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불기 2570년 6월 둘째 주(6/14) 일요 정기법회

작성자마음|작성시간26.06.15|조회수433 목록 댓글 1

 

6월.
반년의 세월
꽃 피우고 녹음(綠陰) 짙어진
그 시간들 얼마나 큰 의미였던가.
우린.다시금 반환점을 돈다.

불기 2570년 6월 둘째 주(6/14) 일요 정기법회 일

법회 전에 천수경을 독경에 이어 사회자로 입문하신 향봉거사님의 인사로 법회가 시작되고 부처님 전에 마지와  헌향, 헌다를 올린다.

무더위가 시작되는 초여름 어느새 법당이 후덥지근 하지만 보광당 법회에 참석하신 불광 형제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법문에 귀 기울인다.  

금주의 법문 : 우리는 모두 진리입니다.
금주의 법어 : 경원사 주지 효림 스님

 
얼마 전에 혜성 스님, 송암 스님, 불광 문도 스님들이 돌아가신 것을 듣고 그에 대한 소외가 무엇인지 무겁게 말을 하는 것인데요, 여러분들이 여기 계시는 혜담 스님을 더욱 신경을 많이 쓰시고 잘 받들어 모시도록 하세요. 이전에도 여러 번 말씀 드렸습니다만, 내가 매우 존경하는 스님이고 또 우리가 어려서부터 만났는데 그때부터 지금까지를 보면 아주 성실하게 수행을 해 오시고 또 공부도 많이 하셔서 대한 불교 조계종에서 혜담 스님만한 엘리트가 없습니다. 최고의 스님이신데 지난 번 안 계실 때 말해야 했는데 앞에 계실 때 이렇게 말하기 나도 쑥스러운데 그러나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부분 이예요.
단순히 혜담 스님을 잘 모셔야 한다는 것 보다 불광법회 불광사는 누가 만들었습니까? 광덕 큰스님께서 만드셨잖아요. 내가 혜담 스님께도 법회가 끝나고 누차 이야기를 하는 부분인데 오늘 여러분들께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광덕의 사상과 광덕의 철학 또 광덕의 불교 수행이 참으로 존경스럽고 아름답다면 우리는 그것을 받들어서 그 맥이 끊어지지 않도록 그 법통을 지켜야 됩니다. 불교사에 지금 불광사가 왜 문제입니까? 이게 단순히 사찰 경영권을 가지고 스님들이 거기서 불미스런 것에 그치지 않는 것입니다.
 
불광사는 단순히 큰 절이 아니라 불광사는 광덕이 이룬 업적, 거기에 그치지 아니하고 그 스님의 수행, 사상, 그 스님의 철학을 우리가 끊어지지 아니하고 계승해야할 의무가 있는 것이에요. 수많은 고승이 부처님 열반이후에 등장했습니다. 많이 나와서 큰 법석을 열고 중생교화를 많이 했지만 어떤 스님은 그 법통이 끊어지지 않고 면면이 전승되어 오는가 하면, 어떤 스님은 당대로 끊어져 버리는 스님이 많아. 그렇기 때문에 나는 불광 문도, 출가해서 열심히 수행하는 불광 문도들에도 하고 싶은 말이 그것이에요. ‘너희들에게 주어진 의무가 무엇이냐?’ 스승의 사상과 철학을 잘 계승해서 후대에 까지 이어지도록 하는 것이 의무 아니냐? 그런데 그 의무가 누구 어깨에 지금 얹혀져 있느냐? 혜담 스님입니다. 그것을 이야기 하고 싶은 것입니다. 명예전당에 오르신 의사가 주치의이시니 그분이 건강은 잘 지켜주실 것이고 여러분들하고 잘 받들어 가면 싸음이 지루하고 힘들고 어렵더라도 언젠가는 이것이 다 정리됩니다. 정리되고 그리하여 이 법맥을 잘 이어가는 일이 될 것으로 생각을 합니다. 그러면서 하나더 이야기를 할게요.
 
불광 법우님들이 매 번 다른 사찰에 가서 1인 시위를 하시는데 굉장히 좋은 경험을 하는 것이라 봅니다. 저도 스님들 중에 두 번째 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1인 시위 많이 해 본 사람입니다. 그런데 처음에 하면 내가 주장하는 것을 관철하고자 하는 뜻을 대중들에게 알리고자 하는 것이지만 무언가 어색하고 쑥스럽고 그렇습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이 그 낯선 절에 가서 시위판을 들고 서 있는 것이 보통일 아니거든요. 참으로 훌륭한 일을 하신다고 찬탄 드립니다.
 
