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과의 지존 - 서울대 자율전공학부 (동방고 임보라)

작성자조충연|작성시간10.12.26|조회수772 목록 댓글 0

안녕, 오늘 저녁을 먹을 때, 식당의 라디오에서 들었어. 내일부터 수능 원서 접수 기간이더구나. 기분이 정말 이상했어. 시간이 정말 빨리 지나가는 것 같아. 너희도 이 말은 무수히 들었을 거고, 또한 무수히 많이 느꼈을 거야. 지금 이 글을 보는 너희들에게 가장 들려주고 싶은 말이 또한 그것이란다. 시간은 정말 빨라. 지금 너희가 아무리 스트레스 받고, 혹은 지겹다고 느끼거나 빨리 끝나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그 시간들 역시 아주 잠깐이면 다시 되돌리고 싶어도 절대로 되돌릴 수 없는, 가끔은 그립기까지 할 테니까. 조금만 참고 묵묵히 최선을 다해주기 바란다.

 

우선 간단히 내 소개를 해볼게. 내 이름은 '임보라'라고 하고 버드내 초등학교, 태평 중학교, 동방 여자 고등학교를 졸업했어. 나는 대전에서 태어나서 올해 서울로 대학교를 진학하기 전까지 대전을 한 번도 벗어나 본 적이 없는, 대전 토박이야. 내 꿈은 아주 여러 가지였어. 초등학교 때에는 누구나처럼 우리나라의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 되고 싶었고, 방송 반을 하면서 아나운서가 되고 싶기도 했어. 중학교 때에는 외교관이 되고 싶었고, 고등학교 때에도 계속 비슷한 꿈을 가져오다가 지금 대학교에 다니면서 생각이 조금씩 바뀌고 있어. 누구나 미래에 대해 불안을 느끼고, 압박감을 받아보았겠지. 하지만 그런 걱정 하나하나가 정말 소중한 경험이란다. 조급해 하지 말고, 너희가 원하는 모든 것은 이룰 수 있으니까. 우리가 어느 시점 위에 서있든, 뒤쳐져 있는 것이 아니니 꿈꿀 수 있는 모든 것을 꿈꾸어도 좋아. 지금부터 들려줄 나의 이야기는 정말 많은 사람들이 의문을 가졌었던, 나의 고등학교 학년부장 선생님께서는 소위 '기적'이라고 일컬으셨던 그런 이야기니까.

 

너희가 실컷 들었을 대학교 입시 전형 이야기는 나는 되도록 안 하려고 해. 물론 서울대학교 자유전공학부에 대해서는 좋은 정보를 알려줄게. 왜냐하면 첫째로, 대학교 전형은 너무나 다양하기 때문에 내가 성급하게 일반화 지어서 얘기할 수 있지 않거든. 가장 좋은 방법은 명문대학교에 진학한 선배나, 입시 전문 선생님에게 기대는 것이 아니라 너희 스스로 인터넷이나 입시 전형 책을 통해 스스로 알아보는 거야. 자기 자신만큼 확실한 건 없거든. 두 번째로, 서울대 자유전공학부는 올 해 (2009년) 법학대학이 폐지됨으로써 자리가 남게 된 정원을 어느 특정한 단과의 소속 없이 뽑아서 여러 가지 학문을 복합적으로 공부할 수 있게 만든 단과대학이야.

 

내가 생각하기에 나의 대학교 합격에 영향을 미친 일들을 되짚어 볼게. 우선 초등학교와 중학교 때 나는 별도의 수학 경시 교육을 받기 전에 수학에 흥미를 가지고 스스로 수학 공부를 열심히 해서 초등학교 때에는 학교 대표로 수학 경시대회에서 종종 입상을 했어. 그리고 중학교 3년 내내 대전광역시 시청에서 주최하는 영재교육원에서 수료증을 받았어. 여기서 말하고 싶은 것은 단지 '나는 수학을 잘했어.'가 아니야. 너희가 어떤 분야에 흥미를 가지고 있다면, 그 것을 그냥 내버려 두면 안 돼. 계속 거기에 매달리고, 파고들어서 확실히 너희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해. 고액의 과외나 유명한 학원의 수업을 아무리 들어도 너희가 너희 스스로 취하지 않으면 모두 소용이 없단다. 많은 사람들이 하는 말 중에 "좋아는 하는데, 잘은 못해요."라는 말이 있지. 왜 그럴까. 좋아 한다면 잘 할 수밖에 없단다. 너희가 어떤 것을 좋아한다면, 좋아하는 만큼 너희의 열정을 그 곳에 쏟아 부어봐. 결과가 단기적으로 좋지 않을 순 있지만, 결국엔 너희가 좋아하는 일을 모두 잘 하게 될 거야. 만약 잘 안 된다 하더라도, 포기는 있을 수 없다. 좋아하는 일을 포기할 수 있겠니. 내가 좋아하는 말 중에는 '미치지(狂) 않으면, 미치지(及) 않는다.'가 있어. 어느 한 일에 몰두해서 미쳐버리지 않으면, 결국은 그 일의 정상에 다다를 수 없다는 뜻이야. 물론 입시생인 너희에게 '너희가 좋아하는 특정 과목에만 매달려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어느 분야이든지, 각자마다 강점을 하나씩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내게 그것은 수학이었어.

