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O Chia-Lin, "음양사상과 여성의 지위"
- Ed by Peter K. H. Lee,
[Confucian-Christian Encounters In Historical And Contemporary Perspective], The
Edwin Mellen Press, 1991, pp.314-338
논문의 성격과 목적
저자는 중국의 남성중심적
사회는 여성의 지위를 낮추는 방향으로 진행했고, 그 결과 여성은 점차 독립적 지위와 경제권을 잃은 채 남성에 의존하게 되었다고 평가한다. 뿐만
아니라 학자들은 이것을 우주론적 질서와 관련시켜 남성을 陽, 하늘(乾)로 표현하고 여성을 陰, 땅(坤)으로 표현했으며, 나아가 양은 우월하고
음은 열등하다는 철학적 이론을 발전시켜 이천년동안 중국의 차별적 성 관계를 지배했다. 저자는 이 연구에서 음양의 관계를 표현하는 이론과, 남성이
여성보다 우월하다는 관념의 몇 가지 사례를 제시한다. 이 과정에서 이론적으로 동등했던 음양/남녀 관계가 역사적으로 차별로 변질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저자는 변질 이전의 고대 음양 사상의 평등성을 복원하는 것을 과제로 제시한다.
고대의 음양사상
陰陽과 五行
개념은 춘추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지만, 음양 사상이 역사적 기록으로 처음 나타난 것은 西周 말기, B.C 780년경에 지진이 있었을 때였다.
당시 학자들은 그 사건을 양이 음을 지배하는 지위를 잃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전국시대 음양학자들은 음양을 인간사에 밀접한
이론으로 발전시켰다. 그들은 음은 벌에 관련되는 것으로 가을과 겨울을 지배하는 반면, 양은 덕을 나타내는 것으로 봄과 여름에 양성되는 것이라고
했다.
유교 초기 저작에서는 음양 관념이 뚜렷하지 않다. 하지만 [禮記]에는 "남성은 가정 일에 대해 이야기하지 말아야 하며,
여성은 집 바깥 일에 대해서 이야기하지 말아야 한다." 라는 언급이 있고, 천자(남성)는 대외적 활동에 영향을 미치고 왕비(여성)는 가정의 내적
규제에 관계된 것을 수행해야 한다는 음양 이원론이 있으며, 이 외에도 일식은 음과 양의 부조화 때문에 생기며 그것이 인간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유교의 초기 저작은 근본적으로 양의 우월성으로 간주할만한 것은 주장하지 않았다고 저자는 평가한다.
한편
주역에는 강한 여성과는 혼인하지 말아야 한다는 내용이 있는데, 그 역시 음과 양의 불균형을 우려하는 의미이다. 宋代 정이는 음이 커지면 양이
감소하고, 여성이 권력을 잡으면 남성은 약해지므로, 그런 여성과는 혼인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으로 해석했다.
漢代 부터 자연현상을
인간사의 징후로 해석하는 주장이 나타나, 사람들은 계절과 기후가 여성에게 영향을 미친다고 믿고, 여성은 악을 행하는 존재로 여기게 되었다.
[Chi-chung Chou-shu]의 경우 춘분, 동지 등 자연 주기와 여성의 악한 행동을 연결지어서 설명했다.
한편 도교의 저작
[Wen-tzu]는 음양 이론은 더욱 정교화했다. 하늘의 기가 내려가면 땅의 기가 올라가고, 음과 양이 상호작용할 때 무수한 사물이 번창한다.
이것이 하늘과 땅의 도이다. 그러나 그 역이 되면 음과 양은 상호작용을 멈추고, 만물은 번창하지 못하며, 덕은 숨는다. 음이 나아가면 양은
물러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인은 양의 도를 따라 모든 것을 수행해야 하는 것이다.
한대의 음양 사상 - 동중서를
중심으로
한대의 동중서는 음양 개념을 유교 이론에 편입시켰다. 그는 양을 숭상하고 음을 경멸했으므로, 인간 삶에 있어서도 남성은
존경받아야 하고 여성은 천대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남편은 양이고 아내는 음이므로 아내는 남편에 의존해야 하는 것이다. 이는 음의 도는 독립할 수
없으므로 양에 의존해야 한다는 주장에서 비롯했다. 결국 아내의 성취는 남편에 의존하는 것이다. 따라서 보잘 것 없는 남편이라도 여전히
양(우월)이고, 고귀한 여인이라도 여전히 음(열등)이다.
