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결혼식장에 갔다. 변하지 않는 게 있을까? 예식 문화도 바뀌었다. 22년도 딸아이가 결혼할 때만 해도 신부와 신랑 어머니가 처음으로 등장하여 촛불을 켜고 공손하게 인사를 하지 않았던가. 이번에는 달랐다. 먼저 신부 측 부모님이 등장하고 나중에 신랑 측 부모님이 등장하였다. 양쪽 부모 네 명이 하객들에게 허리를 깊숙이 숙여 감사의 인사를 전하였다. 결혼식 내내 한 번도 등장하지 않던 신랑의 아버지를 등장시킴으로써 아버지의 존재감을 부각시켰다.
아들 결혼이 늦어진다고 전전긍긍하더니. 여기저기 신부감을 샅샅이 찾더니, 그 노력 덕분일 것이다. 찰떡궁합 신부감을 찾아냈으니 말이다. 우리의 친구, 신랑 어머니는 초록빛 치마에 흰 저고리를 입었다. 날렵하면서 우아하다. 얼굴은 신부와 나이 차이가 별로 없어 보일 만큼 생기가 넘친다. 평소에 자신을 가꾸는 일에 누구보다 부지런하게 움직일 뿐만 아니라 부부 사교댄스 모임에 참석하여 신체와 정신을 잘 가꾸고 있는 친구다. 거기다가 사진작가다. 그녀의 꽃 사진을 보면 그녀만의 정서가 녹아있다. 슬픈 듯 아름답다. 외롭고 서러운 마음도 있다. 아름다운 꽃에서 더 아름다운 느낌을 찾아내 초점을 맞추는 그녀의 마음이야말로 꽃이다.
신부와 신랑이 아름답고 멋진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부모님들도 모두 입체 화장을 하고 머리를 매만져 연예인처럼 우아하고 말끔하다. 우리가 결혼할 때 나는 신부화장이라고 해서 그런대로 봐줄만 한데, 남편은 자신의 집 화장대 앞에서 고대기로 곱슬머리를 편 다음 양복을 입고 결혼식에 입장하였다. 그때야 다들 그러했으므로 조금도 이상하지 않았건만, 지금에 와서 보면 촌스럽기 짝이 없다. 우리를 웃게 만든다. 오늘의 신랑을 보라. 친구의 신랑을 보라. 세련되었다.
지금까지 예식장에서 본 적 없는 육회가 나왔다. 육회를 좋아하지 않는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친구들이 먹는 모습을 일단은 지켜보았다. 맛있어 맛있어 얼른 먹어. 친구의 말에 한 젓갈 먹어보니. 아 맛있다. 게 눈 감추듯 먹어 치웠다. 스테이크 대신에 함박스테이크가 나왔다. 그 두 가지 만으로도 배가 부른데 야채사라다와 새우와 전복죽과 전복구이와 물국수까지 배부르게 먹었다. 강남 한복판 삼성동 예식장은 뭐가 달라도 다르다.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결혼식에 참석한 네 명 초등 친구들이 뭉쳐보기로 하였다 코엑스로 방향을 잡았다. 예전하고 달라져서 굽이굽이 골목길이 많다나 뭐라나. 누누이 딸아이는 말해 왔다. 엄마 코엑스 들어가면 못 찾아올걸 혼자는 가지 마셔. 다행히 오늘은 혼자가 아니고 네 명의 나이 먹은 아줌씨들이다.다들 건강하다. 어딘들 못 찾으랴 싶다. 아이들 어릴 때까지만 해도 하루가 멀다 하고 드나들었던 곳인데 나이 들어서는 하도 오랜만이라서 낯설고 어설프다. 특히 영풍문고가 예전의 모습이 아니었다. 천지개벽한 모습이라고 듣기는 했다. 어마어마하게 높고 넓은 책장에 책을 가득 구비하고 있는 모습을 실제로 마주치니 경탄스러웠다. 책을 읽고 있는 젊은이들이 많아 책을 읽지 않는 시대라는 말을 무색하게 하였다. 밝은 미래가 엿보여 기분이 좋았다.
고향 친구 숙은 남다르다. 무엇이든 나누고 베풀며 산다. 김치며 오이지며 잡채며 도토리묵 등 먹거리를 나누는 일은 물론이고 스카프며 가방과 양말등 지나다니다가 눈에 뜨이는 것이 있으면 사 두었다가 적절한 사람에게 선물로 건네는 것이다. 나는 나도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 살아가는 주제이므로 언감생심 남까지 신경을 쓸 겨를이 없다. 무엇을 고르고 무엇을 사야 할지 서툴다. 손자와 손녀 옷도 고르지를 못해 그냥 현금으로 주고 만다. 친구 숙이 존경스럽다. 에구 깜짝이야 이번에는 내게 가방을 선물했다. 가방? 자그마하고 가볍고 귀여운 가방이었다. 나이 들면 가벼운 게 최고란다. 거기다가 귀여운 악세사리까지 골라서 매달아 놓았다. 친구의 정성과 우정에 몸 둘 바를 모르겠다. 나는 속으로 자꾸만 어쩌누 어떻게 해야 하누를 반복했다. 받는 일은 기쁜 일이지만, 갚아야 한다는 책임감이 나를 구석탱이로 몰아세웠다. 나는 말했다. 네게 무엇을 해 줘야 하니 나는 그런 거 고를 줄도 잘 몰라. 내 말에 그녀는 말했다. 하기는 뭘 해 난 집에 다 있어 그냥 기쁘게 받아주면 되지.
짠순이로 살아온 세월이 길어서인가. 누구에게 베푸는 일을 잘 못한다. 친구 숙에게 물었다. 이제 나이 들고 가지고 있는 돈은 한정되어 있고 넌 그렇게 사람들에게 베풀려면 돈이 들어와야 가능한 건데, 어떻게 그렇게 사람들한테 나누는거야? 그녀는 대답했다. 돈은 써야 들어오는거야 고여있으면 돈이 들어오지 않아. 돈을 쓰고 나면 누군가 뭉텅이로 더 많은 돈을 내게 줘 신기하지. 딸이 돈을 잘 벌어 뭉텅이 돈을 자주 준다는 이야기는 들어왔다. 지난번 초등동창회 때는 열 명도 넘은 여학생들에게 스카프를 돌렸다. 돈을 쓰면 더 많은 돈이 들어온다? 고인 물은 썩는다?
나를 돌아보게 된다. 이기주의로 살아온 나를 뒤돌아보는 시간이 된다. 친구 숙에게 무엇을 선물하면 좋을까 궁리하는 마음이 내게도 생겨났다. 친구 따라 강남 간다고 하더니, 나도 착한 인간 쪽으로 한 발짝 디디려고 발을 들어 올리는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