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 견해(正見)의 뜻과 수행법 =성도절을 맞아 돌아보는 팔정도2

바른 견해[正見] 의 뜻과 수행법

바른 견해[正見] 의 뜻과 수행법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오늘은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얻으신 후
첫번째로 행하신 대중 법문의 결론 부분인 여덟 가지 바른 길(入正道)의
첫 번째인 정견(正見) 즉 바른 견해에 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부처님께서 깨달으신 뒤 설하신 첫 대중 법문은
중생으로서 누구나 겪는 고통, 즉 고성제(苦聖諦),
고통의 원인을 말하는 집성제(集聖諦),
고통의 소멸을 설하는 멸성제(滅聖諦),
고통을 소멸하는 방법을 설하는 도성제(道聖諦)의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라는 뜻의 4성제(四聖諦)입니다.
정견은 바로 이 4성제의 네 번째인 도성제
즉 8정도의 첫 번째에 해당하는 수행의 방법에 관한 방법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정견이란 무엇이고,
어떻게 정견을 수행해야 하는지,
그 수행을 하면 어떤 결과가 오는지에 관해서
여러분과 함께 진지하게 공부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바른 견해의 힘 여러분과 함께 부처님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며 읽도록 하겠습니다.
합장하시고 한 줄씩 따라 하십시요.
“더러운 법 가까이 하지 말고
“더러운 법 가까이 하지 말고
함부로 굴거나 게으르지 말며
바르지 않은 견해를 익히지 말지니
그것들은 이 세상을 자라게 하노라.
비록 이 세상에 살더라도
바른 견해 더욱 늘이면
백천 번 태어나더라도 결코 악취(惡趣)에는 떨어지지 않느니라.”(나무아미타불)
이 말씀은 부처님께서 마치 지금 이 순간에도 살아 숨쉬는 것 같은
체취가 느껴지도록 현실적인 법문을 설하신
『잡아함경(雜阿含經)』제 28권 788경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이 사바 세계가 고통을 참으며 사는 곳,
고통이 바다처럼 많은 곳이라는 의미가 있는데
왜 그런지가 앞 부분에 나옵니다.
사바세계에 사는 중생 즉 우리 범부들이
더러운 법을 가까이 하고, 함부로 굴거나 게으르게 살며,
바르지 않은 견해를 바른 것으로 착각하거나
그 자체도 알지 못하므로써 바르지 않은 견해를 익히게 되면
그 결과가 이 세상을 자라게 한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은 고통의 세상이니
이 세상을 자라게 한다는 것은 바로 고통을 자라게 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비록 고통에 가득 차서 매우 힘들면서도
그 고통을 참아 내며 살아야 하는 이 세상에 살더라도
바른 견해 즉 정견을 더욱 늘이면 백천번 다시 태어나더라도
결코 나쁜 세상인 악취에는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바른 견해가 무엇인지 알고, 바른 견해를 늘리는 수행을 하면
악취에는 떨어지지 않는다는 말 속에
이미 우리가 오늘 배울 내용이 다 들어 있습니다.
중생들이 사는 세상을 두 단계로 나누면
악취와 선취(善趣)로 나뉘고,
여섯 단계로 나누면
악취는 고통스러운 세상인 지옥(地獄),
배고픔으로 가득찬 세상인 아귀(餓鬼),
어리석음으로 가득찬 세상인 축생(畜生)의 셋으로 나뉘고,
선취 역시 온통 싸움판의 세상인 아수라(阿修羅),
고통을 참으며 사는 세상인 인간(人間),
복락을 누리는 세상인 천상(天上)의 셋으로 나뉘는데
악취란 그 중 앞의 지옥, 아귀, 축생을 말하니
악취에 나지 않는 다는 것은 적어도 아수라나 인간 또는 천상에 태어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바른 견해란 어떤 것일까?
그러면, 바른 견해는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바른 견해란 어떤 것일까?
그러면, 바른 견해는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역시 부처님의 말씀을 먼저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합장하시고 경청하십시요.
“어떤 것이 바른 견해인가?
“어떤 것이 바른 견해인가?
바른 견해에는 두가지가 있다.
하나는 세속의 바른 견해로
번뇌(漏)와 집착(取)이 있고 선취(善趣)로 향하게 한다.
