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묵상글]우리 모두 득도 합시다.

작성자야고보 아저씨|작성시간26.06.13|조회수18 목록 댓글 0

2026년 6월 14일 주일 연중 제11주일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를 가까이 부르시고그들을 보내셨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9,36-10,8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36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

그들이 목자 없는 양들처럼 시달리며 기가 꺾여 있었기 때문이다.

37 그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38 그러니 수확할 밭의 주인님께 일꾼들을 보내 주십사고 청하여라.”

10,1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를 가까이 부르시고 그들에게 더러운 영들에 대한 권한을 주시어,

그것들을 쫓아내고 병자와 허약한 이들을 모두 고쳐 주게 하셨다.

열두 사도의 이름은 이러하다베드로라고 하는 시몬을 비롯하여 그의 동생 안드레아,

제베대오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동생 요한,

필립보와 바르톨로메오토마스와 세리 마태오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타대오,

열혈당원 시몬그리고 예수님을 팔아넘긴 유다 이스카리옷이다.

예수님께서 이 열두 사람을 보내시며 이렇게 분부하셨다.

다른 민족들에게 가는 길로 가지 말고사마리아인들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마라.

이스라엘 집안의 길 잃은 양들에게 가라.

가서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하고 선포하여라.

앓는 이들을 고쳐 주고 죽은 이들을 일으켜 주어라

나병 환자들을 깨끗하게 해 주고 마귀들을 쫓아내어라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우리 모두 득도합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도()라는 말을 잘합니다득도(得道)한다고 하기도 하고도통(道通)했다고 하기도 하고어떤 일에 최고의 도사(道士)라고 하기도 합니다()라는 말은 원래는 인생의 여로라는 의 의미로 사용되었지만거기에 추상적인 의미가 첨가되어 인간의 행위에 꼭 따라야 할 기준과 원칙 등의 의미로 변질되어 갔습니다특히동양의 여러 종교에서는 이 도를 매우 중요한 가치기준으로 여겼기 때문에 철학·문학·사상·예술·문화 등 동양의 여러 정신적·물질적인 면에 지대한 영향을 끼쳐 왔고시대와 장소그리고 인물에 따라 각각 상이하게 설명되어 왔습니다.

 

유교에서는 특히 도의 도덕적 면을 강조하여 일종의 생활규범인간의 가치기준 등의 핵심 규범으로 이해하였습니다공자(孔子)와 맹자(孟子)를 중심으로 하는 원시유교에서부터 주자학(朱子學)의 시대에 이르기까지 항상 이 도의 기준은 윤리적 측면에서 논구(論究)되어 왔습니다.

 

노자와 장자의 사상에서도 도는 종교적 의미가 강하게 부각되면서 우주만유의 본체이면서 형태 지을 수 없는 형이상학적인 실재(實在)로서의 도를 주창하였습니다인생의 모든 행위와 자연계의 섭리는 모두 도 아닌 것이 없다고 보았습니다그래서 인간은 얼마나 그 도에 가까운가?’로 됨됨이를 따져야 한다는 입장을 취하였습니다.

 

불교의 경우 진리(Dharma) 자체를 도라고 보았습니다특히사제(四諦팔정도(八正道등에서 설명하는 도(, Marg)는 올바름’·‘당위(當爲)’ 등의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고 합니다이들 세 종교에서 도는 각각 다른 면을 강조하지만공통되는 점은 인간의 인간다움을 도에서 찾으려고 한 것입니다사람이 이 도와 하나가 됨으로써 현실의 피상적인 차별이나 변화를 떠나서 절대불변의 입장에서 참다운 자유를 얻게 된다고 본 점입니다도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인간은 자유로워지고 진리에 이른다는 것입니다.

 

따라서동양문화의 바탕은 이 도를 시발과 종착역으로 삼았고인위적인 기교보다는 자연 섭리에 따르는 무위자연적(無爲自然的)인 삶을 존경했으며그와 같은 삶의 여로를 통한 진리를 찾아 얻는 것이 값진 일이라고 천명하고 있습니다특히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깊은 사상적 뿌리를 이루고 있는 공자의 사상은 도를 인격적인 차원에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공자는 천도(天道)에 대해서 강력한 주장을 편 바 있습니다인도(人道)는 천명(天命)에 따르는 것이며천도는 인도를 이끄는 진리라고 보았습니다그러나 논어에서는 그 인도를 다시 세분하여 왕의 길(王之道), 군자의 길(君子之道), 아버지의 길(父之道등으로 나누어서 설명하였습니다.

