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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글]정치가들이 제일 먼저 정신을 차려야 합니다.

작성자야고보 아저씨|작성시간26.06.10|조회수25 목록 댓글 0

2026년 6월 11일 목요일 성 바르나바 사도 기념일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0,7-13

그때에 예수님께서 사도들에게 말씀하셨다.

7 “가서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하고 선포하여라.

앓는 이들을 고쳐 주고 죽은 이들을 일으켜 주어라나병 환자들을 깨끗하게 해 주고 마귀들을 쫓아내어라.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전대에 금도 은도 구리 돈도 지니지 마라.

10 여행 보따리도 여벌 옷도 신발도 지팡이도 지니지 마라일꾼이 자기 먹을 것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

11 어떤 고을이나 마을에 들어가거든그곳에서 마땅한 사람을 찾아내어 떠날 때까지 거기에 머물러라.

12 집에 들어가면 그 집에 평화를 빈다고 인사하여라.

13 그 집이 평화를 누리기에 마땅하면 너희의 평화가 그 집에 내리고

마땅하지 않으면 그 평화가 너희에게 돌아올 것이다.”


정치가들이 제일 먼저 정신을 차려야 합니다.

 

오늘 복음말씀은 어제와 같이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선발하시고그 제자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사명을 주시면서 어떻게 복음을 전해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말씀하시고 계십니다특히 오늘 복음을 대하면서 마음에 걸리는 구절이 있습니다바로 평화를 누리기에 마땅한 집과 마땅하지 않은 집에 관한 말씀입니다가끔 복음을 읽거나 묵상하면서 아주 가슴 뜨끔한 말씀입니다나는 과연 평화의 인사를 받을만한 자격이 있는 사람인가 하는 자문을 해보기 때문입니다많은 사람들이 내게 평화의 인사를 하며집에 와서 평화를 빕니다.’라고 인사합니다그런데 그 평화의 인사를 받으면 그 평화의 축복을 받을 자격이 있는지 생각해 봐야 한다는 것입니다내게 인사하는 사람들의 평화는 화합과 화목입니다.

 

논어의 자로편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자왈 군자화이부동소인동이불화

子曰 君子和而不同小人同而不和

 

군자는 서로 다르지만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화합하지만,

소인은 서로 같은 듯 무리지어 다니지만 어울리지 못한다.

 

군자는 서로 다른듯하지만 어울리고소인은 서로 같은듯하지만 서로 어울리지 못한다.’라고 해석할 수도 있고, ‘군자는 화합하면서도 부화뇌동 하지 않지만소인은 부화뇌동만 할 뿐 화합하지는 못한다.’라고 해석할 수 있는 말씀입니다.

 

군자는 남을 자기 자신처럼 생각하기 때문에 남과 조화를 이루면서도 각자에게 주어진 역할을 열심히 수행하므로 부화뇌동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반대로 소인은 이익을 쫓으므로 이익을 같이하는 사람끼리는 함께 행동(行動)하지만 남과는 조화를 이루지 못한다는 것입니다우레가 한번 쳤다 하면 천지 만물은 이에 호응하듯이 연달아 덜컥 거립니다이것처럼 자신의 줏대와 기준을 망각한 채 이해관계(利害關係)에 따라서 혹은 무조건 남의 주장에 따르는 것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군자의 '()'와 소인의 '()'을 공자는 엄밀하게 구분하고 있습니다. ''()는 각자가 지닌 자기만의 특성을 다른 이와 하나로 융합하는 것이라 할 수 있고, ''()은 각자가 갖고 있는 특성을 지닌 채 다른 이와 융합하지 않고 '같은 척 꾸미는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화이부동'(和而不同)은 사람이 살아감에 도리에 맞게 서로 화합하고도리에 맞지 않으면 따르지 않는다는 뜻입니다즉 부화뇌동(附和雷同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반면에 "동이불화'(同而不和)는 서로를 인정하지 않고 각자의 이익이나 기호가 같을 동안에 만 어울릴 뿐이고이해가 달라질 경우 언제든지 부화뇌동(附和雷同한다는 뜻입니다.