다른 하나는 세속을 벗어난 성현의 견해로
번뇌와 집착이 없고
괴로움을 바르게 다하여 괴로움의 끝으로 향하게 한다.”(나무 아미타불)
이 말씀 역시 잡아함제 28권 중 785경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 역시 잡아함제 28권 중 785경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바른 견해는 종교의 구분으로 말하면
깨달음을 얻어 부처님이 되게 하는 불교의 가르침을 말합니다.
부처님 당시 인도에는 브라흐만교와 육사외도(六師外道)등
대표적인 외도와 함께 세세하게는 5종 외도가 있었고,
대표적으로는 16종 외도가 있었는데
그들의 가르침을 외도사견(外道四見)이라 하여
그릇된 견해(邪見)의 대표적인 것으로 보았습니다.
그릇된 견해를 극복하고 중생들에게 안락을 주고
행자들이 그 견해에 따라 올바르게 수행하면
험난하고 고통스러운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 존재로 태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스스로 알게 되는 힘,
그것이 생기게 하는 견해,
그것을 바른 견해라고 하는 것입니다.
바른 견해에도 종류가 있다
그리고 이 정견에는 또 세속의 바른 견해가 있고,
세속을 벗어난 성현의 바른 견해가 있습니다.
우리가 보통 슬기롭다고 이야기하는 꾀에도
가벼운 것은 잔꾀라고 하지 않습니까?
옛날 어느 마을에
몸의 병을 치료하는 치료제가 가득하다고 소문난
깊은 강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그 강물 위에는 외나무 다리가 놓여 있었는데,
그 위에는 늙고 힘없는 호랑이 한 마리가 버티고 앉아서
그 다리를 지나가는 사람 중에서
몸이 성하지 않은 사람을 골라 잡아 먹었습니다.
눈이 나쁘고 힘이 모자라니 정상적인 사람은 잡아 먹지 못한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날 등이 굽은 사람, 눈이 하나 없는 사람, 다리 한 쪽이 짧은 사람이
다리를 지나 가려고 왔다가 그 사실을 알고는
서로의 꾀를 모으게 되었습니다.
자, 여러분도 생각해 보십시오.
어떻게 해야 그들이 잡아 먹히지 않고
다리를 건너 갈 수 있겠습니까?
흔히 생각하기를 세 명이 무등을 타거나
업어서 모자란 부분을 보충할 꾀를 내겠지만
그래도 다리나 팔, 눈 등의 숫자나 모양이
정상적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들은 이렇게 했다고 합니다.
그들은 이렇게 했다고 합니다.
등이 굽은 이가 처음에 땅에 쪼그리고 앉아
곧은 막대기로 줄을 그으면서 앉은 걸음으로 갑니다.
그러면 굽은 것인지, 구부린 것인지 모르겠지요?
그 뒤를 눈 하나 없는 이가 따라 가면서
손으로 없는 눈을 가리고서
‘왼쪽으로 비뚤어졌군, 아니 바른 쪽으로~’하고 지시하면서 가면
눈이 없는지 있는 눈을 가린 것인지 알 수 없겠지요?
그런 다음 그 뒤로 다리 하나 짧은 이가
앞 사람이 그은 줄을 한 발로 지우면서
‘다 큰 사람들이 왠 장난들이여’하면서 비척비척 걸어 가면
다리 하나가 짧다는 사실을 알 수 없겠지요?
이렇게 업어서 합체( 合體)를 해야 한다는 견해와
있는 그대로에서 바름을 찾아 내야 한다는 견해가 다른 것이듯
정견과 사견이 다르고,
정견에도 세속적인 정견과 성스러운 정견이 다른 것입니다.
세속의 바른 견해란?
그러면 세속의 바른 견해는 무엇일까요?
세속의 바른 견해란?
그러면 세속의 바른 견해는 무엇일까요?
역시 경전을 통해 알아보겠습니다.
“번뇌와 집착이 있고 선취로 향하게 하는 세속의 바른 견해란 어떤 것인가?
“번뇌와 집착이 있고 선취로 향하게 하는 세속의 바른 견해란 어떤 것인가?
보시(布施)도 있고, 주장(說)도 있으며, 재(齋)도 있고,
선행과 악행도 있으며, 선악행에 대한 과보(果報)도 있고,
이 세상과 저 세상도 있으며, 부모도 있고 중생의 태어남도 있으며,
세상에는 후세의 생명을 받지 않게 된 아라한도 있음을 아는 것을 일러
세속의 바른 견해라 한다.”(나무 아미타불)
역시 잡아함제 28권 중 785경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역시 잡아함제 28권 중 785경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잡아함은 여러권의 작은 분량의 경전이 모인 것인데
785번째의 경이란 뜻입니다.
