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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방

딱 앵두 세 개

작성자chanmi|작성시간15.12.15|조회수237 목록 댓글 2

 

 

 

앵두나무. 그렇다 고향집 건넌방 아궁이와 대여섯 발자국 떨어진 바로 옆쪽에 앵두나무 네다섯 그루가 병풍처럼 자리 잡고 있었다. 봄이면 뒤뜰을 흰 꽃으로 물들였다가는 어느 사이인가 붉은 꽃, 앵두로 물들였다. 학교에서 돌아와 심심해하던 나를 제일 먼저 손짓하여 불러댔다. 동네에 앵두나무가 두 집 밖에 없던터라 어린 우리에게 앵두는 귀한 먹거리였다. 앵두가 붉게 익어갈때쯤이면 동네 조무래기들이 침을 흘리며 내 집 대문간을 기웃거렸다. 자신의 어머니나 아버지가 볼일이 있어 우리집 대문간을 들어설 때는 재빨리 따라서 들어와 앵두나무 곁으로 다가섰다. 여럿이서 어울려 마당에서 놀다가는  누가 먼저랄것도 없이 어느틈에 주춤주춤 앵두나무 곁으로 끼어들기도 했다. 딱 한 주먹씩만 따 가는 거다. 그 작은 주먹으로 한 주먹이라. 열개는 되려나. 나는 욕심이 많고 인색한 아이였다.

 

내가 오십 중반을 넘어섰던 어느 날 낱선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영란이라고 했다.그 반가움을 어떻게 표현하랴. 고향 마을에 들어선 기분이었다. 영란이가 저만치서 배시시웃으며 달려오는 것 같았다. 내가 중학생이 되어 수원에서 학교를 다니게 되면서 얼굴을 제대로 보지 못하였으니 사십여년이 흘러간 셈인데도 말이다. 나보다 세살이 어렸고 마르고  늘 눈에 웃음기가 감돌고 곱상했다. 부모님이 서울 오빠집이나 친척집을 방문하여 하룻밤이라도 주무시고 오는 날에는 혼자서는 무서웠으므로 그녀를 우리 집으로 불렀다. 함께 잠을 잤다. 순하고 착해서 나를 언니라고 부르며 따랐다. 그래서였을까. 고향 사람들 중에 내가 늘 생각나고 보고 싶었단다. 수소문하여 전화번호를 알아냈단다. 

 

그녀도 우리집 대문간을 기웃거리던 아이중의 하나였다.  산 중턱 윗쪽에 그녀 집이 자리잡고 있어 내집 뜰이 훤히 내려다보였다. 주렁주렁 감이 익어가고 살구가 익어가고 앵두가 익어가는 우리집 풍성한 뒤뜰을 내려다보며 침을 흘린 날이 많았단다. '언니 정말 부러웠다우 얼마나 먹고 싶었다구' 오십이 넘었을 그녀의 전화 목소리에서 어릴 적 그녀가 튀어나왔다. 그녀 손을 잡고 앵두나무로 뛰어가 실컷 앵두를 따 먹게 하고 싶었다. 미안하다 그때 많이 나눠주지 못해서 그녀가 열살 계집아이처럼 까르르 웃었다.

 

먹는 것에 유달리 욕심이 많던 나였다. 그래서인지 다른 아이들에 비해서 통통했다. 앵두를 따 먹는 일을 누구보다도 잘했고 좋아했다. 앵두로 배를 채우기도 했는데 내가 제일 싫어하는 송충이가 앵두나무에는 가지마다 붙어 살았다. 얼룩덜룩하면서 거무튀튀한 무늬에 털이 부숭부숭한 긴 몸뚱이로  가지마다 슬금슬금 움직여가는 모양새를 상상해보라. 지금도 온 몸이 근질거려온다. 

 

어느 늦은 오후, 앵두를 배불리 따 먹은 내가 기분이 좋아 마당을 어슬렁거리고 있었는데 왼쪽 배 부분이 근질근질한 것이었다. 손을 집어넣어 무심코 긁는 순간, 그 뭉클하면서도 꺼끌꺼끌한 기분 나쁜 느낌이 감지되었다. 정신없이 앵두를 따 먹는 동안 슬며시 내 몸으로 기어들어온 모양이었다. 나는 천둥 같은 소리를 지르며 부엌으로 달려갔고 엄마가 뛰어나오셨다. 잠자던 누렁이가 벌떡 일어났고 지나가던 옆집 아주머니가 무슨 일이냐며 쏜살같이 들어오셨다. 내 앞쪽 옷을 뒤집어보니 아니나다를까. 송충이 한 마리가 툭 떨어졌다. 한동안 앵두나무를 멀리했지만 그렇다고 그 맛난 앵두를 어찌 포기하랴.

 

앵두나무 옆에 건넌방 아궁이에는 가마솥이 걸려있었다. 그 가마솥에서는 우리의 간식거리가 철따라 몽실몽실 김을 올리며 익었다. 흰 앵두꽃이 만발한 봄날에는 쌉싸름한 쑥개떡과 팥이 잔뜩 들어있어 달달한 찐빵이, 앵두가 한창일 때는 포슬포슬한 감자가, 앵두가 끝나갈 무렵에는 옥수수가, 가을에는 고구마의  구수한 냄새들이 집안 구석구석으로 돌아다녔다. 온전히 할머니 몫이었다가 할머니가 힘이 줄어들면서 나중에는 어머니 몫이 되었다. 