 

중학교를 졸업할 즈음에 나는 전주에 위치한 자립형 사립 고등학교인 '상산고'에 원서를 냈었어. 그 학교는 지금 너희가 한 권씩은 가지고 있을 '수학의 정석'의 저자인 홍성대가 세운 학교야. 초등학교 때부터 친하게 지내오던 친구도 함께 지원을 해왔는데, 우리는 중학교 때에도 같은 학원을 다니고 함께 과외를 받으며 매일 같이 공부해왔어. 어느 과외 수업 날에, 우리 집에서 과외를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상산고 합격자 명단이 웹사이트에 게재됐다는 소식을 들었어. 우리는 과외를 하던 도중에 두근거리며 확인해 보았는데, 그 당시에는 합격자 명단이 가, 나, 다 순으로 공개적으로 게시되어 있었어. 내 이름이 그 친구의 이름보다 가, 나, 다 순으로 했을 때 순서가 더 빨랐는데, 기역부터 조금씩 스크롤을 내려가던 두근거림은 아직도 잊을 수 없어. 내 이름의 순서가 다가왔는데, 내 이름은 없었어. 요즘 유행하는, 아니 좀 지났나, 에이트의 노래처럼 심장이 없어진 느낌이었어. 나의 정신이 더 아뜩해졌던 것은 내 친구의 이름은 합격자 명단에 있었던 거였어. 물론 친한 친구가 열심히 공부해서 원하는 학교에 진학할 수 있게 된 건 매우 축하할 일이야. 입으로는 웃으면서 축하한다고 말을 하고 있는데, 내가 웃는 게 웃는 게 아니었어. 우리는 함께 울었어. 나는 너무 실망이 커서 울었고, 그 친구는 감격이 섞인 채 아쉬움에 울었어. 그 날 밤을 지금 이 시점까지 몇 번이나 되새겼는지 몰라. 친구가 집으로 돌아간 후에, 나는 정말로 밤을 새워서 울었던 것 같아. 위에서도 잠깐 말했었지만, 수학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과목이자 그래서 열심히 했고, 스스로도 잘하고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수학 시험을 위주로 하는 상산 고등학교의 시험에서 나는 떨어진 거야. 그것도 함께 공부하고, 항상 같이 다니던 친구와 함께 확인하니 그 충격은 오히려 지금 생각해보면, 아직은 짧지만 그래도 내 인생의 가장 큰 채찍이 되어주었던 것 같아. 내가 가장 좋아하고 자신 있던 수학에게 배신을 당했다고 할까, 그 기분을 끊임 없이 되새기며 내가 얼마나 부족한지, 자만심이 얼마나 나중에 나에게 큰 독이 될지 계속 되뇌었던 게 생각난다. 인생은 정말 새옹지마야. 지금 많은 후배들이 그리고 이 글을 읽고 있는 너희와 주변 친구들이 나의 대학교 합격 소식을 부러워하곤 해. 솔직히 나는 정말 기쁘고, 매일매일 대학교 생활이 꿈만 같지만, 언제나 저 시기를 상기하며 마음을 다잡아. 지금 너희가 어떤 어려움을 겪고, 또 누구는 큰 상처가 있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러한 역경들은 언젠가 꼭 어떠한 형태로든 기회로 다가온다. 예를 들어, 내가 만약 그 때 그 고등학교에 합격했었다면, 나는 자만에 빠져서 수학 공부를 게을리 했을 수도 있고, 자립형 사립 고등학교에서 내신 관리를 잘 못해서 대학교 진학에 장애가 되었을 수도 있고, 고등학교 때부터 타지 생활을 시작해서 적응을 잘 못했을 수도 있어. 아무튼 '내가 걸어보지 못한 다른 길이야 어땠을 것이다'라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물론 아쉬움도 남지만, 결론은 나를 아프게 했던 일들이 오히려 지금 내게 도움이 되었기에 너희에게도 희망을 주고 싶어서 언급해 보았어. 너희도 어떠한 슬럼프에 빠지더라도, 희망을 가지고 그 곳에서 빠져 나오려고 노력해서 언젠가 지금의 나처럼 그런 아픔들을 기꺼이 말할 수 있는 즐거움을 느껴보기 바란다.

