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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동화/소설

[수필]작은 행복 / 김학량

작성자윤혜선|작성시간11.12.22|조회수78 목록 댓글 0

[55호]

 

작은 행복

 

김학량

 

  일요일 아침이면 볕이 잘 드는 우리 집 거실에서는 ‘톡, 톡, 톡’ 손톱 깎는 소리와 함께 일요일의 한가로움이 시작된다. 이 시간은 아침 식사를 끝내고 청소를 마친 후, 가족 모두가 자기만의 행복을 즐기는 시간이다.

 

  아이들은 방에서 텔레비전을 보고, 컴퓨터 게임을 한다. 나는 아내의 무릎을 베개 삼아 누워 손을 내민다. 그러면 아내는 나의 손톱 하나하나를 깎고 손질을 한다. 그리고 때로는 손톱이 다 깎이기도 전에 잠이 들어버린 나를 위해 한동안 자세를 고치지 않는다.

 

  아내의 ‘손톱 깎기’가 일상의 일이 된 것은 꽤나 오래 전 일이다. 결혼 후 얼마 동안은 내 스스로 손톱을 깎았는데, 어느 날인가 손톱 깎기를 막 끝낸 나의 손을 본 아내는 이제부터 내 손톱은 자기가 깎아주겠다고 했다. 손톱이 뭐 어때서 그러냐는 나의 말에 남들이 흉본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그 이후로 아내의 손톱 깎기는 계속되었는데, 아내에게 내 손을 맡길 수 있는 믿음을 갖게 된 것은 손톱 밑 살점을 몇 번 물리고 난 후의 일이다. 그래도 아내는 자기에 대한 나의 믿음을 알았는지 아내는 한술 더 떠 한두 손가락에 네일 아트를 하고는 흐뭇한 듯 바라보기까지 한다. 물로 하루밖에 못 가지만 말이다.

나의 손톱 깎는 일을 남에게 맡긴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거기에는 상대방에 대한 신뢰감이 있어야 한다. 이는 마치 나의 귀를 맡겨 귀지를 파내게 하는 경우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렇기는 해도 손톱을 내맡기는 일이 다른 사람이 귀지를 파내 줄 때의 시원한 쾌감을 주는 것도 아니고 보면 기실 살점을 물리는 불안감을 감수하면서까지 내 손을 맡겨야 할 이유는 없는 것이다.

 

  누군가 나폴레옹에게 ‘일생에서 가장 무섭다고 느낀 때가 언제였느냐’고 물었을 때 그는 즉시 ‘궁중宮中에 단골로 다니는 이발사가 일주일에 한 번씩 수염을 깎아 줄 때였다’고 대답했다 한다. 이발사가 적에게 매수되었거나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 그 날카로운 면도날로 자기 목을 푹 찌를지도 모른다는 상상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는 남을 믿지 못하는 데에서 오는 마음의 불편함이다. 그는 남을 믿지 못해 이발하는 동안의 즐거운 시간을 놓쳐 버린 것이다.

 

  남에게는 하찮은 일인지 모르겠으나 아내의 ‘손톱 깎기’가 나에게는 일종의 믿음이다. 그것은 손가락을 통한 아내의 사랑에 대한 믿음이며, 가지런하면서 둥근 모양의 단정한 손톱처럼 나의 일상생활을 반듯하게 지켜주려는 아내의 정성에 대한 믿음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제는 한번이라도 ‘손톱 깎기’를 거르게 되면 마음이 편치 않다. 마치 목욕 도중에 단수가 되었을 때의 느낌처럼 말이다. 그래서 그런지 이제는 설령 아내가 손톱을 깎다가 살점을 문다해도 움찔하면 그만이다. 물론 그것은 아픔의 표현이라기보다는 단순한 생물학적 조건반응 외에는 아무 것도 아니다. 아니 어쩌면 아내에 대한 믿음이 아픔을 느끼지 못하게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낙엽이 떨어지는 가을날 산사에 오르면, 그림처럼 합장하고 고개 숙이는 불자佛子들을 보며 마음의 평화를 느낀다. 부처님을 따르는 신자는 아니더라도 그들의 숙연한 모습에서 중생들의 평화와 선을 갈망하는 중생들의 믿음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믿는 자의 믿음은 곁에서 보는 이의 마음조차 편안하게 할지니 믿는 자의 마음은 평화로움 그 자체가 아니지 않겠는가?

 

   내가 나의 아내를 믿기에 나의 믿음은 불자의 마음과 같다고 하면, 사람들은 아마도 나를 팔불출이라 할 것이다. 게다가 아내의 손톱 깎기를, 아니 어쩌면 남에게 부끄러울 수 있는 그 작은 일을 자꾸 자랑하고 싶으니 어찌 팔불출만으로 족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어떠랴? 그저 마음 편하게 손을 맡기고 내 편한 생각을 하다가 졸음에 겨워 잠들어 버리는 게 우리 부부의 사랑이며 나의 행복인 걸…….

오늘 저녁에는 내가 아내의 손톱을 한번 깎아 보아야겠다. 사방에서 우리 부부를 탓하는 소리가 요란하겠지만, 나는 아내의 작은 손을 꼭 잡아 보리라. 그리고 ‘톡’ 소리 내며 떨어지는 아내의 작은 손톱 하나까지에도 나의 사랑과 믿음을 심어 보리라. 어쩌면 아내도 내 무릎을 베고 잠이 들지도 모른다. 그러면 나는 아주 행복할 거다.

 

 김학량/ 2007년 《불교문예》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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