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이병철 회장님이 돌아가시기 한 달전에 어느 신부에게 24개 항목의 질문을 하였다.
그는 답변을 못듣고 별세했는데, 24년만에 중앙일보에 차동엽신부의 답변이 공개되었다,
그는 죽음을 앞두고 神(하느님)과 종교에 대하여 인간적이고도 솔직한 질문을 남겼다.
나도 여기에 대하여 두 달간 기도와 묵상을 하면서 나름대로 답변을 정리해 보았다.
우주만물의 현상과 질서를 보면 하느님(神)의 존재를 분명히 알 수 있다.
생명의 근원. 시간의 시작, 공간의 범위를 누가 제대로 설명할 수 있는가?
전능하시고 완전하시며 무한한 존재이신 하느님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우리가 늘 마시는 공기의 존재는 보이지 않으나 그것이 없으면 살 수 없듯이,
하느님은 보이지 않으나 늘 우리와 함께 계시며 우리의 生死를 主管하신다.
마음이 열려 있는 자는 하느님의 존재를 느끼고 그렇지 않은 자는 느끼지 못할 뿐이다.
宇宙萬物과 時,空,靈,魂은 저절로 만들어지고 스스로 존재한다고 할 수 없지 않은가?
인간의 눈에 보이지 않는 무엇인가(누군가)가 만들고 거기에 존재 의미를 부여한 것이다.
즉 창조주가 있어 피조물인 우리는 그를 하느님(神)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이것으로 창조주 즉 신의 존재를 확실히 증명할 수 있는 유일한 증거일 것이다.
하느님이 창조주이시며 우리는 하느님의 피조물로서 영원한 존재의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진화도 창조의 한 과정이다.
창조주이신 하느님은 우주만물을 시간, 공간에 따라 변화하도록 만드셨다.
인간도 原始人이 자연환경에 적응하기 위해서 진화해 왔다.
인종 간에 모습이 다르고 개인 간에도 유전인자가 다르지 않는가?
앞으로도 아주 서서히 변화(진화)할 것이다.
우주만물이 어떻게 변화할 것인지는 하느님만이 아신다.
창조주의 뜻과 어긋나는 인위적이고 급격한 변화는 재앙을 재촉할 수도 있다.
창조주이신 하느님(神)은 인간뿐만 아니라 모든 생물체를 사랑하신다.
우주만물은 그가 만드신 피조물이기 때문이다.
하느님의 뜻인 자연적인 변화를 넘어서 인위적인 생명의 합성, 생명의 연장은 가능하겠지만,
그것이 하느님의 사랑이 담긴 結實이 아니라면 오직 인간의 탐욕에 따른 産物이 될 뿐이다.
과학의 발달도 하느님의 뜻을 따를 때 축복이 되고, 아니면 인류에 큰 재앙이 되지 않겠는가?
그러므로 神의 존재는 앞으로 더욱 분명히 드러날 것이다.
하느님(神)은 살아있는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셨다.
자유의지가 없다면 로봇과 다름없고, 기쁨과 괴로움, 행복과 불행을 느끼지 못할 것이다.
하느님의 사랑은 우리가 기쁨과 행복을 느끼는 것이다.
고통과 괴로움이 있기 때문에 무엇이 기쁨이며 행복인지를 알지 않겠는가?
하느님의 사랑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 괴로워하며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고통과 불행과 죽음은 마음 가짐에 달려있는 것(自由意志)이다.
하느님(神)의 창조원리는 우주만물의 균형이다.
음과 양, 빛과 어두움, 생물과 무생물 등의 균형과 조화이다.
하느님(神)은 우주만물의 균형을 깨는 것을 악으로 보시지 않겠는가?
하느님(神)은 사랑으로 우주만물을 창조하셨기 때문에,
피조물인 인간도 사랑을 실천할 때 선한 자가 되고,
자기의 탐욕만 추구할 때 악한 자가 되지 않겠는가?
자유의지를 가진 인간은 집단생존을 위해 나름대로 法則을 만들어 놓았다.
그러나 종교와 정치 집단에 따라 선과 악의 기준이 전혀 달라지기도 한다.