 

그와 같은 여러 도에서 가장 본질적인 것은 인()이라는 것입니다()이란 개인적으로 보면 자아의 완성이지만외면적으로 말하면 사회 구제(社會救濟)인 것입니다공자가 말한 수신제가 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의 뜻도 바로 그것으로서모든 인간은 도를 회복함으로써 인생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고 본 것입니다인간과 인간 사이에서 지켜야 할 이상적인 도의 방법은 덕()의 실천이라는 것입니다.

 

덕이란 도의 현현체(顯現體)일 뿐 아니라가장 두드러진 작용의 하나입니다이 덕은 소극적으로 해석하면 인륜(人倫)의 실천 또는 불륜(不倫)을 극복하는 행위이지만 적극적으로 말한다면 다른 사람들에게 기쁨과 도움을 가져다주는 실천행(實踐行)이 될 수 있으며앞서 말한 인격도야와 사회 구제가 가능해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덕은 도의 수단임을 알 수 있습니다도의 형이상학적 의미를 실재적으로 확립시키고 있으며도의 개념과 여러 덕목의 본질적 의미가 일치되고 있는 것입니다그러므로 유교의 도는 윤리적 표현이 됩니다모든 인간본성을 뒷받침하는 근원이 되는 것입니다다시 말해서인간이 인간답다고 하는 의미는 곧 도를 얼마나 실천하느냐 하는 점으로 파악될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열두 제자를 선발하시고제자들을 파견하시면서 길 잃은 이스라엘 집안의 양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하십니다길 잃은 양들은 ()를 따르지 않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하느님의 도는 복음의 길입니다특히 하느님으로부터 선택 받은 이스라엘 민족들의 일탈된 도를 바로잡지 않으면 다른 민족들에게 하느님의 도를 깨우칠 수 없음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집안 단속도 못하는 데 어떻게 다른 집안까지 단속하겠느냐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사회에는 길 잃은 양들이 너무 많습니다참된 하느님의 도를 깨우치지 못하고 헛된 길을 걷고 있는 사람들도 있고사악한 길을 참된 도라고 잘못 알고 있는 사람들도 있고악마의 유혹에 빠져서 도를 벗어난 사람들도 많습니다예수님은 도의 회복에 제자들을 투입하시는 것입니다우리가 예수님의 제자가 되려면 도의 회복에 노력해야 합니다득도해야 합니다도의 회복은 우리가 살아야 하는 하느님나라에 정착하려고 사랑의 실천 덕목을 실행하는 것입니다득도(得道)하는 가장 현명한 방법 중의 하나는 사랑을 실천하는 것입니다그 덕을 쌓는 것이 득도하는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또한 유일한 방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드님의 죽음으로 화해하게 되었다면 그 아드님의 생명으로 구원을 받게 되리라는 것은 더욱 분명합니다.>

 

▥ 사도 바오로의 로마서 말씀입니다.   5,6-11

형제 여러분, 6 우리가 아직 나약하던 시절그리스도께서는 정해진 때에 불경한 자들을 위하여 돌아가셨습니다.

의로운 이를 위해서라도 죽을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혹시 착한 사람을 위해서라면 누가 죽겠다고 나설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돌아가심으로써,

하느님께서는 우리에 대한 당신의 사랑을 증명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분의 피로 의롭게 된 우리가 그분을 통하여 

하느님의 진노에서 구원을 받게 되리라는 것은 더욱 분명합니다.

10 우리가 하느님의 원수였을 때에 그분 아드님의 죽음으로 그분과 화해하게 되었다면,

화해가 이루어진 지금 그 아드님의 생명으로 구원을 받게 되리라는 것은 더욱 분명합니다.

11 그뿐 아니라 우리는 또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느님을 자랑합니다.

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제 화해가 이루어진 것입니다.


