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3월 18일 사순 제2주간 화요일
<그들은 말만 하고 실행하지는 않는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3,1-12
1 그때에 예수님께서 군중과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2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모세의 자리에 앉아 있다.
3 그러니 그들이 너희에게 말하는 것은 다 실행하고 지켜라.
그러나 그들의 행실은 따라 하지 마라. 그들은 말만 하고 실행하지는 않는다.
4 또 그들은 무겁고 힘겨운 짐을 묶어 다른 사람들 어깨에 올려놓고,
자기들은 그것을 나르는 일에 손가락 하나 까딱하려고 하지 않는다.
5 그들이 하는 일이란 모두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다.
그래서 성구 갑을 넓게 만들고 옷자락 술을 길게 늘인다.
6 잔칫집에서는 윗자리를, 회당에서는 높은 자리를 좋아하고,
7 장터에서 인사받기를, 사람들에게 스승이라고 불리기를 좋아한다.
8 그러나 너희는 스승이라고 불리지 않도록 하여라. 너희의 스승님은 한 분뿐이시고 너희는 모두 형제다.
9 또 이 세상 누구도 아버지라고 부르지 마라. 너희의 아버지는 오직 한 분, 하늘에 계신 그분뿐이시다.
10 그리고 너희는 선생이라고 불리지 않도록 하여라. 너희의 선생님은 그리스도 한 분뿐이시다.
11 너희 가운데에서 가장 높은 사람은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12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
머지않아 떠날 그 날을 위해
매일 아침에 어김없이 되풀이 되는 것이 샤워하고, 면도하고, 거울을 보는 것입니다. 그 일을 하면 하루가 시작됩니다. 그리고 아침을 들거나 안 들거나 반드시 챙겨서 혈압 약이나 심장 약을 먹는 일입니다. 매일 정성껏 기도하겠다고 작정하고 성무일도 기도서나, 재속 삼회 기도서나, 꾸르실료 아침기도나, 가족이 바치는 기도서를 곁에 두고도 건너뛰고, 잊고, 눈길도 주지 않는 날이 많고, 먼지만 뒤집어쓰고 있는 기도서가 눈에 걸립니다. 그러나 사람들에게 더부룩한 머리는 보이기 싫고, 면도도 하지 않은 얼굴은 보이기 싫어서 아주 정성스럽게 면도도 하고, 머리도 감고, 이도 닦습니다.
면도를 하려면 반드시 거울을 봅니다. 하루 중 내 얼굴을 보는 필연적인 시간입니다. 그리고 엘리베이터를 타거나, 화장실에서 손을 씻을 때 무심결에 거울을 보면서도 흐트러진 머리칼을 손가락으로 빗어 내리면서 자신을 바라봅니다. 젊고 고왔던 얼굴이 많이도 변해져 있지만 그게 내 얼굴이려니 생각하고 그렇게 매일 살아왔습니다. 그 동안 변해진 내 모습을 전혀 느끼지 못한 채 그렇게 세월이 흘렀고, 어느 듯 나는 다른 사람이 되어 있습니다. 꿈을 꾸듯 세상을 살았고, 매일 자라는지 전혀 의식하지 못하여도 수염은 느껴지고 만져지듯 자라고 있는 것입니다.
교리 시간에 ‘아무리 들어도 무슨 소린지 잘 모르겠다.’고 하는 할머니에게 “콩나물을 길러 보셨나요? 물을 주면서 밑으로 다 빠져 버려도 콩 나물이 자라듯 매일 잊으면서 다시 공부하고 그러는 것이랍니다.”라고 아는 체를 하였습니다. 내 수염이 그렇게 매일 자라듯 내 안의 악도, 교만도, 자랑함도, 뽐냄도 그리고 죄도 조금씩 뿌리를 내리고, 물기를 머금고, 길어지고 있습니다. 내 신심이 그렇게 커졌으면 좋겠습니다. 기도하는 자세도 그렇게 늘어났으면 좋겠습니다. 사랑도, 존경하는 마음도, 희생과 봉사의 마음도 그렇게 커졌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악의 싹도 유혹에 연약한 마음도, 다른 사람들 위에 군림하려는 그런 욕심도 바리사이와 같은 교만한 기도도 면도하듯 매일 잘라 없애버렸으면 좋겠습니다. 구석구석 살펴보면서 손으로 만져 보면서 한 올이라도 말끔하게 얼굴에 상처를 내지 않고 아주 조심스럽게 밀어버리듯 그렇게 없앨 수만 있다면 원이 없겠습니다.
