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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다운 사람들의 공동체를 위한 '전통'과 '현대'의 상보적 만남 / 유교사상과 한국사회

작성자손님|작성시간06.04.14|조회수294 목록 댓글 1

독서노트, "사람다운 사람들의 공동체를 위한 '전통'과 '현대'의 상보적 만남"


금장태, 유교사상과 한국사회, pp.185-267
최근덕, "전통사회 가정예속과 현대", 한국유학사상연구, pp.36-53
윤사순, "유교윤리의 재검토", 현대사회와 전통윤리, 고대민족문화연구소, 1986
이상은, "상하관과 차별관", 유학과 동양문화, 1976


悖倫이 常識이 된다는 것은 비참한 경험이다. 얼마 전 방송이 '목포 노부부 방화 살인 사건'을 보도했을 때, 옆에 계시던 어머니에게 말했다. "보나마나, 저 집 아들이 그랬을거에요." 어머니는 설마 그러겠느냐고 반문하셨다. 며칠 뒤 결국, 그 패륜아의 범행임이 밝혀져 구속된 후속 보도가 있었다. 예측이 맞는다는 것이 신기할 것도 없었다. 그만큼 우리 삶은 일그러져 있는 것이다. 인륜의 단초는 가정이다. 그러므로 가정이 파괴되었다는 것은 인륜의 기초가 붕괴되었음을 의미한다. 부모는 자식을 버리고, 자식은 부모를 죽이는 세상은 이미 지옥이다.

그러나, 현대 사회는 사회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법률전문가가 아니라면 이해할수 없을 수많은 법조항과, 그것을 집행하는 무수한 기관들과 제도를 가지고 있지 않은가? 무수한 형벌의 항목들과 제재들이 결코 모자라지 않는데도 사회적 병리현상은 더욱 심화되고, 인간의 타락은 멈추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과연 무엇이 문제인가? 마음이 문제다. 가치관의 결여, 삶의 근본적 관심의 결여가 문제인 것이다.

가치관을 상실한채, 중력없는 땅위에 서 있듯 불안한 현대인의 삶은 충동적 욕망과 자포자기적 행동으로 위태롭다. 모두 질서와 조화를 원하지만, 그 근본에서 마음이 정향하고 있지 못하므로 불안정성은 지속될 수밖에 없다. 무수한 교회와 사찰이 있고, 수많은 종교인들이 살아가고 있는 한국사회에서 그런 불안정성이 지속된다는 것은 더욱 무기력한 현실이다.

그런면에서 도의 사회적 실천, 질서와 조화의 원리로 사회 전체를 유지하려고 했던 사회적 종교로서의 유교적 전통사회를 상기할 수 있다. 특히 전통과 폭력적으로 단절한 한국 현대사회에 대한 반성으로부터 더욱 절실하다. 왜 이 상기가 필요한가? 인간의 본성을 사회적 현실에서 실현하려고 했던 유교적 심성은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지향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네 학자의 문헌들은 모두 현대사회의 문제에 대한 전통의 긍정적 재해석을 시도하는 성격을 가지고 있다.금장태, 윤사순은 공히 가치관의 혼란을 현대인의 현실로 지적하면서, 전통(유교)안에 담지되어 있던 가치관의 창조적 복원을 기대하고 있다. 윤사순은 인간적인 인간, 곧 全人에 대한 기대를 통해 비인간적 현실을 넘어서고자 하며, 금장태는 유교질서의 긍정적 요소를 현대에 복원(내지 활용)해야 한다는 것을 제안한다. 최근덕도 家의 주제를 다루면서 유교 禮俗의 단점과 장점을 분류하고, 그중 내실에 있어서 대가족제도의 순기능을 살리는 노력을 대안으로 제시하였다. 이상은도 유교의 상하관을 질서관으로, 차별관을 조화관으로 긍정적 해석을 하면서, 특히 五倫의 雙務的 관계성에 주목한다.

'목욕물을 버리면서 아이까지 버리는' 오류를 범하지 않아야 한다는 의미에서 전통의 창조적 복원은 유의미하다. 특히 그토록 짧은 기간에 자신의 전통을 부정해버린 한국인에게 있어서는 더욱 그렇다. 그러나 그 노력은 단순한 '복원'이 아니라 '창조적 복원'이어야 한다. 조선시대 유교문화와 질서를 그대로 반복하는 것은 조선 유교가 직면했던 停滯性과 형식주의를 다시 맞닥뜨릴 수밖에 없도록 할 것이다. 그러므로 현대성의 진전 방향을 인정하면서, 그 안에서 유교적 가치의 긍정적 요소들을 되살려야 한다.

그러나 재생시켜야 할 유교의 가치는 형식과 제도 그 자체여서는 안된다. 오히려 형식(질서)을 강조하면서도 더 포괄적 원리인 사랑으로서의 仁을 강조하는 것(義 위의 仁, 禮 위의 樂), 현실에 바탕한 구체적 윤리로서의 누적적 실천을 강조하는 것, 개인의 내면적 수양과 사회적 도덕화를 함께 추구하는 것을 유교의 참된 알맹이로 되살려야 한다.

이러한 요소들을 현대속에 창조적으로 복원하는 능력은 유교 안에 이미 있다. 그것은 時中이다. 中은 '극단'과 '절충'이 아닌 '적중'이다. 전통과 현대의 모호한 절충, 또는 한쪽의 일방적 고수는 유교의 원리가 아니다. 시중은 오늘날 변화의 원리, 진보의 원리로 해석되어야 한다. 금장태의 주장대로 '가장 올바른 방법은 상황의 모든 조건에 가장 적절한 방법'인 것이다. 전통의 재해석을 통해 현대에 '적중'하는 유교일수 있다면, 다른 모든 종교들과의 公同善的 협력을 통해 이 세계의 인간화, 사람다운 사람들의 공동체의 형성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1999,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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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손님 | 작성시간 09.02.10 cka....................................................참...........뭔말읹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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