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는 하루 종일 쏟아진다지만 무엇이 문제랴. 어린시절 소풍날처럼 들떠서 초등학교 동창들을 만나러 고향 동탄으로 간다. 한 번도 타보지 못한 Gtx를 타고 동탄역으로 간다. 네 정류장 21분. 동탄역!! 가까워졌다. 그리운 동탄! 그리운 친구들!!
부지런한 찬희가 Gtx 승강장에서 기다리고 있다. 비가 내려 머리가 내려앉았다고 울상이지만 원피스를 차려 입은 모습이 단아하다. 아는 게 참 많다. 행동파다. 세상살이에 능숙하다. 인터넷을 뒤져 이것저것 재빠르게 알아내고 실행에 옮긴다. 오리 새끼처럼 뒤뚱뒤뚱 남편만 졸졸졸 따라다니는 나는 할 줄 아는 게 별로 없다. 더구나 쇼그렘증후군을 앓고 있어 입마름과 안구건조증을 달고 산다. 본성이 말이 적은 편인데, 말을 많이 하면 입이 마르니 말이 더 적어졌다. 그러니 말을 잘하는 사람을 좋아한다. 찬희는 말도 청산유수다. 이래저래 찬희가 옆에 있으면 천군만마를 얻은 기분이다.
영수는 새벽에 분당서울대병원 장례식장 발인식에 갔다가 성남역으로 와서 우리와 합류하였다. 늦어서 다음 차를 타야할 지 모르겠다고 전전긍긍하더니 성남역에서 우리가 앉아 있는 10-1번 칸으로 쑥 들어왔다. 영수야! 찬희와 동시에 불렀다. 반가웠다. 이목구비가 큼직큼직하고 키가 커서 멋지다. 어제는 교회에서 늦게 끝났단다. 그리고 새벽에 장례식장에 간 것이다. 한쪽 입술이 부르터서 붉게 솟아올랐다. 저런!! 그럼에도 동창회에 참석하려고 전속력으로 움직인 것이다. 마음가짐이 본받을만하다.
동탄역에서 내려 버스를 타려다가 비도 오고 바람도 불어 택시를 탔다. 어디가 어디인지 도대체 동탄의 모습을 찾을 수가 없다. 아파트들만 즐비하다. 서운한 마음이 드는데 앗! 제법 넓은 냇물을 건너간다. 오 맞다. 반송리로 가는 길에는 냇물이 있었지, 고매리 저수리에서 흘러내려온 물이 영천리를 지나 석우리를 지나 반송리를 거쳐 금곡리를 지나 오산쪽으로 흘러갔지. 바로 그 냇물? 기사님이 그렇다고 대답해 주신다. 오오! 반가운 그 냇물. 장마철이면 냇물이 아버지 가슴까지 불어나 아버지 등에 업혀 건너던 그 냇물!!! 옛날 일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고향이 아직 거기 살아 꿈틀대며 흘러가고 있다.
우리는 쿠쿠에 조금 빨리 도착했다. 대기실에 앉아 있는데 춘봉이가 나타났다. 왜 여기 있어 이리로 들어와. 말씨가 참으로 다정하다. 12시부터 2시까지 딱 2시간 이용할 수 있다고 해서 우리는 들어가지 못하고 있었다. 이곳 쿠쿠는 춘봉이가 예약했다. 동탄에 살고 있으니 아무래도 이곳에 대해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미리 와서 대기했던 것이다. 책임감이 강한 친구다. 카페로 이동할 때와 동탄역으로 이동할 때 춘봉이 차를 탔다. 점잖게 조용조용하면서 조리 있게 말을 한다. 의원 후보는 아무나 하남? 석우리 친구끼리 한 테이블에 앉았을 때다. 석우리 친구끼리 앉으니 무언가 다르지 않아? 내 말에 찬금이와 효숙이는 그래그래 고개를 끄떡이는데 춘봉이는 힘주어 말했다. 아니 아닌데. 춘봉이는 해실해실 웃고 나는 눈을 흘기고 우리는 폭소를 터뜨렸다. 장난기가 발동하는 순간 입가와 작은 눈매에 번지는 웃음기가 개구장이 초등학생이다.
