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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랑 풍경화

작성자chanmi|작성시간26.06.10|조회수26 목록 댓글 0

https://youtu.be/zWkdzi75Log?si=uVpW1w756vAKYp0o

 

안녕하세요 화정입니다

소박한 제 시와수필낭독방을 찾아와주시고 경청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잠시나마 참외가 노랗게 익어가는 원두막에 앉아 계시는 기분 되시면 좋겠습니다. 이번 백서른다섯번째 글은 노랑 풍경화 라는 수필입니다. 2011년도에 쓴 글입니다. 텃밭에 참외를 심었는데요. 지금 생각해 봐도 아깝다는 생각이 듭니다. 들어보세요

 

 

노랑 풍경화

 

사월하고도 중순쯤이면 여기저기 모종을 파는 곳이 많아진다. 꽃모종뿐만 아니라 텃밭에 심을 수 있는 상추나 쑥갓 호박 등등 다양하다. 옹기종기 모여있는 모종들 앞에서, 텃밭을 가꾸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한참을 서 있기 마련이다. 토마토 모종 앞에서는 주렁주렁 매달린 붉은 토마토를 상상하고, 고추모종 앞에서는 풋고추의 연하고 향긋한 맛을 떠올리고, 상추 모종 앞에서는 삼겹살을 상상하게 된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했다. 텃밭을 시작한 지 삼사 년 지났을 무렵 우리는 참외 모종을 서너 포기 샀다. 감히 참외가 노랗게 익어가는 상상을 하면서 말이다. 남편은 직장에 다니고 있었으므로 주말과 휴일에만 갈 수 있었다. 집안에 일이 생기거나 친구들과의 모임이 있으면 그나마도 갈 수 없었다. 지금처럼 무엇이든 공부할 수 있는 유튜브도 무엇이든 물어보면 대답해 주는 AI도 없었다. 모종을 심어놓고 지나가는 행인처럼 어쩌다 들여다보았던 것이다. 참외가 서너 개 열렸는데 그나마 때를 놓쳐서 썩어 있었다. 당연한 결과였다. 할 일이 없으면 농사나 지으라는 뭇 사람들의 말은 얼마나 근거 없는 말인가. 매일 들여다봐 주어도 될까 말까 한 것이 농사다.

 

참외 모종을 외면한 채 육칠 년이 지나갔다. 형부의 퇴직과 함께 서울 생활을 접고 익산으로 내려가신 둘째 언니는 텃밭 농사를 짓고 계셨다. 참외 먹으러 와라 어찌나 잘 열리는지 어찌나 달던지 참외는 심어놓기만 하면 열려야. 언니는 초보 농사꾼이 아니었다. 결혼하기 전까지 부모님의 농사일에 한 몫 단단히 하셨던 분이다. 심어놓기만 하면 열려야 그 말씀에 혹해서 참외 모종 네 개를 샀다. 남편도 퇴직을 했고 시간이 여유로웠으므로 인터넷에서 참외를 기르는 방법을 꼼꼼히 공부했다. 어미 줄기는 3개 정도를 만들고 그 어미 줄기의 8마디쯤을 잘라내 아들 줄기를 키우고 그 아들 줄기 8마디쯤을 잘라내 손자 줄기를 키워야 손자 줄기에 참외가 열린단다. 그러면 참외 모종 하나에서 30개 참외를 딸 수 있게 된단다. 모종이 네 포기이니 120개 참외를 딸 수 있다는 강론이었다. 기다려봐 그 목소리는 자신만만하였다.

 

그럴까? 정말 그럴까? 의심이 많은 나였다. 남편은 젊을 때는 있는 그대로를 말하던 사람이었는데 농사를 지으면서 부풀려서 말하는 습성이 생겼다. 오이를 가마니로 따주겠다고 또는 마늘을 주먹만하게 길러낼 것이라 큰소리쳤지만 언감생심이었다. 참외 10개만 따 먹어도 나는 대만족인데, 백 개가 넘는 참외가 익어가는 참외밭이라! 상상해 보았다. 누가 다 먹지? 양평 시장 귀통이에 자리를 마련하고 앉아 참외를 팔아야겠네. 참외를 따러 오라고 미리 여기저기 소문이라도 내야겠네. 참외가 백 이십개? 믿을 수 없는 일이었지만 사실 믿지는 않았지만 믿고 싶었다. 아버지의 노랑 참외밭이 떠올랐다.

