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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노트, "진정한 선비의 회상과 기대- 선비정신과 절의론"
금장태, "의리사상과 선비정신", 한국사상의 심층연구, pp.228-251 M. Kalton, To Become A Sage", pp.197-209 최봉영, "조선시대 선비정신 연구" "조선시대 유교문화" pp.313-374
1. 선비 - 유교 이념 구현의 인격적 주체
지난 주 계훈제 선생님이 돌아가셨을 때, 어떤 이는 이 시대의 '참 선비'가 가셨다고 글을 썼다. 이처럼 자신의 이기적 안위를 애쓰지 않고 정의를 위해 헌신해왔던 한 인간을 '선비'라고 부르는 것은 현대사회에서도 어색하지 않다. 이러한 선비 정신은 소수 지식인들만의 전유물은 아니다. 선비의 의리정신, 절의론은 한국인의 심성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쳐, '의리'라는 말은 국가, 사회의 관계성 안에서만이 아니라 개별적 인간의 삶에서도 작용하는 원리이다. 이처럼 21세기를 바라보는 지금에도 선비라는 말은 '고어'로 사라지지 않고 있고, 그 정신은 여전히 긍정적 의미로 남아있다.
물론 선비에 대한 최봉영의 논의는 지배층의 이익을 집중적으로 반영하는 선비의 한계에 대한 지적을 하고 있지만, 그것이 理想 자체에 대한 부정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조선조를 지나 현대에 이르기까지 선비는 이상적 인간상으로 넓게 받아들여져왔다. 이는 비록 '소수'라 할지라도, 도의 실현을 위해 현실 세계에서 활동했던 '진정한 선비'들의 모범적 삶에서 비롯된 것이다. 홍대용의 '眞士', 율곡의 '眞儒'와 같은 이상적 선비상은 재화에 대한 물질적 욕망, 권력에의 탐욕을 배제하고, 덕행과 의리를 존중하는 '유교이념 구현의 인격적 주체로서의 선비'(금장태)를 의미했다. 그러므로 현대 새로운 유교의 자기개혁과 변화발전의 가능성은 진정한 선비의 존재 여부에 달려있다고 할 수 있고, 그것이 선비의 밝은 면을 지속적으로 재창조해가는 관건이 될 것이다.
2. 선비 - 자기 절대화의 함정
고인 물이 썩는 것은 자연의 이치이다. 마찬가지로 변화하는 세계속에 자신을 갱신하지 못하는 모든 정신은 부패한다. 드높은 기개와 도덕심으로 도의 실현에 앞장섰던 선비정신이 자기에 취하고 만족할 때 선비는 사회의 푯대가 되지 못했다. 조선조 선비정신은 오랜 역사 과정속에서 절대화되고 고정화되어 그 역동적 기운을 잃어왔던 것이다. '선비'를 표방하지만 모두가 '진사','진유'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점에서 최봉영이 이학에 대한 집착이 빚은 학문발전의 저해, 신분제도의 유지, 당파적 이익에 대한 집착 등 지배층의 이익을 관철하려 했던 것 등을 조선조 선비 집단의 부정적 측면으로 제시한 것은 적절한 비판이다.
변화하는 세계 속에서 구현되지 않는 정신, 다수 민중의 행복한 삶을 위해 애쓰지 않는 집단은 낡은 이데올로기, 수구적 세력으로 변질되고 만다. 옛것을 새롭게 받아들이며, 매일 새롭게 나아가는 정신의 운동을 지속하는 것이야말로 한 사상, 한 종교의 생명력을 나타내는 증거이다.
3. 선비 - 1999년, '신지식인'과 '진정한 선비'
김대중 정부가 들어선 이후 지식인들의 정치 참여가 더욱 활발해졌고, 현 정부의 성격에 대한 논란이 아직도 있지만, 지식인들의 정치적 이상을 실현하는 조건이 신장되었다는 데는 합의하고 있다. 다시 선비의 사회적 역할이 커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최근 정부가 주도하는 '신지식인' 운동에서 기대하는 신지식인은 진정한 선비와 거리가 멀다. 정부는 "지식을 활용하여 부가가치를 능동적으로 창출하는 사람, 기존 사고의 틀에서 벗어나 새로운 발상으로 일하는 방식을 개선하는 사람이 신 지식인"이라고 정의했다.(1998.12.4 경제대책 조정회의) 이는 지식인의 부가가치와 생산성만을 강조할뿐 지식인의 기본 덕목인 '비판 정신'과 '합리적 실천'을 고려하고 있지 않은 것이다. 오늘날 '진정한 선비'는 인간의 본성을 흐리게 하는 물신주의, 경제적 가치만을 존중하는 시장논리로부터 거리를 취해야 한다. 그러나 이것이 세상으로부터 물러나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진정한 선비는 사회의 합리적, 도덕적 운용에 책임적 자세로 뛰어드는 존재이며, 동시에 도의 본질적 이상에 근거해 사회의 불합리하고 정의롭지 못한 면을 늘 비판하고, 일깨우는 존재이다. 그러한 선비 정신의 실현은 선비 '계급'의 몫이 아니라, 선비정신을 그 심성 안에 지닌 모든 현대 한국인의 몫이다. (1999.3.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