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요시인 남대우
박일/동시인
문집 ‘우리 동무’
제법 두툼한 책이었습니다. 소민호 선생이 건네주는 책이었습니다.
“이 분은 동요시인인데, ‘어린이글수레’에서 소개하고 싶어서요.”
나는 얼떨결에 책을 받았습니다. ‘우리 동무’라는 제목의 책이었습니다. 지은이는 남대우였습니다.
“잘 모르는 분인데….”
“그럴 겁니다. 읽어보시면 이 분의 가치를 아실 겁니다.”
책을 펼쳤습니다. 그의 삶의 모습이 표지 뒷면에 적혀있었습니다.
‘1913년 12월 16일 하동군 하동읍에서 출생. 1948년 10월 28일 36세를 일기로 별세’
여기까지 읽다가 한 시대를 앞서간 분이며, 요절(젊어서 돌아가심)하신 분이기에 알 수 없었던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931년 18세 때부터 아동문학에 뜻을 두시어 동화, 동요, 동시 등 아동문학에만 전념하셨으며, 1934년 1월 2일 동아일보 신춘현상문예 동화부문 “쥐와 고양이”로 당선되어,……동요로는 “눈놀이”, “고추먹고 팽팽 돌아라”, “바람”, “보리타작”, “산울림”, “박” 등 수백 편이 발표되었으며, 동시로는 “그리운 아버지”, “잠자는 애기”, “학교 가는 길”, “은구슬 금구슬”, “기다림” 등 수백 편이 조선중앙일보, 만선일보, 동아일보 등 신문과 아동문학 잡지에 빌표되었다.…’
1934년! 그 당시는 일제강점기 시대입니다. 일본은 1937년 2월부터 조선어(우리말) 말살 정책을 폈고, 이듬해부터 모든 학교에 우리말 사용을 금지하였으며, 우리의 이름도 일본식(창씨개명)으로 바꾸기도 했습니다. 아동문학은 물론 다른 문학도 우리말로 표현할 수 없었기 때문에 문학의 암흑기이거나 수난기라 불렀지요. 대부분의 문학가들은 우리말로 발표할 수 없었기 때문에 숨어서 글을 썼거나 해방 후(1945년)에 발표하곤 했습니다.
남대우 시인도 그 시대를 겪은 분입니다. 그런데도 이렇게 두툼한 문집의 글이 남아 있는 것은 얼마나 고마운지 몰랐습니다. 이만한 글이라면 그의 문학을 연구하기에 충분하니까요.
이 책은 1992년에 만들어졌습니다. 시인이 돌아가시고 40여 년이 지난 후에 만들어진 것입니다. 그러니까 유고집이지요. 발간사를 보니 ‘눈물로 얼룩진 원고지 묶음을 풀며…’라는 제목이었습니다. 아들(장남 남기욱)이 원고지 묶음을 가지고 다니다가 문학가 아버지를 잊지 못해 비로소 이 책을 발간한 사연이 적혀 있었습니다. 어쩌면 아버지의 꿈을 자식이 이루어 주었구나 생각하니 갑자기 가슴이 뭉클해지는 것이었습니다.
책은 3부로 엮었는데, 제1부는 동요시 모음, 제2부는 순순 동화 그리고 제3부는 현대시와 가사(노랫말)들이었습니다. 순수동화는 11편인데 비하여, 동요시(동시 포함)는 무려 284편이었습니다.
1920년대 우리나라에 발달한 문학은 동요시였습니다. 이 때 만들어진 동요 중에 지금도 부르는 것이 많이 있습니다. 방정환의 ‘형제별’, 윤극영의 ‘반달’, ‘설날, 한정동의 ‘따오기’ 이원수의 ‘고향의 봄’ 서덕출의 ‘봄편지’ 그리고 류지영의 ‘고드름’ 등. 동요시는 30년대는 물론 요즘도 발표되곤 하지요.
