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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기도회강론

[사무엘하] 21. 압살롬의 죽음(삼하 17:24-18:18) - 박홍섭 목사

작성자카페지기 박장로|작성시간26.06.10|조회수25 목록 댓글 0

사무엘하 17:24-18:18  이에 다윗은 마하나임에 이르고 압살롬은 모든 이스라엘 사람과 함께 요단을 건너니라 25 압살롬이 아마사로 요압을 대신하여 군 지휘관으로 삼으니라 아마사는 이스라엘 사람 이드라라 하는 자의 아들이라 이드라가 나하스의 딸 아비갈과 동침하여 그를 낳았으며 아비갈은 요압의 어머니 스루야의 동생이더라 26 이에 이스라엘 무리와 압살롬이 길르앗 땅에 진 치니라 27 다윗이 마하나임에 이르렀을 때에 암몬 족속에게 속한 랍바 사람 나하스의 아들 소비와 로데발 사람 암미엘의 아들 마길과 로글림 길르앗 사람 바르실래가 28 침상과 대야와 질그릇과 밀과 보리와 밀가루와 볶은 곡식과 콩과 팥과 볶은 녹두와 29 꿀과 버터와 양과 치즈를 가져다가 다윗과 그와 함께 한 백성에게 먹게 하였으니 이는 그들 생각에 백성이 들에서 시장하고 곤하고 목마르겠다 함이더라 18:1 이에 다윗이 그와 함께 한 백성을 찾아가서 천부장과 백부장을 그들 위에 세우고 2 다윗이 그의 백성을 내보낼새 삼분의 일은 요압의 휘하에, 삼분의 일은 스루야의 아들 요압의 동생 아비새의 휘하게 넘기고 삼분의 일은 가드 사람 잇대의 휘하에 넘기고 왕이 백성에게 이르되 나도 반드시 너희와 함께 나가리라 하니 3 백성들이 이르되 왕은 나가지 마소서 우리가 도망할지라도 그들은 우리에게 마음을 쓰지 아니할 터이요 우리가 절반이나 죽을지라도 우리에게 마음을 쓰지 아니할 터이라 왕은 우리 만 명보다 중하시오니 왕은 성읍에 계시다가 우리를 도우심이 좋으니이다 하니라 4 왕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좋게 여기는 대로 내가 행하리라 하고 문 곁에 왕이 서매 모든 백성이 백 명씩 천 명씩 대를 지어 나가는지라 5 왕이 요압과 아비새와 잇대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나를 위하여 젊은 압살롬을 너그러이 대우하라 하니 왕이 압살롬을 위하여 모든 군지휘관에게 명령할 때에 백성들이 다 들으니라 6 이에 백성이 이스라엘을 치러 들로 나가서 에브라임 수풀에서 싸우더니 7 거기서 이스라엘 백성이 다윗의 부하들에게 패하매 그 날 그 곳에서 전사자가 많아 이만 명에 이르렀고 8 그 땅에서 사면으로 퍼져 싸웠으므로 그 날에 수풀에서 죽은 자가 칼에 죽은 자보다 많았더라 9 압살롬이 다윗의 부하들과 마주치니라 압살롬이 노새를 탔는데 그 노새가 큰 상수리나무 번성한 가지 아래로 지날 때에 압살롬의 머리가 그 상수리나무에 걸리매 그가 공중과 그 땅 사이에 달리고 그가 탔던 노새는 그 아래로 빠져나간지라 10 한 사람이 보고 요압에게 알려 이르되 내가 보니 압살롬이 상수리나무에 달렸나이다 하니 11 요압이 그 알린 사람에게 이르되 네가 보고 어찌하여 당장에 쳐서 땅에 떨어뜨리지 아니하였느냐 내가 네게 은 열 개와 띠 하나를 주었으리라 하는지라 12 그 사람이 요압에게 대답하되 내가 내 손에 은 천 개를 받는다 할지라도 나는 왕의 아들에게 손을 대지 아니하겠나이다 우리가 들었거니와 왕이 당신과 아비새와 잇대에게 명령하여 이르시기를 삼가 누구든지 젊은 압살롬을 해하지 말라 하셨나이다 13 아무 일도 왕 앞에는 숨길 수 없나니 내가 만일 거역하여 그의 생명을 해하였더라면 당신도 나를 대적하였으리이다 하니 14 요압이 이르되 나는 너와 같이 지체할 수 없다 하고 손에 작은 창 셋을 가지고 가서 상수리나무 가운데서 아직 살아 있는 압살롬의 심장을 찌르니 15 요압의 무기를 든 청년 열 명이 압살롬을 에워싸고 쳐죽이니라 16 요압이 나팔을 불어 백성들에게 그치게 하니 그들이 이스라엘을 추격하지 아니하고 돌아오니라 17 그들이 압살롬을 옮겨다가 수풀 가운데 큰 구멍에 그를 던지고 그 위에 큰 돌무더기를 쌓으니라 온 이스라엘 무리가 각기 장막으로 도망하니라 18 압살롬이 살았을 때에 자기를 위하여 한 비석을 마련하여 세웠으니 이는 그가 자기 이름을 전할 아들이 내게 없다고 말하였음이더라 그러므로 자기 이름을 기념하여 그 비석에 이름을 붙였으며 그 비석이 왕의 골짜기에 있고 이제까지 그것을 압살롬의 기념비라 일컫더라.