머지않아 떠날 그 날을 위해서 매일 면도하듯 그렇게 말끔하게 밀어 버리듯 준비했으면 좋겠습니다. 세리의 기도처럼 거울을 보면서 잘못 변해가고 있는 내 모습을 여기 저기 살펴보듯 그렇게 반성하고 회개하면서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머지않아 떠날 그 날을 위해
홍 윤 숙
내가 지상을 마지막 떠나는 날은 꽃 피는 춘삼월 어느 아침이거나
만산홍엽으로 물들어 불타오르는 가을 햇빛 속이면 좋겠다.
머리맡에 사랑하는 가족들 둘러앉고 부엌에선 한 생애 손때 묻은 놋 주전자
달달달 물 끓는 소리 들리고
그레고리안 성가 한 소절 잔잔히 흐르는 향불 사이사이
슬로비디오로 돌아가는 한 생애 필름
간간이 끊어지는 흰 벽지 위 벽지 위의 예수님 고상 바라보며
스르르 문풍지에 바람 자듯 잠들면 좋겠다.
마지막 순간까지 묵주 알 손에 쥐고 성모송 외우다
창호지에 저녁 햇살 지워지듯 그렇게 고요히 지워지면 좋겠다.
예수님이 보내신 천사의 손을 잡고 어둡고 긴 묘지의 터널을 지나
먼 산과 들을 건너 비로소 열리는 광활한 빛의 나라
애증도 이별도 생사고락도 다시는 없는 나라
주님 홀로 지키시는 천국의 문으로 들어가면 좋겠다.
세상의 덧없는 것들 부귀영화 허영 따위 허물처럼 벗어놓고
영원히 불변하는 혼 하나로 아버지의 집으로 가야한다.
한 생애 무거운 빛 죽음으로 청산하면 새로 떠날 영원의 나그네길 가벼우리라
그 길 함께 동행 하실 분이 계시니 더욱 천상의 여로는 따뜻하리라
머지않아 떠날 천국의 아침을 준비하기 위해
오늘도 나의 지상의 삶은 분주하다.
<선행을 배우고 공정을 추구하여라.>
▥ 이사야서의 말씀입니다. 1,10.16-20
10 소돔의 지도자들아, 주님의 말씀을 들어라. 고모라의 백성들아, 우리 하느님의 가르침에 귀를 기울여라.
16 너희 자신을 씻어 깨끗이 하여라. 내 눈앞에서 너희의 악한 행실들을 치워 버려라.
악행을 멈추고 17 선행을 배워라. 공정을 추구하고 억압받는 이를 보살펴라.
고아의 권리를 되찾아 주고 과부를 두둔해 주어라.
18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오너라, 우리 시비를 가려보자.
너희의 죄가 진홍빛 같아도 눈같이 희어지고 다홍같이 붉어도 양털같이 되리라.
19 너희가 기꺼이 순종하면 이 땅의 좋은 소출을 먹게 되리라.
20 그러나 너희가 마다하고 거스르면 칼날에 먹히리라.” 주님께서 친히 말씀하셨다.