거기에 이어서 이야기 하자면, 민주주의 국가라고 하는 것은 표현의 자유, 언론의 자유가 있는 것이잖아요. 전에도 한 번 말씀드린 것 같은데 민주주의라는 것이 대체 무엇이냐?
민중. 내가 사전에 찾아보니 영어에서는 데모크라시(democracy)를 민주주의로 번역되어 있어요. 그러면 데모크라시(democracy)가 무슨 말이냐? 데모(demo)는 「대중, 민중」 이런 뜻을 가지고 있다면, 크라시(cracy)는 「지배하다, 권력을 잡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어요. 그래서 영어의 데모크라시(democracy)는 민중, 다수 대중이 권력을 잡아서 지배한다는 의미를 가진 용어에요. 그러면 민주라는 말은 민(民)이 주인이다. 라는 말이에요. 이것은 기원 전, 중국 문헌에 민주라는 말이 기원 3천 년 전부터 등장했다고 해요. 그 당시의 사람들이 민주라는 말에 가슴에 와 닿는 의미와 지금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여러분들이 가슴에 느끼는 민주와는 조금 다를 수가 있어요. 차이가 있을 수가 있으나 민주라는 것은 한문 그대로 민(民)이 주인이다. 이런 뜻이에요.
 
여러분은 저 스님이 좋은 이야기를 하는 것 같더니 느닷없이 무슨 민주주의를 들고 나오지 하겠지만, 민(民)이 주인이다. 이것은 불교적인 용어입니다. 민(民)이 권력을 지배한다는 그런 뜻이 아니라 민(民)이 주인이라는 뜻입니다. 국가의 주인. 나의 삶의 주인. 전지전능한 창조주가 있어서 그것이 우리의 역사를 지배하고 우리의 삶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우리의 삶을 책임지고 지배한다. 관리한다. 나의 삶의 주인이 바로 나다. 민(民)이다. 이런 뜻이에요. 이것이 그러면 여러분들 짐작했잖아요. 국가만 그러냐? 아닙니다. 불광사. 왜 이런 파단이 일어납니까? 여러분들이 불광사의 주인이요, 불광 법회의 주인이야. 그것을 인정하지 않으려니 문제가 생기는 것이에요. 국가만 그런 것이 아니라, 모든 우리의 삶에 집단이나 개인이나 관계없이 주인이라는 것이에요.
 
여러분들 집안에 돌아가면 ‘가부장제(家父權制)’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지금 호적제도가 바뀌었습니다. 그것은 아는 분도 계시고 모르고 계신분도 있을 텐데, 옛날에는 호주제(戶主制)라는 것이 있어서 호(戶). 즉, 가정의 주인이 있다는 것입니다. 가정의 가부장(家父權)이 주인이야, 여자는 가부장이 될 수 없게끔 만들어져 있었어요. 그러면 어떤 결과가 오느냐. 여자는 독립된 호적을 만들 수 없어요. 대한민국법이 노대통령 이전에는 그렇게 되어있었어요. 그래서 비구니 스님들 가운데 출가해서 50년, 60년이 흘렀는데 비구승과는 달리 단독호적을 만들지 못하니까 자기 아버지 밑에 호적이 있다가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오빠나 남동생의 호적 밑에 있다가 다 죽으면 어린 조카 앞으로 호적이 올라가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어있는 것을 민주주의 헌법상 법칙에 안 맞는다하여 바꿨어요. 그래서 호적 자체가 없어지고 모든 사람이 자기 삶의 주체이고 주인인데. 그렇게 되어있는 마당에 사찰의 주지가 주인이 아니에요. 대통령이 나라의 주인이 아니에요. 군주제도에서는 군주가 주인이지요. ‘짐이 국가이니라.’ 이러잖아요. 정치하는 사람이 나한테 글을 하나 써달고 해서 나잇살이나 먹은 내가 교훈적인거 하나 써 줘야 되겠다. 그래서 민즉 국가(民卽 國家)요. 민(民)이 바로 국가요, 오즉(吾卽) 민(民)이라 나는 곧 민(民)이다. 무슨 말입니까? 여러분 개개인이 다 국가야. 그런데 불광사의 주인을 불광법회 법우들을 주인으로 인정하지 못한다면 그것이 말이 됩니까? 안 되는 것 아니에요?
그런 뜻에서 너무 세게 이야기하면 과유불급이다 싶어서 이정도로 그치면서 얼마 전에 부처님 오신 날이 지나고  6월, 가장 더운 계절에 진입하고 있습니다.
 