 

 

 

 

압살롬의 죽음

 

 

 

지난주에 아히도벨의 계략을 꺾으시고 압살롬으로부터 다윗을 보호하신 하나님의 섭리를 살폈습니다. 오늘 본문에도 다윗을 도우시는 하나님의 손길이 계속 이어집니다. 27-29절을 보십시오. “다윗이 마하나임에 이러렀을 때에 암몬 족속에게 속한 랍바 사람 나하스의 아들 소비와 로데발 사람 암미엘의 아들 마길과 로글림 길르앗 사람 바르실래가 침상과 대야와 질그릇과 밀과 보리와 밀가루와 볶은 곡식과 콩과 팥과 볶은 녹두와 꿀과 버터와 양과 치즈를 가져다가 다윗과 그와 함께한 백성에게 먹게 하였으니 이는 그들 생각에 백성이 들에서 시장하고 곤하고 목마르겠다 함이더라.”

 

밤새 요단 나루를 건넌 다윗과 일행은 마하나임에서 소비와 마길과 바르실래로부터 꿀과 버터와 음식을 제공받고 피곤한 몸에 힘을 얻습니다. 마하나임은 야곱이 하나님의 군대를 만났던 곳입니다(창 32:2). 바로 그 땅에서 아들 압살롬에게 쫓기는 다윗이 소비와 마길과 바르실래라는 세 사람을 만납니다. 소비는 다윗을 모욕했던 하눈의 형제 암몬 왕 나하스의 아들입니다(삼하 10장). 마길은 로데발 사람으로 사울의 손자 므비보셋을 숨겨 주었던 사울 왕가 사람입니다. 바르실래는 길르앗의 부자 노인으로 다윗과 아무 상관이 없는 사람입니다. 암몬 사람, 사울 왕가의 충신, 그리고 무명의 노인, 다윗과 우호적인 관계에 있던 사람들이 아닙니다. 다윗을 도와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다윗 일행에게 침상과 많은 음식으로 먹이고 휴식을 제공합니다. 다윗에게는 야곱이 만났던 하나님의 군대와 같은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특별한 역사입니다. 살다 보면 우리도 밤새 요단 나루를 건너 도망친 다윗처럼 피곤하고 지치고 힘들고 어려울 때가 있습니다. 그때 하나님이 준비해 놓으신 하나님의 군대와 같은 사람들이 나타나 나의 어려움을 도와주고 필요를 채워준다면 얼마나 힘이 나겠습니까? 그런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내가 누군가의 광야에 침상과 양식과 하나님의 위로를 들고 가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소비와 마길과 바르실래의 도움을 받은 다윗이 어떻게 되는지 보십시오. 18:1-2입니다. “이에 다윗이 그와 함께한 백성을 찾아가서 천부장과 백부장을 그들 위에 세우고 다윗이 그의 백성을 내보낼새 삼분의 일은 요압의 휘하에, 삼분의 일은 스루야의 아들 요압의 동생 아비새의 휘하에 넘기고 삼분의 일은 가드 사람 잇대의 휘하에 넘기고 왕이 백성에게 이르되 나도 반드시 너희와 함께 나가리라 하니.” 