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묵상글]요즘 막말들이 너무 무성합니다.

작성자야고보 아저씨|작성시간26.06.08|조회수24 목록 댓글 0
2026년 6월 9일 화요일 연중 제10주간 화요일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5,13-16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13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그러나 소금이 제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다시 짜게 할 수 있겠느냐?
아무 쓸모가 없으니 밖에 버려져 사람들에게 짓밟힐 따름이다.
14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산 위에 자리 잡은 고을은 감추어질 수 없다.
15 등불은 켜서 함지 속이 아니라 등경 위에 놓는다그렇게 하여 집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을 비춘다.
16 이와 같이 너희의 빛이 사람들 앞을 비추어그들이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를 찬양하게 하여라.”

요즘 막말들이 너무 무성합니다.


주님은 우리를 보고 세상의 소금이 되라!’ 고 하지 않으시고, ‘세상의 소금이다.’라고 말씀하시며, ‘너희는 세상의 빛이 되어라.’라고 말씀하시지 않고 세상의 빛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그 말씀의 차이는 엄청난 것입니다우리는 아직 세상의 소금이 되지 못했고세상의 빛이 되지 못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언제나 자신을 돌아볼 때 그렇게 반성하면서 심지어는 자책까지 하면서 살고 있기 때문에 이 말씀처럼 자신이 없어지는 것입니다그러면서 이 말씀의 참된 의미를 해석하는 데 많은 공을 들이기도 합니다.


먼저 예수님은 비유의 재료로써인간생활에 가장 필요한 것을 고르셨습니다소금이라는 식재료입니다음식에서 소금의 역할은 참으로 많습니다예수님은 당신의 제자들이 그 역할을 해 주기를 바라고 계셨던 것입니다먼저 소금은 음식에 맛을 내는 동시에 부패를 방지해 줍니다하느님을 섬기지 않고 악으로 기울어가는 이 세상 사람들에게 정신적으로 맛을 주는 동시에 그들이 물들 수 있는 부패를 막도록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소금은 녹아야 그 일을 할 수 있습니다자신이 녹지 않으면 맛을 내지도 못하고 음식을 썩지 않게 할 수 없습니다그래서 소금이라고 한 것은 자신을 완전히 희생하여 녹아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신 것입니다요즘 막말들이 너무 무성합니다정치하는 사람들이 함부로 말하는 것을 들으며 세상이 어떻게 될 것인지 걱정이 앞섭니다자신들이 녹지 않고희생하지 않으면서 막말만 뱉어냅니다그리고 그 막말로 또한 돈을 버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신자들에게 말이나 행실에 있어서 항상 하느님의 맛을 느끼게 하도록 하라고 권하였습니다. “여러분은 언제나 친절하게 유익한 말을 하고묻는 사람에게는 누구에게나 적절한 대답을 할 줄 알아야 합니다.” (골로새 4, 6) 하느님의 맛을 느낄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은 하느님을 섬기고 믿는 사람만이 보여줄 수 있는 덕행이 우러나옵니다크리스천은 크리스천답게 살아가는 법입니다소금으로 절어서 맛을 내는 것처럼 크리스천은 그리스도로 절어서 자연스럽게 그리스도의 향기를 품어내는 것입니다.


소금은 습기를 빨아들이는 성질이 있습니다이 조해성(潮解性때문에 소금을 테니스 코트에 뿌리면 습기를 빨아들여 비온 뒤에도 금방 운동을 할 수 있게 됩니다소금의 조해성과 같이 크리스천은 많은 사람들을 주님의 품으로 빨아들여야 합니다세상의 소금 역할은 세상 사람들을 그리스도의 품으로 많이 모아들이는 역할을 수행하는 것입니다또한 소금은 단단하게 하는 성질이 있습니다염전에 가보면 염전 바닥을 아주 단단하게 만듭니다그렇게 녹여서 모아들인 것을 가지고 단단하게 응고하는 성질이 있기 때문입니다두부를 만들 때도 간수로 단단하게 만들어 냅니다흩어져 있는 단백질 알갱이들을 응결시키는 것처럼 모아들인 사람들을 믿음이 단단한 사람들로 만드는 것도 크리스천이 해야 하는 일입니다.