내가 여기 썼는데 공자 성인입니다. 훌륭하신 분이나 공자는 진리를 깨달으신 분은 아니다. 진리를, 예수, 그래, 그들의 주장대로 예수가 민을 위하여 십자가에 못이 박혔다. 훌륭하다. 그러나 진리를 깨달은 사람은 아니야. 인류역사에 참으로 진리를 깨달아서 우리에게 가르쳐주신 분은 오직 한 사람, 석가모니 밖에 없다. 그래서 그분의 가르침을 받아서 우리가 왜 불교를 하냐? 나도 그분처럼 진리를 깨닫기 위해서 불교를 하는 것예요. 그분의 종노릇을 하려고 우리가 불교를 하는 것이 아니에요. 그래서 우리 불교가 무서운 종교야. 정말 놀라운 종교지요. 어느 고승이 이야기하기를, 불교 말고 다른 종교에서도 진리를 가르쳐준다면 나도 거기 가겠다. 불교만 고집할 필요가 어디 있냐. 그런데 아무리 살펴보아도 불교 말고는 진리를 깨달으라고 가르쳐주는 종교가 없더라. 나도 또한 그 스님의 말씀을 듣고 혹시 진리를 깨닫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종교가 있는지 살펴보니 없어요. 내가 주인이라고 생각하는 것과 나는 종이로소이다. 하고 주인을 받들고 섬기고 거기에 복종하기 위해서 종교를 믿는 것은 천하차이가 있지요 엄청난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내가 잘아는 신부가 있는데 내게 물어요. 불교가 기독교와 어떤 차이가 있소? 하고 물어요. 너희들은 주인을 섬기는 사람이고 불교는 내가 주인이라고 하는 종교다. 이게 엄청난 차이 아니에요? 그래서 여러분들이 가정에 가서도 남편은 아내를 주인으로 섬기고, 아내는 남편을 주인으로 섬기되, 아이들도 내가 낳은 자식이니 내 맘대로 해도 되지 생각하지만 천만의 말씀입니다. 나하고 똑같은 불성을 가진 아이들도 불성을 가진 자기 삶의 주인이다. 우리는 모두를 주인으로 섬겨야 된다. 이것이 불교의 가르침이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집에가서 아이들에게 종노릇하고 살아야 되겠다, 또는 우리 남편 돈도 잘 벌어오는데 남편을 주인으로 섬기고 나는 그냥... 이러면 불교 잘못 믿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대접 잘하지 말라는 뜻이 아니에요. 불교는 이렇게 당당한 종교이기 때문에 불교수행하는 사람에게 가장 강조하는 것이 또 하심(下心)하라고 하잖아요.
 
선방 선객이 되면 두 철 선방에 다니면 자기가 도인 다 되었어. 그러면 자꾸 교만해지는 거야. 그래서 젊은 선객에게 내가 해주는 말이 수행의 미덕은 겸손이다 소겸대덕하고 조금만 겸손하면 큰 덕을 이룬다. 아만불급이다. 교만한 것은 거기에 미치지 못한다. 그래서 우리가 교만한 것을 이기는 것은 겸손함이다.
 
끝까지 다 쓴 글은 아닌데 쓰인 글을 해석해 드리려고 합니다.

吾卽 眞里 [오즉 진리] 내가 곧 진리요.
吾卽 佛 [오즉 불] 내가 곧 부처다.
宇宙 主體 [우주 주체] 是卽 吾 [시즉 오] 내가 우주의 주체이다.
 
