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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를 연구하며 갖게 되는 태도는, 내가 갖고 있었던 '부정적 편견'에 대한 반성이다

작성자손님|작성시간06.04.14|조회수73 목록 댓글 0

독서노트, "전통적 禮論과 현대적 禮의 문제"


장세호, "사계 김장생의 예설연구"(고려대 박사논문, 1993)
윤사순, "조선시대 예 사상의 연구", 한국유학사상론, pp.122-144
정인재, '기해예송", 다산 사상과 서학


유교를 연구하며 갖게 되는 태도는, 내가 갖고 있었던 '부정적 편견'에 대한 반성이다. 그것은 학문적 엄밀성과 진지성에 기반해 있지 않았던 피상적 비판에 대한 자각이다. 물론 유교의 역사적 병폐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유교에 대한 소원함과 반감은 유교 '전체'와 '근본'에 대한 무지에 상당부분 기반했던 것이다. 이것을 깨닫게 한 것은 다른 무엇보다도 유교 지식인(종교인)들의 '궁극적 관심'에 대한 이해를 통해서였다. 왜 그들은 그토록 집요하게 그 주제들을 다루고 발전시켰나 하는 것을 그들의 눈(마음)으로 보게 될 때 유교는 전혀 새로운 모습으로 다가왔다. 반성은 부끄러움을 수반하지만, 이러한 인식의 전환은 대화와 연대를 추구하는 종교학도로서는 무척이나 즐거운 경험이다.

이전에 나는, 예론에 대해서도 신분질서의 고착화와, 과도한 형식규범이라는 측면에서 유교의 다른 부분보다는 더욱 강한 반감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예론 역시, 앞서의 쟁점 주제들을 접하면서 깨달은 것과 마찬가지로 쉽게 단정지을 수 없는 깊이와 맥락을 갖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윤사순의 "조선 시대 예 사상의 연구"를 통해서 얻은 것은, 왜 예학이 조선시대 성리학의 중심일 수밖에 없었는지, 아니 동양 유교의 본원일 수밖에 없었는지의 역사적 맥락이었다. 그는 짧은 논문에서, 예의 기원과 어원, 그리고 원시유교에서 성리학에 이르는 예 사상의 변화, 그리고 조선시대 성리학 이념의 발전과 더불어 전개된 예학의 심화과정을 간결하고 쉬운 문체로 잘 설명하고 있다. 특히 가장 민감한 시대고찰을 요구하는 17세기 조선 예학의 소개에 있어서는 성리학적 이념의 강화에서 예의 실제적 실천의 철저성이 발현되었다는 점과,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양란 이후의 흐트러진 질서 회복과 안정 추구의 방책으로 예가 중시되었다는 역사적 배경을 균형감있게 잘 제시하였다. 그의 전체적 의도는 조선 시대 예학의 합리적 근거를 밝히려는 것이고, 그것은 조선 시대 사람들의 '이성적 생활', 그리고 '금욕적 자기억제'에 의한 사회질서 수립이라는 측면에서 예 사상을 조명하려는 것이다. 그의 글은 또한 자신의 의도를 분명히 제시하면서도 일방적이지 않는 미덕을 보여준다. 禮訟 논쟁의 해결이 진위나 정,부정에 의한 것이 아니라 군주의 선택에 의한 것일뿐이었다는 지적, 지나친 형식이 인간성의 원활한 구현을 저해하는 경직된 분위기를 자아냈다는 지적 등을 놓치지 않는 것이 그것이다.

장세호의 논문 "沙溪 김장생의 예설 연구"는 조선 시대 예학의 목표가 무엇이었는지를 사계의 예론을 통해 밝히고자 한다. 나는 '목표'에 대한 그의 관심에 이끌렸다. 사계에게 있어서 예에 대한 관심은 형식규범 이전에 理(道)의 실현이었고, 이는 天理의 사회적 실천화라는 유교의 본지에 부합하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조선시대 예 논쟁은 당쟁의 산물이 아니라 인간본성의 실현 또는 회복을 위한 다양한 인간학적(종교적) 성찰의 산물이라는 결론을 도출할 수 있게 된다. 사계의 三統 논구에 있어서는 상황적 맥락을 고려한 당대 학자들의 태도를 볼 수 있었다. 예의 실현이 천편일률적으로 고정된 것이 아니라 家統과 王統, 道統의 관계성 속에서 상황에 따라 다르게 적용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특히 예론의 근저에는 철저한 내면적 수기를 전제로 한 외형적 형식성의 강조가 있었다는 지적과, 二本을 인정할 수 없는 윤리적 절박함에 대한 지적 등은 예론의 종교적 측면을 잘 드러내주었다.

공자도, 주자도, 사계도 예를 고정불변의 규범으로 제시하지는 않았다. 예는 시대의 변화와 함께 다양해지고 구체화되었던 것이다. 곧 당대 삶의 자리에서 절실하게 제기된 문제들에 대한 적극적 변용과 해결의 노력이 수반되었던 것이다.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예는 한 사회의 해체와 운명을 같이하며 형해화되고 말았을 것이다. 그러므로 유교의 예 사상은 조선시대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며, 비록 주체의 문제가 해결되고 있지는 못하지만, 현대에도 여전히 의미를 던지고 있다. 그 의미를 살리기 위해서는,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예 사상이, 남녀평등, 상하간의 자유로운 의사소통과 같은 현대 민주주의의 덕목들과 창조적으로 융합, 변화되어야 할 것이다.(1999,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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