소금은 많은 미네랄을 품고 있습니다천일염에는 많은 미네랄을 품고 있어서 사람들에게 미네랄 공급을 잘 해주고 있습니다우리나라 사람들이 소금을 너무 많이 흡수해서 덜 짜게 먹기 운동이 전개되고 있습니다그것은 당연한 일입니다너무 짜게 먹으면 좋지 않습니다소금도 적정량이 필요하고 미네랄도 적정량이 필요합니다크리스천이 너무 많은 부를 축척해도 뱉어 내어 놓을 줄도 알아야 합니다자신이 적정량만 가지고 남는 것은 기꺼이 나누어 줄줄도 알아야 합니다부의 균형 있는 배분은 인간이 가진 영원한 숙제일 것 같습니다그러나 적정량만 갖기 위해서 노력할 필요는 당연히 있습니다.


소금은 음식 맛을 내는 데 가장 중요합니다사람도 맛있는 사람이 있습니다재미있는 사람입니다말을 해도 행동을 해도 다른 사람들을 즐겁고 기쁘게 하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코메디언이나 희극배우가 되지 못했어도 다른 사람들을 웃기고 재미있게 세상을 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크리스천은 그래야 합니다소금처럼 맛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그래서 공동체에서도 환영 받고 어떤 장소에서도 환영 받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행복을 전달해 주고 웃음을 전달해 주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말을 할 때도 소금으로 맛을 낸 듯한’ 부드럽고 따뜻한 말을 해야 합니다그렇게 하기 위해서 웃기려는 사람을 도와줘야 합니다유모어를 잘하는 사람들에게 잘 호응해 주어야 합니다. ‘소금에 짠맛을 내게 하라는 얀세니우스의 말처럼 크리스천은 웃을 준비를 먼저하고 덤벼야 합니다웃음치료가 참으로 중요한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어느 정당의 중요한 당직자가 '하늘이 두쪽이 나더라도'라는 말을 방송에서 서슴없이 하는 것을 들었습니다이 말은 '온 백성이 모두 죽더라도'라는 말입니다결연한 의지를 표명한다는 표현이지만 절대로 해서는 안되는 말입니다그러면서 '국민의 뜻'이라고 말합니다국민이 뽑은 사람이 그렇게 말해서는 안됩니다막말을 앞세우기 보다는 정의를 앞세우고희생을 앞세우고겸손을 먼저 행해야 합니다진정 소금이 되어서 살아야 합니다.

<주님께서 엘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대로 단지에는 밀가루가 떨어지지 않았다.>


▥ 열왕기 상권의 말씀입니다.   17,7-16
그 무렵 엘리야가 숨어 지내던 시내의 물이 말라 버렸다땅에 비가 내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주님의 말씀이 엘리야에게 내렸다.
9 “일어나 시돈에 있는 사렙타로 가서 그곳에 머물러라
내가 그곳에 있는 한 과부에게 명령하여 너에게 먹을 것을 주도록 해 놓았다.”
10 그래서 엘리야는 일어나 사렙타로 갔다그가 성읍에 들어서는데 마침 한 과부가 땔감을 줍고 있었다.
엘리야가 그 여자를 부르고는마실 물 한 그릇 좀 떠다 주시오.” 하고 청하였다.
11 그 여자가 물을 뜨러 가는데 엘리야가 다시 불러서 말하였다빵도 한 조각 들고 오면 좋겠소.”
12 여자가 대답하였다주 어르신의 하느님께서 살아 계시는 한구운 빵이라고는 한 조각도 없습니다.
다만 단지에 밀가루 한 줌과 병에 기름이 조금 있을 뿐입니다
저는 지금 땔감을 두어 개 주워다가 음식을 만들어제 아들과 함께 그것이나 먹고 죽을 작정입니다.”
13 엘리야가 과부에게 말하였다두려워하지 말고 가서 당신 말대로 음식을 만드시오.
그러나 먼저 나를 위해 작은 빵 과자 하나를 만들어 내오고그런 다음 당신과 당신 아들을 위하여 음식을 만드시오.
14 주 이스라엘의 하느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소
이 주님이 땅에 비를 다시 내리는 날까지밀가루 단지는 비지 않고 기름병은 마르지 않을 것이다.’”
15 그러자 그 여인은 가서 엘리야의 말대로 하였다
과연 그 여자와 엘리야와 그 여자의 집안은 오랫동안 먹을 것이 있었다.
16 주님께서 엘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대로단지에는 밀가루가 떨어지지 않고 병에는 기름이 마르지 않았다.

