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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라이트에게 '인권'은 만병통치약?

작성자대학생|작성시간05.12.04|조회수17 목록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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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라이트에게 '인권'은 만병통치약?
[심층기획-뉴라이트<8>] '인권, 그 위선의 역사'와 뉴라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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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은경 기자   임은경 기자에게 메일보내기  

  최근 조중동의 바람몰이로 세간의 관심을 끌게 된 이른바 '뉴라이트' 운동. 이들은 부패할대로 부패한 기존의 보수에 이골이 난 대중에게 '깨끗한 보수'를 자처하며 참신한 이미지를 내세우고 있지만, 조금만 속을 들추어보면 껍질만 바꿔 쓴 수구 골통 보수 그대로의 모습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뉴라이트가 기존의 라이트(보수)와 다를 것이 없다는 것은 몇가지 부문을 살펴보면 알 수 있는데, 그중 민족관에 있어서 기존 보수보다 더한 친미수구의 모습을 견지하며 노무현 정권을 친북좌파로 모는 이들은 특히 북한의 인권 문제를 들어 북을 공격하곤 한다.
  
  "북 인권을 적극 제기해야 한다"는 뉴라이트의 주장은 미국의 그것과 하나도 다를 바 없다. 인권문제야말로 미국이 자국의 이익추구에 방해가 되는 나라들에 대해 예외없이 들고 나오는 정치공세이기 때문이다.
  
  

△'인권, 그 위선의 역사', 2003, 은행나무

 매해 국무부 '인권보고서'를 발표해 소위 적성국가들의 인권 문제를 지적하는 미국은 얼마 전에는 의회에서 북한인권법을 통과시켜 탈북자 지원단체들에게 합법적으로 거액의 자금을 대주도록 했다.
  
  무슨 권리로 남의 나라의 인권 문제를 운운하느냐. 이들의 대답은 인권은 '천부적인 것이고 하늘로부터 주어진 보편적인 가치이기 때문에 세계 어느 곳에서든 억압받는 인권이 있다면 누구라도 당연히 제기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세계의 지도 역할을 하는 자국이 당연히 그럴 권리와 의무가 있다는 논지이다.
  
  그러나 인권이 과연 보편적이기만 한 가치인가? 2003년 '은행나무' 사에서 출판한 '인권, 그 위선의 역사'(The Rise and Rise of Human Rights, 커스틴 셀라스 지음, 오승훈 옮김)를 보면 역사를 통해 '인권'은 "악랄한 사냥꾼이 사냥감에 다가가기 위해 몸을 숨기는 방패"에 불과했음을 알 수 있다.
  
  타정권에 제기하는 '인권', "먹이에 다가가는 사냥꾼이 몸을 숨기는 방패"
  
  인간의 이성이 종교에 눌려있던 중세에는 꿈도 꿀 수 없었던 '인권'이라는 개념은 18세기 계몽운동을 거치면서 생겨나 오늘날에는 매우 보편적인 것이 되었다. 그러나 문제는 이것이 서양 강대국들, 특히 미국이 다른 나라들을 자신의 뜻대로 움직이기 위한 수단으로 악용되어 왔다는 것이다.
  
  인권은 자칫 불쾌할 수 있는 외부의 간섭을 그럴듯한 모습으로 치장할 수 있게 해준다. 인권의 이상만큼은 얼마든지 신성불가침의 것으로 포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권이 본격적으로 국제무대에 등장한 것은 세계 제 2차대전 발발 후이다. 1940년대 초반 프랭클린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은 국민들로부터 2차대전 참전에 대한 동의를 얻어내기 위해 인권을 앞세웠다.
  
  전쟁에 개입해야만 국가이익을 확보할 수 있다고 생각한 루스벨트는 41년 1월 6일 의회로 보낸 연두교서에서 미국이 "인간의 기본적인 네가지 자유가 바로 선 세상을 만들기 위해 싸우고 있다"며 "자유는 최고의 인권을 의미한다"고 선언했다.
  
  이후 미국은 41년 12월 진주만 폭격을 계기로 전쟁에 돌입했고, 인권은 자유에 대한 사랑, 인간의 존엄성 등과 같이 미국인들이 전통적으로 애국심을 표현하는 데 사용해온 가치들과 교묘하게 결부되어 참전의 명분을 뒷받침하는데 동원되었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인권이 타국에 대한 '정당한 간섭'의 명분 뿐 아니라 자국의 민중들을 권력자의 의도대로 끌어가기 위한 도구로도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적성국가 길들이기, 국내 불만 무마, 양날의 칼
  
  또 하나 주목할 것은 인권운동의 성공여부가 해당 국가의 인권실현이 아니라, 강대국의 내부 반응으로 결정된다는 것이다.
  
