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동안
돌아오지 않는 아이들 때문에 마음이 안타까워 설교도 제대로 준비하고 있지 못했습니다.
그 차가운 물속에서 구조의 손길만을 기다리며 간절히 기도하고있을 그 아이들과 밖에서는
손발이 안맞는 정부관계자들의 엉터리 같은 행정과 구조 방식에 분을 삭히면서 어떻게든 한명의 아이들이라도 구조하기를 소원하는 부모님들의 간절함이 가슴 가득히 느껴져왔기 때문이었습니다.
내가 살아가고 있는 이 나라가 이처럼 한심하게 느껴진건 오랜만이었습니다.
세월호 사건을 보면서 많은 목회자들과 교회들은 기적을 바라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걸 위해 기도를 하고있었구요.
이런 상황에서 주님이 하신 말씀이 생각납니다.
내가 보여줄 기적은과 표적은 요나의 표적밖에 없다는 말씀 말입니다.
복음은 하늘과 상하의 관계에 있는 주종의 복종관계가 아닙니다.
복음은 아버지와 아들과의 관계안에 있을 때 성령께서 깨닫게 해주시는 겁니다.
죽어가는 아이들도
부르짖는 부모도
그리고 저 답답하고도 엉터리 같은 정부관료와 모든 구조대들도
요나의 표적이라도 전해지기를 소원합니다.
이번 사건을 을 보면서 우리에게 죽음 너머의 약속이 되어있다는 사실이
그 복음의 확증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 다시 확인되었습니다.
주님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죽음이라는 실체에서
내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시옵소서라고 했습니다.
이제
구조의 손길조차 외면한
외면당한 아이들과 그들의 부모님과 그리고 그 아이들의 생명보다
무언가가 더 중요했던 저들에게도
겟세마네 동산에서 아버지의 아들이 하셨던 그 기도가 있기를 소원합니다.
내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시옵소서.
부활이 왜 기쁜거지요?
기쁨에는 이유가 있어야 하는데 기뻐야하는 이유를 알고 계시는지요?
그런데 그것 아십니까? 내가 아는 것과 사실은 많이 다르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 죽음이 나와 관련이있으니깐
그 죽음에서 부활이 나를 위해서이니깐요
나와 어떻게 관련이있다는 것이지요/
아버지는 아들만 받으십니다.
창조주는 피조물 안받습니다. 창조주는 오직 예수그리스도만 받습니다.
우리가 부활에 참여하려면 우리가 아들이 되어야 합니다.
1. 자기 수준에서 하나님을 이해하려는 시도. 대부분의 종교인들은 이경우에 해당됩니다.
-. 하나님을 인간 수준으로 끌어내리는 것이지요. 이런경우가 기적을 요구하는 태도입니다. 이걸 더 자세히 말하면 나를 위해 존재하는 하나님인 것이지요.
-. 자기 수준에서 하나님을 해석해서 열심으로 섬기는 것 결국 구원은 있을까요?
2. 예수, 십자가를 기준으로 해서 하나님을 해석하는 태도. 섬기는 것이지요.
-. 예수는 하나님이고 또 십자가는 위대한 사랑의 표현이기 때문에 잘 섬기고 잘 받들고 그 뜻을 기려서 이땅에서 작은 예수가 되자. 그래서 타인을 위해 희생하고 봉사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십자가를 증거하자는 이른바 복음이라고 말하는 태도입니다.
-. 하지만 이 경우에도 예수가 섬김의 대상, 드림의 대상, 그 말씀을 지켜야 하는 종교의 수준에 머무른 기독교보다는 종교의 수준에 머물러 버린 것이 됩니다. 그래서 잘섬기는 목적도 잘드리는 목적도 잘지키는 목적도 예수 십자가를 전하는 목적도 결국 다른 목적이 있어서 이겠지요. 표현과 방법은 달라도 수준1과 같은 상황일겁니다
3. 관계로 생각하고 관계로 해석하는 겁니다.
우리가 이번 세월호 사건을 보면서 이런 해석이 왜 중요한가를 살펴야합니다.
1. 일처리하는 방식에서 독재권력아래서의 일처리와 민주화된 사회에서의 일처리는 상당히 다르다.이 말은 지도자가 누구냐에 따라 그 아래의 시스템은 엉터리가 될 수도있고 아주 뒤어난 처리 능력을 가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즉 나의 머리가 에수그리스도면 우리 몸은 예수그리스도의 구조로 바귈 것이고 나의 머리가 세속이면 우리는 결국 세속의 몸구조로 세속의 것만 추구하게 될 것이다.
2. 시간이 지날수록 변화 발전할수도있지만 그러나 거꾸로 가는 경우도 있다. 재난처리과정이 지난 20여년전의 삼풍백화점수습과정에 비해서도 상당히 후퇴했고 이를 중국 정부는 한국과 같이 현대화 된사회에서 이렇게 후진국형으로 일 수습을 하는걸 보면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했다.