 

설상가상으로 일반 고등학교조차, 희망 사항에 적지도 않았던 '동방 여자 고등학교'로 진학하면서 나의 고등학교 생활은 시작되었어. 나의 고등학교 입학 성적은 전교 3등이었어. 입학 때 학년부장선생님께서 격려해 주시면서 언어영역 문제집 3권을 주셨는데, 그것은 수능이 끝나고 졸업할 때까지도 안 풀었던 재밌던? 기억이 갑자기 떠오른다. 이건 웃으라고 한 소리였어. 구매한 문제집은 절대로 끝까지 꼼꼼히 풀도록 해. 우리 집과 학교는 스쿨버스로 15분 정도가 걸려. 버스로 이동하는 시간은 주로 암기시간이었어. 물론 스쿨버스 기사 아저씨가 아침에는 지방 곳곳의 맛 집을 소개하는 프로그램과 저녁에는 개봉도 안 한 재미있는 영화의 불법 다운로드 한 것을 보여주셨지만, 그래 솔직히 종종 재미있는 화면에 정신을 팔기도 했어. 하지만 내신 시험기간에는 수행평가로 주로 출제되는 프린트물의 암기거리나 평소에는 영어단어를 암기하기로 시간을 보냈던 것 같아. 하루가 시작되는 아침에, 뭔가를 외운다는 게 상상만 해도 머리가 아파오거나 혹은 피곤에 절어 있는 저녁에 암기하는 것이 힘들다면 영어 듣기 평가 mp3 파일을 듣는 것도 추천한다. 수능 100일 전부터, 통학 시간을 이용하여 하루에 1회 씩은 영어 듣기를 꼭 했었는데, 도움이 많이 되었던 것 같아. 아참, 아침밥을 먹으라고 추천해 주고 싶다. 이른 아침, 0교시부터 시작하는 빡센 하루의 성패는 아침밥에서 결정되는 것 같아. 나는 자상하시고 항상 신경을 써주시던 엄마 덕분에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 한 번도 아침밥을 거른 적이 없어. 아침을 먹지 않으면 점심시간 전까지 공복 기간이 너무 길어서 점심시간에 매점에서 끼니를 대충 때우는 친구들이 많아. 그러면 점심시간에 입맛이 없어져서 밥을 조금 먹게 되고, 그것은 저녁시간 전에 너희들의 몸을 다시 한번 매점에 들여놓게 할 거야. 우리가 어떤 일을 하기 전에, 그 일이 공부가 되었든 다른 어떤 일이 되었든 가장 기본적인 것은 우리 몸 자체야. 우리가 스스로 우리 몸의 균형과 건강을 잘 챙기지 않는다면, 아무 일도 제대로 수행할 수가 없거든. 잠도 충분히 자도록 해. 많은 학생들이 수면 시간을 물었는데, 특별한 비결은 없단다. 너희가 생활하는 데 지장이 없을 정도의 수면이 답이란다. 나 같은 경우에는 잠이 참 많아. 하지만 나의 경우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모든 수험생들의 잠은 많다고 생각해. 지금까지 한 번도 '나는 솔직히 잠은 많이 없어.'라고 말하는 학생은 본 적이 없거든. 그래서 평소에 잠을 자고 싶은 만큼 잤던 것 같아. 야간 자율학습이 평균적으로 12시에 끝났는데, 집에 도착하면 바로 잤어. 아침에는 엄마의 아침밥에 항상 7시 30분 정도에 완성되기 때문에 그 정도에 일어났어. 나는 머리카락 길이도 항상 단발이었고 아침에 특별히 준비가 바쁘지 않기 때문에 7시 30분 정도에 일어나도 충분했어. 잠드는 시간 보다 일어나는 시간에 놀라는 친구가 많더라고. 그렇다고 아침에 화장을 하거나 머리에 신경을 쓰는 친구들보고 반성하라는 얘기는 아니야. 스스로를 가꾸는 너희의 모습은 정말 예쁘고, 너희가 잠자는 시간을 꾸미는 시간에 기꺼이 양보한다면 아무 상관이 없어. 그렇지만 나는 여자 고등학교이기도 하고, 워낙 꾸미는 걸 귀찮아하는 성격이라서 내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공부 시간 외에는 모두 잠을 자는 시간으로 사용했어. 그러나 이러한 수면시간은 내신시험 기간이 되면 확연하게 달라졌어. 아까도 언급했듯이 몸의 균형이 중요하기 때문에 수면시간을 이랬다가 저랬다가 크게 변화시키는 것은 위험해. 나는 내신 준비기간을 크게 보통 한 달로 잡았어. 