인간이 만든 법칙에 하느님(神)의 뜻을 결부시킬 수는 없는 것이다.
하느님(神)이 인간에게 주신 자유의지는 良心이다.
인간의 죄란 생존 경쟁을 하면서 이 양심을 잃고 행동한 결과이다.
예수는 하느님의 뜻을 간파하고 이러한 인간을 죄로부터 구하고자 앞장섰고,
결국 십자가의 죽음으로 하느님의 인간에 대한 사랑을 극적으로 증거 하고자 하셨다.
하느님(神)이 모든 인간의 죄를 용서하시고,
온 세상이 사랑과 평화가 충만하기를 촉구하신 것이다.
그 옛날에 현실을 고뇌하며 하느님의 참뜻을 찾는 先知者들이 있었다.
그들은 간절한 기도로 하느님의 聖靈을 만나며 진리를 깨닫게 되었다.
이들이 진리를 세상에 전파하였고, 구전되어 후세에 기록된 것이 성경이다.
우리도 선지자들처럼 간절히 기도할 때 하느님(神)과 통할 수가 있다.
성경은 체험을 통하여 진실임이 밝혀지며,
예언대로 역사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 이미 증명되고 있다.
인간의 한계로는 풀 수 없는 부분을 하느님(神)께 의탁하는 것이 종교이다.
우주만물의 창조주이신 하느님에게 가르침을 구하고 깨우쳐 올바른 인생을 살고자 하는 것이다.
인간에게 육신의 평안은 물질로 가능하나 정신(영혼)의 평안은 종교가 필요하지 않겠는가?
수많은 생명체 중 인간에게만 하느님(神)을 찾는 본성이 있는데
만물 중에서도 인간을 특별히 사랑하신다는 증거이다.
죽어서 自然(神)으로 돌아갈 인간은 하느님을 섬기며 자비를 빌어야 하지 않을까?
어떤 생명체가 살아 움직이고 있다는 것은 그 안에 魂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에게는 靈魂이 있어 다른 동물과는 달리 본능을 스스로 조절할 수 있다.
그리고 인간은 죽어서 육신은 흙으로 돌아가나 이 영혼은 하느님(神)에게로 돌아간다.
또한 하느님과 인간 사이에 天使의 靈이 있는데, 聖靈(빛)과 惡靈(어둠)으로 갈라져,
세상 어디에서나 또한 인간의 영혼속에서도 늘 서로 싸우며 대립하고 있다.
우리의 영혼이 성령을 받아들여 세상의 빛이 된다면 하느님이 기뻐하시지 않겠는가?
종교의 종류는 원시적인 종교(기복신앙)와 체계적인 종교(희생과 극기)로 나눌 수 있고,
세계의 종교는 계시종교(기독교, 이슬람교)와 자연종교(힌두교, 불교)로 대별할 수 있다.
대부분의 종교는 진리를 추구하며 세상의 본질과 삶의 의미와 목적을 찾는 것이다.
그러나 발생된 시대와 지역적 배경에 따른 문화의 차이로 각각 다른 특징을 갖고 있다. .
종교가 다르다고 해서 무조건 배척하거나 비판하는 것은 自家撞着에 빠질 수도 있다.
천주교를 믿어야만 영생하고 천국에 갈 수 있다는 것은 아니다.
천국이 안락과 기쁨으로 가득한 곳이라면, 지옥은 고통과 슬픔으로 가득 찬 곳이다.
하느님은 인간이 지상에서 지옥이 아닌 천국을 만들기를 원하신다.
누구나 성령을 받아들여 세상의 빛과 소금 역할을 하는 착한 사람은
죽어서 전능하신 하느님으로부터 賞을 받아 하늘나라(천국)에서 영생할 것이고,
그렇지 못한 자는 罰을 받아 영혼이 영원히 九天을 외로이 떠돌 것이다.
천주교뿐만 아니라 누구나 자기가 믿는 종교가 제일이라고 생각한다.
모든 종교는 배타성이 있는데 자기만의 경전이 진리라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성경은 일치성, 보편성, 역사성을 획득한 세계 최고의 경전이 되었다.
기독교도 성경을 해석하는 방법과 시대적 배경에 따라 여러 종파가 생겼다.
