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단비 |
2006-12-27 15:55:00, 조회 : 530, 추천 : 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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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인연 나는 최근까지도 불자가 사주보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다. 일부 스님들은 공공연하게 집안의 대소사를 결정해주었고 개인적으로 참 고마운 일이라고 생각했다.내가 사랑과 결혼을 하면서 겪은 일들과,
불교와 진정으로 만나면서 알게 된 짧은 지식을 정리하려고 마음먹은 것도 바로 이에 대해 말하고 싶었기 때문이다.지극히 개인적인 일이고 감정상의 문제라 소개하기가 쉽지 않지만, 아직도 사주나 궁합이 결혼을 하는데 걸림이 되는 이 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어느 늦가을,외로운 마음에 나간 미팅에서 그를 만났다. 테이블에 앉으려는데 바닥에 동전이 하나 떨어져 있었다. 동전을 줍는데‘그거 제 건데요’하며 한 남자가 말을 걸어왔다.‘만약 오늘 미팅이 잘 되면 이건 하늘의 뜻이겠군!’하는 생각이 들었다.그와의 만남은 그렇게 시작됐다. 사춘기 때부터 이상형을 상상하곤 했는데,똑같진 않았지만 그에게서 문득문득 이상형의 실루엣이 겹쳐짐을 발견할 때의 설렘은 참으로 신선하고 반가운 느낌이었다.
그런 느낌으로 1년을 만났지만 만날 때마다 설레는 마음은 ‘좋은 인연’임이 분명하다는 생각을 갖게 했다.집에서도 둘 사이를 긍적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무렵,우리의 만남에 호의적이었던 엄마가 그의 생년월일을 알아 오라고 하셨다.
두언니의 결혼때도 형부의 생일을 물었던 기억이 떠올랐고,결혼에 필요한 통과의례로 생각한 나는 주저없이 그의 생년월일을 말씀드렸다. 엄마는 젊은 시절부터 불자로서 신심이 대단하였다. 특히 남편과 자식을 위해 새벽기도도 마다하지 않았으며,전국 방방곡곡 소문난 기도도량 은 빠짐없이 찾아다니셨다.심지어는 자식 도시락 싸주고,남편아침을 챙기는 것보다 기도도량에 가기 위해 버스시간을 맞춰나가는 것이 더 중요한 경우 까지도 생길 정도였다.
그렇게 신심깊은 불자였지만 엄마는 사주팔자를 사람 을 판단하는 기준으로 삼는 경향이 있었다.지금은 별 볼일 없는 사람도 사주가 좋으면 잘 살게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었다. 어느 스님의 아들 둘을 낳아야 부부가 백년해로 할 수 있다는 말에 연이어 딸을 두었으면서도 아들 둘을 기어이 낳았을 정도였다.
물론 궁합을 보면서 결혼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셨고,좋은 궁합은 다른 부족한 점들을 모두 덮을 수 있을 만큼 중요한 조건이라는 생각을 하고 계셨다.엄마는 궁합을 무시하고 결혼한 이모가 온갖 고생을 하며 살자,모든게 궁합이 안맞는 결혼이기 때문에 그렇 다고 단정짓곤 하셨을 정도였다.
그런 환경에서 자란 나는 불교와 사주궁합 의 특별한 연관성을 발견하지는 못했지만 불자집안은 큰 결정이나 결혼에 있어 사주와 궁합을 보는 것을 당연한 일이라고 믿게 되었다. 궁합을 보고 오신 엄마의 얼굴이 어두웠다.그와 나의 궁합이 나쁘다는 것이었다. 그는 당시 제법 큰 시험을 준비 중이었는데 시험에 합격해도,결혼은 생각해봐야 겠다고 하셨다.
이 말은 궁합이 안 좋으니 당장 헤어지라는 의미였고,좋은 궁합이 결혼의 필수라고 생각하던 가족은 내가 그를 만나는 것을 달갑지 않게 여겼다. 이전에 우리의 만남에 호의적이었던 감정은 반대가 되었고, 나와 비슷한 가정환경의 가까운 친구도 이 말을 듣고는 헤어지는 것이 낫겠 다고 조언할 정도였다. 나는 다른 곳에서 궁합을 봐서 좋다는 얘기를 듣는 것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다. 그래서 친구와 혹은 엄마와 무수히 많은 점집을 드나들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나는 좋은 이야기로 듣는데,엄마는 한번 인식이 되어서인지 나쁜 이야기만 들으시는 것 같았다.분명 같은 이야 기를 들었는데도 해석이 달랐으니 말이다. 어쨌든 다시 간 곳에서도 ‘찰떡궁합’이라는 소리를 듣지는 못했다.결국 나는 깊은 고민에 빠졌다. 엄마의 추가 설명으로 인해 가족의 분위기는 더욱 나빠져 갔고,가족중에 내 편은 아무도 없는 것 같았다.친구마저 말렸고,주변에 어떤 이가 궁합이 안좋았는데 결국은 문제가 생겼다는 이야기들이 공공연하게 들렸다.
