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수행에는 세 가지 금기 사항이 있다
| {망상 때문에 하루에도 몇 번씩 마음이 휘둘릴 때가 있습니다.} {망상이 일어나면 단지 고요히 바라보기만 하세요. 컵에 흙탕물이 담겨있습니다. 가만히 놔두면 저절로 흙이 가라앉아 맑은 물이 그대로 드러나지요.} {휘젓지 말고 가만히 바라보기만 하라……. 그러면 맑아진다는 말씀이군요. } {그렇지요. 컵은 바른 계(戒), 가만히 두는 것은 정(定), 맑은 물은 혜(慧)에 해당되지요.} 망상이 일어나면 억지로 없애려 하지 말고 그냥 바라보기만 하면 된다. 그러면 망상은 저절로 없어진다. 모든 수행에서 공통되는 장애는 번뇌망상이다. 이것에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수행의 진일보와 퇴일보가 갈라진다. 망상은 그 본질을 알아차리는 순간 아침 햇살에 어둠이 사라지는 것처럼 사라져버린다. 어떠한 생각이나 논리적인 사고도 객관적 대상뿐 아니라 주관적인 의식이 함께 일어난다. 이 의식을 없애겠다고 집착하거나 강박을 일으키면 의식, 즉 망상은 더욱 성가시게 돋아난다. 그러나 일어나는 순간 바라보는 관찰이 작용하면 의식은 소멸하게 된다. 그냥 있는 그대로 관찰하는 것이야말로 위빠싸나의 핵심이 된다. 그녀는 위빠싸나를 하면서도 몸과 마음의 현상을 그냥 바라보기만 했다. 그런 과정에서 망상이 사라졌다. 바라보는 수관(隨觀)이 이어지면 자연히 직관적인 내관(內觀)이 깊어진다. 이때 맑은 물에 모든 것이 드러나듯이 몸과 마음의 본성이 드러난다. 어떤 때는 깨달으려는 마음도 집착이 될 수 있다. 바둑의 명인 조치훈의 경우 처음에는 이기고자 하는 마음으로 바둑을 두니 잘 안 되었는데, 차차 물이 흐르듯 상대방의 흐름에 맞추다보니 이기게 되었다고 한다. 그냥 바라보기만 하면 망상은 저절로 없어지고, 깨달음은 스스로 찾아온다. 모든 수행에는 세 가지 금기 사항이 있다. 우선, 보이는 것이 있으면 아직 궁극의 자리가 아니다. 수행 도중에 빛이나 여러 불상, 또는 귀신이 보일 때도 있으나 이것은 자신의 무의식에서 일어난 현상이므로 알아차리면 없어진다. 특히 빛에 따른 미세한 감촉들이 포착되면 빛은 즉각 사라진다. 그래도 사라지지 않으면 [아는 마음]을 내관하면 된다. 그리고 무엇을 하고자 하는 의도가 있으면 안 된다. 있는 그대로 관찰하면 현상 자체는 무지개처럼 뿌리가 없으므로 사라진다. 무엇인가를 하려는 마음은 자신의 욕망이나 의지적 작용인 업(業)이다. 마지막으로 [나]라는 생각이 있으면 안 된다. 파초 줄기를 계속 벗기면 그 안에는 아무 것도 없듯이 일어난 모든 현상은 주객이 어우러진 찰나의 현상에 불과하다. 변하는 현상을 [나]로 보는 집착 때문에 고통이 생기는 것이다. 이곳엔 오직 몸과 마음의 흐름인 오온의 생멸만이 있을 뿐이다. 잘못된 [나]로 인하여 주관적인 욕심인 [하고자 함]이 있으면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특히 삼매가 깊어갈수록 자신이 원하는 것이나 고정 관념이 삼매 속에 그대로 나타난다. 때로는 신으로, 부처로, 귀신으로. 이같은 오류에서 벗어나 있는 그대로 보는 것. 현상을 오온과 12연기로, 본체를 적멸로, 현상과 본체를 입체적으로 동시에 보는 것. 이것이 위빠싸나이다. 수행이 어느 정도 진행된 뒤부터 조연숙 씨에게 일어난 공통적인 현상은 빛의 생멸인데, 점점 [아는 마음]과 더불어 몸과 의식의 흐름인 오온의 아주 미세한 현상관찰로 들어갔다. 때로는 무아삼매에 들기도 하면서 단전호흡의 기(氣) 수련, 정신 통일에만 머무는 사마타와 위빠싸나의 차이점을 체험으로 알게 되었다. 요즘은 관찰이 저절로 이어져서, 1시간이 1초가 지나간 듯 알아차리기도 한다. 그녀는 생활 속에서도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보면서 24시간 깨어있는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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