3. 거짓의 구조를 감추기 위해 거짓은 저짓을 낳고 그 거짓은 다시 또 다른 거짓을 낳는다. 그래서 거짓에 둘러쌓인 진실을 알고자 한다면 거짓의 두꺼운 층들과 그 두께들을 뚫고 들어가야하느데 한 개인이 구 구조를 깨트리고 진실을 만나는 일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정말 뒤어난 개인이 거짓의 구조를 뚫고 들어간다해도 거기가 진리가 아니라 단지 진리를 품고 있는 정보 즉 진실이기 때문이다. 거기서부터가 시작일 뿐이다.
1. 할 수 있는데 안하고 못한다. 안하는 것은 할 의지가 없어서이고 즉 아이들의 생명보다 더 높은 무언가의 가치관이 아이들을 구조하는 것을 하지 않게 만드는 것이고 못하는 것은 아이들의 생명과 그 생명을 바라보는 보모들과 국민들의 그 마음보다는 자신들의 밥줄이요 자신들의 생존이 걸려있는 그 모든 구조 즉 시스템에서 하지 못하게 하면 못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게 이해가 되는가? 할 수 있는 것을 안하는 것과 할수 있는데도 못하는 것, 이 둘다 이해가 되는가? 지금 상황이 그렇다. 그게 바로 성전대 신앙이다. 성전을 신앙했지만 그것은 부정한 것이었다.
4. 율법과 성전은 보이는 것을 통해서 우리게 보이지 않는 것을 설명키 위함이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 보이는 것을 통해 보이지 않는 것으로 건너오라고 한 것인데 오히려 그 보이는 성전을 섬겨버리고 보이는 율법을 지켜내겠다고 충성을 다하겠다고 끝까지 움켜쥐고 그 율법에 목숨을 걸어버린다. 이걸 보고 악이라고 한다. 이게 바로 죄라고 한다.
사1:10 너희 소돔의 관원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너희 고모라의 백성아 우리 하나님의 법에 귀를 기울일지어다
1:11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나는 숫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 양이나 숫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
1:12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이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냐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
1:13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분향은 내가 가증히 여기는 바요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하니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
1:14 내 마음이 너희의 월삭과 정한 절기를 싫어하나니 그것이 내게 무거운 짐이라 내가 지기에 곤비하였느니라
1:15 너희가 손을 펼 때에 내가 내 눈을 너희에게서 가리고 너희가 많이 기도할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니 이는 너희의 손에 피가 가득함이라
본문을 볼까요?
성경은 무어라 말하고 있는지요?
2:1 수 일 후에 예수께서 다시 가버나움에 들어가시니 집에 계시다는 소문이 들린지라
1. 이천년전 그때는 공식 보도 공심 미디어를 통해 사실을 확인한 게 아니라 소문을 통해 사실을 확인하는 거였습니다.
2:2 많은 사람이 모여서 문 앞까지도 들어설 자리가 없게 되었는데 예수께서 그들에게 도를 말씀하시더니
1. 도는 로고스였다 즉 구약의 말씀을 가르치신 것이었다. 로고스로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로고스를 랄레오 즉 로고스를 설명하셨다는 뜻이다.
2:3 사람들이 한 중풍병자를 네 사람에게 메워 가지고 예수께로 올새
1. 네 사람 즉 네 귀퉁이라는 말이다. 즉 사각형안의 무기력한 사람이 들어있다. 사각형 네 모퉁이는 무엇을 상징하는가? 성전이다. 그 성전안에 중풍병자가 있다. 생각은 있는대 몸을 움직일 수 없는 병이다.
2. 중풍병은 레위기에도 나오지 않는 병이다. 부정한 병이라고 한다면 나병, 유출병등이 대표적인데 그러한 병과는 상관없는 병이다. 그러므로 여기서는 부정보다는 무기력, 무능력을 대표한다. 생각은 있지만 그러나 그 사각형 안에 갇혀 꼼짝 못하는 사람, 그 들것에 들려 들것에 따라 움직여야만 하는 신세. 그러다가 주님께 오게된 행운의 사람.
2:4 무리들 때문에 예수께 데려갈 수 없으므로 그 계신 곳의 지붕을 뜯어 구멍을 내고 중풍병자가 누운 상을 달아 내리니
1. 지붕, 네 귀퉁이를 가진 집의 뚜껑, 즉 성전의 위, 법궤의 위.
2. 그곳을 뜯어 버렸다. 15:38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니라 와 하늘이 찢어진 사건을 말한다. 1:10 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갈라짐과 성령이 비둘기 같이 자기에게 내려오심을 보시더니
2:5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작은 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
1. 에수께서 보시고라고 한 단어는 에이돈이다. 즉 무언가를 설명하시기 위해 보이지 않는 것을 설명하시기 위해 보이는 어떤 형태로 주신 것이 에이돈으로 본다. 즉 이 상황은 하나의 교보재이다. 무엇을 보여주시려고 하신 것인가? 이 에이돈을 통하여 호라오 보이는 것의 너머로 보라고 주신 것이다. 그 호라오는 무기력과 무능력을 넘어서는 것을 말함이다. 우리가 우리 스스로 머어설 수 있나? 아니다. 이 에이돈은 언제 보여주신 것인가? 우리가 못하니 보혜사 성령님께서 하신다는 것이다. 이걸, 더 자세히 말씀드리면 법궤 위 그룹의 네 날개, 우리를 덮으시는 라하프의 그 사랑을 우리에게 이미 에이돈 보여주시는 걸로 설명했다. 그 네 명의 믿음, 그 라하프의 믿음, 그믿음은 이제는 보혜사 성령님께서 우리를 끌어가 주시는 그 믿음이다.
