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답게 만드는 타자(他者)
레비나스(Emmanuel Levinas 1906~1995)는 혼자만으로는 ‘나’가 되지 않고 타자를 만나면서부터 현재의 ‘나’가 만들어 졌다고 하여 ‘타자의 얼굴’이 나의 성숙을 위한 기초가 된다고 했습니다.
그의 말에 의하면 잘났건 못났건 오늘의 나를 만든 것은 내 스스로 이룩한 결과가 아닐 뿐 아니라, 현재의 나는 완성된 존재가 아니기 때문에 끊임없이 변화를 거듭하는 미완의 존재라는 것입니다. 현재대로의 ‘나’ 되는 데에 타자의 영향이 컸지만 앞으로의 ‘나’가 되는 데도 타자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타자를 만나면서부터 타자의 모습에 대한 응답이 자신을 성숙하게 해 왔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타자는 나를 나답게 만든 선생님입니다. 타자의 그릇된 행동은 나는 적어도 저렇게만은 안 되어야 하겠다도 교육받았지만 나도 저와 같이 닮아야겠다는 모방심리를 작동하게 한 것도 타자의 역할입니다.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 1906~1975)는 그의 책 『인간의 조건』에서 인간의 자유, 정체성은 고립된 상황에서 자각된 결과가 아니라 타자와의 만남으로 얻어진 결과라 했습니다. 아렌트의 이 부분은 레비나스 의견과 다르지 않습니다.
에른스트 블로흐(Ernst Bloch 1885~1977)는 그의 책 『희망의 원리』에서 다른 각도에서 인간을 바라봤습니다. 인간은 언제나 미완의 존재이면서 완성의 꿈을 향한다고 하면서 ‘미래는 꿈꾸는 자의 것’이라 하였습니다. 인간은 ‘아직-아님’ 즉 현재는 완성을 향한 불확실한 단계에 지나지 않는다는 겁니다.
삶은 언제나 정착이 아닌 여행객의 심정, 아니면 이곳저곳을 염탐하는 염탐꾼 노릇을 한다고 본 것입니다. 인간은 불안을 안고 사는 존재이고 결핍을 항상 느끼는 배고픈 존재이고, 성취의 만족에 안주할 수 없어 방황을 습관으로 생활하는 존재라고 봤습니다.
현재는 다음 단계를 향한 과정의 시간이기 때문에 불안을 느끼면서 다음 항로를 향해 항해하는 여객선 같은 존재가 인간이라는 것입니다.
이들에 앞서 마틴 부버(Martin Buber 1878~1965)는 그의 책 『나와 너』에서 인간 존재의 본질을 ‘관계’라는 관점에서 봤습니다. 여기엔 두 가지 관점이 있는데 하나는 ‘나-너(I-Thou)’입니다. 이것은 너라는 인격을 존중하고 공감하는 경우이고, 상대적 가치로 ‘너’를 인정하는 경우를 말합니다. 다른 하나는 ‘나-그것(I-It)’의 경우입니다. 이 경우는 타자를 나에게 유불리로 따지는 용도적 기능물로 보는 경우입니다. 나의 관심과 욕구로 타자를 사물화하는 태도입니다. 여기엔 윤리적 결함을 동반할 우려가 있습니다. 마약 거래로 엄청난 돈을 번 누구를 닮아 나도 이런 거래에 빠진다면 안 되는 일이지요.
여기 한 그루 나무가 있다면 이것은 자연의 일부이면서 자족적 생명체로 보는 시각이 ‘나-너’의 관계입니다. 그러나 이 나무는 장작 몇 짐이 될 것이라는 나의 유용성으로 본다면 ‘나-그것’이 된다는 겁니다.
엊그제 국회의원 보궐선거와 지방자치단체장 선거, 교육감 선거가 끝났습니다. 여기에 입후보한 인물들은 스스로를 그 역할의 적임자임을 자처하면서 적어도 상대 후보보다는 역할을 잘 할 자신감 때문에 입후보를 한 것은 틀림 없습니다. 상대 후보자보다 여러 모로 모자란다 생각하면 입후보할 이유가 없지요.
현재대로의 위치에서 상승하고자 하는 욕망이 작용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아니 누구의 성공적인 모습을 닮아 나도 내 욕망을 이룩할 기회가 지금이라는 생각이 선거 전쟁의 용사로 등판하게 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놀음판에서 옆 자리 저 친구가 돈을 따는 걸 보고 나도 돈을 딸 가능성이 있음을 느껴 노름을 하듯이, 옆집 아무개가 주식해서 돈 벌었다 하니 나도 해볼만 하다 해서 주식 사 모우듯이, 나보다 썩 잘나지 않은 모 씨가 선거에 당선되어 금배지를 달고 다니는 걸 사례로 선거전에 나서듯이, 사람들은 주식을 사기도 놀음판에 끼어들기도 선거전에 나서기도 하지만 선거나 놀음이나 주식 투자를 나의 욕망 해결책으로 본 이런 행위는 부버의 말대로 ‘나-그것’이 됩니다. 목표 달성을 이룬 경우야 다행이지만 그러나 실패한 경우는 삶이 난감하게 됩니다.
앞서 말한 철학자들의 말은 타자로부터 모범적 사례로서의 영향을 말한 것이지 요행의 결과를 타자로 삼아 한 말은 아닙니다. 오히려 이런 경우를 경계하고 있는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