세속적인 바른 견해는 구분하자면
보시, 주장, 재, 선행, 악행이 있다고 한 말씀은
바로 우리가 하는 행위 즉 업(業)의 소유자로서의 올바른 견해라 할 수 있고,
선악행에 대한 과보도 있다고 한 말씀은
업을 모태로 해서 모든 것을 만들어 내는 이의 올바른 견해에 해당합니다.
또, 이 세상, 저 세상, 부모, 중생의 태어남이 있다는 말씀은
업을 친지(親知)로 하는 자의 올바른 견해를 말하는 것이며,
아라한(阿羅漢)이 있음을 아는 것은
업을 의지처로 하는 자의 바른 견해를 말하는 것입니다.
다 좋은 말씀인 것 같은데 굳이 세속적인 정견이라고 구분한 까닭이 무엇일까요?
그것을 알기 위해 성현의 바른 견해 즉 성스러운 바른 견해를 알아보겠습니다.
성스러운 바른 견해란?
“번뇌와 집착이 없고, 괴로움을 바르게 다하여
성스러운 바른 견해란?
“번뇌와 집착이 없고, 괴로움을 바르게 다하여
괴로움이 끝으로 향하게 하는
세속을 벗어난 성현의 바른 견해란 어떤 것인가?
이른바 불제자가 괴로움의 범위에 관한 진리(苦聖諦)를 있는 그대로 통찰하고,
괴로움의 원인에 대한 진리(集聖諦),
괴로움의 소멸에 대한 진리(滅聖諦),
괴로움의 소멸을 가져오는 방법의 진리(道聖諦)를 있는 그대로 통찰하여,
번뇌가 없는 사유를 따라
가르침을 선택하고, 분석하고, 추구하며, 깨닫는 인식력(覺知)과 지혜(智慧)로 관찰하고
불성을 개발하며 깨닫는 것(開覺)을 일러
성현의 바른 견해라 한다.”(나무 아미타불)
역시 잡아함제 28권 785경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역시 잡아함제 28권 785경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성현의 바른 견해, 성스러운 바른 견해는 무엇입니까?
바로 4성제를 바르게 아는 견해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4성제는 앞에서 말했듯이 부처님께서 행하신 첫 법문이며,
중생들이 부처님 자신처럼 될수 있는 수행법을 일러주신
가르침의 모든 것이라 할 수 있는 중요한 법문입니다.
그런데, 역시 부처님의 수행 차례(차제) 법문인
37조도품(三十七助道品)에 8정도만 들어가고
4성제가 빠진 것은 바로 이 성스러운 정견이 사성제를 바로 아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세속적인 바른 견해와 성스러운 바른 견해의 차이가 무엇입니까?
바로 세속적인 바른 견해는 비록 아수라, 인간, 천상의 선취로 향하게 하지만
번뇌와 집착이 있는 바른 견해이고,
성스러운 바른 견해는 번뇌와 집착이 없으며,
괴로움을 바르게 다하여 괴로움의 끝으로 향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아라한이 있다고 아는 것과 괴로움이 끝으로 가 아라한이 스스로 되는 것의 차이가 바로
이 세속적인 것과 성스러운 것의 차이가 아니겠습니까?
바른 견해를 지니는 과보
바른 견해가 무엇인지 분명하게 아셨지요?
바른 견해를 지니는 과보
바른 견해가 무엇인지 분명하게 아셨지요?
이제 알았으면 수행을 해야 하겠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늘 말씀하셨습니다.
“내 말을 잘 듣고 간직한 다음 조용한 곳에 홀로 앉아 골똘히 사유하라 (獨一靜處專精思惟)”
그렇습니다.
현재의 우리 몸이 세속에 있으므로
처음에는 세속적인 바른 견해라도 얻어서
보시도 행하고, 재도 베풀며, 어른을 공경하며,
선행도 베풀고 아라한 같은 성현이 있음을 굳게 믿고
바르게 살아야겠지만 궁극적으로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성스러운 바른 견해인 4성제를 하나하나 뜯어 놓고
바로 이해하는 노력을 하고 그 이해에 따라 생긴 지견(知見)을 가지고
지혜로운 방법으로 하나하나 자기화하는 노력을 꾸준히 전개해서
자기 안에 그릇된 소견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도록 하는
성스러운 바른 견해의 수행까지 나아가야 합니다.
