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0월 24일 연중 제29주간 금요일
<너희는 땅과 하늘의 징조는 풀이할 줄 알면서 이 시대는 어찌하여 풀이할 줄 모르느냐?>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2,54-59
그때에 54 예수님께서 군중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구름이 서쪽에서 올라오는 것을 보면 곧 ‘비가 오겠다.’ 하고 말한다. 과연 그대로 된다.
55 또 남풍이 불면 ‘더워지겠다.’ 하고 말한다. 과연 그대로 된다.
56 위선자들아, 너희는 땅과 하늘의 징조는 풀이할 줄 알면서, 이 시대는 어찌하여 풀이할 줄 모르느냐?
57 너희는 왜 올바른 일을 스스로 판단하지 못하느냐?
58 너를 고소한 자와 함께 재판관에게 갈 때, 도중에 그와 합의를 보도록 힘써라.
그러지 않으면 그가 너를 재판관에게 끌고 가, 재판관은 너를 옥리에게 넘기고 옥리는 너를 감옥에 가둘 것이다.
59 내가 너에게 말한다. 네가 마지막 한 닢까지 갚기 전에는 결코 거기에서 나오지 못할 것이다.”
저희를 평화의 도구로 써 주소서.
가을이 되면서 등산을 할 때면 밤나무 숲에 서성거리기도 합니다. 밤 새 알밤이 떨어져 나무 밑에 몇 톨은 주울 수 있기 때문에 혹시라도 그런 행운이 있을지 몰라서 두리번거리며 알밤을 찾아봅니다. 얼마 전에는 큰 알밤 몇 톨을 주웠습니다. 주머니에 넣어가지고 호수가 길을 걷고 있는데 전동 휠체어로 산책을 나온 지체 장애 자매가 산책을 나오고 있었습니다. 아침에 주운 알밤을 건네면서 그냥 웃어 주었습니다. 환하게 웃고 있는 그 분의 미소가 참으로 보기 좋았습니다. 떨어진 알밤을 줍고 싶어도 그러지 못하는 그 자매의 마음에 알밤 몇 알이 얼마나 기분을 좋게 하였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나는 마음이 편안하였습니다.
요즘 우리 주변에는 너무 깊은 단절의 늪에 빠져 있는 것 같습니다. 코로나 19 때문에 사람들은 더 인심이 사나워졌습니다. 만날 수도 없고, 만나기도 어렵습니다. 친목 모임도 깨졌고, 사람들이 서로 인정이 메말라가고 있습니다. 정치하는 사람들은 서로를 비방하느라고 정신이 없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무슨 정치를 하겠다고, 국민의 마음을 사로잡겠다고 하는지 앞으로 정말 큰일입니다. 악성 댓글은 사람들의 마음을 찢어 놓기도 합니다. 정치하는 사람들과 고위 공직자들이 부당하게 한 일을 모두 청산하겠다고 난리가 났습니다. 적폐청산이라고 칼을 곤두세우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정치보복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국정감사 기간에 국정을 감사해야 합니다. 할 일이 태산과 같습니다. 지금 고쳐야 할 것도 많고, 바로 잡아야 할 것도 너무 많습니다. 지난 일에 매달리면 앞으로 바르게 정치하기 더 어려워집니다. 바르게 정치하기 위해서 모두 반성하고 더 잘하기 위해서 노력해야 합니다.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자살하는 사람들이 부쩍 많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잘 살고 있던 부부도 성격이나 여러 가지 사정으로 이혼하고 남북 간에는 서로 입장 차이가 심하게 난다고 단절을 선언한지 오래되었습니다. 종교 안에서도 하느님의 뜻을 다르게 해석해서 싸우고 있습니다. 자신들의 뜻과 다르면 이단이라고 몰아 부칩니다. 다른 종교를 이해하지 못해서 생긴 일이기도 하지만 정말 무서운 사회적 갈등이 점점 심화되고 있습니다. 광화문 광장은 매일 데모하는 사람들이 장을 서고 있고, 정부청사 앞을 지나려면 시끄러운 소리들 때문에 속이 상하기도 합니다. 왜 그렇게 떠들고 난리를 쳐야 정부가 귀를 열고 있는지 우리의 정치는 한심스럽기도 합니다.