동요시가 발달한 가운데 현대 동시도 쓰기 시작한 것은 1930년대부터입니다. 이때부터 동시와 더불어 동요시도 발표되곤 합니다. 남대우 시인도 동요시와 함깨 동시도 지었습니다. 그러나 동요시가 훨씬 많았습니다.
동요시는 노랫말이 될 수 있는 글입니다. 그냥 동요라고도 합니다. 곡을 붙이면 곧장 노래가 됩니다. 이런 동요시는 리듬이 있는 게 특징입니다. 신현득 시인은 ‘동요곡을 위해서 창작되는 시’라고 정의했습니다. 그 리듬은 3ㆍ4조, 4ㆍ4조, 7ㆍ5조(6ㆍ5조, 8ㆍ5조) 등 글자수가 맞춰집니다. 그렇다고 꼭 그 리듬에 맞는 것은 아닙니다. 읽어보면 리듬이 생기거나, 리듬에 맞춰 읽혀지면 동요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 애기 방글방글/웃음지면은/엄마 아빠 걱정도/물러가고요/왼 집안에 반가운 빛이/떠-돕니다.
-‘우리 애기’ 1절
읽으면 벌써 리듬이 생기지요. 이 동요시의 대표리듬은 ‘엄마 아빠 걱정도(7) 물러가고요(5)’에서 보듯이 7ㆍ5조입니다. 이렇게 리듬을 타는 동요시를 많이 지었기 때문에 동요시인으로 부를 수 있습니다.
동시들도 보였습니다. 동시들이 동요시에 묻혀 있어 아쉬웠습니다. 동시들만 뽑아서 동시집을 만들면 훨씬 문학성이 높아졌을 것입니다.
꽁꽁 언 땅에/앙상한 나뭇가지.//그림자는 외로워 보인다/한결 쓸쓸해 보인다.
-‘겨울’ 전문
동화도 지었습니다. 주로 동물들을 의인화하여 지은 것이 많았습니다. ‘쥐와 고양이’, ‘염소와 토끼’, ‘벌과 호랑이’ 등 제목만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참외’, ‘우정’ 그리고 ‘하모니카’ 등 생활동화도 보였고요. 특히 ‘쥐와 고양이’는 우리 국민들의 단합된 힘만 있으면 고양이 같은 일본도 물리칠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한 우화입니다.
또한 어른들이 부를 수 있는 노랫말도 많이 지었습니다. 지금도 하동에 가면 두 개의 노래비가 서 있습니다. 하나는 섬진강 소공원이며, 하나는 평사리 공원입니다. 하동에서는 ‘하동포구’ 노래가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하동포구 팔십 리에 물새가 울고/하동포구 팔십 리에 달이 뜹니다./섬호정 댓돌 우에 시를 쓰는 사람은/어느 고향 떠나온 풍류랑인고
-‘하동포구’ 1절
어쩌면 남대우 시인은 아동문학가(동요시인)라는 이름보다 ‘하동포구’ 대중가요 작사자로 더 알려져 있습니다만, 이 글을 계기로 아동문학가로서 더 알려졌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문학가로서 정당한 평가나 대우도 받아야 할 것입니다.
비록 짧은 삶이었지만, 많은 작품이 남아 있다는 것은 그의 문학 열정이 어떠했는지를 알게 합니다. 그는 초등학교 교사(1942~1945)로도 근무합니다. 아마 동요시를 즐겨 부른 것도 아이들의 삶의 모습을 절실하게 표현하고 싶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동요시 세 편과 대표 동화 ‘쥐와 고양이’를 소개합니다.
동요시 세 편
우리 엄마
우리 엄마 손은 약손이라나
아픈 배 만지면 스르르 낫고
우리 엄마 손은 재주도 용해
고까옷 때때옷 잘도 만들지.
우리 엄마 젖은 꿀항아리야
언제나 먹어도 맛만 좋더라
우리 엄마 젖 쥐고 품 안에 안겨
코-코-잠들면 꿈나라 가지.