  커스틴 셀라스는 "대부분의 (해외에 대한) 인권 운동은 다른 나라의 억압이 아니라 강대국들의 국내 자극으로부터 촉발되며, 강대국 정부는 인권운동의 성공 여부를 해외가 아닌 국내의 반응으로 판단한다"고 주장한다. 결국 인권운동의 성공여부도 권력자의 기득권 유지를 위한 수단이 되는 셈이다.
  
  1970년대 카터 행정부는 베트남전쟁, 탈냉전, 경기침체로 신음하는 미국을 건져낼 완벽한 구원자로 '인권십자군'을 택했다.
  
  이 즈음부터 미국을 제외한 모든 나라를 대상으로 매년 '국가별 인권보고서(Country Reports)'가 작성되었다. 각 지역의 미국 대사관들은 인권침해 사례의 수집에 나섰고, 미국은 반체제진영과의 접촉선을 확보함으로써 그 지역 정권에 대해 우월한 입지를 점할 수 있었다.
  
  미국은 인권의 이름으로 이들 정권에 수많은 양보를 요구할 수 있었고, 심지어 정권의 교체까지 요구했다. 당시 인권국의 마크 슈나이더는 "우리는 민주적 정권을 세우고, 인권을 마땅히 지켜야 할 규범으로 바로세우기 위해 압박을 가하고 있다"고 당당히 말했다고 한다.
  
  이 '압박'은 볼리비아와 도미니카공화국에서 명백한 내정간섭의 형태로 이루어졌다. 워싱턴은 이들에게 선거결과에 승복하지 않으면 모든 지원을 중단하겠다고 협박했다. 또 니카라과에서 소모사 장군이 산디니스타 반군과의 중재안을 거절하자 미국은 군사지원을 취소했다.
  
  그때부터 외교관들은 반정부 세력과 접촉하는 것이 업무의 일부가 되었다. 1990년 '뉴욕타임스'의 한 기사를 살펴보자.
  
  "피비린내 나는 카슈미르(인도 북부 국경 분쟁지역) 전쟁에서 포위를 당한 한 인권운동가는 '오직 한 명의 외교관만이 자신들과 접촉하려 애썼다'고 말했다." 그 외교관은 바로 미국인이었다.
  
  미국의 외교정책은 곧 인권정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장 최근의 예가 이라크 전쟁이다. 2003년 3월 20일 부시는 개전 연설에서 전쟁의 명분을 '이라크 해방'(Iraqi Freedom)으로 선언했고, 이것이 작전명이 되었다.
  
  이라크전쟁, 미국의 위선적 '인권 프로그램'의 결정판
  
  부시는 "이라크 국민을 해방시키고 세계를 죽음의 공포에서 구하기 위해" 무법정권을 무너뜨려야 한다고 역설했다. 테러 지원과 대량살상무기 보유, 이 의심스런 혐의에다 부시는 '민주정권 수립'이라는 대의를 보탰다.
  
  아프가니스탄에서 시작된 테러 보복 전쟁이 이라크에 이르러 완벽한 '인권 프로그램'으로 둔갑하는 순간이었다. "더이상 야만 정권에 자비를 구걸하지 않겠다"는 부시는 대국민 연설과 기자회견 때마다 후세인의 생화학 무기 사용 전력을 거론했다.
  
  그러나 전쟁 발발후 1년도 되지 않아 '후세인이 대량살상무기를 숨겨놓고 있다'는 부시행정부의 주장은 완전히 거짓말임이 드러나고 말았다.
  
  '인권'은 특히 20세기 후반에 들어 중동지도를 바꿀 칼자루를 감싸는 비단조각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이 다시한번 드러난 셈이다.
  
  그러나 이 속내를 미리 간파한 프랑스, 독일, 러시아, 중국 등은 미국에 대항하는 행위가 초래할 위험을 감수하면서도 전쟁에 참가하지 않았다. 향후 아랍권 전체의 판도를 놓고 볼 때, 그 편이 더 큰 이득을 가져올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뉴라이트는 말끝마다 '천부인권'을 내세우면서 북한인권을 거론한다. 그러나 이들이 북에 대한 흡수통일 나아가 전쟁을 내세우면서 그 명분으로 인권을 사용하는 것이나, 북한의 인권상황 그 자체보다 자신들의 문제제기에 대한 국내의 반응이 어떤가에 관심을 기울이는 모습을 보노라면 셀라스가 이 책에서 제기한 미국의 행태와 어찌 그렇게 비슷한지. 확실히 미국과 뉴라이트는 정말 잘 통한다.


2005년05월04일 ⓒ민중의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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