 

앵두나무를 생각하면 당연히 가마솥이 생각나고 할머니와 어머니 냄새도 따라온다. 학교에서 돌아와 가방을 던져놓자마자  그 달콤한 것들을 빠른 걸음으로 마루 위에 놓아주시던 그분들의 목소리도 들려온다. '우리 강아지 왔냐? 얼굴이 넙적하고 못생긴 나를 달덩이 같다고 칭찬하시던 할머니 목소리다.' 막내 왔냐' 사십이 다 되어 낳은 자식이라고 날 무조건 애처롭게 여기던 어머니 목소리다. 내게 앵두나무는 어머니요 할머니다.

 

내 나이 오십이 넘어 텃밭이 생겼고 고향집을 그리워하며 앵두나무를 심었다. 고향을 심었다. 눈길이 저절로 그쪽으로 향하였다. 처음 일이년 동안 앵두나무는 자리를 잡느라 열매를 맺지 못했으나  4년째인 올해 나무도 제법 자라났고 꽃이 무서울만큼 왕성하게 피었다. 더 놀라운 것은 나무줄기를 빙빙 돌아가며 꽃이 핀 자리마다 앵두가 빠짐없이 맺혔다는 것이다. 저 많은 앵두를 어찌 길러낼까 염려가 앞섰다. 다음과 같은 글이 탄생되었다. 

 

앵두나무를 사랑하여서
  화정

 

꽃은 어이 그리도 환장하게 피웠는고
열매는 어이 그리도 욕심스레 맺었는고

제 몸뚱이 버석해지도록 젖 먹인다해도
못 당할 형편이구나 쯧쯧
아이만 줄줄이 늘어나던
흙집 방 한 칸 분이네 보며 할머니도 그러셨다

쯧쯧
사람은 먹을 것 가지고 태어난다지만
분이엄마 손가락 뭉툭해지도록 일했다
서울 부잣집에서 이쁜 분이 줄기차게 탐내도
끝까지 손사래쳤다

보란듯이 길러 시집보냈다
나무는 제 힘만큼만 자식 거느린다는데
그렇다면  앵두나무
분이같이 어여쁜 앵두 절반을
억지로 떼내야 한다는 말
사람이 아닌 나무라지만
앵두나무 쪽이 어둑하다

 

걱정하던 일이 일어난건가. 앵두가 우르르 떨어져 바닥에  나뒹굴었다.  제 힘에 맞게 스스로 앵두를 솎아내는 줄로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앵두는 자꾸 떨어지고 나무에 붙어있던 앵두까지 말라가고 있었다. '앵두나무가 이상해 열매가 심각하게 줄어드는데' 내 말을 처음에는 건성으로 듣던 남편이었다. 결국 앵두나무 가지가 여기저기 말라가고 앵두가 열 개 정도가 남았을 무렵에야 잘못을 저지른 학생처럼 쭈뼛쭈뼛 그가 이실직고를 하였다. 앵두나무를 비롯하여 살구나무와 매실나무에 거름을 듬뿍, 아주 듬뿍 주었다는 것이다. 물론 튼실한 열매를 위해서 말이다. 더구나 나무 가까이에 거름을 주었다는것이다. '넘치면 못 쓴다. 욕심이 화를 부른다 는 옛 어른들의 말씀이 어디 틀린 적이 있던가. 

 

사람도 마찬가지다. 넘친다 싶으면 변고가 일어난다. 우리나라 GDP가 33000$를 넘어서고 먹고사는 일이 풍족해서인가. 먹는게 부실했던  어릴적에는 대부분의 아이들이 말라있었는데  요즈음 아이들은 먹고싶은만큼 잘 먹어서인가. 학교 운동장을 들여다보면 비정상적인 몸무게를 가진 아이들이 한둘이 아니다. 신나게 달리고 뛰어놀지 못하고 어슬렁거리고 있다. 몸무게가 늘어나니 운동은 귀찮아지고 몸이 불어나니 점점 먹는 양은  늘어난다. 악순환의 반복이다. 어른들도 마찬가지다. 성인병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병원마다 줄을 잇는다. 

 

 이번 일을 계기로  그는  과일나무에 거름을 조심해서 주겠지만,  앵두가 없는 앵두나무는 얼마나 쓸쓸한가. 자식을 잃은 어미처럼 헐겁다. 마주치기가 싫은 나는 일부러 외면을 해 왔다. 그러던 중 어느날 언뜻 스치는 눈길에 선명한 빨간 빛깔과 눈이 딱 마주쳤다. 앵두나무쪽이었다. 앵두가? 그럴리가? 가까이 다가가보니 앵두였다. 영롱한 빨간빛으로 멀리서도 눈에 띄었던 것이다.

 

'앵두가 익었네 한 개 두 개 세 개‘ 어린아이처럼 손가락으로 짚어가며 세어보았다. 보고 싶은 얼굴을 만난 듯 고향을 만난 듯 나는 옆에서 보고 위에서 보고 신기해하며 사진으로 남겼다. 참으로 빛깔이 고왔고 윤기가 흘렀다. 냉큼 따서 맛을 보려다가 그만두었다. 딱 앵두 세 개!! 과하면 모자람만 못하다 는 교훈을 두고두고 되새겨야 하지 않겠는가. 그리운 고향을 두고두고  하루라도 더 바라봐야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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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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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흑장미 | 작성시간 15.12.15 그래!그래!딱앵두세개만따서먹으렴
    과하지도부족함도없게
    적당하게둥글게살아가는인생인것을ㅡㅡ
    난중용이란단어을마음에새길거양ᆞ
    내친구찬미야♡♡
    글솜씨가최고인네가내친구란게♡♡
    장랑스러워♡♡




  • 답댓글 작성자chanmi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6.01.06 ㅋ 고맙다
    우리 신랑 재미있지 않니? 거름을 그렇게나 많이 주다니!
    귀엽지 않니? 앵두가 탐스럽게 익어갈거라고 믿다니!
    농사 전문가라고 자칭 큰소리치거든. 후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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