또한 동중서는 음양 이론으로 형벌과 덕의 관념을 정교화했다. 그는 왕은
양인 덕을 따라야지 음인 벌을 주로 해서는 안된다고 믿었다. 그에게 벌이란 음이 양을 보조하듯이 도덕을 보조하는 것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음과 양은 동시에 일어날 수 없다. 하나가 '밖'이면 하나는 '안'이고, 하나가 '오른 쪽'이면 하나는 '왼쪽'이다. 양은 항상 한 해의 일을
돌보기 위해 먼저 생겨나고, 음은 항상 빈 곳을 채우기 위해 그 뒤에 생겨난다. 즉 음은 언제나 이차적이며 보조적이다. 이처럼 양을 사용하고,
도덕을 주로 하지는 것이 하늘의 도이며, 이에 어긋나면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
한편 동중서는 음과 양이 부조화 상태라 해도 양이
번성하다면 문제될 것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음이 넘치면 문제가 발생한다. 큰 가뭄이나 홍수와 같은 자연의 재난은 우월한 것(양)에 열등한
것(음)이 반항했기 때문이며, 이는 자연의 질서에 어긋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늘과 땅을 본래 상태로 돌아가게 하고, 음과 양의 질서를 교정하는
것이 최상의 의라고 주장했다.
이러한 동중서의 입장을 인간사에 적용한 [列女傳](Lieh-nu chuan)의 저자 劉向은, 양이
음을 지배하듯, 남성, 아버지, 군주는 여성, 자식, 백성을 지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양은 고귀하고 우월하며, 음은 천하고 열등한 것이 하늘의
도이기 때문이다. 班固도 [白虎通](Po-hu-t'ung)에서 열등한 음은 독립할 수 없고, 다만 양에 의해 성취된다고 주장했다.
한편 여성인 班昭(Pan Chao)도 [女誡](N -chieh)에서 여성의 역할을 밝혔다. 한 여아가 태어나자 침대 아래에
뉘여서, 질그릇 조각을 갖고 놀게 했다는 [詩經]의 시를 해석하면서, 반소는 여아가 침대 아래 놓였다는 것은 천함, 약함을 의미하며, 질그릇
조각을 장난감으로 준 것은 여성은 노동을 해야 함을 의미한다고 해석했다. 낮춤과 근면함이 여성의 우선적 의무인 것이다. 그녀는 또한 여성의
위치를 음과 양의 개념에 관련시켰다. 음과 양이 같지 않은 것처럼 남성과 여성도 다르다는 것이다. 양은 '강직함'이고 음은 '양보'이므로,
남성은 힘으로써 존경받고 여성은 온순함으로 아름답다는 것이다. 또한 남편은 하늘을 의미하므로, 만물이 하늘의 지배를 벗어날 수 없는 것처럼
아내도 남편에게 복종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남성은 재혼할 수 있지만 여성은 그럴 수 없다는 것도, 사람이 하늘로부터 벗어날 수 없는 것처럼
아내도 남편을 떠날 수 없다는 논리에서 비롯된 것이다. 저자는 한 대 이래, 여성의 교육을 다루는 책과 논문은 대부분 반소의 저작에서 유형화된
태도를 따르고 있다고 평가한다.
여성 권력자에 대한 매도
중국의 가부장적 문화속에서도 야심있는 여성들이 제국의 권력을
장악하는 경우가 있었다. 이런 상황에 대해 대부분의 학자들은 하늘의 도에 어긋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당 시대 우 황후(684-705 재위)가
권력을 장악하고 있을 때 지진이 발생했는데, Yu Wen-chun은 황후가 양의 위치를 점유하여 재난이 일어난 것이라는 상소를 올렸다. 그는
상소에서 황후가 스스로 반성하고 덕을 기르지 않으면 재앙이 올 것이라고 경고했다. 계속해서 지진이 일어났을 때 Chang
Hsing-ch'eng은 여성이 권력을 잡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고, 705년에 홍수가 있었을 때 Sung Wu-hsien은 음이 넘쳐서 일어난
재앙이라고 주장했다. 소위 "닭의 재난"이라는 사건도 있는데, 687년과 688년에 치주, 명주, 송주의 암탉이 수탉으로 바뀐 사건이다. 이
역시 우 황후 재위 시절에 발생한 것으로 추측된다.