봄
새파란 어린 보리가
살며시 눈 이불을 걷고
사방에 귀를 기울여 봐도
그 심술쟁이
바람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새파란 어린 보리가
살며시 눈을 뜨고
머리 위를 쳐다봐도
그 험상궂은
구름송이 보이지 않는다.
불일폭포
불일폭포는 무지개다
하늘에 맞닿은 흰 무지개다
단풍이 우거진 벼랑 사이로
폭포는 떨어져 구슬이 된다.
은구슬 조롱조롱
머리에 이고
무지개 다리타고
하늘에 오를까.
동화 ‘쥐와 고양이’
어느 부잣집 고방에 설날 때 먹으려고 해 놓은 떡을 쥐 몇 마리가 맛있게 먹고 있었습니다.
벼 나락만 까먹던 끝에 맛있는 떡을 보게 되니 이게 웬 복덩어리야! 하면서 정신없이 배가 터지도록 먹고 있다가 쌀 고방 지키는 고양이에게 들켰습니다.
쥐들은 벌벌 떨면서 숨을 곳을 이 구멍 저 구멍 찾아 눈알을 반짝반짝하고 있는데, 고양이가 어슬렁어슬렁 와서 몇 마리는 잡지 못하고 조그마한 새끼 한 마리를 잡았습니다.
“요놈아, 나도 못 먹는 떡을 네가 먹어! 네 놈 때문에 내가 주인에게 얼마나 소리를 듣는지 아느냐? 당장 한 입에 너를 먹을 테야….”
하고 고양이는 쥐를 한입에 먹으려고 하였습니다.
“친절하시고 어진 고양이님 내가 죽기 전에 꼭 할 말이 있으니 그 말 한 마디만 들어주시고 잡수십시오.”
하고 벌벌 떨면서 쥐는 애걸하였습니다.
“무엇이 어째! 당장 죽을 놈이 말은 무슨 말이야?”
“아닙니다. 이 말씀만은 꼭 하고 죽어야 되겠으니 죽는 놈의 마지막 애걸이니 조금만 참으시고 이 말 한 마디만은 들어 주시고 잡수십시오.”
하고 쥐는 눈물을 흘리었습니다.
“그래 죽는 놈의 마지막 소원이니 들 주마. 무슨 말인가 해보아라.”
하고 물었던 몸뚱이를 내어 꼬랑이만 두 발로 붙잡고 있었습니다.
“친절하시고 어진 고양이님 대단히 고맙습니다. 할 말은 다른 것이 아니라 저…… 당신은 낯을 씻은 뒤에 나를 잡숫지 않으시렵니까? 점잖으시고 착한 고양이님들은 모두 무엇을 잡숫기 전에 낯을 씻고 먹던데요…….”
“옳지, 네 말이 옳구나. 내가 하마터면 큰 망신을 할 뻔했구나. 진작 그럼 그리 말하지…….”
하고 쥐의 달아난 꾀인 줄은 모르고 쥐 꼬랑지를 붙잡고 있던 발로 낯을 씻으려고 쥐를 잠깐 놓아 버렸습니다.
그러자 쥐는 이게 웬일이냐! 하며 뺑소니를 치면서
“하하하하, 참으로 당신은 점잖으신 고양이는 못 됩니다 그려.”
하고 따라가면서 놀려대었습니다.
고양이는 놀리고 가는 쥐를 잡으려고 하였으나 이미 쥐는 자기 집으로 달아나서 잡지 못하고 입맛만 짭짭 다시면서
“이 놈, 보자. 이다음에는 네 놈부터 먼저 잡아가지고 단번에 먹고 난 뒤에 낯을 씻을 것이다.”
하고 대단히 분해했습니다.
쥐는 죽을 뻔한 위험한 지경을 벗어나서 자기 집에 가니 여러 동문들과 아버지, 어머니들은 대단히 반가워하였습니다.
“나는 꼭 네가 즉은 줄만 알았다.”
하고 같이 떡을 먹던 동무가 말했습니다.
“그 고양이는 분이 나서 어찌 할 줄을 모르더라…….”