축일 6월 9일 성 에프렘 (Ephrem)


신분 부제교회학자성서학자
활동 지역 에데사(Edessa)
활동 연도 : 306?-373
같은 이름 애프램애프렘에프라임에프램


성 에프렘(Ephraem)은 306년경 소아시아 남동부 메소포타미아 지방의 고대도시인 니시비스(Nisibis, 오늘날 터키 남동부의 누사이빈 Nusaybin)에서 태어났다전승에 따라서 그는 니시비스 근방의 그리스도교 신자 가정에서 태어났다고 하고아미다(Amida) 출신의 그리스도인 어머니와 니시비스 출신의 이교도 사제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다고도 한다두 번째 전승에 따르면그는 아버지가 그리스도교로 개종하면서 18세 때 세례성사를 받았다그 후 금욕주의자들과 니시비스의 초대 주교인 성 야고보(Jacobus, 7월 15)의 영향을 받으며 독자적인 신학을 펼쳐나갔다그는 인근 여러 지역의 주교들과 친분을 맺었고, ‘계약의 아들들이라는 금욕 단체에 들어갔다가 성 야고보 주교가 설립한 학교에서 교사로 활동했고나중에 그 학교의 책임자가 되었다이 시기에 그는 여러 찬가집과 신학 서적 등을 저술했다그리고 325년에 스승인 성 야고보 주교를 수행해서 니케아(Nicaea) 공의회에 참석하였다.


297년부터 로마 제국에 속했던 니시비스는 338, 346, 350년에 사산 왕조의 황제인 샤푸르 2(309~379년 재위)의 공격을 받았다시리아의 문헌에 의하면, 350년 페르시아의 공격 때 그의 기도 덕분에 니시비스가 해방되는 데 큰 힘이 되었다고 한다그러나 363년 로마 황제 율리아누스가 페르시아 출정 중 사망하고 그의 후계자인 요비아누스 황제가 니시비스를 페르시아인들에게 넘겨주는 결정을 내렸다양측이 평화조약을 맺으면서 페르시아인들은 로마 제국에 속한 이들이 모두 니시비스를 떠날 것을 요구했다그래서 성 에프렘도 로마 제국에 속한 에데사로 이주하게 되었다그는 에데사 근교의 한 동굴에 거처를 정하고 신자들에게 설교도 하면서 지냈다부제 신분이었던 그는 선종할 때까지 10여 년을 이곳의 성경 주석 학교에서 교사로 활동하며 활발한 저술 활동을 벌였다전승에 따르면그는 370년에 카이사레아(Caesarea)로 가서 성 대 바실리우스(Basilius, 1월 2)를 찾아보았고돌아와서는 372년과 373년에 기근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해 구호 단체를 조직해 헌신적으로 일했다고 한다그는 죽는 날까지 교사성경 주석가논쟁가설교가종교 시인으로 활동하다가 373년 6월 9일 에데사에서 선종하였다.


성 에프렘은 시리아 교회에서 가장 많은 저서를 집필한 학자였다그는 모든 작품을 시리아어로 저술했는데다양한 성경 주석서와 신학 서적뿐 아니라 운문 형식의 설교집과 시(형태의 교훈적 찬가를 많이 남겼다그는 이단을 반박하는특히 아리우스(Arius) 이단과 영지주의를 공격하는 중요한 논리를 서술하였고종말론적 주제에 대해서도 훌륭한 작품을 남겼다그 외에도 그는 복되신 동정 마리아에 대해 깊은 신심을 지니고 있었는데그가 마리아의 원죄 없는 잉태를 단언했기 때문에 흔히 원죄 없으신 잉태의 증인으로도 불린다그는 공식 전례에 찬미가를 도입했을 뿐만 아니라 신앙 교육에도 그것을 효과적으로 활용하여 신앙생활에 큰 도움을 주었다많은 문헌에서 그가 페르시아 학파를 창립했다고 기록하고 있는데그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는 구체적으로 전해지지 않고 있다그는 선종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시리아의 현인으로 불릴 만큼 그 명성이 높았고교부 시대의 가장 위대한 시인이며 신학자였다.


시리아어로 저술된 그의 저서는 이미 그의 생존 때부터 그리스어아르메니아어라틴어 등으로 번역되어 라틴 교회에서 사용되면서 많은 영향을 끼쳤다전례 시기와 축일에 적합한 찬미가는 그리스도교적 생활과 사상을 반영해 매우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았다이러한 업적으로 인해 그는 성령의 하프라는 칭호를 받았다. 1920년 교황 베네딕투스 15(Benedictus XV)는 동방 교회에 속한 시리아 교회 출신으로서 서방 교회에 실제적 영향을 미친 성 에프렘의 중요성을 인정해 그를 교회학자로 선포했다그는 에데사의 성 에프렘’ 또는 시리아 사람 성 에프렘’(St. Ephrem the Syrian)으로 불린다그의 축일은 여러 날이 있는데동방 교회에서는 대체로 1월 28일에 기념하고 있다옛 로마 순교록은 2월 1일 목록에서 에데사의 부제인 성 에프렘이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을 위해 많은 시련을 견디고 성덕과 학문으로 큰 명성을 얻고 발렌스 황제 때 선종했다고 기록하였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선종한 날인 6월 9일 목록에서 그의 공적을 기록하며 그가 성령의 하프(수금)’라 불리기에 충분하다고 칭송했다.