Shih Chieh는 음양의 무질서가 이러한 재앙의 원인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재앙의 원인"이라는 논문에서 남성과 여성의 의무가 무질서해질 때 음과 양의 질서도 상실되고, 그 결과 태양과 달이 그 적합한 길을 벗어나
하늘과 땅이 뒤엎어진다고 주장했다. 이런 입장을 역사에 적용하여 고대부터 왕조 쇠퇴와 멸망의 원인은 강한 황후들 때문이라고 일반화했다.
송대 유학자들의 인식 - 음, 여성에 대한 부정적 시각
많은 宋代 학자들은 음이 악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Ts'ai Hsiang은 당시의 자연재해는 모두 음양과 관계된 것으로 주장했다. 백성, 야만인, 여성을 나타내는 음이 양을 전복하였을 때 재앙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한편 Ch'en Shun-yu도 음은 전쟁, 음모, 반역자, 야만인, 환관, 그리고 왕궁의 강한 여성을 나타낸다고 보았고,
하늘의 변화와 재난은 이들이 국가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증거라고 주장했다.
북송시대 신유학자들의 음양 사상 - 음양개념의 철학적
체계화
北宋 시대 신유학자들은 음양개념을 그들의 철학적 체계안에 결합시키기 시작했다. 주돈이는 [태극도설]에서, 하늘의
원리(건)는 남성적 요소를 구성하며, 땅의 원리(곤)는 여성적 원리를 구성한다고 가르쳤다. 이들 두 물질적 힘(기)의 상호작용이 만물을 생기게
하고 변화시킨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돈이의 설명은 기본적으로 음과 양, 오행은 선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주희도 이 입장을 따라, "기는 선과
악을 가지고 있지만 그 원리는 선하다."라고 주장했고, 陳淳도 음과 양이 기본적으로 선하다고 믿었다. 문제는 균형이 깨어질
때 악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하지만 주희는 다소 모호한 주장도 남겼다. 만약 음과 양을 분리해서 말할 때, 선과 악은 음양으로
묘사할 수 있고, 또한 남성과 여성으로 묘사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이론적으로 음과 양 모두는 기본적으로 선한 것이지만, 인간의 일에
있어서는 선과 악을 음과 양, 남성과 여성으로 묘사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주희는 음을 여성, 악과 동일시했다. 그러므로 성인은
양을 따르며 음을 삼가야 한다고 강조했는데, 그것은 양에 관계되면 선이고, 음에 관계되면 악이라는 주장을 의미한다.
이처럼
신유학자들은 중립적 음양이론을 가지고 있지만, 그것을 인간사에 적용할 때 차별성을 인정하는 의미로 변했다. 주돈이가 음양이론을 가족 문제에
적용하면서 "만약 가족이 분열한다면 그 원인은 분명히 여성에게 있을 것이다."라고 주장한 것이 그 예이다.
기타 학자들의 음양 사상
- 사마광, Lin Ta-chung
사마광은 [家範](Chia-fan)에서 음과 양을 전형적으로 언급한다. 그는 남편은 하늘,
태양, 양이며, 아내는 땅, 달, 음이라고 해석했다. 양이 이끌때 만물이 만들어지고, 그것에 음이 따를 때 만물이 완성되는 것이다. 따라서
여성의 덕은 유약함과 복종이다. Lin Ta-chung은 이 이론을 정치에 적용했다. 그는 이 황후를 비판하면서, 봄에 큰 눈이 내리고 천둥과
번개가 치는 것은 음이 양을 지배하는 명백한 증거라고 주장했다. 이처럼 반소의 [여계]와 사마광의 [가범]의 입장은 신유학자, 학자, 그리고
여성 자신들에 의해서도 일반적으로 수용되었다.