 

군자는 평화의 축복을 받을만한 자격이 있고소인은 평화의 축복을 받을 자격이 없다는 말씀입니다평화를 누릴 수 있는 것은 복음에서는 집이라고 했지만 사실은 각 개인에서부터 집사회교회단체국가까지 해당하는 말씀입니다우리들의 가정에서도 서로 화목하고서로 사랑하고 있다면 평화의 인사와 축복을 받을 자격이 있고사람들과 하느님의 축복이 머물 것입니다또한 그 축복으로 더욱 평화로워질 것입니다사랑은 화목을 바탕으로 합니다가정의 화목은 서로 다른 성격과 서로 다른 주장을 고집하지 않고사랑으로 융합하는 것을 말합니다그것을 화이부동(和而不同)이라고 합니다자신의 고집만 주장한다면 가정의 평화는 깨지고 말 것입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평화를 누리기에 합당한지 생각합니다우리의 정치가들과 정당들은 정말 군자다운지아니면 소인 같은지 생각해 봅니다나라의 꼴이 이지경이면 하느님의 축복이 따를 리 없다고 생각될 때도 있습니다우리가 정치가들을 위해서 기도해야 하는 것은 그들의 삶이 당리당략을 위해서 정치를 할 것이 아니라 국가와 국민을 위해서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국가와 국민을 위해서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서로 화합해서 화이부동을 이루어야 합니다언제까지 부화뇌동으로 정치할 것인지 정말 암담하기도 합니다정치가들이 이제는 정말 정신을 차려서 군자다운 정치를 해야 합니다그만큼 성숙된 정치문화가 뿌리를 내릴 때도 되었습니다.

 

국가에 이로운 일이라면 또한 올바른 일이라면 바르게 처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그런데 어떤 개인의 사정을 두고 정치를 하면 안됩니다국가를 우선으로 처리해야 합니다우리나라의 장래를 생각해서또 국익을 생각해서 올바른 결정을 해야 할 때 당리당략을 버려야 합니다아주 소인배들이 하는 짓거리를 하면서 정치가들이라고 나서고 있는 것을 보면 가슴이 답답해집니다.


<바르나바는 착한 사람이며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었다.>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   11,21-26; 13,1-3

그 무렵 21 많은 수의 사람이 믿고 주님께 돌아섰다.

22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는 그들에 대한 소문을 듣고바르나바를 안티오키아로 가라고 보냈다.

23 그곳에 도착한 바르나바는 하느님의 은총이 내린 것을 보고 기뻐하며,

모두 굳센 마음으로 주님께 계속 충실하라고 격려하였다.

24 사실 바르나바는 착한 사람이며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었다그리하여 수많은 사람이 주님께 인도되었다.

25 그 뒤에 바르나바는 사울을 찾으려고 타르수스로 가서,

26 그를 만나 안티오키아로 데려왔다그들은 만 일 년 동안 그곳 교회 신자들을 만나며 수많은 사람을 가르쳤다.

이 안티오키아에서 제자들이 처음으로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13,1 안티오키아 교회에는 예언자들과 교사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바르나바니게르라고 하는 시메온키레네 사람 루키오스

헤로데 영주의 어린 시절 친구 마나엔그리고 사울이었다.

그들이 주님께 예배를 드리며 단식하고 있을 때에 성령께서 이르셨다.

내가 일을 맡기려고 바르나바와 사울을 불렀으니나를 위하여 그 일을 하게 그 사람들을 따로 세워라.”

그래서 그들은 단식하며 기도한 뒤 그 두 사람에게 안수하고 나서 떠나보냈다.


축일 6월 11일 성 바르나바 (Barnabas)

 

신분 사도순교자

활동 연도 : +61년경

같은 이름 바르나바스

 

성 바르나바의 사도행전 안에서 착한 사람이며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사도 11,24)으로 극찬을 받았고비록 열두 사도단에 포함되지는 않았지만 초대교회 때부터 이미 사도로서 인정을 받았다그는 원래 키프로스(Cyprus) 태생의 레위인으로 요셉(Josephus)이란 이름으로 불렸다그는 유대교에서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뒤 자신이 소유한 밭을 팔아 그 돈을 사도들에게 봉헌하였다이때 사도들이 그에게 위로의 아들이란 뜻으로 바르나바라는 별명을 지어 주었다(사도 4,36-37). 그는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초기 신자들과 함께 예루살렘 공동체에서 살았다그는 그곳의 공동체를 설득하여 박해자에서 회심을 체험한 후 세례를 받고 그리스도인이 되어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사울즉 사도 성 바오로(Paulus, 6월 29)를 다른 사도들과 예루살렘 공동체가 받아들이도록 도와주었다(사도 9,26-28). 그리고 첫 순교자 성 스테파노(Stephanus, 12월 26부제의 순교 이후 박해를 피해 흩어진 이들이 모여 공동체를 이룬 시리아의 안티오키아(Antiochia)로 파견되어 그곳의 공동체를 둘러보고 격려하였다또한 타르수스(Tarsus)로 가서 사울을 찾아 안티오키아로 데리고 왔다(사도 11,19-26). 그는 성 바오로와 함께 큰 기근으로 어려움을 겪는 예루살렘 공동체를 위해 안티오키아 형제들의 기부금을 전달했고(사도 11,27-30), 맡은 바 사명을 수행한 다음 그의 사촌 마르코라고 하는 요한(Joannes Marcus)을 데리고 안티오키아로 돌아왔다.