다윗이 힘을 냅니다. 군대를 재정비하고 그들을 지휘하는 왕의 모습을 회복합니다. 1절에 다윗이 그와 함께한 백성을 ‘찾아갔다’(파카드)라고 했는데, 이 단어는 ‘계수하다’ ‘점검하다’ ‘점호하다’의 뜻도 있습니다. 개역 개정은 ‘찾아갔다’로 번역했는데, 개역 한글은 “다윗이 그 함께한 백성을 계수하고”로 번역했습니다. 지금 상황이 이렇습니다. 한편에서는 다윗을 몰아내고 반역에 성공한 압살롬이 후새의 말을 듣고 브엘세바에서 단까지 이스라엘 전국에서 모은 군대를 이끌고 요단을 건너 길르앗 땅에 진을 치고 있습니다(24-26). 그리고 한편에서는 예루살렘을 도망쳐 온 다윗이 마하나임에 도착하여 소비와 마길과 바르실래로부터 뜻밖의 대접을 받고 힘을 내어 새롭게 군대를 편성한 뒤 자신이 직접 그들을 이끌고 압살롬과 싸우겠다고 전의를 다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다윗의 부하들은 “왕은 우리 만 명보다 중요하니, 직접 출정하지 말고 성읍에 계시다가 우리를 도우는 것이 좋다”라고 다윗의 출정을 만류합니다. 다윗은 이들의 요청을 듣고 요압과 아비새와 잇대에게 군사들을 맡겨 이들을 압살롬과의 전쟁에 내보내면서 “내 아들 압살롬을 죽이지는 말고 너그러이 대우하라.”라는 명령을 내립니다. 이 전쟁의 승패가 어떻게 됩니까? 3-8절입니다. “...이에 백성이 이스라엘을 치러 들로 나가서 에브라임 수풀에서 싸우더니 거기서 이스라엘 백성이 다윗의 부하들에게 폐하매 그날 그곳에서 전사자가 많아 이만 명에 이르렀고 그 땅에서 사면으로 퍼져 싸웠으므로 그날에 수풀에서 죽은 자가 칼에 죽은 자보다 많았더라.”

 

전투는 에브라임 수풀에서 벌어졌고, 압살롬의 군사 이만 영이 죽고 다윗의 부하들이 승리합니다. 압살롬의 군사 이만 명이 죽었다고 하는데, 칼로 죽은 자보다 수풀에서 죽은 자가 더 많았습니다. 이 전투의 승패가 칼이 아니라 수풀을 동원하여 심판하시는 하나님께 달려 있었다는 뜻입니다. 압살롬의 군대는 골짜기와 늪과 얽힌 가시덤불로 가득한 수풀 앞에서 무력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에브라임의 수풀을 하나님의 군대로 사용하셔서 바닷가의 많은 모래처럼 무수했던 압살롬의 군대를 무너뜨리고 다윗이 승리할 수 있도록 간섭하셨습니다.