천체물리학 하는 사람들은 우주를 하는데 우주의 끝이 어디에 있는가 보려고 그렇게 애를 쓴다고 합니다. 전에도 몇 번 이야기 했지만 우주의 주체는 나입니다. 우주는 무변(無邊). 변두리가 없습니다. 그런데 우주만 변두리가 없는 것이 아니고 우리의 불성에도 변두리가 없습니다. 우주가 이만큼 크면 우리 마음도 그만큼 큰 것이라 똑 같아요. 그래서 우주의 주인이며 핵심이 바로 우리 자신이야.
고 불지하면 이런 연고로 나를 알지 못하면 즉 무명이야. 우리가 광덕 큰 스님의 사상을 살펴보면 정말 감격스러운데 보현행원의 사상을, 우리가 조선 500년 이럴 때 보현행원 사상 이런 것을 펼친 스님이 없습니다. 우리가 근대에서도 우리 불교 사상을 펼치는 데 있어서 보현행원 사상을 펼쳐보자는 생각을 가진 스님이 없어요. 그런데 우리 큰 스님이 보현행원 사상을 펼쳤잖아요. 펼치면서 동시에 반야사상. 우리가 마하반야바라밀 하잖아요. 우리가 반야바라밀을 증득하기 위해서 반야바라밀을 하는 거야.
 
불광사에 가면 ‘관세음보살’도 아니고 ‘아미타불’도 아니고 맨 날 ‘마하반야바라밀’을 하라고 그러느냐? 여러분들이 스스로가 부처라는 깨달도록 하는 반야지혜를 증득하게 하기 위해서 ’마하반야바라밀‘을 하라고 하는 것이에요. 염송을 통하여 반야바라밀을 증득하는 것인데 우리는 그 반야의 반대가 ’무명‘인 것이에요. 밝음이 없다. 밝음이 없으면 깜깜하잖아요. 천 년 만년 어두움이 있는 여기에 누가 와서 스위치를 넣어 전기 불을 탁 켜면 천 년 만년 기다려야 밝아지느냐? 그렇지 않아. 한 번에 탁 밝아지잖아요. 그래서 반야를 증득하면 무명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오즉 오증[吾卽 吾證]하면 내가 나를 알면 이것이 '반야'다. 그래서 석가모니 부처님이 깨달으신 내용이 바로 내가 나를 아는 것이에요. 부처님이 자신을 깨달으신 것이에요. 우리가 중생인 것은 내가 나를 모름으로 중생인 것이다. (본자운 보살님 녹취)
 
  “드디어 동쪽 하늘에 명성(明星)이 빛나는 새벽/ 모든 장벽은 모두 무너지고/ 문이라는 문은 모조리 열렸다// 고행에서 오는 아픔도 초월하고/ 마음은 온갖 차별을 뛰어넘어/ 자유로운 해탈과 평화의 열반에 도달하니/ 아! 아무도 감히 여기에는 방해하지 못한다/ 모든 속박으로부터 벗어났도다// 아무 방해도 없이/ 초저녁에는 천안통에 들고/ 한밤중에는 숙명통에 들고/ 드디어 새벽/ 동쪽 하늘에서 빛나는 명성을 보는 순간/ 모든 장벽은 모두 다 무너지고/ 문이란 문은 모조리 열리고/ 열반의 세계가 드러나니/ 인류 최초로 진리를 깨달은 성자 부처님이 되셨다.” -맨발로 오신 부처님- 중에서 –성도-
 
불교 말고는 진리를 깨닫는 종교는 없습니다. 이것은 교만이 아닙니다. 그럼 불교는 진리를 무엇이라고 하느냐? 이것이 중요합니다. 진리는 바로 불성(佛性)입니다. 이것은 더 중요합니다. 불성(佛性)은 우리 모두의 마음입니다. 그래서 모두 한결같이 마음이 부처라고 말합니다. 마음이 우주이고. 마음이 진리이며, 우리 모두의 본성(本性)입니다. 이것을 알면 누구나 진리를 깨달은 부처님이고, 이것을 깨닫지 못하면 모두 중생입니다. 공자도 중생이고 예수도 중생입니다. 아니 전능한 신(神)도 중생이고 집에서 키우는 강아지도 중생이고, 파리 모기도 중생입니다. 모두 중생이니 하나도 차별이 없습니다. 모두가 평등합니다. 모두가 같은 생명이요. 그래서 중생입니다. 하지만 놓치지 마세요. 모든 중생은 다 부처님입니다.