예약된 룸에 들어가니 경자와 옥희가 와 있다. 반가워하며 벌떡 일어났다. 서로 껴안고 등을 두드렸다. 두 번째 만나니까 정말 반갑다 그치? 첫 번째와는 다르네 그치?. 그랬다. 지난번보다 얼굴에 붓기가 가라앉아 예뻐진 옥희와 조그맣고 얌전한 경자 얼굴에 반가움의 웃음꽃이 활짝 피어났다. 순식간에 화기애애해졌다. 경자 가까이 앉아 이야기를 나눴는데 머리숱이 울창한 숲이다. 가리마가 보이지 않을만큼 머리카락이 꽉꽉 들어차 있다. 부럽다 부러워. 부둥켜 안아주고 싶을만큼 작은 몸매에 작은 얼굴이지만 건강하고 야무지다.
장식이가 나타났다. 점잖고 말이 없어 지난번에는 우리가 말했었다. 장난기 가득한 장식이 모습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고 말이다. 오늘은 아니다. 들어오면서 씩 웃는데 어릴적 장식이 개구쟁이 얼굴이 보인다. 반갑다. 지난번보다 얼굴이 훤해지고 몸피도 늘어 중후함도 보였다. 고개를 약간 기울여 활짝 웃는 사진 속 얼굴에도 옛 모습이 나타나 있다. 그래그래 장식아 그렇게 웃어주는거야 그게 너잖아. 다음번에는 말을 붙여봐야지. 두번째 만남이지만 이렇다할 이야기를 나눠보지 못하였다.
사람들 사이로 병욱이가 걸어왔다. 저런! 핼쓱하고 까칠하다. 어디 아픈가? 길치라는데 여기까지 찾아오느라 헤매었나? 나중에 알아보니 김밥을 먹고 탈이 났었단다. 장염에 걸려본 사람은 안다. 뱃속은 텅 비고 기운은 없고 눕고 싶은 그 심정. 그럼에도 참석한 것이다. 우리의 칠순 잔치 계획표를 짜임새 있고 재미있고 다양하게 만들어 왔다. 반장은 그래서 반장이다. 대학에 강의를 나가고 재건축 조합장도 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손녀도 봐 준단다. 바쁘게 살면서도 동창들을 위해 계획표를 짜느라 많은 시간을 할애했을 것이다. 친구들을 위해 시간을 낸다는 것은 우정의 힘이다. 반장의 힘이다.
총무님 세미가 병환과 찬금과 효숙이와 나타났다. 감사하게도 병환이 운전을 담당했단다. 병환이는 고생 없이 살아온 평온한 얼굴이다. 세월에 긁힌 자국이 안 보인다. 수원과 청계리를 오가는 버스를 타고 수원으로 학교를 다녔다는데, 나도 그 버스를 이용했다. 만난 적은 한번도 없지만 오래도록 알고 지내온 친숙한 느낌이다. 청록색 원피스에 귀여운 스카프로 멋을 낸 총무님!! 언제봐도 명랑하다. 활달하다. 병점에서 친구들을 한시간이나 기다렸단다. 명단 적으랴 회비 걷으랴 사진 찍으랴 음식 체크하랴 몸이 열 개라도 부족해 보인다. 그래도 꿋꿋하게 혼자 해낸다. 남자들도 혀를 내두를 당찬 여자다. 흰색 원피스에 흰색 귀거리에 흰색 구두를 신은 효숙은 누구도 따라가지 못하는 멋쟁이다. 이번에도 가방이며 목걸이와 장식품을 가져와 친구들에게 선물했다. 돈은 써야 또 생기는거야 그녀의 지론이다. 겉 못지않게 속도 멋쟁이다.
천진한 웃음을 얼굴에 달고 있는 흥복이가 나타났다. 제가 밤 세워 차렸는데 음식은 맛이 있나요? 많이들 드세요. 너스레를 떨었다. 여학생들이 깔깔거렸다. 분위기를 일순간 끌어 올려준다. 카페에서도 만면에 웃음을 띠고 우리 테이블로 왔다. 사교댄스에 대해 일장 연설을 하였다. 댄스는 상대방과 잘 맞아야 제 맛이 나는 거란다. 잘 맞는 사람과 춤을 추면 가슴이 찌릿찌릿하단다. 찬금이도 한 몫 했다. 춤을 춘 지 30년 된 찬금이는 사교댄스 모임에서 탑이란다. 팔다리가 길고 가늘어 춤꾼 몸매다. 언제였던가. 흰 토끼풀꽃이 만발한 언덕에서 찬금이가 추는 춤을 본 적이 있었다. 우아하고 아름다운 자세였다. 은근히 샘이 났었다. 젊어서 시작하면 보험이란다. 나도 시작해볼까? 찬금이는 오늘도 무대에 서서 춤을 춰도 좋을 의상이다.