하지만 본격적으로 내신을 준비하는 것은 2주 정도면 충분한 것 같아. 한 달이라는 시간에서 본격적 내신 공부 2주를 뺀 나머지 2주는 내신을 위한 공부 외의 다른 준비들을 하는 데 들인 시간이라고 생각해. 우선 수면 시간을 조금씩 줄여 나가야해. 더 중요한 것은, 원하는 점수를 위해서는 그에 맞는 완벽한 계획서가 필요해. 내가 수면 시간을 조절하는 방법을 먼저 소개해 볼게. 첫 번째는 2학기 내신들 때에 써먹은 방법인데, 날씨가 쌀쌀한 중간고사, 추운 기말고사 기간에 베란다에서 반팔티를 입고 공부했어. 너무 추워서 졸리지가 않더라. 뭔가 그 상태에서 졸면 영원히 다시 눈을 뜰 수 없을 것만 같았어. 두 번째는 집에 와서도 교복을 입고 공부하는 것이었어. 교복은 옷의 기능을 할 뿐만 아니라 상징적인 의미를 지니거든. 우리가 밖에서 교복을 입고 함부로 행동을 하지 못하는 것도 비슷한 맥락인 것 같아. 집에서도 교복을 입고 공부하면, 나는 내가 학교에 있는 것만 같아서 자세가 잡히더라고. 교복 입고 침대에 올라가서 '누워서 공부해야지.' 할 수는 없잖아. 우리가 흔히 집에서 누워서 공부하려고 했다가, 잠시 눈을 감았다 뜨면 아침인 그 상황. 정말 여러 번 겪었지만, 뿌리칠 수 없는 침대의 유혹. 이제 조금 더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방법들을 들려줄게. 앞에 예시들은 솔직히 조금 괴로워. 저 방법들은 조금씩 쓰도록 해. 너무 몸을 괴롭게 하면, 짜증만 나고 공부에 집중도 안 되거든. 첫 번째 방법은 공부하는 종이 귀퉁이에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이름과 경쟁자 친구들의 이름을 적는 것이었어. 우선 내가 사랑하는 가족들의 이름을 적으며 이들을 실망시켜서는 안 된다는 일종의 의무감을 가지고, 경쟁 관계에 있는 친구들의 이름을 적어보면 은근히 자존심이 끓어서 공부해 집중이 잘 되었어. 우리가 최종적으로 이겨야 하는 대상은 결국 우리 자신이라지만, 치졸한 문제 하나에 등급이 좌우되는 내신 시험에선 경쟁자 친구를 생각하며 열심히 공부하는 건 결코 유치한 행동이 아니라고 스스로 위안 삼았어. 두 번째 방법은 희망게시판이야. 내 방에는 하드보드지로 만들어진 희망게시판이 아직도 있어. 이것은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내가 3년 내내 꾸며오던 것인데, 스스로를 잡아주는 것에도 좋았어. 그 후에 자기계발서로 베스트셀러가 된 'secret'을 보면, 내가 언급한 희망게시판과 비슷한 내용이 나와서 나는 놀랐어. 희망게시판을 꾸미는 일은 아직 간단해. 너희가 바라는 모든 것을 게시하면 되는 거야. 예시로 내 것에는 서울대학교 정문 사진과 서울대학교를 방문했을 때 사온 배지들이 달려있어. 역할 모델이셨던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사진도 있고, 신문에 나오는 모범생들의 기사도 스크랩해서 게시판에 붙여두었어. 희망게시판을 보면서 졸릴 때마다 정신 차리고 마음을 다잡았어. 게시판에 붙여둔 명언들 중에 너희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명언은 '남들과 다른 목표가 있다면, 남들과 다른 노력을 해라.'란다. 우리는 흔히 자신을 남들과 비교하며 불평해. 누구는 야자 빼고 영화 보러 갔는데, 나는 왜 교실에 앉아 있어야 하는 것인가. 그 누구와 당신은 같은가. 항상 큰 무리에 묶여가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공부에 있어서만큼 우리는 각자가 원하는 대로 독자적인 길을 걸어야 한다고 생각해. 당신도 충분히 야자를 빼고 영화를 보러갈 수 있었지만 스스로를 특별한 존재로 만듦으로서 공부에 더 집중할 수 있게 할 거야.