모든 종교는 선의의 경쟁관계이며 진리를 추구하는 방법이 다를 뿐이다.
어떠한 종교일지라도 사랑과 자비로 가득 찬 공동체를 이루어 나가야 할 것이다.
인간이 다른 생명체와 특히 다른 점은 영혼이 있다는 것이다.
죽은 후에 이 영혼이 하느님(神)께로 돌아가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때 공정한 하느님께서는 세상에서의 행실에 따른 賞罰을 내리시지 않겠는가?
그리고 천국에 가는지, 지옥에 가는지는 죽어 보기 전에는 아무도 모른다.
자신의 믿음대로 열심히 살고, 그 상벌은 나중에 받아 볼 수밖에 없다.
이왕 한세상 사는 것, 죽을 때까지 最善을 다해서 열심히 살아 야 하는 것이다.
신앙과 부귀는 별개이며, 신앙은 마음에 부귀는 육신에 있는 것이다.
건강, 재물, 명예는 분명 축복이다. 그러나 신앙 없이는 一場春夢과 같다.
재물을 악착같이 독차지하고 권력을 함부로 휘두르는 것은 죄악이다.
탐욕과 쾌락으로 자신을 망치는 자는 악령의 유혹에서 빨리 벗어나야 한다.
하느님(神)이 진정 원하시는 것은 인간의 사랑과 세상의 평화이다.
다른 사람의 가난과 고통 중에 혼자서만 안락하다면 사랑이 없는 것이다.
성경에서의 부자는 예수당시 재물과 권력을 독점한 부패한 종교지도자들이었다.
그들은 율법을 오도하고 위선과 탐욕으로 민중을 괴롭혀 오히려 죄악에 빠졌었다.
그들이 성령 안에서 빨리 악령으로부터 벗어나기를 경고하신 비유이다.
부자에도 두 종류가 있다. 남보다 근검절약하여 재산을 모은 착한 부자와,
거짓과 착취로 남의 것을 가로채고 사치와 탐욕에 빠진 악한 부자가 있다.
누구나 가난하고 고통 받는 자들에게 나눔을 실천하는 자가 참된 부자이다.
부자나 가난한 자나 재물로 인하여 탐욕과 죄악에 빠지기 쉽기 때문에 늘 각성해야 한다.
천주교뿐만 아니라 종교가 사회 혼란과 범죄를 방지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
이태리에서의 天主敎는 역사적 전통과 관습일 뿐이며 儒,佛敎가 우리의 관습이었던 것과 같다.
어느 나라이던지 물질문명의 발달과 문화의 다양성으로 혼란과 범죄가 늘어나고 있다.
정치, 종교, 계층, 빈부 간의 갈등이 더욱 심해지고 사회의 구성요소가 복잡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세상에 종교는 없고 생존경쟁의 아귀다툼만 있다고 생각하면 얼마나 삭막할 것인가?
세상을 구원하실 하느님(神)의 의지와 역할이 어느 때보다 더욱 필요한 때이다.
올바른 신앙인은 신앙이 깊어질수록 더욱 겸손해 진다. 中庸을 지켜야 한다.
깨달음과 뉘우침으로 모범적인 생활을 하면서 이웃에게 본보기를 보여주어야 한다.
공산주의도 일종의 신앙과도 같은 것인데 투쟁으로 지상낙원을 건설할 수 있다는 믿음이다.
종교의 맹신자가 폭력적이고 독선적인 방법으로 그 목적을 이루고자 하는 것과 같다.
성령에 의하지 않고 인간의 힘만 과신하면 악령이 작용한다는 것을 간과한 것이다.
어떠한 신앙이나 사상에 확신이 있을지라도 공감대 형성은 바른 處身과 忍耐가 필요하다.
천주교와 공산주의와는 하느님(神)의 존재를 믿고 안 믿고 에서 상극이라면,
초기 천주교회가 억눌린 자의 해방과 나눔의 공동체를 이루려 했다는 점에서 상통한다.
공산주의는 유럽의 봉건귀족과 산업혁명으로 발생된 자본가와 노동자 간의 갈등에서 시작되었다.