에이돈에대한 설명
롬 1:19 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그들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그들에게 보이셨느니라 1:20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 1:21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1:22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어리석게 되어 1:23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새와 짐승과 기어다니는 동물 모양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1:24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버려 두사 그들의 몸을 서로 욕되게 하게 하셨으니 1:25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 주는 곧 영원히 찬송할 이시로다 아멘
요16:13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16:14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시겠음이라 16:15 무릇 아버지께 있는 것은 다 내 것이라 그러므로 내가 말하기를 그가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하였노라
2. 하시니 즉 이때 말씀하신 것은 레고다. 2절의 로고스와 여기는 다르다. 레고.
3. 소자 혹은 작은자는 아이 또는 아들로도 번역 즉 아들아는 말이다
4. 여기서는 부정한 병을 고치신게 아니다. 무기력한 그 믿음있는 사람의 죄를 사하신 것이다.
2:6 어떤 서기관들이 거기 앉아서 마음에 생각하기를
1. 서기관 바리새인들이 했다. 성경 필사자. 그들이 기록하는대로 성경이 바뀔 수 있는 성경의 보존자 유지자 담지자 즉 그들이 성경이라 생각했던 사람들.
2. 거기에 앉아 즉 그 집에 /그 성전/그 사람들 많은 곳에 앉아 있는 그 중풍병자에게 기회를 주지 않는 스스로 멀쩡하다고 생각했던 그들.
2:7 이 사람이 어찌 이렇게 말하는가 신성 모독이로다 오직 하나님 한 분 외에는 누가 능히 죄를 사하겠느냐
2:8 그들이 속으로 이렇게 생각하는 줄을 예수께서 곧 중심에 아시고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것을 마음에 생각하느냐
2:9 중풍병자에게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걸어가라 하는 말 중에서 어느 것이 쉽겠느냐
1.
2:10 그러나 인자가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하노라 하시고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시되
2:11 내가 네게 이르노니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하시니
1. 크라밥토스/즉 침상-그것은 그동안 그가 누워있었던 네 모퉁이 그 성전이었다 그 성전에서는 불구로 있어야 했고 그 성전에서는 늘 죄인이었다. 그걸 섬기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늘 죄인이었고 정죄당해야했고 불구자였다.
2:12 그가 일어나 곧 상을 가지고 모든 사람 앞에서 나가거늘 그들이 다 놀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이르되 우리가 이런 일을 도무지 보지 못하였다 하더라
1. 왜 그 상을 들고 가라고했을까? 성전, 보이는 것을 숭배하는 사람들에게 그 보이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시기 위해 들고가라하신 것이다.
행
10:9 이튿날 그들이 길을 가다가 그 성에 가까이 갔을 그 때에 베드로가 기도하려고 지붕에 올라가니 그 시각은 제 육 시더라 10:10 그가 시장하여 먹고자 하매 사람들이 준비할 때에 황홀한 중에 10:11 하늘이 열리며 한 그릇이 내려오는 것을 보니 큰 보자기 같고 네 귀를 매어 땅에 드리웠더라 10:12 그 안에는 땅에 있는 각종 네 발 가진 짐승과 기는 것과 공중에 나는 것들이 있더라 10:13 또 소리가 있으되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 먹어라 하거늘 10:14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그럴 수 없나이다 속되고 깨끗하지 아니한 것을 내가 결코 먹지 아니하였나이다 한대 10:15 또 두 번째 소리가 있으되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 하더라 10:16 이런 일이 세 번 있은 후 그 그릇이 곧 하늘로 올려져 가니라
2. 이 사각형의 보자기는 성전, 보자기가 아니라 그냥 사각형이다. 그 사각형은 성전의 네 모퉁이를 상징한다. 성전안에 부정한 것이라는 말이다. 이는 유대인들이 정한 것이라고 알고 있었던 것을 하나님이 부정한 것이라고 폭로하는 것이다. 그 부정한 것을 이제까지 먹고 살았는데도 자신들은 부정한 것을 먹고 살 수 없다는 것이다. 이게 아이러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것을 부정하다 하지 않으셨다. 왜냐하면 그 부정한 것은 바로 율법이었고 말씀이었고 그들이 섬겼던 것이다. 즉 부정한 것 정한 것의 개념을 없애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3. 토브/ 하나님의 토브 인간의 토브/누가 그 토브를 사용하는가? 누가 그 주인공인가에 따라 선과 악이 결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