서울대학교 수시 전형에는 대표적으로 지역균형 전형과 특기자 전형을 들 수 있는데, 내가 원래 준비하고 있던 지역균형 전형은 각 학교별로 문, 이과 상관없이 학교장 추천서를 받은 학생 3명만 지원할 수 있는 제한이 있어. 이것은 내신으로만 1차를 뽑고, 1차에서 뽑힌 정원의 1.5배의 학생들이 구술면접을 통해 합격을 결정하는 전형이야. 그런데 거의 내신이 100프로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아. 나는 중학교에서 막 졸업하고, 정신없는 고등학교 1학년 생활을 보낼 때에는 대학교 입시를 잘 몰랐기 때문에 지역균형 전형을 2학기 중순 정도에 알았던 것 같아. 2학년 말까지 나는 내신점수로 문과에서는 전교 1등, 문, 이과를 모두 합쳐서는 2등이었어. 지역균형은 3학년 1학기까지의 내신 점수가 들어가기 때문에 마지막 한 학기가 남은 샘이었어. 아마 내 기억에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모든 학교에서 본 시험을 통 털어서 그렇게 열심히 준비했던 내신은 기억에 없어. 이번 학기만 무난히 성적을 받는다면 지역균형에서 안정권이라고 생각했거든. 이번에는 교과서의 작은 글자들까지 하나도 놓치지 않고 모두 달달 외웠어. 평소에는 내가 가장 어리석다고 생각하는 공부 방법이었지만, 마지막 학기에서 올백 한 번 맞아보겠다는 각오로 정말 열심히 공부했는데. 밥 먹는 시간조차 아까워서 점심을 거르며 공부했어. 그런데 시험 볼 때 너무 긴장한 탓에 오히려 제일 못한 성적을 냈지. 이때가 아마 상산고 이후로 내가 제일 상처 받았던 때였던 것 같아. 하지만 또 지금 생각해보면, 이 상처 역시 내 합격에 큰 영향을 준 고마운 일이었어. 1학년 1학기부터 3학년 1학기까지 총 다섯 학기의 지역균형 점수를 따졌을 때, 3학년 1학기를 너무 못 봐서 전교에서 3등으로 밀리고 말았어. 물론 우리 학교 내에서야 지역균형 대상자 이지만 서울대학교에 이 점수로 지원을 하면 하위권 과(과를 서열화 하는 것은 옳은 행동은 아니지만, 그 당시에 아마 종교학과나 소비자 아동학부)를 지원했어야 했어. 나는 그게 너무 싫었어. 과가 너무 낮아서 싫었던 게 아니라, 내가 내 꿈을 스스로 포기하고 점수에 맞춰서 학교를 진학한다는 게 싫었던 거야.