그럼에 도 불구하고 나는 그가 좋았고 딱히 헤어지자고 말할 명분도 궁합 이외에는 없었다. 한 번은 궁합을 이유로 헤어지자고 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여러 날 동안 연락하지 않고 생각할 시간을 가진 후,매듭을 짓고자 만나기로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를 만나러 가는 동안 내리는 함박눈에 그만 마음이 풀려 결국 재미있게 놀다가 궁합 이야기는 흐지부지 되어 버렸다.
그 후에도 몇 년을 만나는 동안에도 이성적으로나 감정적으로나 서로 헤어질 정도의 큰 문제는 생기지 않았고 상대를 더욱 신뢰하는 마음만 깊어갔다. 그렇지만 계속해서 마음 한 구석에 자리잡고 있는 편치 않은 마음으로 인해 죄짓는 기분으로 만남을 이어가는 동안 가족에게는 그에 대해 얘기하기 힘들어지게 되었고, 내스스로 마음을 닫기 시작했다.엄마는 이제 그와 만나는 눈치만 보여도 싫은 내색을 하셨다.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서 급기야는 극단적인 생각까지 들었다.집안의 결혼 반대로 고민하던 남녀가 동반자살을 시도했다 는 이야기가 남의 일 같지 않게 들렸다. 그와 헤어지고 궁합 좋은 다른 남자 와 결혼하면 행복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도 해보았지만 다른 사람과 잘 살 자신이 솔직히 없었다.
지금 돌이켜 보니 이런 마음들이 바로 인연이라는 증 거 였는데도 그때는 그것을 알고 현명하게 대처하기보다 내 마음을 돌릴 수도 피할 수도 없는 현실에 답답했을 뿐이었다. 궁합 때문이었을까? 그는 몇 년간 준비하던 시험에 간발의 차이로 자꾸만 실패하였다.시험이라도 합격했어야 당당하게 그와의 만남을 말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현실은 그렇 지 못했다.
그 때의 나를 돌이켜 보건대 공부에는 실질적은 도움을 주지도 않았으면서,내가 계획했던 시나리오에 그가 맞춰주지 못한것을 많이 아쉬워 했던것 같다.그렇게 일반 직장에 들어간 그가 우리 가족이 마음에 들 리가 없었다.청년 취업난에 나라가 들썩이던 상황에서 취업을 한 것만도 기특한 일인데 오히려 시험에 떨어진 실패자라는 낙인까지 찍혀버린 것이다.궁합문 제에 이어 시험 실패자와의 만남 자체를 인정하고 싶어 하지 않는 것 같았다.
나는 그와의 결혼을 고집했고,결국 ‘자식이기는 부모 없다’는 옛말처럼 우리는 결혼을 하게 되었다.지루한 줄다리기 끝에 결혼하는 과정 에서도 택일이나 집을 얻는방위,함 들어오는 날짜 등의 문제에서 사사건건 부딪쳐야 했고 나는 그런 형식들에 지쳐갔다.그러면서 나는 애꿎게도 이제 불교신자라는 것에 싫증을 느꼈다.사주팔자와 궁합,택일이라는 간판만 보여도 고개를 돌리게 되었고,그 간판에 그려져있는 만[卍]자가 꼭 사찰을 의미하는것 같았다.
내가 불자였기 때문에 사주팔자를 보았고 그로인해 힘들었다는 말도 안되는 논리가 내 머릿속에서 자리잡기 시작했다.어떤종교 든지 가지고 싶었던 나는 다른 종교로 개종을 결심하였다. 하지만 어느 곳을 가도 마음이 온전히 편치 않았고,순간적으로“관세음보살”을 염불하는 나를 발견할 때마다 나의 모태신앙인 불교를 저버릴 수는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비록 올바른 신행생활을 하고 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엄마의 깊은 불심은 어떤 식으로든 분명 나에게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임신을 하였다.결혼하고 바로 생긴 아이라 더욱 반가웠지만,실패하고 말았다.게다가 남편이 직장에서 유난히 근무지 변경발령을 많이 받아 안정적인 생활을 위협받았다.이렇게 연이어 좋지 않은 일들이 생기자 내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궁합문제가 다시 떠오르기 시작했다.
‘혹시 우리 궁합이 좋지 않아서 자꾸 이런 답답한 일들이 생기는 것일까?’‘남편이 궁합이 나쁜 나와 결혼해서 안 풀리는 것은 아닐까?’‘그때 어느 점집에서 시험 준비를 일년 더 하라고 할 때 해볼 걸 괜히 남편 고집대로 그만뒀나?’하는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급기야 그렇게 좋아 결혼 했던 우리도 티격태격 하는 날들이 늘어갔고 서로를 탓하기 시작했다.
나는 다시 점집을 배회하기 시작했고 뭔가 시원하게 해결할 대안을 그들이 찾아 주길 기대했다. 우연한 기회에 다시 찾은 절은 여전히 부처님을 향해 기도하 는 이들로 북적였다.한동안 그렇게 절을 오가다가 기본교육부터 받아야겠다 는 결심이 들었다. 마침 친정언니가 기본교육을 받아 좋았다고 자꾸 권하던 차였다.돌아보니 어릴 때부터 엄마 손잡고 절에 자주오기는 했지만 체계적 인 교육이라고는 어린이 법회에 몇 번 참석한 게 다였고,초파일에 연등 켜기 위해 연례행사처럼 들렀던것이 내 불자생활 이력의 전부였다.