 

압살롬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9-17절입니다. 노새를 탄 압살롬이 큰 상수리나무의 번성한 가지 아래로 지날 때 머리가 걸려 공중에 대롱대롱 매어 달리게 됩니다. 머리는 압살롬의 자부심이고 영광입니다. 사무엘하 14:25-26을 보십시오. “온 이스라엘 가운데에서 압살롬같이 아름다움으로 크게 칭찬받는 자가 없었으니, 그는 발바닥부터 정수리까지 흠이 없음이라. 그의 머리털이 무거우므로 연말마다 깎았으며 그의 머리털을 깎을 때 그것을 달아본즉 왕의 저울로 이백 세겔이었더라.” 온 이스라엘이 압살롬의 무거운 머리털을 칭송했습니다. 해마다 무게를 달아 자랑했던 그의 머리털은 그의 아름다움을 대변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자랑했던 영광의 머리털 때문에 그는 상수리나무 가지에 매달려 죽게 됩니다. 그의 영광이 그의 올무가 되었습니다.

 

다윗의 군사 중 한 사람이 이 모습을 요압에게 보고하자 요압은 왜 즉시 죽이지 않았냐고 책망합니다. 이 군사는 다윗이 누구든지 압살롬을 해하지 말라고 한 명령 때문에 감히 죽일 수 없었다고 말합니다. 이에 요압이 직접 작은 창 셋을 들고 가서 상수리나무에 걸려 있는 압살롬의 심장을 찔러 죽입니다. 그리고 나팔을 불어 전쟁을 멈추고 압살롬을 옮겨다가 수풀 가운데 큰 구멍에 던진 다음 그 위에 큰 돌무더기를 쌓습니다. 압살롬은 나무에 달려 죽고 큰 구덩이에 던져서 돌무더기로 덮이게 됩니다. 이 모습은 “아버지를 거역한 패역한 아들에게 모든 사람이 돌을 던져서 치라고 한 신명기 21:21의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진 모습입니다.

 

이런 압살롬의 인생을 18절은 이렇게 압축해서 요약합니다. “압살롬이 살았을 때에 자기를 위하여 한 비석을 마련하여 세웠으니 이는 그가 자기 이름을 전할 아들이 내게 없다고 말하였음이더라. 그러므로 자기 이름을 기념하여 그 비석에 이름을 붙였으며 그 비석이 왕의 골짜기에 있고 이제까지 그것을 압살롬의 기념비라 일컫더라.” 압살롬은 자기를 위하여 살고, 자기 이름을 전하기 위해 살았다고 합니다. 한평생 자기 이름을 기념하기 위해 살다가 아버지의 자리를 빼앗아 그 이름을 영원히 새기고자 했던 인물이 압살롬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압살롬을 상수리나무에 달아 저주의 죽음을 죽게 하시고 돌무더기로 덮어 그의 패륜을 심판하셨습니다.

 

주 안에서 사랑하는 여러분, 압살롬만 아버지를 거역한 패륜의 자식입니까? 우리도 모두 우리를 지으신 하늘의 아버지를 거역하고 하나님의 자리를 찬탈하려 한 패역한 죄인들입니다. 하나님 아버지를 우리 인생에서 몰아내고 그 보좌에 내가 앉아 내 이름의 영광과 내 머리의 영광을 끌어안고 나의 기념비를 쌓으며 살고자 했던 죄인들이었습니다. 압살롬이 달렸던 나무는 우리가 달려야 할 나무이고, 압살롬이 버려졌던 패역한 아들의 돌무더기는 우리가 버려져야 할 심판의 자리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리스도께서 이런 우리를 위하여 나무에 달려 하나님의 저주를 받으사 우리를 속량하셨습니다. 그 은혜를 입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면 주어진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겠습니까? 압살롬처럼 자신의 이름을 위하고 자신의 기념비를 쌓기 위해 살아서는 안 됩니다. 그 길을 가다가 다윗의 자리를 찬탈하려 했던 압살롬의 길을 가서는 안 됩니다. 우리의 이름을 내는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해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의 이름을 내고, 나를 위한 기념비를 만드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 이미 만들어 주신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높이며 살아가는 인생이 되어야 합니다. 갈라디아서 2:20을 읽고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박홍섭목사 / 한우리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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