그런 와중에도 대전의 한 중학교에서는 특수학교와 인접해 있는데 운동장이 없는 특수학교의 학생들과 운동장을 같이 쓰고 있습니다. 학생들도 그들과 하나가 되고, 같이 놀며 즐거워합니다. 경제가 어려운데도 ‘성모의 집’이나 안나의 집이나 ‘빈첸시오’의 집에서는 한 끼에 100원하거나 무료로 급식하는 점심식사에 수백 명이 모여듭니다. 사랑이 넘쳐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서로를 도와주며 서로를 아껴주는 모습은 정말 아름답습니다. 그런데 코로나 19로 그런 모습도 점점 사라져가고 있습니다.
요즘과 같은 세태는 바로 우리들이 쉽게 간파할 수 있는 징조입니다. 감당할 수 없는 징조들이 우리들에게 밀려옵니다. 경제적 침체와 불황의 늪에서 벗어날 수 없는 스태그플레이션 상황과 사람들의 끊임없는 욕구와 이기심을 자극하는 문제들이 하느님과 사람들을 단절시키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 단절을 가져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개성과 특성으로 공동체 안에 하나로 화합하고, 하나 되려는 기회를 차단시킵니다. 또한 뜻있는 사람들은 이제 어떻게 해야 서로 화해하고 사랑할 수 있는지 그 구체적인 방법을 알고 싶어 합니다. 오늘 바오로 사도는 어떻게 해야 서로 화해하고, 사랑하며, 하나가 될 수 있는지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있습니다.
‘겸손과 온유를 다하고, 인내심을 가지고 사랑으로 서로 참아 주며, 3 성령께서 평화의 끈으로 이루어 주신 일치를 보존하도록 애쓰십시오.’ (에페소 4, 2-3) 하느님께서 이 시대에 정말 필요한 덕목으로 보내주시는 메시지는 바로 화해와 일치입니다. 사랑으로 서로를 위해서 겸손과 온유로 살아야 한다고 합니다. 인내심을 가지고 내 어려움과 성냄과 폭발할 것 같은 분노를 잠재우라고 합니다. 성령께서 주시는 평화의 끈으로 이루어주신 일치를 서로 간직하라고 합니다. 그래서 모두가 하나로 합쳐야 하고, 서로 갈라진 사람들이 하나로 합치라고 합니다. 일치로 하나가 되지 않으면 멸망한다고 경고하시는 주님의 말씀을 다시 상기시켜 줍니다. 그동안 고집부리며 내가 가장 잘한다고 생각하였던 모든 것에서 겸손하게 자신을 반성하라고 합니다.
정말 회개하지 않으면 일치를 이루지 못하고 영원한 멸망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할 것입니다. 그 사실을 잘 받아들여야 한다고 거듭 촉구합니다. 그동안 화해하지 못하고, 등을 돌리고 살았던 삶을 회개하지 않고, 모든 사람들 위에서 군림하면서 교만하게 살았던 삶을 반성합니다. 정말 주님께 다시 겸손한 청원을 드려야 하겠습니다. 주님, 저희가 세상을 평화롭게 만드는데 당신의 은총이 더욱 절실히 필요한 시기에 살고 있습니다. 저희를 평화의 도구로 써 주소서.
<누가 이 죽음에 빠진 몸에서 나를 구해 줄 수 있습니까?>
▥ 사도 바오로의 로마서 말씀입니다.7,18-25ㄱ
형제 여러분,
18 내 안에, 곧 내 육 안에 선이 자리 잡고 있지 않음을 나는 압니다.
나에게 원의가 있기는 하지만 그 좋은 것을 하지는 못합니다.
19 선을 바라면서도 하지 못하고, 악을 바라지 않으면서도 그것을 하고 맙니다.