《잡아함》 제 33권 p27경에
석가족의 재가 제자 마하남(摩訶男)에게 말씀하신 바에 의하면
‘4성제를 진실 그대로 아는 것을 일러 우바새가 지혜를 완전히 갖춘 것’이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경에 의하면 성스러운 견해가 마치 출가 수행자만의 것인 양 오해할 수 있지만
진실로 보면 출가, 재가 모두에게 꼭 필요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바른 견해를 가지면 무슨 좋은 일이 있기에
그토록 바른 견해를 강조하는 것일까요?
바른 견해를 지닌 과보가 무엇이라고 부처님께서 가르치셨는지 알아보겠습니다.
옛날에 나파(羅婆)라는 새가 매에게 잡혀 허공으로 끌려가며 울부짖었습니다.
‘내가 지각이 없어 이런 변을 당하는 구나.
쓸데없이 부모의 경계를 떠나 다른 곳에서 놀았기 때문에 이런 변을 당해.”
그러자, 매가 ‘내가 자유롭게 놀 경계가 어디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나파새는 밭 이랑 속에 있다고 대답했고,
교만스러운 매는 어디 한 번 그 자유로운 경계에 가 보라고 놓아주었습니다.
물론 날카로운 발톱으로 다시 잡을 수 있다는 자신감 때문이었습니다.
나파새는 안전한 곳으로 날아 내려가 매를 놀려대었습니다.
화가 난 매가 앞 뒤 가리지 않고 흙두덩이를 향해 날아갔다가 그만 크게 다쳐 죽고 말았습니다.
이 이야기는 《잡아함》제 24권 617경에 나오는 것으로
자신의 경계 안에서 놀때 안전함이 있다는 것을 일러 주는데
그것을 아는 것이 바른 견해입니다.
바른 견해는
바른 견해는
‘해가 뜨기 전에 밝은 모양이 먼저 나타나듯
괴로움을 바르게 다하여 괴로움의 끝에 이르기 전’에
꼭 나타나고 필요한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바른 견해를 지닌 사람은
“바른 견해를 지닌 사람은
몸으로 하는 행위와 입으로 하는 말을 그 견해와 같이 하여서
헤아리고, 바라며, 원하고, 행하는 것이 모두 그것을 따른다.
그리하여 사랑할 만하고 생각할 만하며 마음에 들 만한 결과를 얻게 된다.
왜냐하면 착한 견해가 곧 바른 견해인데,
왜냐하면 착한 견해가 곧 바른 견해인데,
바른 견해는 바른 사유(正思惟)·바른 말(正語)· 바른 행위(正業)·
바른 생활(正命)·바른 노력( 正精眞)·바른 집중(正念)·바른 선정(正定)을 일으키기 때문이다.”(나무 아미타불)
이 말씀은 《잡아함》 제 28권 788경에 나오며,
이 말씀은 《잡아함》 제 28권 788경에 나오며,
비유하면 사탕수수·벼·보리·포도의 씨를 심고
때때로 물을 주어 가꾸면 땅·물·불·바람의 맛을 다 흡수해
결국 단 맛을 내는 것과 같이
정견이라는 맛이 단 씨앗을 인(因)으로 하여
8정도의 나머지 일곱 가지를 이끌어 내서
사랑할 만하고, 생각할 만하며, 마음에 들 만한 결과
즉 괴로움의 끝이요,
다음 생을 받지 않으며,
깨달음을 얻는 데까지 이르게 됨을 알려 주고 있습니다.
이제 정견이 무엇인지 알고,
정견을 수행한 결과가 무엇인지도 알며,
어떻게 수행하는지도 알았으니
그 수행을 하고 안 하고는 바로 여러분에게 달렸습니다.
감사합니다.
참고 문헌
1. 잡아함경( 이연숙편 정선 아함경), 시공사
2. 초기 불교의 연기 사상( 전재성), 한국빠알리성전협회
3. 설법자료집( 대한불교진흥원)
4. 원시 불교의 실천 철학( 와 쓰지 데쓰로우 저, 안승준 역), 불교시대사
5. 불교 대 사전( 홍법원 편)
참고 문헌
1. 잡아함경( 이연숙편 정선 아함경), 시공사
2. 초기 불교의 연기 사상( 전재성), 한국빠알리성전협회
3. 설법자료집( 대한불교진흥원)
4. 원시 불교의 실천 철학( 와 쓰지 데쓰로우 저, 안승준 역), 불교시대사
5. 불교 대 사전( 홍법원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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