내가 고등학교 때 선생님들의 반대를 많이 샀던 결정을 두 번 했었어. 첫 번째가 2학년부터 갈라지는 계열을 선택하는 때였어. 나는 1학년 모의고사 때 모든 수학시험에서 전교 1등을 놓치지 않았고, 내신에서는 틀려본 적이 없어. 과학 교과목에서도 모의고사에서 다 맞지는 않았지만 등수로는 항상 1등이었고, 내신에서도 혼자서 한 번도 틀린 적이 없었거든. 우리가 보통 생각하기에 수학과 과학을 잘 하는 학생이라면 딱 이과생 체질인 것이잖아. 게다가 더 결정적인 것은 모든 과목을 골고루 잘 하는 것이 아니라 언어 과목이나 사회 과목에서는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기 때문에, 누구든지 나는 이과 계열을 선택할 것이라고 했거든. 보통 많은 학생들이 수학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문과에 진학하는 경우가 많잖아. 하지만 학생으로서 우리가 가장 부끄러워해야 할 점은 점수에 맞춰서 자신을 정의내리는 것이 아닐까. 그 당시에 내 꿈은 외교관이었어. 솔직히 어떻게 준비를 해야 할 지 확신하지 않았고, 구체적인 청사진이 있었던 것도 아니지만 나는 외교관이 정말 되고 싶었어.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다고 믿었어. 그 믿음 하나로 부모님과 선생님들의 반대를 제치고 수학 잘하는 이상한 문과생이 되었어. 그렇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꿈에 대한 확신 하나로 결정했던 무모하지만 자신 있었던 결정이 지금 내 합격에 큰 도움이 되었던 것 같아. 두 번째 결정은 자유전공학부에 원서를 낸 것이었어. 위에서도 잠시 언급했듯이 서울 대학교에서 할당한 지역 균형 선발제도의 각 학교마다 학생 제한 수는 3명이야. 나는 3학년 1학기에서 예상만큼 좋은 점수를 만들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내신이 전교 3등이었기 때문에 지역균형 대상자였어. 하지만 나의 낮은 점수 때문에 부모님을 비롯해서 담임선생님, 학년 부장 선생님, 심지어 교장 선생님까지 내게 종교학과나 소비자 아동 학부처럼 비교적 커트라인이 낮은 학과를 지원하라고 권유하셨지. 그렇지만 나는 수능이란 기회도 남아있었고, 차라리 필요하다면 재수를 해서라도 내가 원하는 곳을 가고 싶지, 대충 상황에 맞추어서 판단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했어. 이러한 확고한 신념을 하고 있던 찰나에 내게 '서울대학교 자유전공학부'라는 기회가 찾아왔어.

자유전공학부는 법학대학이 로스쿨로 전문대학원 교육체제로 바뀌면서 서울대학교 정원에서 빈자리를 채우기 위하여 2009년에 새로 설립된 학교야. 내가 서울대학교 수시를 지원한 시기가 아마 8월 말에서 9월 초 정도일 것인데, 벌써 일 년이나 지났구나. 그런데 자유전공학부의 설립 이야기는 6월 정도에 나온 것이거든. 거의 수시 모집기간에 임박해서 생긴 것이지. 자유전공학부는 문과, 이과에 상관없이 학생들을 모집해. 우리는 현재 출신 계열에 국한되지 않고, 모든 기초교양 과목을 수강하고 있으며 2학년 2학기부터 의대, 수의대, 사범대를 제외한 서울대학교의 모든 과에 진학할 수 있어. 게다가 점수 제한도 없지. 우리가 원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거든. 심지어 우리가 원하는 정확한 진로가 없다면, 우리가 기존에 존재하는 몇 개의 전공을 통합할 수도 있고, 새로 만들 수도 있어. 자유전공학부가 우리 1기생들에게 제공하는 혜택은 정말로 엄청나. 예를 들어, 나는 이번 여름 방학에 학부에서 지원금을 받고 영국의 케임브리지 대학교에 가서 공부를 하고 왔어. 대학교의 생활은 이야기를 접어둘게. 너희에게 열심히 공부해서 이런 좋은 혜택들을 누릴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 동기 부여를 위해 조금 언급한 거야.

그래서 나는 결국 지원서를 쓰기 2달 전에, 그동안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특기자 전형으로 서울대학교 자유전공학부에 원서를 냈어. 원서를 쓸 때에 대외활동 부분에서 봉사활동에 관해 작성했는데, 나는 중학교 1학년부터 고등학교 3학년까지 약 6년간 아빠, 엄마, 동생 온 가족이 모두 함께 한마음 복지회관에서 봉사활동을 해왔어. 어렸을 때에는 시각 장애인들의 마라톤 활동을 돕고, 그 중간에는 어른 시각 장애인들이나 몸이 자유롭지 못하신 분들의 활동을 도왔어. 그리고 고등학교 때에는 주로 시각장애인 아기들을 돌보는 일을 했어. 학교에서 의무로 강요하는 사회봉사 활동은 솔직히 조금 우스웠어. 왜 봉사활동이 의무가 되어야 하는지. 봉사는 자신이 정말 하고 싶다고 마음에서 우러나야 하는 거지, 꼭 저렇게 점수화시켜서까지 해야 할 필요가 있나 싶었어. 요즘에는 편한 곳에서 쉽게 봉사 시간을 채우거나 더욱이 아는 기관에 가서 봉사 시간을 위조하는 경우도 있잖아. 하지만 나는 정말 봉사활동이 즐거웠어. 일주일 내내 공부와 씨름하다가 주말 아침 장태산 깊은 곳에 들어가 내가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기쁨을 느끼는 일은 정말 봉사를 하는 것이 아니라 봉사를 받고 있다는 생각마저 들었어. 게다가 그들을 통해서 항상 현재 내 자신과 주변 사람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기 때문에, 매일매일 배우는 느낌이었어. 살아가면서 우리가 정말로 필요한 지식들은 책이 아닌 곳에서 배우는 경우가 더 많다고 해. 아마 내가 느낀 것들 또한 이와 비슷한 것이 아닐까. 이러한 수백시간에 다다르는 봉사활동은 내게 부끄럽지만 서울대학교 합격에 적잖은 영향을 주었을 교육감상을 가져다주었어.

