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재 신채호는 1936년 뤼순감옥에서 옥사했지만, 유해가 곧바로 고향에 안장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당시 일본 당국이 유해의 국내 이송을 허락하지 않아 뤼순감옥 사형수·옥사자 공동묘지에 묻혔을 가능성이 크고, 2022년 보도에서도 그 점이 다시 확인되었습니다.
�고향 묘는 언제
신채호의 고향 묘소는 사후 한참 뒤에 조성된 추모·가묘 성격의 묘로 보는 것이 맞습니다. 즉, 1936년 순국 직후가 아니라 광복 이후에 고향인 충청권에서 선생을 기리는 형태로 묘가 마련되었다고 이해하면 됩니다.
�어떻게 가능했나
핵심은 실제 유해를 옮긴 것이 아니라, 묘를 새로 조성해 고향에서 추모 공간을 만든 것입니다. 뤼순감옥에 묻힌 유해는 오랫동안 정확한 위치가 확인되지 않았고, 그래서 고향 묘는 유해 안장보다 기념·봉안의 의미가 강했습니다.
�정리
신채호는 1936년 뤼순감옥에서 순국했습니다. �당시 유해는 일본 당국의 거부로 현지 공동묘지에 묻혔을 가능성이 큽니다.
�고향 묘는 이후 따로 조성된 추모용 묘로 보는 것이 맞습니다.
�신채호의 고향묘는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낭성면 귀래리 귀래길 249에 있는 청주 신채호 사당 및 묘소입니다. 이곳은 신채호가 어린 시절을 보낸 옛 집터로, 사당은 뒤편 산자락에 묘소가 붙어 있는 형태입니다. �
조성 시기는 한 번에 완성된 것이 아니라 단계적으로 이뤄졌습니다. 사당은 1960년 종중이 처음 세웠고, 1978년에 현재 위치로 옮겨 새로 지었으며, 1978~1979년 사이에 묘역을 정화하면서 묘소가 지금의 형태로 정비되었습니다. 또 1972년 사적비가 세워졌고, 1981년에는 영정이 봉안되었습니다. �
정리하면, “고향묘” 자체의 현재 형태는 1978~1979년 정화·정비 과정에서 완성된 것으로 보는 것이 가장 정확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