20 그래서 내가 바라지 않는 것을 하면, 그 일을 하는 것은 더 이상 내가 아니라 내 안에 자리 잡은 죄입니다.
21 여기에서 나는 법칙을 발견합니다. 내가 좋은 것을 하기를 바라는데도 악이 바로 내 곁에 있다는 것입니다.
22 나의 내적 인간은 하느님의 법을 두고 기뻐합니다.
23 그러나 내 지체 안에는 다른 법이 있어 내 이성의 법과 대결하고 있음을 나는 봅니다.
그 다른 법이 나를 내 지체 안에 있는 죄의 법에 사로잡히게 합니다.
24 나는 과연 비참한 인간입니다. 누가 이 죽음에 빠진 몸에서 나를 구해 줄 수 있습니까?
25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나를 구해 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축일10월 24일 성 안토니오 마리아 클라렛 (Anthony Mary Claret)
신분 : 대주교, 설립자
활동 지역 : 산티아고데쿠바(Santiago de Cuba)
활동 연도 : 1807-1870년
같은 이름 : 글라렛, 안또니오, 안또니우스, 안소니, 안토니우스, 앤서니, 앤소니, 앤터니
성 안토니우스 마리아 클라렛(Antonius Maria Claret, 또는 안토니오)은 에스파냐 카탈루냐(Cataluna) 지방의 비크(Vich) 교구 관할인 살렌트(Sallent)에서 직물공의 아들로 에스파냐에서 태어나 1835년에 사제로 서품되었다. 5년 후부터 그는 카탈루냐 전역을 다니며 사목하고 피정을 지도하였다. 그 후 그는 보다 큰일을 해보려고 1849년 7월 16일 다섯 명의 사제들을 모아 설교 활동을 하는 수도회를 세웠는데, 지금은 이 회를 클라렛 선교 수도회(Claretian missionaries) 라고 부른다.
다음 해에 그는 에스파냐의 이사벨 2세(Isabel II) 여왕의 요청으로 산티아고데쿠바의 대주교로 선임되었다. 이 교구의 주민들은 흥분된 상태에 있었다. 그러나 클라렛의 엄격하고 세심한 개혁 운동은 많은 파란을 일으켰다. 그는 신학교 개혁과 성직자 쇄신을 추진하면서 방대한 관할 구역을 수시로 순회하였다. 또한 결실을 많이 얻을 수 있는 농사법을 권장하였고, 가난한 사람들이 그리스도교 가정을 이루는데 도움이 될 협동조합을 결성하도록 도왔다. 이 과정에서 성 안토니우스는 수많은 반대자들의 표적이 되었다.
1857년 교황 비오 9세(Pius IX)에 의해 에스파냐로 돌아온 그는 이사벨 2세 여왕의 고해신부 겸 왕실의 영성 지도자가 되었고, 설교와 간행물을 통한 선교의 중요성을 깨달아 출판사를 설립하여 많은 가톨릭 서적들을 보급하였다. 또한 그는 문화 방면에도 관심이 커 에스코리알(Escorial)에 과학 연구소, 자연사 박물관, 음악 학교, 언어 학교들을 세우고, 바르셀로나(Barcelona)에는 수도자 도서관을 세우기도 하였다.
1868년의 혁명 때 그는 급진주의자들에 의해 추방된 이사벨 여왕과 함께 로마(Roma)로 가서 제1차 바티칸(Vatican) 공의회에 참석하였으나 이후 에스파냐로 돌아가지 못하고 1870년 프랑스 나르본(Narbonne) 근처 프롱프루아드(Frontfroide)의 클라렛 수도원에서 사망하였다. 성 안토니우스는 1934년 2월 25일 교황 비오 11세에 의해 시복되었고, 1950년 5월 7일 교황 비오 12세에 의해 시성되었다.
오늘 축일을 맞은 안토니오 마리아 클라렛 (Anthony Mary Claret) 형제들에게 주님의 축복이 가득하시길 기도합니다.
야고보 아저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