니다```
-
작성자빈폴 작성시간 07.10.23 100년 성당이죠 하도 이쁘서 몇번 다녀 왔답니다 가서 사진두 마니 찍구요
-
작성자가을바람 작성시간 07.10.26 고딕양식으로 된 성당이 옛고향을 보는듯 합니다.전통과 역사를 말 해 주는것 같구요. 옛날의 나 어릴적 시절이 그리워 집니다.
-
작성자로지 작성시간 08.01.24 섬사람이 말로만 듣고 꼭 가보고 싶었던 성당을 아름다운 사진으로 볼수있게 해 주심에 감사 드림니다
-
작성자로지 작성시간 08.01.24 섬사람이 말로만 듣고 꼭 가보고 싶었던 성당을 아름다운 사진으로 볼수있게 해 주심에 감사 드림니다
내포지역 신앙못자리, 선교 전진기지라고 일컫는 공세리 성당.
110년의 전통을 말해주듯 요즘 보기드문 서양식 고딕양식의 건물
(충청남도 지정 문화재 제 144호)
햇볕에 반사되어 눈이 부시는 성체현시의 모양을한 종각,
멀리 아산만을 바라보는 야트막한 언덕위의 뾰촉탑,
500년 이상의 수령을 자랑하는 아름드리 나무가 성전을
감싸 안은듯 하다 ,
제대 중앙벽엔 본당 수호 성인인 베네딕도 성인상,
베네딕도 성인상 아래에 나무 십자가가 있고
왼쪽엔 성부자상이 오른쪽엔 성모자상이,
제2차 바티칸공의회(1962~1965) 이전에 벽을 바라보고
미사를 집전하던 제대, 성체 난간틀과 양쪽 벽의 소제대,
성가대틀, 고해소 등은 옛 성당의 모습을 그대로이다.
성당의 역사
공세리는 조선시대에 충청도 일대에서 관곡을 수합하여
서울로 운송해 가던 창고집이 있던 곳이다.
이 창고 건물은 1523년(중종 18년)에 건립 되었다가
고종때 퍠쇄 되므로 80간 짜리 건물이 헐리고 그 자리에
1897년 구 본당및 사제관건물이 들어 섰다.
공세리 성당의 오늘이 있기 까지는 이 본당의 초대 주임
파리외방전교회 에밀리오 드비즈(한국명 성일론) 신부의
열정적인 사목 활동 덕분이리라.
이 건물은 드비즈 신부님이 직접 설계하고
중국인 건축 기술자를 불러들여 1922년 완공했다.
순례객을 맞는 성가정상
드비즈 신부님은 이곳에서 34년간 사목하면서
본당의 기반을 굳건히 하고 가난한 지역민을 위해
교육사업과 의료사업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이신
드비즈 신부는 직접 한방 의술을 활용, 한약을 조제했으며
이명래 고약으로 유명한 이명래(요한)씨에게 고약 비법을
전수시켰다.
멀리 아산만 바다를 바라보고 계신 성모님,
성당정면
사제관
삼위 순교자 현양비
치명일기(致命日記)
387 박의서(사바스) 388 박원서(마르코) 389 박익서(세례명 미상)
세 분 순교자의 묘가 있다.
이 분들은 모두 걸매리에서 살다가 병인박해가 일어난
이듬해인 1867년에 체포되어 수원에서 순교한 분들이다.
박의서, 박원서, 박익서, 세 분의 순교자는 옛날 걸매리에 살던
밀양 박씨 의암공파의 후손이다.
이 집안에는 이미 치명일기에 기록된 이 세 분의 순교자 말고도
이 마리아, 박인서, 박제환, 박홍갑, 조 모니카, 박화진,
이씨 부인 등 일곱 분의 순교자가 더 있다.
그리고 그 주변 마을에서 살던 순교자들이 12명이나 더 있다.
공세리 성당은 굳이 신자가 아니라도 수 많은 영화장면속에서
tv드라마를 통해 아름다운 성당의 모습이 잘 소개되어 있는 곳,
공세리 성당을 찾아 6시간을 쉬지 않고 달려왔다.
사순시기를 중반으로 넘기면서
다람쥐 체바뀌 도는 생활의 연속이
사람을 많이 나태하게 만들어 버리는것 같은 의구심 때문에
단순한 여행이 아닌 예수님이 지신 십자가의 의미를 찾고 싶었다.
순레지는 내포지역(충청권)대전교구에 산재해 있는 순교지를
찾아서 맨 먼저 가장 위쪽에 자리한 공세리 성당에서 합덕으로
내림길을 택했다.
순례는 침묵과 기도의 여정으로 잡았다.
성당을 나와 왼쪽으로 14처가 마련되어 있다.
피 묻은 님들이여
詩: 이 해인
보이지 않아도 나날이 미더웁고
나날이 친숙해 온
피 묻은 님들이여
목숨을 걸고 사랑한 죄로
칼을 받아야 했던 피묻은 얼굴들이
태양이 되어
아직도 그 빛 안에
우리가 살고 있음이여
어둠과 비애의 폭풍이 잦아
갈수록 슬퍼진 땅에
살기 위해 죽어서
우리도 묻혀야 할 이 그리운 당에
지금은 얼굴을 묻고
귀먹고 눈도 멀어
열리지 않는 가슴을
통곡하다 지쳐 버린 후예일지라도
남겨주신 그 신앙
생명의 피로 아픔을 씻고
또다시 희망속에 웃고 싶음이여
피묻은 님들이 있어
더욱 확연히 터인 하나의 길로
영원히 살고 싶음이여
피정의 집
주차장 마당에서서 성모님을 올려다 보며
다음번엔 꼭 하루쯤 묵어면서 성체조배실에서
예수님과 독대도하고 이곳에 누워계신 순교 선열들과
더 많은 이야기도 나눠야지 하고 .....
아쉬운 마음 뒤로 하고 "솔뫼"로 향해 발길을 돌린다.
♬~~순례자의 노래/이종철 역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