축일6월 14일 성 엘리사 (Elisha)

 

신분 구약인물예언자

활동 연도 : +9세기경BC

같은 이름 :엘리세오엘리세우스

 

성 엘리사(Eliseus)는 엘리야(Elias)의 계승자로 이름의 뜻은 하느님께서 구원하셨다라는 뜻이다엘리사는 대략 기원전 850-800년경 북이스라엘의 왕 아하지야요람그리고 여호아스 재위 기간에 활동하였던 것으로 여겨진다그는 이스라엘 백성들 사이에서 회자되는 수많은 기적을 행한 전설적인 인물이다구약성서에는 그에 관한 대목들이 많이 있는데특히 신명기계 역사서인 열왕기 상하권에 예언자 엘리야와 엘리사 이야기가 큰 단락으로 자리 잡고 있다엘리야 이야기는 열왕기 상권 17-19장과 21열왕기 하권 1-2장에엘리사 이야기는 열왕기 하권 2-9장에 나타나며 그의 죽음 이야기가 13장 14-21절에 수록되어 있다이 이야기들은 두 갈래로 나누어 볼 수 있다즉 엘리사 개인에 관한 설화적인 이야기들과 사마리아의 역사적인 격동과 연관되어 있는 사건들이다.

 

아벨 므홀라 출신으로 사밧의 아들 엘리사는 엘리야의 제자로 부름을 받았다(1열왕 19,16-21). 열왕기에 등장하는 그에 관한 이야기들의 공통점은 모두 기적에 대한 것이다또 각 이야기들은 서로 연관성을 갖지 않는 독립된 이야기로 나타나며엘리사의 생애에서 어느 것이 먼저 일어나고 나중에 일어났는지 등의 시간적인 연계성도 표현하지 않는다여기서 하느님의 사람 엘리사는 다만 기적을 행하는 사람으로 나타나며 이 기적들은 특별하게 종교적이거나 신학적인 의미를 지니지 않는다또한 도덕적인 문제를 다루는 것도 아니다.

 

엘리사는 예언자라는 명칭과 함께 자주 하느님의 사람으로 지칭되었다그 시대의 역사적인 사실들과 연관되어 나타나는 이야기들은 엘리사가 신명기계 역사서에서 예언자로서의 면모를 드러내며 엘리야와 함께 예언자로서의 한 모델을 제시한다엘리사는 야훼 신앙을 저버린 오므리 왕조를 거슬러 계속해서 투쟁을 하며 오므리 왕조의 멸망을 위해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예후를 세우고다마스쿠스의 하자엘이 왕이 될 것이라고 예언하였다예후가 왕위에 오른 이후에는 엘리사의 사회적 역할의 장이 주변에서 중심으로 바뀌어 나타나며그는 왕궁과 밀접히 연결되어 특별히 국방 부분에 많이 연계된다.

 

엘리사는 그 시대에 온전한 성실로 야훼 신앙을 지킨 하느님의 사람으로 나타난다그가 행한 것으로 나타나는 놀라운 일들은 그의 확신 있는 행동의 능력을 보여 준다거칠고 단호한 몇 개의 설화는 야훼 신앙이 위기에 처해 있고 이스라엘 역시 대외적으로 어려움에 처해 있던 아주 힘든 시기에 그를 휩싸고 있던 신념과 확신을 표현한다고 볼 수 있다그는 신명기계 역사 속에서 민간설화에서 기억하는 대로 크나큰 능력을 가지고 초기 이스라엘에서 혼합주의 경신례의 위협을 거슬러 야훼 신앙을 고수하며 오로지 야훼만을 신봉하던 사람으로 나타난다마지막으로 엘리사는 죽었을 때도 살아 있을 때처럼 야훼의 생명을 전하는 도구로 묘사되었다.

 

신약에서도 구약의 매우 유명한 인물이었던 엘리사가 언급되고 있다예수님은 나자렛의 회당에서 엘리사가 나아만의 문둥병을 낳게 한 이야기를 엘리야가 사렙다 과부를 도운 이야기와 함께 인용하면서 이방인들에 대한 선교의 정당성을 설명하였다(루가 4,27).

 

오늘 축일을 맞은 엘리사 (Elisha) 형제들에게 주님의 축복이 가득하시길 기도드립니다.


야고보 아저씨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