축일3월 18일 성 치릴로 (Cyril)
신분 : 주교, 교부, 교회학자
활동 지역 : 예루살렘(Jerusalem)
활동 연도 : 315?-387년
같은 이름 : 시릴, 시릴로, 시릴루스, 치릴루스, 키릴로, 키릴로스, 키릴루스
315년경 예루살렘에서 로마 제국 황제 가문의 그리스도인 부모에게서 태어난 듯한 성 키릴루스(Cyrillus, 또는 치릴로)는 예루살렘에서 자라고 교육을 받았으며, 342년 또는 그 후에 성 막시무스 2세(Maximus, 5월 5일) 주교에게 사제품을 받았다. 성 키릴루스는 수년 동안 예비신자 교육에 전념하다가 350년 또는 351년에 예루살렘의 주교인 성 막시무스 2세가 사망하자 그를 승계하여 주교가 되었다. 그러나 예루살렘에 대한 교계적인 관할권을 주장하던 카이사레아(Caesarea)의 아리우스파(Arianism) 주교이던 아카키우스(Accacius)와 아리우스주의자들에 의하여 그는 자신의 주교좌에서 해임되고 유배를 당하였다. 또 다른 이유는 성 키릴루스가 아리우스파에 반대하는 인물이었을 뿐만 아니라 교회의 재산을 매각하여 기근의 희생자들에게 주었기 때문이었다.
결국 교회 재산을 불법으로 매각했다는 누명을 쓴 성 키릴루스는 타르수스(Tarsus)로 갔으나 359년 셀레우키아(Seleukeia) 주교회의에 의해 복직되어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그는 재차 아카키우스의 음모에 의하여 황제 콘스탄티우스로부터 축출되었다가, 배교자 율리아누스 황제에 의하여 다시 복직되는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다. 성 키릴루스는 367년에 세 번째로 유배되었으나, 발렌스 황제가 율리아누스 황제의 통치 기간에 유배된 모든 종교인들을 사면함으로써 석방되어 다시 주교좌로 돌아왔다.
또 다음 해에는 안티오키아(Antiochia) 공의회가 니사(Nyssa)의 성 그레고리우스(Gregorius, 3월 9일)를 팔레스티나(Palestina)로 파견하여 그가 역설하던 ‘호모우시오스’(Homoousios)로 인한 잡음을 조사하게 하였는데, 이 용어는 니케아(Nicaea) 신경의 기본 용어이다. 성 그레고리우스는 예루살렘 주교좌는 파벌주의와 아리우스주의로 뒤엉켜 있고 또 윤리적으로 타락해 있다는 보고서를 제출하였다. 그러나 성 키릴루스의 신앙과 그 주교좌는 올바르다는 판결을 내렸다. 그 후 성 키릴루스와 성 그레고리우스는 381년의 제1차 콘스탄티노플(Constantinople) 공의회에 참석하였고, 여기서 성 키릴루스는 니케아 공의회의 정통 교리를 따르는 주교로 인정받았다.
사실 성 키릴루스는 성서학자이자 뛰어난 설교가였다. 그의 작품 중에서 24편의 강론으로 구성된 “예비자 교리”(Catecheses)가 가장 유명한데, 이는 콘스탄틴 대제가 336년 예루살렘에 완공한 성묘 성당(Church of the Holy Sepulcher)에서 348년 사순과 부활시기에 한 강론으로 예비신자와 새 영세자들의 신앙과 생활을 위한 명쾌한 지침서이자 교리 해설서이다. 또한 전례적으로도 4세기의 팔레스티나 전례를 자세히 보여주는 소중한 문헌이다. 역사가인 소크라테스와 소조멘은 성 키릴루스는 철저한 아리우스주의 반대자였고, 그의 정통성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고 기술하였다. 387년 3월 18일에 세상을 떠난 그는 교황 비오 10세(Pius X, 1903-1914년 재위)에 의해(또는 1882/3년에 교황 레오 13세에 의해) 교회학자로 선포되었다.
오늘 축일을 맞은 치릴로 (Cyril) 형제들에게 주님의 은총이 가득하시길 기도드립니다.
야고보 아저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