 

아버지의 참외밭은 넓었다. 좋은 것들을 골라 마차에 가득 실어 삼십리길 장에 내다 파셨다. 칠남매의 월사금이 되었다. 여름방학이면 우리 자매들은 번갈아 원두막에서 참외밭을 지켰다. 방학이면 사촌들까지 합세해서 왁자지껄하게 원두막을 지켰다. 원두막에서 내려다보면 노란 참외가 즐비했다. 노랑 풍경화였다. 놀다가 배가 고프거나 심심하면 한 개 뚝 따서 옷에 쓱쓱 문질러 와삭와삭 베어 먹었다. 참외 꼭지가 불룩한 배꼽참외는 특히 더 단맛이 났다. 일부러 골라서 따 먹을 정도였다.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던 날이 생각난다. 사촌들과 원두막에 앉아 사촌오빠의 드라큐라 영화 이야기를 듣고 있을 때 원두막이 스르르륵 무너졌다. 기둥 아래쪽에 물이 들어가 흙이 말랑말랑해졌기 때문이었다. 우리들은 신나는 모험이라도 한 듯 침을 튀겨가며 이야기했다. 아버지는 원두막을 다시 세우느라 비지땀을 흘리셨다.

 

아버지만큼이나 남편은 참외밭에 땀을 쏟았다. 아버지가 가끔 가늘고 긴 막대기를 수평으로 잡고 휘둘러 참외밭을 돌아다니며 참외 순들을 잘라내는 것을 보아온 나는 남편에게 알려주었다. 남편도 가느다란 막대기를 구해와서 순자르기를 하였다. 특별하게 만든 거름, 오줌과 쌀뜨물과 막걸리를 섞어 일 년 동안 발효시킨 것을 모종 둘레를 파고 부어주었는데 노르끼리하던 잎사귀가 시커먼 초록빛으로 변했다. 마술이었다. 금시 참외가 열릴 것 같은 그 건강한 빛깔은 우리에게 희망을 주었고 그 희망은 빗나가지 않았다. 어느 날 참외가 예순일곱 개나 맺혔다고 남편이 소리를 쳤다. 참외가 하도 많이 맺혀 신기해서 세어본 모양이었다. 참외가? 정말? 나는 참외밭으로 뛰어갔다. 아닌게 아니라 여기저기 저기여기 참외 잎사귀를 젖히면 참외가 맺혀 있었다. 노랑 참외밭이 눈앞에서 어른거렸다.

 

농사를 지어본 사람은 누구나 안다. 열매가 맺혔다고 해서 다 튼실하게 자라나지 않는다. 오이도 그랬다. 마디마디마다 작고 어여쁘게 맺힌 오이는 연푸른빛을 띤 아가였다. 솜털까지 보송보하면서 작고 귀여웠는데 일주일 뒤 예상은 빗나갔다. 물론 계속 비가 내리기는 했다. 그래도 그렇지 다 썩어버리고 딱 한 개 구부정하게 자라났다. 농사를 지을수록 농부를 우러러보게 된다. 경험이 많아질수록 쉬워져야 하는데 어려워진다. 씨를 뿌리거나 모종을 심고 솎아 내고 거름을 주는 기본적인 일도 일이지만 매년 달라지는 자연환경 조건을 극복하는 일은 어려웠다. 특히 병충해는 독한 약을 뿌리지 않으면 당해낼 재간이 없다. 무농약 무공해 라는 말에 고개를 갸웃거리게 된다.

 

우리는 매주 참외밭으로 먼저 달려갔다. 얼마나 컸을까? 얼마나 익었을까? 2011년8월7일 일요일. 그날은 참외가 제법 굵직해져서 뜨거운 태양볕에 노랗게 익어가는 시기였다. 당연히 노랑 참외밭을 상상하였다. 참외밭에 도착하자마자 우리 가슴이 쿵 소리를 내며 내려앉았다. 맺혔다고 다 잘 자라나지는 않는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이런 일이 벌어질 걸 짐작이나 했겠는가. 지난번에 잎사귀에 없는 듯 있던 누런 빛깔! 그것이 전체로 퍼져있었다. 초록 잎사귀가 거의 보이지 않았다. 노랗게 익어가는 참외가 듬성듬성 보였으나 대부분은 시들고 있었다. 노균병이라 했다. 초기에는 잎 앞면에 황색 반점이 나타나고, 진행되면 잎 뒷면에 곰팡이가 보이며 잎이 말라 죽는 병이었다. 잎사귀가 마르니 참외는 익기도 전에 시들기 마련. 미리미리 방제를 해야 한단다. 일단 시작이 되면 막을 수 없단다. 에구에구에구 속울음이 나왔다.

 

참외 모종을 심어놓고 우리는 밤마다 노랑 물감으로 범벅인 참외밭을 그리지 않았는가. 아버지처럼 언덕배기에 굵은 기둥으로 원두막을 세우고 짚으로 지붕을 덮고 매일 사람들을 불러 앉히지 않았는가. 어머니는 참외농사 잘 지었구나 남편 등을 두드리셨고 아버지 너털웃음은 민들레 홀씨처럼 참외 밭둑을 날아다니지 않았는가. 깨어나면 몸에서 단내가 풍겨 나오고 참외의 노랑 물감이 내 손에서 흘러내리는 둣 하지 않았는가. 열흘을 넘기지 못하였다. 잎새는 누렇게 오그라들고 참외는 익지 못하고 시들었다.

 

하룻밤 꿈일 수도, 한 편 인생일 수도 있는, 노랑 풍경화 한 점 그렸다가 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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