병철이가 오고 있다. 키도 크지만 몸집도 크다. 축구선수였으니 말해 뭐하랴. 여학생 앞에 일단 앉았다 하면 이야기가 끝이 없다. 나는 중학생때까지 공부는 진짜 안했다. 그 말을 하는데 천진난만한 얼굴이다. 아스피린을 하루에 한 번씩 먹으라고 여기저기 열변을 토한다. 만병통치약이란다. 의대 교수들과 친분이 있어 자주 만나는데 그 사람들도 복용한단다. 영수와도 한참 동안 수다를 떨었는데 나중에 들어보니 일방적으로 아들 자랑을 했단다. 나이 먹은 아줌마 뺨치는 자식 자랑이었다는데. 덩치와 어울리지 않게 수다쟁이 병철!!!이다. 씩 웃는 모습이 역시 초등학생때를 떠올리게 한다.
의리로 뭉친 배마루 친구들이 늦게 등장했다. 종덕 창숙 혜숙이다. 혜숙이는 올 수 없는 상황인데도 씩씩하게 앞장선 것으로 안다. 창숙이 역시 감기로 한 달 넘게 앓고 있는 중인데도 운전을 담당하였다. 종덕은 이쪽 동창들과 저쪽 동창들 간격을 좁히려고 무진 애를 썼지만 결과는 없었다. 마음의 상처로 남았을 것이나 내려놓고 내려놓고 합류하였다. 얼굴만 젊은 게 아니고 마음도 젊은이처럼 쿨한 것이다. 배마루 친구들이 단톡에 한동안 나타나지 않아 단톡방이 쓸쓸하였는데, 이번에 참석해 주니 꽉 찬 느낌이다. 실타래처럼 얽힌 마음은 얼굴을 맞대고 허심탄회하게 대화로 풀어내야 매듭이 생기지 않는다.
승호가 마지막으로 급하게 걸어온다. 병점 쿠쿠점인 줄 알고 병점으로 갔다가 동탄 쿠쿠점으로 돌아온 것이다. 총무님이 인천 쪽 친구들에게 병점에서 만나자고 올린 카톡을 보고 착각했던 것이다. 카페에서 승호는 우리 쪽으로 합류하였다. 찬금이가 걷는 모습을 봤는데 사뿐사뿐 걸었단다. 춤을 추는 사람의 발걸음이란다. 승호가 알아보았단다. 승호도 춤꾼이란다. 참석하지 않은 현석도 부산에서까지 알아주는 춤꾼이란다. 칠순 때 찬금 승호 흥복 현석 네 명이 무대에 선다면 멋진 시간이 될 것이다. 우리 모두 춤을 배워보는 시간을 가져도 좋을 것이다.
맛있게 음식을 먹는 모습, 먹는 소리, 웃는 얼굴, 웃음소리, 신나는 이야기 소리, 귀 기울여 주는 모습, 다 다 정겹다. 편하다. 초등학교 동창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다시 한번 친구들 이름을 불러본다.
찬희야 영수야 춘봉아 옥희야 경자야 장식아 병욱아 흥복아 세미야 찬금아 효숙아 병환아 종덕아 혜숙아 창숙아 병철아 승호야 그리고 찬미야
쏟아지는 비를 뚫고 먼길 마다 않고 달려온 친구들아. 그리운 고향과 그리운 친구들아. 그냥 그대로도 좋아. 이름을 부르고 불러주는 것만으로도 따스하고 정겨워. 두 번째 만남인데 화기애애 들썩들썩 야단법석 하하호호였지. 쏟아지는 비만큼 우리의 우정도 쏟아져 내렸구먼. 건조해지고 있는 칠십 나이에 마음이 촉촉해져서 집으로 돌아왔네. 참석한 친구들은 모두 건강하다는 증거일 거야. 이보다 감사한 일은 없지.
이것저것 혼자서 씩씩하게 잘 해내는 살림꾼 세미, 전체적인 계획을 꼼꼼하게 정리해 온 병욱, 이 일 저 일 다 제쳐두고 참석해 준 모든 친구들 덕분에 이번 모임이 화기애애했지. 왁자지껄 즐거웠지. 모두모두 감사해 감사해! 건강하자!! 아자아자!!!
입으로 수다는 떨지 못하지만 글로 풀어낸 내 수다 어때? 진짜 수다쟁이는 병철이가 아니라 나인거 같아 그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