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선업을 쌓는 방법[積善之方] - (64)
또 무엇을 일러 재물을 희사하여 복을 짓는다고 말하는가?
불교에서 말하는 온갖 수행 가운데 가장 으뜸은 보시이다.
이른바 보시라는 것은 오직 한 글자 버릴 사捨자로 축약할 수 있다.
통달한 사람은 안으로는 육근을 버리고 밖으로는 육진을 버리며,
가진 것 일체를 버리지 못하는 것이 없는 사람이다.
우리가 진실로 그렇게 할 수 없다면
먼저 재물을 보시하는 일로부터 버리는 일을 시작하여야 한다.
세상 사람들은 입고 먹는 일에 목숨을 걸기 때문에 재물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목숨처럼 따르는 그 재물을 버릴 수 있다면,
안으로는 나의 인색함을 깨뜨리는 일이 되고
밖으로는 다른 사람의 위급함을 구제하는 일이 될 것이다.
이런 재물의 보시는 처음에는 억지로 시작하겠지만
마침내는 습관이 되어 태연해지게 된다.
무엇보다도 보시는 사사로운 감정을 깨끗이 씻어낼 수 있고
집착과 인색함을 떨어낼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
<석문>은 불문입니다. <달>은 통달했다는 말입니다.
무엇을 일러 재물을 희사하여 복을 짓는다고 할까요?
불가에서는 보살행을 말할 때에 그 방법과 수단이 한량없고 끝없이 많습니다.
그러나 이 모두는 결국 다 <보시>로 귀납됩니다.
그러면 보시란 무엇입니까?
보시는 버린다는 뜻이며, 나를 버려서 남을 위한다는 뜻입니다.
불법에서는 법신보살을 진정으로 통달한 자라고 하는데,
그것은 법신보살이야말로 정말 완전히 다 버린 분이기 때문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재물이지요.
그러므로 보통 사람들은 재물마저 버릴 수 있다면
몸 밖의 물건은 다 버릴 수 있다는 뜻이 됩니다.
그 정도만 할 수 있어도 정말 괜찮지요.
범부에게 안과 밖을 다 버리라고 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보시란 안으로는 자신의 인색하게 탐내는 마음을 버리고
밖으로는 다른 사람의 위급한 재난을 구제해 주는 일입니다.
비록 처음에는 보시하는 일이 아주 억지로 하는 것 같이 힘들게 느껴지더라도,
서서히 그 일을 하는 것이 아무 일도 아닌 듯이 느껴질 때가 올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 마음속의 사욕을 씻어 내고 집착과 인색함을 제거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 불교를 믿는 사람들은 어디에서부터 수행을 시작해야 할까요?
바로 보시입니다.
제가 불교에 입문하고 처음으로 장가대사를 친견하였을 때에,
제가 대사께 이렇게 여쭈었습니다.
“저는 불법이 좋다는 것을 알고 있고, 정말 공부하고 싶습니다.
제가 한시 빨리 불법을 깨닫게 해 주실 무슨 방법이 없습니까?”
그러자 장가대사께서 저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있지요. 간파하여 내려놓는 것입니다.”
제가 계속해서 여쭈었습니다.
“그렇게 하려면 무슨 일부터 해야 합니까?”
대사는 말씀하셨습니다.
“보시부터 시작하시오.”
저는 그 말씀에 따라 돌아온 후로 진짜 그렇게 하였습니다.
그랬더니 정말 효과와 감응이 있었습니다.
보시의 감응이란 무엇일까요?
줄곧 인색하고 탐내기만 하던 마음이 가벼워진 것입니다.
완전히 끊는 일이야 당연히 어렵지요.
그러나 탐내는 마음과 인색한 마음은 조금이나마 줄일 수는 있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하면 밖으로는 한편 또 다른 사람을 도울 수도 있어서,
은혜를 베푸는 일이 되기도 합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이기심과 명리욕과 탐내고 성내고 어리석고
오만한 마음>을 모두 다 보시해 버립시다.
저 자신의 경험에 의하면 보시를 시작한
처음 10년은 영 억지로 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 다음부터는 서서히 습관이 들어서 쉬워지더군요,
그래서 이제는 보시를 해도 했다는 흔적조차도 남지 않게 되었고,
그래서 마음 바닥까지 청정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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