축일6월 9일 성 골룸바 (Columba)


신분 신부수도원장선교사
활동 지역 이오나(Iona)
활동 연도 : 521-597
같은 이름 골롬바꼴롬바꼴룸바콜럼콜롬바콜룸바콜름실


(Colm), 콜럼(Colum) 또는 콜름실(Colmcille)로도 알려진 성 콜룸바(또는 골룸바)는 아일랜드 더니골(Donegal)의 가르탄(Gartan)에서 왕가의 후예인 페들리미드(Fedlimid)와 에트느(Eithne)의 아들로 태어났다그는 아마도 위의 이름 가운데 하나로 세례를 받고모빌라(Movilla)의 수도원 학교에서 교육을 받고 스무살 경에 부제가 되었다그 후 그는 렌스터(Leinster)에서 수학한 후 클로나드(Clonard)에서 공부를 계속해 그곳에서 사제품을 받았다그 후에는 성 모비(Mobhi)의 지도하에 글라스네빈(Glasnevin) 수도원으로 갔다그러나 흑사병으로 인해 543년경에 도시 전체가 소개되었을 때그는 얼스터(Ulster)로 가서 아일랜드의 거의 모든 지역에 산재해 있는 성당에서 설교하고 수도원을 세우면서 약 15년을 지냈다그런 후 563년경에 이 지역을 떠났다.


여기에는 상당히 큰 사건이 있었던 것으로 나중에 밝혀졌다그는 아일랜드에 도착한 성 히에로니무스(Hieronymus)의 시편(성 핀니안 소유사본을 처음으로 복사했는데이것이 성 핀니안(Finnian)과 논쟁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성 핀니안이 이 사본을 요구하자국왕 디아르메이트는 콜룸바의 사본을 핀니안에게 돌려주어야 한다고 판정하였다이렇게 되면서 성 콜룸바는 디아르메이트에게 칼을 뽑게 되었는데이는 성 콜룸바와 함께 성소를 찾아온 콘노트의 쿠난(Curnan) 왕자가 디아르메이트의 부하에 의하여 살해되었기 때문이었다이렇게 되자 양가 사람들의 끝없는 혈전이 벌어졌고큘 드렘느(Cul Dreimhne) 전투에서 약 3천 명의 사람이 죽었다텔타운에서 개최된 시노드(Synod)는 성 콜룸바의 책임을 물어 맹렬히 비난하였다그러자 성 콜룸바는 아일랜드를 떠나 수많은 이교도를 개종시키며 죽을 때까지 보속하며 살기로 결심하였다.


563년 그는 12명의 제자 또는 동료들과 함께 스코틀랜드 연안에 있는 이오나 섬으로 갔고여기서 수도원을 세웠는데 이후 아일랜드 교회에서 가장 큰 수도원으로 발전하였다그는 스코틀랜드의 픽트족에게 복음을 전하는 데 전념하여 왕을 개종시켰고마침내 픽트족의 땅 전역을 복음화하는데 성공했다이런 큰 성과가 나온 이면에는 큰 기적이 하나 있었다네스(Ness) 강에 큰 괴물이 살고 있었는데성 콜룸바가 성호를 긋고 기도함으로써 이를 퇴치하였다고 한다그 이후로 그의 성덕이 널리 알려졌고기적에 대한 명성으로 인해 수도원을 방문하는 이들이 급격히 늘어났다.


픽트족의 사도로 불리는 성 콜룸바가 서방 교회에 끼친 영향은 매우 크다그가 이오나에 설립한 수도원 출신의 수도자들이 유럽 전역으로 퍼져나갔고그가 만든 회칙은 성 베네딕투스(Benedictus)의 회칙이 정착되기 전까지 전 유럽에서 통용되었다그는 성령의 기쁨을 안고 산 사람으로 인정받았다그는 성 파트리키우스(Patricius, 3월 17)와 킬데어(Kildare)의 성녀 브리지다(Brigida, 2월 1)와 함께 아일랜드의 세 수호성인 중 한 명으로 공경을 받고 있다.


오늘 축일을 맞은 에프렘 (Ephrem), 골룸바 (Columba)형제들에게 주님의 축복이 가득하시길 기도드립니다.

야고보 아저씨

저작자 표시컨텐츠변경비영리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