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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몽주의 우국(憂國) 차생활

작성자모봉형진|작성시간06.03.17|조회수18 목록 댓글 0
돌솥의 찻물 끓는 소리 아껴 듣누나




중국 역사에서 충절을 대표하는 인물이라면 백이숙제가 떠오르고, 우리나라에서는 포은 정몽주가 먼저 생각난다. 포은은 고려말(1337∼1392) 다사다난하던 때, 문신으로 학자로 수많은 업적을 이루었지만, 선죽교에서의 그의 죽음이 말해주듯이 평탄한 생애를 산 것은 아니다.

그는 문관이었지만 행동적 관료였다. 이성계와 함께 여진토벌에 참가했는가 하면, 배명친원에 반대했다가 언양으로 유배를 간 적도 있고, 왜구가 침입하자 화친을 도모하다 실패하녀 권신들의 미움을 사서 일본까지 가서 관계개선에 이바지했고, 일본에 잡혀간 고려백성 수 백명을 귀국시키는 공적도 이뤘다.

명나라에 사신으로 4번을 다녀왔지만 입국을 거부당해 요동까지 간 적도 있고, 풍랑을 만나 13일 동안 사경을 헤맨 적도 있었다. 동지공거라는 직책을 맡아 인재를 등용했는가 하면, 오부학당을 세워 교육에 기여했다. 의창(義倉)을 설립해서 궁핍한 백성들을 구제했으며, 새로운 법령 신률(新律)을 만들어 법질서를 확립했다.

그런가하면 [고려사]에는 목은 이색이 정몽주에 대해 “몽주의 이론(理論)은 종횡으로 어떻게 논하든지 이치에 합치되지 않는 것이 없으니, 미루어 이학(理學)의 시조라 할만하다”고 극찬을 하였다. [포은집]에서 정도전은 포은에 대해, 유학의 모든 경전에 정통했다고 하며 “우리나라 5백년 동안 이러한 이해에 이른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라고 하였다. 목은과 정도전 같은 당대 성리학의 대가들의 평가를 미루어 짐작해보면 포은은 주자학에 해박하고 정통했던 것 같다.

그러나, 포은이 조선의 사림(士林)으로부터도 계속 ‘동방 이학의 시조로 숭상 받게된 것은 그가 주자학에 정통한 일인자였다는 것보다 그의 충절에 무게를 둔 것이다. 주자학이 지향하는 의(義)의 실천정신을 구현한 점에서, 우리역사에 큰 획을 그은 인물이다.

그러나, [포은집] 권2에 실린 차시 좥돌솥에 차 달이기좦란 시를 보면, 포은 스스로는 나라를 위해 충실한 삶을 살지 못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나라에 보답할 공도 없는 늙은 서생이

차마시는 버릇만 생겨 세상 일 잊는다네

바람불고 눈 내리는 밤 고요한 집에 홀로 누워

돌솥의 찻물 끓는 소리 아껴 듣누나



그의 우국충정은 멈춤이 없었던 것 같다. 전 생애를 나라를 위해 살았으면서도 조국에 보탬이 될 수 없음에 괴로워하다 어느 날부터 차생활에 심취하면서 조국의 미래를 걱정하는 마음을 잊을 수 있었던 것이다. 잊은 것이 아니라 잊기 위해서 차생활에 몰입을 했는지도 모른다. 바람 불고 눈 내리는 날 더욱 산란해지는 마음을 돌솥 찻물 끓는 소리 들으며 좌망(坐忘)에 든 것이다.

[포은집] 권2에 실린 "독역(讀易)"이란 시를 한 편 더 감상해본다.



돌솥에 차는 끓기 시작하는데

풍로의 불빛은 붉다

감괘와 이괘는 천지의 쓰임이니

바로 이 뜻 무궁한 것이라네



[주역]에도 정통했던 포은답게 물과 불의 쓰임이 무궁함을 읊었겠지만, 돌솥에서 끓고 있는 물과 불을 보며, 나라를 위해 쓰임을 다하지 못하고 있는 자신과 비교하며 애달파한 것은 아닐까.

이성계, 정도전 등과 조선건국에 동참하지 않고 선죽교에서 이방원이 보낸 자객에게 생을 마친 것, 그의 비석에 시호를 새기지 않아 두 왕조를 섬기지 않았음을 말해 주는 것, 등이 이런 생각을 가져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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