그러니 스스로 자기 존재(存在)의 본성인 불성을 깨달으면 부처님입니다. 중생(衆生)의 본성(本性)이 바로 불성(佛性)입니다. 그러니까 중생의 마음과 부처님의 마음이 같은 마음입니다. 그래서 중생은 아직 깨닫지 못한 부처님이고, 부처님은 깨달은 중생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무슨 말 인고하니 부처님과 우리는 아무 차별이 없습니다. 똑같은 불성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불교는 이래서 절대 평등의 종교라고 하는 것입니다.
 
지금 인류는 문명이 매우 높게 발전했습니다. 하지만 작금 인류는 끝없는 전쟁의 공포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이 수년 동안 계속되고 있고, 올해 들어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을 예고 없이 공격하여 무차별적으로 이란을 파괴했습니다. 전쟁은 이처럼 야만적입니다. 사람이 사람을 한없이 죽이는 것이 전쟁입니다. 그런데 왜 인류는 이런 전쟁을 멈추지 못할까요?
그 내면에는 종교의 교리에 문제가 있습니다. 저들은 인간을 피조물(被造物)로 봅니다. 고대에서부터 인간은 종교의 피조물이었습니다. 종교는 목적이고 인간은 피조물이기 때문에 인간을 소모하면서 끝없이 전쟁을 하는 것입니다. 단지 종교가 다르다는 이유 하나로 자기 종교만 남기고 다른 종교를 없애기 위해 아무 죄의식 없이 인간을 학살합니다. 때로는 수십 년 수백 년 동안 전쟁을 하며 이렇게 인간을 학살하여 소모했습니다.
그러나 불교는 유일하게 종교를 목적으로 삼지 않습니다. 불자에게 불교는 방편이며, 깨달아 부처님이 되는 수단입니다. 인간이 종교보다 더 중요하고, 인간이 가장 존엄한 존재이며, 인간이 부처님입니다. 모든 인간은 부처님입니다. 그러니 부처님이 부처님을 죽일 수는 없는 것입니다. 내가 나를 깨달아 부처님이 되는 것 그것이 불교의 목적입니다. 그래서 불교가 위대한 것입니다.
앞으로 문명이 발전할수록 인류에게 불교는 구원의 종교입니다. 평화를 위해서는 인류가 불교에 귀의해야 합니다. 왜냐? 인간이 가장 존엄하며, 인간이 가장 거룩하며, 인간이 부처님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인간이 다 부처님이다. 아니 모든 중생이 다 부처님이다. 부처님은 바로 모든 인간에게 이것을 가르쳐 주시는 분입니다. 인간의 마지막 목적지는 스스로의 존재를 깨달아 부처님이 되는 것이고 인류의 목적, 중생의 목적도 모두가 부처님이 되는 것입니다.

♬ 찬탄곡 : 홀로피는 연꽃 (우성 스님작사. 서창업 작곡 , 김회경 지휘) 마하보디 합창단 ♬ 

발원문 낭독 : 송파 17구 명등 본명조 보살님 (불광사. 불광법회 정상화 기도 발원)  

현안 보고 : 보관 법회장님

새 법우님 두 분이 오셨습니다. 법회장님과 기념으로 사진 한 컷. 두 분, 불광으로의 첫 발걸음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부처님 오신 날 이후에도 광명의 등을 밝히고자 접수하신 분들을 위해 오늘 3차 광명의 등 명단 넣는 모습입니다.

토요일 오후, 청정팀 봉사로 반듯하게 정렬되고 빛나는 보광당. 감사합니다.

지난 주, 조계사, 봉은사에서 1인 시위 기도 정진 중인 불광 법회 보현행자들.  

토요일, 불광사에서 호법 정진 시위단의 정진 수행중인 불광 바라밀 형제들의 모습. 여러분들 수고 많으셨습니다.
나무 마하반야바라밀!!

우리는 횃불이다.  스스로 타오르며 역사를 밝힌다.

내 생명 부처님 무량공덕 생명 용맹정진하여 바라밀 국토 성취한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바라밀 | 작성시간 26.06.15 간략해진 불광법회 일지 작성하시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법문 녹취부터 편집까지 애쓰신 마음님, 법회 모습 사진의 양을 대폭 줄여 찍으신 지일심님 모두 꺾이지 않는 불광의 빛입니다_()()()_
댓글 전체보기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