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9월 6일 연중 제22주간 수요일
<나는 기쁜 소식을 다른 고을에도 전해야 한다. 사실 나는 그 일을 하도록 파견된 것이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4,38-44
38 예수님께서는 회당을 떠나 시몬의 집으로 가셨다. 그때에 시몬의 장모가 심한 열에 시달리고 있어서,
사람들이 그를 위해 예수님께 청하였다.
39 예수님께서 그 부인에게 가까이 가시어 열을 꾸짖으시니 열이 가셨다.
그러자 부인은 즉시 일어나 그들의 시중을 들었다.
40 해 질 무렵에 사람들이 갖가지 질병을 앓는 이들을 있는 대로 모두 예수님께 데리고 왔다.
예수님께서는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손을 얹으시어 그들을 고쳐 주셨다.
41 마귀들도 많은 사람에게서 나가며, “당신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하고 소리 질렀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꾸짖으시며 그들이 말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으셨다.
당신이 그리스도임을 그들이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42 날이 새자 예수님께서는 밖으로 나가시어 외딴곳으로 가셨다.
군중은 예수님을 찾아다니다가 그분께서 계시는 곳까지 가서, 자기들을 떠나지 말아 주십사고 붙들었다.
43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다른 고을에도 전해야 한다.
사실 나는 그 일을 하도록 파견된 것이다.”
44 그러고 나서 예수님께서는 유다의 여러 회당에서 복음을 선포하셨다.
스트레스 때문에
현대의 의사들이 한 결 같이 말하기를 가장 많은 질병은 스트레스로 인해 발생한다고 합니다. 경영학에서도 ‘스트레스관리’라는 연구 분야가 생겨났는데 스트레스로 인해서 생기는 많은 종류의 병이 있는데 위장병, 심장병, 암, 그리고 열병이나 화병, 정신과 질환 등 여러 가지로 사람에게 나타납니다. 물론 복잡한 세상을 살면서 스트레스에 시달리지 않고 걱정거리가 없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오늘 시몬의 장모도 많은 스트레스로 열병이 더욱 심했을 것입니다. 사위가 직업과 아내를 버리고, 장모도 본체만체하고 예수님만 따르니 화가 나고 딸을 고생시키는 사위 생각만 해도 열이 치밀어 올라 미칠 지경이었을 것입니다. 마귀는 딸을 핑계 삼아 시몬의 장모를 꼬드겼고 사위를 달달 볶아서 ‘예수님을 따라 다니지 못하게 하여 으뜸 제자가 되지 못하도록 유혹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스트레스와 마귀의 부추김으로 열병이 심해져서 꼼짝 달싹도 하지 못할 지경이 되었을 때 사위가 근처에 왔다고 해도 들은 척도 안하니 사람들이 예수님을 청 하였을런지 모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시몬 장모의 열병을 꾸짖어 내어 쫓으시지요. 결국 스트레스는 본인 스스로 만들거나 마귀가 만드는 병이기 때문에 시몬의 장모는 예수님의 말씀만 듣고도 열이 내렸으니 열병의 원인이 많이 있었겠지만 스트레스가 완전히 가시고 마귀는 도망친 것입니다.
시몬의 장모가 사람들의 시중을 들었다는 것은 상징적으로 우선 치유를 받아 건강해졌다는 것이고, 많은 사람에게 섬김을 베풀 줄 알게 되었다는 것이고, 예수님과 일행을 적극 환영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많은 갈등으로 인하여 사람들을 배척하는 자세에서 환영하는 자세로 바뀐다면 변화된 것입니다. 해질 무렵에 사람들이 병자를 데리고 왔다는 것은 그 나라의 뜨거운 열기를 피해서 저녁에 올 수도 있고, 병자의 거동을 돕는 사람들이 일을 마치고 올 수도 있고, 악령 들린 사람들이 더 발작하는 시기에 올 수도 있고, 병은 죄의 원인이라는 의식 때문에 한낮에 오지 못하고 해질 무렵에 예수님을 찾아올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느 때 주님을 곧잘 찾아 나서는지요? 날씨가 더운 여름에는 더워서, 추운 겨울에는 추워서 성당을 찾지 못하고, 다른 많은 일을 하느라고 바빠서 찾지 못하고, 그래서 어둠과 죄로 병들어 있는 우리는 과연 언제 주님을 간절히 찾아 나서게 될까요?
악령들은 예수님을 아주 잘 알아봅니다. 그런데 그들이 노리는 것은 예수님께서 포도나 사과나 감이 익기도 전에 떨어져 버리게 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보고 자꾸만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라고 떠벌려서 사람들에게 죽게 하고 싶은 것입니다. 이제 만나기만 하면 그렇게 떠들어서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지요. 그러나 그들이 주님의 뜻을 어찌 알겠습니까? 외딴 곳으로 기도하러 가신 예수님을 사람들이 찾아 나서지요. 우리도 예수님께서 혼자 계시면 찾아 나서나요? 아니면 혼자 기도하시고 계신데 방해 된다고 자리를 피해 주게 되나요? 하지만 예수님은 지금 기도하실 틈도 없이 병자를 고쳐주시고 사방으로 복음을 전하러 바삐 떠나셔야 합니다. 그 일이 주님께서 세상에 오신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세상에 복음을 전하는 것이 가장 큰 사명 중의 사명인데 그 임무를 충실히 수행을 위해서 지금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까?