수시를 내고 한창 뒤숭숭 할 때 조심해야해. 수능이 얼마 남지 않은 촉박한 상태에서 이때야말로 시간은 정말 금이야. 아무리 마음이 굳건한 사람이라도 수시 원서를 한, 두 개 내 놓은 사람은 마음을 다잡기가 힘들어. 내 친구는 일곱 군데나 수시를 지원했어. 나도 마음이 너무 타들어가서 항상 '오르비'나 여러 입시 사이트를 돌아다니며 합격 가능성을 가늠해보려 했어. 잠시 오르비 얘기를 좀 해볼까, 너희들 중에도 '오르비'라는 입시 사이트를 들어본 적이 있을 거야. 나는 특기자를 지원했으니까 오르비 서울대학교 특기자 게시판에서 항상 눈팅족으로 활동했는데, 그 곳의 정보는 정말 나에게 너무 큰 부담을 주었어. 애들아, 오르비 사이트는 절대적으로 신뢰해서는 안 되는 곳이야. 괜히 너희의 마음을 흩뜨리다 못해 무너지게 할 거야. 물론 어려웠지만, 그리고 나도 솔직히 잘 다스리지 못했지만, 수시 원서를 낸 후에는 너희가 원서를 냈다는 사실을 까먹을 정도로 무덤덤해져야해. 대학교를 가는 방법은 수시만 있는 것이 아니니까 모든 기회를 잘 누릴 수 있도록 정시 또한 최선을 다해 준비해야 한다.

그러던 내게 6월 평가원 시험 성적표가 날아왔어. 6월 그리고 9월에 보는 평가원 시험은 그 해 수능의 난이도를 조정하는 기준이 되는 시험이라서 매우 중요한 모의고사야. 그런데 나는 6월 평가원 모의고사의 윤리 점수를 보고 매우 정말로 많이 심각하게 고민했어. 3등급. 그 전에도 윤리 점수가 잘 안 나오긴 했지만 학교 내신 교과목으로 2년 내내 배우는 과목이라서 계속 공부하고 있었거든. 그런데 수능 거의 100일을 남겨놓고, 3등급이 나온 거야. 나는 정말 이를 악물고 여름방학을 이용하여서 사회 탐구 영역에 올인을 했어. 일단, 2년 가까이 공부했지만 여전히 블랙홀인 윤리 대신에 2학년 때 내신 관리를 잘 해두었던 근현대사를 치기로 마음을 먹었어. 난 언어, 수리, 외국어 영역은 항상 전교에서 1등인데 사회탐구에서 항상 약한 학생이었거든. 게다가 서울대학교 지원자들에게 필수인 국사과목은 내게 조금 어려웠어. 그래서 방학 동안에 국사, 근현대사 역사 과목에 중점을 두고 공부했어. 결국 내신으로 잘 다져진 과목이 수능 공부하기도 편하더라고. 그러니 내신을 공부할 때 수능 공부한다는 마음으로 확실하게 해두면, 내신도 잡고 수능도 잡을 수 있으니 최선을 다하길 바라.