왕양명의 사상 - 음과 양의 동등성
明代의 왕양명은 일반적 음양이론의
차별적 적용과는 다른 해석을 했다. 그는 주희의 주장 중 음양은 하나라는 논의를 발전시켜서, 서로의 근원인 음과 양은 사실상 둘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러므로 음과 양은 서로에 대해 우월하거나 열등할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선과 악이 어떻게 일어나는가 설명되어야 한다. 이에 대해
왕양명은, 최상의 선은 마음의 근본적 본체이며 인간이 이것으로부터 이탈할 때 악이 생긴다고 주장했다. 즉 선이 음양의 어느 하나에 따로 있는
것이 아닌 것이다.
서양(그리스도교)과의 접촉 - 여성 차별의 수구적 태도
明 말기에 예수회 선교사들이 들어온 이후,
음양사상, 남녀의 관계성에 대한 논의가 적극적으로 부상했다. 일부 보수적 학자들은 남성과 여성의 동등성에 기초한 서양의 부부관계가 '하늘의
도'에 어긋나는 것이라고 공격하기 시작했다.
Hsu Ta-shou는 그리스도인의 부부관계와 일부일처제를 "음양의 전복"이라고
비판했고, Shen T'ung-sheng도 남성과 여성의 평등을 주장하는 서구 풍습을 받아들이는 것은 중국을 야만인들의 사회로 바꾸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Chu I-hsin는 서양인들은 양이 우월하고 음은 열등한 자연의 법칙을 모르므로 남성과 여성을 구별하지 못한다고 비판했다.
Ch'en Chih는 서양인들이 남성을 얕보고 여성을 존경하므로 가난한 남성은 혼인할 수 도, 후손을 가질 수도 없어, 결국 서구는 쇠퇴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Yuan Tsu-chih 또한 서양인들은 자유결혼, 여성의 재혼, 혼전 성관계 등 '불결하고' 비정상적인 인간관계에 빠져
있다고 공격했다. Chen Tseng-shou는 남성이 대외적 일을 해야 하는 것을 무시하고, 하늘이 부여한 책임성을 포기한 채, 여성의 권리를
주창하는 것은 "저속한 인간"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남자가 대외적 일을 수행할 책임성을 포기하면 나라가 혼란해지고, 여성이 가정사를 돌볼
책임성을 포기하면 가족의 일이 무질서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근,현대 인식의 전환 - 음과 양, 여성과 남성의
평등
근대 중국에서 여성해방 사상이 일어나면서, 음양 이론은 전족, 축첩, 중매결혼, 과부의 정조, 그리고 여성의 문맹과 같은
다양한 풍습을 공격하는데 사용되었다. 그것은 음과 양은 동등하고 모두 선하므로 남녀평등이라는 관념에 모순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Yu Cheng-hsieh는 서양 선교사들이 오기 이전에 이미 있었던 음양 이론을 사용해서 남녀 평등을 주장했다. 그는
고대의 禮는 남편과 아내를 동등하게 보았지만, 禮의 의미가 불명료한 점을 악용한 후대 학자들이 아내를 열등한 존재로 비하시킨 것이라고
주장했다.
청나라 후기에는 더 정교한 논의가 생겨났다. 신문 [中國進步]의 "남성과 여성의 평등 원리"라는 논설은 음과 양의 협력을
지지했다. 이 논설에 따르면 고대에는 남편과 아내의 도는 한 남자와 한 여성이 가정을 꾸리는 것이었고, 각자는 그의(그녀의) 자유를 지니며,
혼인 생활의 조화를 손상하지 않았다고 한다. 다만 후대에 三綱이 제도화되면서 그 평등과 조화가 깨졌다는 것이다. 논설의 핵심은 禮가 더욱
복잡해질 때 인간은 더욱 비참해진다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양을 받들고 음을 억압하는 이론이 나오게 되었을 때, 남성의 우월과 여성의 열등을 위한
규칙들이 확립되었다는 것이다. 논설은 계속해서 일부일처제와 자율적 결혼을 주창했다. 결혼하지 않거나 홀로 된 사람이 짝을 찾으려는 것은 자명한
원리이다. 그러므로 축첩을 지속하고, 과부의 재혼을 금지하는 것은 "남성과 여성이 그 道를 잃는 것이고, 음과 양이 適時性을 잃는 것"이라고
했다.