하고 달려온 쥐가 살아 나온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설날이 닥쳐오니 우리들도 맛있는 떡도 먹어야 되겠고 집에서 가만히 놀면서 맛있는 요리도 먹어야 될 것인데…….”
하고 큰 쥐가 말했습니다.
“그 부잣집 쌀 고방이 아니면 도저히 떡과 쌀을 가져올 수 없는데, 이번 일이 생기고 난 뒤라 고양이란 놈은 날마다 지키고 있을 것이니 어찌하면 좋겠는가?”
하고 다른 쥐가 걱정을 하였습니다.
“참으로 딱한 일이다. 이 동리에서 그 부잣집 고방에서 무엇을 훔쳐 먹지 못하면 무엇을 먹고 살아나갈까? 동리에 사는 사람은 많으나 부잣집을 빼어놓고는 모두 가난하여 자기 먹을 것도 없어서 굶주리곤 하는데 우리들 먹을 것이 있어야지…….”
하고 모두 걱정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면 이 동리를 떠나서 다른 동리로 가면 어떠하겠소?”
하고 조그마한 쥐가 말을 꺼냈습니다.
“이곳을 떠나서 어떤 곳을 가느냐 말이다. 암만 먹을 것이 없어도 정들어 살던 곳이 kt지, 가기는 어디로 가…….”
하고 불찬성을 하였습니다.
“우리 좋은 수가 있다. 그 고양이를 때려죽여 버리기로 하자.”
하고 큰 쥐가 말을 하였습니다.
이 소리를 묵묵히 듣고 있던 다른 쥐가
“어찌 그 놈을 때려죽일 수 있단 말이냐? 혹 떼러 갔다가 혹 붙여 가지고 오는 모양으로 도리어 우리가 잡혀 먹힐 텐데…….”
하고 반대를 하였습니다.
“그렇지 않다! 쥐가 한 마리씩 한 마리씩 그놈하고 싸웠다가는 우리 쥐 씨도 없게 된단 말이야……, 그러니…….”
“그러면 어떻게 한단 말이야…….”
“이렇게 해야 한다! 우리들이 하나씩 하나씩 떨어지지 말고 한데 뭉친단 말이야, 알았나?”
“그래 말을 해보아!”
“우리들이 한데 뭉쳐 가지고 그 놈을 때려눕히러간단 말이야…….”
“그리하면 그 놈 고양이를 때려눕힐 수 있을까?……”
“때려죽이고말고 우리들은 서로서로 마음을 합하고 한데 뭉치어 나뭇가지를 하나씩 손에 들고 그 놈을 때려눕히러 가자…….”
큰 쥐의 말을 들으니 그럴듯하였으므로 나머지 쥐들은 모두 그리하자고 약속을 하였습니다.
그런 후 며칠이 지난 어느 날 밤이었습니다. 쥐들은 제각기 손에 나뭇가지 하나씩 들고 한데 뭉치어 부잣집 쌀 고방으로 갔습니다.
쌀 고방에 가니 고양이란 지키고 있었습니다. 쥐들은 나무를 들고서 고양이에게 달려들었습니다.
고양이도 제 힘껏 쥐하고 싸웠으며 쥐들도 하나도 헤어지지 않고 한데 모여서 고양이와 싸웠습니다. 얼마 동안 고방 안에서 굉장하게 싸움이 계속되었습니다.
고양이는 한참 동안 쥐하고 싸우다가 나중에는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서로 합한 힘이란 참으로 놀란 만치 위대하여서 그 기운 세던 고양이도 쥐들에게 그만 지고 말았습니다. 고양이 한 마리를 당해내려고 쥐들도 말할 수 없이 애를 썼습니다.
그 후 쥐들은 고양이가 없어졌으므로 설떡하여 놓은 것이라든지 요리를 깜 없이 마음대로 훔쳐 가지고 설날에 잘 먹고 잘 놀았습니다. ('어린이 글수레' 09. 겨울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