수능 보는 날 아침 날 떨리게 한 것은 그 날이 수능이라는 사실보다 서울대학교 수시 1차 합격자 발표 날이었기 때문이야. 수능은 막 떨리지는 않았어. 그런데 마음도 뒤숭숭하고 분위기도 평소에 모의고사를 치르던 곳과 많이 달라서 점수가 조금 떨어진 것 같아. 언어영역에서 2등급, 수리, 외국어 영역에서 1등급을 받고 사회탐구 영역에서는 국사를 잘 못 보았지만 한국지리 2등급, 한국 근현대사와 사회문화에서 1등급을 받았어. 수능을 채점하자마자 바로 곧이어 서울대학교 홈페이지에서 내가 수시 전형 1차를 합격했음을 알 수 있었어. 최종 합격수의 2배수 안에 뽑힌 것이었어. 이제 2주 후의 논술과 구술면접만 통과하면 우리나라 최고 명문대학교에서 공부할 수 있다는 꿈에 평소보다 낮게 나온 수능 걱정도 잠시 2주 내내 논술과 면접에 매달렸어. 나는 학교에서 학년부장선생님이 추천해준 서울에 있는 기숙 논술 학원에서 수능이 끝난 다음 날부터 2주 동안 공부를 했어. 집중강좌이고, 기숙학원이기 때문에 가격은 조금 비쌌어. 그렇지만 논술과 구술 면접은 집중적으로 배운다고 되는 것이 아닌 것 같아. 물론 어느 정도의 기술과 유연성은 생기겠지만 논, 구술 대비는 평소에 꾸준히 해 오는 게 좋아. 나는 평소에 학교 언어영역 선생님께서 내 주시는 글쓰기 숙제나 스크랩 숙제를 통해 글에 친숙함을 느끼려고 노력했어. 솔직히 2주 동안 집중 강좌를 들으면서 얻은 것은 괜히 안 하면 불안한 심정, 즉 마음의 편안함을 위한 것이었다고 생각해. 자유전공학부는 신설된 과고 전례가 없기 때문에 다른 학과는 모르겠지만, 우리는 정말 학원 측에서 경향을 파악해주지 못했거든. 우리는 한자로만 빽빽한 논술도 준비하고, 영어로만 말하는 것도 준비했지만 예상과는 다르게 논술 주제는 국가와 종교의 관계였으며 구술 주제는 경제와 국사였어. 전형이 매 해 바뀌고 있지만, 내가 입학할 때와 비슷하다면 논술과 구술은 정말 평소에 꾸준히 연습하는 것이 좋아. 특히 짬을 내어 신문을 읽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해.

자유전공학부에 지역균형전형은 없어. 우리는 오로지 정시모집과 수시로는 특기자 전형에 모집해. 문, 이과의 계열 분리를 넘어 통합된 지식인의 양성이 목표인 우리 학부에 내가 합격할 수 있었던 것은 내가 좋아하고 소질 있던 과목과 내가 이루고자 하는 꿈 사이의 아이러니함인 것 같아. 사람들은 나의 합격이 이해할 수 없고, 기적이라고 해. 그래서 이 기적의 비밀이 뭐냐고 묻는 사람들이 많았어. 물론 다른 동기생들에 비해 내 수능 점수는 많이 모자라는 편이야. 또한 내신도 그리 뛰어났던 것도 아니고. 아니면 그들은 단순하게 생각하기도 해, 문과생인데 수학을 잘 해서 들어갔나 보지. 눈에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야. 이 짧은 글 안에 내가 너희에게 주고 싶은 메시지가 담겼으면 좋겠구나. 오랫동안 수많은 입시생들을 평가해 온 대학교 교수님들이 내게서 가능성을 읽으셨다고 나는 믿고 있어. 나는 완벽하지 않아, 하지만 내가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내가 서울 대학교에 들어가야 했어. 정말 간절히 바래오고, 꿈을 위해서 현실과 타협하지 않는 고집도 있으며, 많은 시련 속에서 지지 않고 오히려 그 시련을 더 좋은 곳으로의 전환점으로 삼는 열정을 나는 가졌다고 생각해. 그 모든 것들이 내가 제출했던 자기소개서나 논술 답안지, 그리고 구술 면접 때 나의 얼굴에 비추어졌기 때문에 합격한 것 같아. 한 번의 시험에서 좋은 점수를 맞았다고, 혹은 망했다고 그게 다가 아니야. 항상 긴장을 풀지 말고 계속 너희의 꿈을 좇고, 그것을 지킬 수 있다고 믿으면 너희가 어디를 가고 싶든 그 곳에 눈 깜짝 할 사이에 도착해 있을 거야. 오늘은 희망 게시판에 우리 어떤 별을 달아볼까.

 

 

이 글을 읽는 동생들 모두가 각자의 꿈을 지킬 수 있도록

언제나 너희들에게 좋은 본보기가 될 것을 약속하며

 

2009년 8월 25일

서울대학교 자유전공학부 임 보 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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