공화국 초기 Hsieh Wu-liang은 고대의 남성과 여성은 동등했지만, 중세에 이르러 남성의 우월과 여성의 열등이
주장되었고, 비로소 현대에는 남성과 여성 사이의 평등한 권리가 다시 촉진되었다고 주장했다. 고대에 남성과 여성이 평등했던 것은 자연의 법칙을
따랐기 때문이고, 중세에 여성이 열등해진 것은 일시적 경향인 것이고, 현대에 평등이 촉진되는 것은 참된 도가 점차 명백해졌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결론 - 새로운 시작
현대 이전까지는 음과 양을 인간의 삶에 관련시킬 때 대부분의 학자들은 양이 우월하고
선하며 음은 열등하고 악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청나라 후기와 초기 공화국 시대의 소수 계몽된 학자들은 중국 여성의 비참한 상태를 동정하기
시작했고, 음양 요소의 동등, 보완적 성격을 강조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남성과 여성 사이의 평등은 자연의 법칙이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했다. 이러한 그들의 주장은 중국에 넓게 퍼진 여성운동의 철학적 기초를 제공했다. 그들은 이천년동안 지속된 남성우월주의라는 믿음에 심각한
타격을 가했고, 여성을 규제할 목적으로 미화된 "하늘의 도"를 비판했다. 그것은 중국인들에게 "하늘"이 바뀌는 충격이었고, 중국 역사의 새로운
시작을 보여주는 변화였다.
논평 - 성 차별 극복을 위한 유교 내적 자기반성의 가능성은 있는가?
몇 년전 [뉴스위크]
여성과 남성의 완전한 평등을 실현하려면 2천여년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만큼 여성 억압의 현실이 심각하다는 의미이다. 우리는 저자의
논문에서도 성 차별의 집요하고 장구한 과정을 볼 수 있었다. 이런 차별의 역사에서 유교가 성 차별을 이론적으로 뒷받침하며 주도해 왔다는 것은
현대 유교의 가장 큰 취약점 중 하나이다. 그렇다면 유교의 성 차별은 유교의 태생적 한계인가? 그것을 극복할 동력은 유교 내부에 없는가? 만약
그렇다면 최소한 여성 문제에 있어서 유교는 낡은 가치관으로 폐기되어야만 할 것이다.
그러나 저자는 유교가 그 체계 안으로 받아들인
음양사상의 원류는 오히려 조화와 균형을 함의했다고 평가한다. 즉 유교의 근본사상 안에는 억압적 차별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근,현대 여성 지위 증진을 위한 이론적 방향이 고대 음양사상을 '복원'하는 것으로 전개될 수 있었던 것이다.
한 종교의 모순을
드러내고 그것을 정정하기 위해서는 외적 자극과 내적 개혁이 동시에 필요하다. 그러나 정정의 직접적 성패는 내적 주체의 개혁의지에 달려있다.
저자의 논지는 유교 내적으로 여성문제를 극복할 수 있다는 희망을 제시한 것으로 보인다.
논자도 저자의 희망을 함께 하고 싶고,
유교 내적 실천을 절실히 기대한다. 하지만 '하늘을 바꾸는 충격'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남녀의 동등성과 조화는 완성되고 있지 않으며, 내적
주체의 자세 또한 그리 전향적이지 않은 것 같다. 1999년 호주제 철폐를 위한 한 토론회에서 성균관을 대표해서 나온 유자는 다음과 같이
힐난했다. "모계(여성) 중심 사회는 동물들의 사회이다. 지금 호주제를 철폐하자는 것은 인간을 동물의 수준으로 떨어뜨리자는 말이다." 이런 낡고
오만한 의식이 여전히 남아있는 한, 하늘을 바꾸는 도전은 계속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를 유교 내부의 주체들이 수용, 개혁하지 못한다면, 유교는
21세기에 책임있는 역할을 결코 수행할 수 없을 것이다.
한국유교의 전망(2000. 5. 24), 지도교수:
김승혜, 발표: 정경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