'지행합일'(知行合一)이라는 말은 <'아는 것과 행하는 것은 같다.'는 말로써 행동이 따르지 않는 지식은 아무 소용이 없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사명과 임무를 잘 알고 있으면서 망설이고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는 것은 믿음과 의지가 부족해서입니다. 세상에 두루 복음을 전하는 사명도 중요하고, 가까운 주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도 중요합니다. 우리를 기다리는 사람들을 위해서 과감히 떠나야 합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오고 들음은 말씀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로마10,17) 흔히 예비자 교리 반을 교육 할 때에 그들은 천주교에 대해서 알려주고 입교하기를 한 번도 권유를 받지 못했다는 말을 듣게 되면 참으로 기가 막힌 일입니다. 우리는 그들에게 기쁜 소식을 들려 줘야하는 사명을 수행하기 위해 파견 받은 사람들입니다.
<진리의 말씀이 여러분에게 다다라, 온 세상에서 열매를 맺고 있습니다.>
▥ 사도 바오로의 콜로새서 시작입니다. 1,1-8
1 하느님의 뜻에 따라 그리스도 예수님의 사도가 된 바오로와 티모테오 형제가
2 콜로새에 있는 성도들 곧 그리스도 안에서 사는 형제 신자들에게 인사합니다.
하느님 우리 아버지에게서 은총과 평화가 여러분에게 내리기를 빕니다.
3 우리는 여러분을 위하여 기도할 때면 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느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4 그리스도 예수님에 대한 여러분의 믿음과 모든 성도를 향한 여러분의 사랑을 우리가 전해 들었기 때문입니다.
5 그 믿음과 사랑은 여러분을 위하여 하늘에 마련되어 있는 것에 대한 희망에 근거합니다.
이 희망은 여러분이 진리의 말씀 곧 복음을 통하여 이미 들은 것입니다.
6 이 복음은 여러분에게 다다라 여러분이 그 진리 안에서 하느님의 은총을 듣고 깨달은 날부터,
온 세상에서 그러하듯이 여러분에게서도 열매를 맺으며 자라고 있습니다.
7 여러분은 하느님의 그 은총을 우리가 사랑하는 동료 종 에파프라스에게 배웠습니다.
그는 여러분을 위하여 일하는 그리스도의 충실한 일꾼이며,
8 성령 안에서 이루어지는 여러분의 사랑을 우리에게 알려 준 사람입니다.
축일9월 6일 성 즈카르야 (Zachary)
신분 : 구약인물, 예언자
활동 연도 : +6세기BC
같은 이름 : 자카리아, 자카리아스, 자카리야, 재커리, 즈가리아, 즈가리야
구약성서의 열두 소예언서에 하나인 즈카르야서는 자카리아(Zacharias, 또는 즈카르야)라는 한 예언자의 이름으로 전해진다. 마태오 복음사가는 유다가 예수님을 팔아 넘긴 이야기를 하면서, ‘은전 서른 닢’과 관련된 예레미야(Jeremias) 예언자의 말이 실현되었다고 밝혔다(마태 27,9-10). 그런데 이 표현은 즈카르야서 11장 12-13절에 나온다. 이로써 즈카르야서 전반부와 11장을 중심으로 한 후반부가 서로 다르다는 사실이 확연해졌다. 즉 이사야(Isaias) 예언서와 마찬가지로 즈카르야 예언서 역시 한 사람의 동일한 작품으로 볼 수 없다.
예언자 자카리아와 직접적인 관련을 맺고 있는 즈카르야서 제1부(1-8장)에 의하면 예언자 자카리아는 “이또의 손자이며 베레기야의 아들”(1,1. 7)로 전해진다. 그는 예언자 하까이(Haggai)와 동시대 인물로서, 기원전 520년 8월 또는 9월부터(1,1) 518년 11월까지(7,1) 활동했다. 하깨가 종교적인 이상(理想)을 불러일으키는 데 헌신했다면(하깨 1,14), 자카리아는 성실성에 대한 호소를 통해서뿐만 아니라 미래에 대한 약속을 통해서 이 이상을 실현시키는데 최선을 다한 예언자로 받아들일 수 있다. 성전의 역할을 그처럼 강조하고 있다는 사실이나 단식문제에 대한 답변 장면(7,1-3; 8,18-19), ‘거룩한 땅’과 성성(聖性)에 대한 깊은 관심(2,16; 5,1-4. 5-11) 등으로 미루어 자카리아의 신분이 사제였음이 거의 확실하며(느헤 12,16 참조), 또한 옛 예언자들의 정신적 유산을 그대로 이어받고 있는 인물이기도 하다(1,3-6; 7,4-14; 8,16-17).
오늘 축일을 맞은 즈카르야 형제들에게 주님의 축복이 가득하시길 기도합니다.
야고보 아저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