 

안티오키아 교회는 성령의 이끄심으로 성 바르나바와 성 바오로를 키프로스 선교를 위해 파견하였다요한도 조수로 함께 했다이 세 사람은 키프로스의 살라미스(Salamis)에서 복음을 전한 뒤 파포스(Paphos)에서 배를 타고 팜필리아(Pamphylia)의 페르게(Perge)로 갔고이때 요한은 그들과 헤어져 예루살렘으로 돌아갔다성 바르나바와 성 바오로는 피시디아(Pisidia)의 안티오키아에 도착해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복음을 전해 많은 이들의 공감을 얻었으나 이를 시기한 유다인들로부터 맹렬한 반대를 받았다결국 그들은 유다인들이 하느님의 말씀을 배척했기에 자신들은 다른 민족곧 이방인들에게 간다고 선포했다유다인들의 반대로 피시디아의 안티오키아에서 쫓겨난 성 바르나바와 성 바오로는 리카오니아(Lycaonia) 지방의 이코니온(Ikonion)과 리스트라(Lystra)로 가서 담대히 복음을 전했다여기서 그들은 사람들로부터 신으로까지 인정받았으나 유다인들의 격렬한 반대에 직면해 돌 세례를 받고 도시 밖으로 쫓겨났다여러 어려움 속에서 용맹히 복음을 전한 성 바르나바는 성 바오로와 함께 안티오키아로 돌아와 그동안의 일을 보고하였다(사도 13-14).

 

초대교회 안에서 비유다인 출신의 그리스도인들이 늘어나면서 그들도 모세의 율법에 따라 할례와 같은 예식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논쟁이 일었다이에 예루살렘에서 사도 회의가 열렸고성 바르나바와 성 바오로도 안티오키아 교회의 대표로 참석하여 그동안의 활동을 보고하였다그리고 사도단의 결정을 가지고 안티오키아로 돌아와 기쁜 소식을 공동체에 전했다며칠 뒤에 성 바오로는 성 바르나바에게 이전에 복음을 전한 고을을 돌아보자고 했고성 바르나바는 요한 마르코를 데려가자고 했다하지만 성 바오로가 팜필리아에서 자기들을 버리고 떠난 이를 함께 데려갈 수 없다고 주장하면서 감정이 격해져 서로 갈라지고 말았다그래서 성 바르나바는 요한 마르코를 데리고 키프로스로 떠났고성 바오로는 성 실라스(Silas, 7월 13)와 함께 시리아와 킬리키아(Cilicia)의 여러 곳을 두루 다녔다(사도 15). 이후 사도행전에서 성 바르나바에 대한 기록은 나타나지 않지만후에 성 바오로와는 화해한 것으로 보인다.

 

전승에 따르면 사도 성 바르나바는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Alexandria)와 이탈리아의 로마(Roma)에서도 복음을 전했고키프로스 교회의 설립자로 인정받으며 활발히 선교하다가 61년경 살라미스(Salamis, 키프로스 섬의 동쪽 해안에 있는 고대도시에서 돌에 맞아 순교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초대교회 문헌인 바르나바의 편지”(Epistula Barnabae)는 당시 교회 생활을 알려주는 귀중한 자료로 그의 작품은 아니고 후에 그의 이름으로 헌정된 것이다현대의 성서학자들은 130~140년 사이 알렉산드리아의 어느 신자가 쓴 것으로 보고 있다. 488년 제노 황제 때 살라미스의 성 바르나바 수도원 근처에서 성 바르나바의 무덤이 발견되었는데성인의 가슴 위에 손수 기록한 마태오 복음서 사본이 놓여 있었다고 한다그는 키프로스의 수호성인으로 공경을 받고 있다옛 로마 순교록은 6월 11일 목록에서 사도 성 바르나바가 성 바오로와 함께 이방인 선교에 힘쓰다가 키프로스에서 순교했으며 제노 황제 때 그가 필사한 마태오 복음서와 함께 그의 유해가 발견되었다고 적었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같은 날 목록에서 사도행전의 기록에 근거해 그의 행적을 설명하며 마지막에 고향인 키프로스 섬으로 돌아와 복음을 전했다고 했으나 순교 여부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오늘 축일을 맞은 바르나바 (Barnabas)형제들에게 주님의 축복이 가득하시길 기도드립니다.


야고보 아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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