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노트, "변화속의 유교-종교성 논쟁"
이병헌, "유교복원론", 철학과 종교 1집(1990), pp.95-164
최일범, "한국유교사상의 쟁점", 종교연구 6집(1990), pp.249-255
윤사순, "한국성리학과 천명사상", 유교사상연구 5집(1992), pp.29-41
몇 년전 '성균관'을 찾아가 보았다. 명륜당 앞에는 사람이 둘,셋은 들어갈 정도로 속이 파였으면서도 우람하게 선 은행나무가 살고 있었고, 공자를 모신 성전이 있었다. 도심 한가운데 시간이 정지되어버린 듯한 그곳은 무척 강렬한 인상으로 다가왔다. 그러나 이제 반추해보면, 그때 나는 종교적 공간에 들어왔다는 느낌을 갖지 않았던 것 같다. 그곳은 내게 '문화유산'으로서의 성균관이었고, 그 옆 '유림회관'은 서태지가 은퇴를 발표하기 전까지는 여전히 보수적인 유림들의 자기방어적 시위 공간으로 여겨졌던 기억이 있다. 이제 종교학도로서 유교의 종교성을 고찰하려 할 때 '도심 안의 성균관'의 이미지가 떠오르는 것은, 현대성에 직면한 유교의 한 모습을 뚜렷이 보여주기 때문은 아닐까.
지금도 한국인의 대부분은 제사를 지내고, 예의를 따지기 좋아하고, 권위주의적이기까지 한 상하관계를 좀처럼 허물지 못하고 있다. 그처럼 유교의 가치관과 행동양식을 체화하고 있으면서도 유교를 '종교'로 인식하고 고백하는 이는 많지 않다. 유교 안에는 생동하는 민중의 신앙과 실천이 결핍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를 이유로 '유교는 더 이상 종교가 아니다' 라고 결론을 내릴수는 없다. 그것은 '종교'가 과연 무엇인가에 대한 일치된 합의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유교 자체의 잠재적 가능성에 대한 기대 때문이기도 하다.
나는 이번에 읽은 세 편의 논문에서 유교의 종교성에 대한 긍정적 인식을 발견할 수 있었다. 최일범은 '주체'의 문제에 대한 다소 비관적 입장을 보이긴 했지만 시대적 변화에 따라 '새롭게 태어났던' 유교의 생명력에 기대를 보이고 있다(한국 유교 사상의 쟁점). 윤사순은 퇴계의 천명도설과 주렴계의 태극도설을 비교하면서, 한국 성리학의 천명사상에서 유교의 종교성이 퇴색되고 있지 않음을 논증했다(한국성리학과 천명사상). 천인합일, 상제에 대한 공경의 의미가 남아있긴 하지만, 천명도설이 인간중심주의적 입장에 놓여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 인간본위적 성격을 '자력적 종교성'으로 이해될 수 있지 않을까 긍정적으로 생각해보았다. 이병헌은 윤사순과는 다르게, 儒敎史의 대부분에 대해 부정적 평가를 하며 '유교복원론'을 주장한다. 유교는 원래 종교였지만 역사적 과정에서 유교의 종교화가 좌절되었으므로, 이제 공자에게로 '돌아가' 종교로서의 본 모습을 회복하자고 주장하는 것이다(유교복원론). 그러나 孔敎의 완전한 복원의 요청이, 동양의 위기의식에서 발한 또 하나의 '시대내적 해석'은 아닌지에 대해서는 확신이 가지 않는다. 문제는 여전히 최일범이 던지고 있는 '주체'의 문제이다.
그리스도인이면서도 신앙과 학문과 실천 모두에서 열린 마음을 지니고자 애쓸 때, 한국인의 종교적 심성 안에 커다란 알맹이로 남아있는 유교를 '종교성'으로 인정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유교는 종교다' 라는 주장이 그다지 절박한 문제는 아니다. 절박하지 않다는 것은 현대 유교 내부의 종교화 운동이 주류는 아니기 때문이다. 스스로 종교의 이미지를 강화(또는 복원)할 필요성을 강하게 느끼고 있지 않은 유교에게 '여러분은 분명히 종교입니다, 역동성을 회복하십시오'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자연스럽지 않다. 그러나 인류사에 나타났던 수많은 사상 중에서, 2천년이 넘도록 사라지지 않고 수 많은 인류의 정신과 생활에 아직도 큰 영향을 끼치고 있는 유교가, 단순한 사회사상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으리라는 생각은 부정할 수 없다. 그것이 孔敎의 복원이건, 유교적 가치관의 현대적 적용이건, 변화속에 살아 꿈틀거리며 스스로를 갱신하는 유교의 현실을 기대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1999.3.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