또한 당시 부패한 종교로 인하여 민중이 등을 돌리고 신의 존재를 의심하는 결과까지 낳았다.
결국 해방투쟁으로 平等, 共有, 共生의 지상낙원을 건설하려는 공산국가가 등장하게 된것이다.
종교의 성직자가 제 역할을 다하고, 신자들이 하느님을 진심으로 믿을때 지상천국은 올 것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선과 악(성령과 악령)의 지루하고 끈질긴 대결의 연속이다.
그러나 인간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하느님(神)의 계획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우리나라는 일제해방 이후 사회, 경제, 문화적으로 급격한 변화를 겪어 왔다.
가치관의 顚倒와 빈부차이의 深化로 정신적 방황과 갈등이 깊어졌고,
사회범죄와 시련이 많아졌기 때문에 오히려 교회와 신자가 늘어났다.
교회가 피난처이자 안식처로 인식되었고 사회정화 기능을 하게 된 것이다.
이제 난립한 종교단체도 사랑을 실천하는 봉사자로 그 역할을 재정립해야 한다.
로마 교황도 인간이기 때문에 잘못이 없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교황의 절대적인 권위(無誤謬性)는 중세시대 절대 권력인 神政體制에서 나온 것이다.
그리고 천주교도 과거의 독선과 오류를 인정하고 시대에 맞혀 변화해 가야 한다.
우리는 교황을 모범적인 신앙을 가진 천주교의 최고 지도자로 보아야 한다.
그의 역할은 전 세계의 천주교가 근본적인 원리는 지켜가면서 일치를 유지하는 것이다.
신부는 소정의 자격과 교육과정을 거쳐 終身誓願(貞潔과 順命)을 하고 사제가 된다.
수녀는 수도원에서 양성하며 정결, 순명, 청빈을 서원하고 일생을 수도자로 살아간다.
신부와 수녀가 독신(정결)인 것은 온전히 하느님을 섬기는 일에 자신을 바치는 것이다.
예수가 평생 독신으로 살면서 세상구원에 전념했기 때문에 그를 따르는 것이다.
사제와 수도자의 獨身聖召는 중세 이래 로마교황청의 전통이자 召命이 되었다.
기업은 경쟁과 승부가 목표이며 기술의 발전과 생산성 향상에 크게 기여하였다.
기업주는 최대한 원자재와 임금을 낮추고 제품가격을 올려서 이윤을 극대화 하려한다.
한편 근로자는 열악한 환경에서 부당하게 임금을 착취당하는 경우도 많이 있다.
사회적 약자를 구조하고 보호하는 차원에서 종교 단체가 근로자를 지원하는 것이다.
자본주의는 弱肉强食, 適者生存이란 경쟁원칙만 앞세워 부를 축적하려 하는데,
富益富 貧益貧이란 所得 兩極化를 解消하고 多數가 행복해 져야 미덕이 아닌가?
언젠가는 지구의 종말은 오고 그것은 새로운 시작과 창조로 이어질 것이다.
창조주이신 하느님(神)만이 完全하시고 永遠하시며 無限한 존재이시다.
인간은 自身의 죽음이 인류나 지구의 종말보다 먼저 온다는 것을 깨닫고,
지상에서의 삶과 죽음을 全能하신 하느님의 뜻에 모든 것을 맡기고 따라야 한다.
무한세계 어딘가에 천국은 있다. 하느님의 뜻을 따르면 반드시 復活하여 永生할 것이다.
사람이 하느님을 믿을 것인가 버려진 영혼이 될 것인가는 스스로 선택에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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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강헌 이삭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14.06.12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디모데후서 3장 16~17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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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강헌 이삭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14.06.12 '너는 행악자의 득의함을 인하여 분을 품지 말며 악인의 형통을 부러워하지 말라. 대저 행악자는 장래가 없겠고 악인의 등불은 꺼지리라.'(잠언 24장 19~20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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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강헌 이삭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14.06.12 이신득의(以信得義, justification by faith)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아는 고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에서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갈라디아서 2장 16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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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강헌 이삭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14.06.12 이행득의(以行得義, justification by action)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야고보서 2장 26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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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신춘희 아녜스 작성시간 14.06.12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