공부를 통해 실천을 하고 싶은 마음에 인연이 된 조계사 보도팀에서의 자원봉사는 나를 진정으로 성숙하게 만들어 주었다.공부가 부족한 상태에서 올린 글들 이 홈페이지에 하나하나 쌓여가면서 느껴지는 책임감에 스스로를 채찍질했다. 아무것도 몰라 백지라고밖에 표현할 수 없는 내가 그동안 불교신자라고 말하고 다녔던 사실이 부끄러워지기 시작했다.
공부와 자원봉사를 통해 내 마음의 깊이가 조금씩 깊어지면서 남편과 자식 그리고 친정과도 자연히 관계가 원만해지기 시작했다.비록 현실과 외부에 보여지는 상황은 그대로였 지만 내가 달라지니까 상대방의 태도가 달라졌다. 내 자신의 마음을 치유하 다보니,결혼과정에서 앙금이 남아있던 남편과 친정의 마음도 정화시키는데 큰 도움을 받게 되었다.
불교를 공부하면 할수록“남편과 자식 잘되게 해주 세요”라고 기도하는 것에서 벗어나 내 마음 깊은 곳의 아픔을 스스로 치료 하고 보듬을 수 있는 힘을 얻게 되었다. 이러한 과정의 반복 속에서 나는 어 느덧 내 모습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눈이 생겼다. 우선 내가 너무나 힘들 어했던 일들이 생사를 가를 만큼 힘든 상황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 고 내가 무었을 잘못하였는지 알 수 있게 되었다.
부처님께서 초기경전에서 부터 경계하셨듯이 점술에 의지하여 인생의 중요한 결정을 하려했던 것이 첫 번째 잘못이었고,가족의 우려를 부드럽게 설득하지 못하고 강하게 고집 부렸던 것이 두 번째 잘못이었다. 세 번째는 연기법에 의한 인과를 내 의지 와 욕심대로 할 수 있을 거라고 오만하게 생각한 것이 잘못이었으며,네 번째 이 모든 상황을 탓 한 것이 또한 나의 잘못이었다. 하나씩 나의 잘못을 짚어 가면서 그동안 엄마가 사주팔자에 의지해서 나를 힘들게 했다는 생각 마저 사라지기 시작했다.
모든것은 마음에 달려있었고,내 마음이 점술가의 말에 흔들렸기 때문에 힘들었던 것이었음을 깨달았다.그러면서 자만하고 오만하여 내 스스로를 높이던 상[像]을 깨는 작업을 시작했다.
하지만 상을 깨는 작업은 만만치도 쉽지도 않은 과정이었다.상이 깨졌나 싶어 돌아서면 다시 나타나는 또 다른 상을 알아치리는 것도 쉽지 않다.이제야 나의 잘못 을 알게 되었지만 나는 여전히 앞으로 어떤 식으로 남은 문제들을 풀어 나가야 하는지 아직 알지 못한다.
다만 평생을 부처님의 가르침대로 공부하 고 실천하는 것을 되풀이 하여 더 많이 깨닫고 수정하는 일이라도 제대로 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지금도 많은 이들이 인생의 중요한 결정을 할 때나 혹은 답답한 마음에 점집을 찾아간다. 어느 집에 가면 부처님 상을 모셔두고 미래를 점치고 있다. 그 집을 다녀간 사람 중에 어떤 이는‘부처님은 점술가 에게 신통력을 주는분’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일부 신자가운데는 스님께 결례인지도 모르고 사진을 들이대며,“우리 아들이 언제 장가를 갈수 있을 까요?”라며 묻기도 한다.
또,어느 스님의 예언(?)이 적중했다는 소문이라도 나면 그 스님과 절은 숭배의 대상이 된다.이런 일부 불자의 태도는 타종교 의 집중 공격대상이 된다.자비와 지혜로 마음을 닦고 깨달음을 얻는 불교사 상이 기복이나 초자연적인 힘에 기대는 것으로 변질돼서는 더 이상 발전할 수 없다.
한때 수많은 철학관을 전전하며 사주와 궁합을 봤고 지금도 누가 점집에 간다면‘한번 따라가 볼까?’하며 흔들리는 내가 이렇게 말하는 것이 부끄럽기 그지없지만,‘불자는 사주궁합을 본다’는 통념이 깨지고 ‘불자는 인과[因果]를 믿는다’는 말이 일반화되었으면 한다.
답답한 마음 에 혹은 호기심에 미래를 점치러 가는 이들에게 모든 것은 인연에 의해 왔다 가는 것이고 한번의 점술로 인해 당신의 인생이 달라질 수도 있음을 명심하라는 충고를 감히 해 본다.점술은 아주 잠깐일 지라도 우리의 이성을 마비시킬 수 있다.이때 현실 직시의 눈을 잃어버리고 내리는 결정은 아주 위험한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나만큼 내 일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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