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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멀미에 관한 시모음 6편

작성자이주산|작성시간24.04.19|조회수92 목록 댓글 0

♧꽃멀미에 관한 시모음 6편

◇꽃멀미 / 이해인

사람들을
너무 많이 만나면
말에 취해서 멀미가 나고,
꽃들을
너무 많이 대하면
향기에 취해서 멀미가 나지.
살아 있는 것은 아픈 것,
아름다운 것은 어지러운 것.
너무 많아도 싫지 않은 꽃을 보면서
나는 더욱 사람들을 사랑하기 시작하지.
사람들에게도 꽃처럼
향기가 있다는 걸
새롭게
배우기 시작하지

◇꽃멀미 / 김충규

새가 숨어 우는 줄 알았는데
나무에 핀 꽃들이 울고 있었다
화병에 꽂으려고 가지를 꺾으려다가
그 마음을
뚝 꺾어버렸다
피흘리지않는마음, 버릴데가 없다
나무의 그늘에앉아 꽃냄새를 맡았다
마음 속엔 분화구처럼
움푹 팬 곳이
여럿 있었다
내 몸 속에서 흘러내린 어둠이 파 놓은 자리,
오랜 시간과 함께 응어리처럼 굳어버린 자국들
그 자국들을 무엇으로도
메울 수 없을 때
깊고 아린 한숨만 쏟아져 나왔다
꽃 냄새를 맡은 새의 울음에선 순한 냄새가 났다
그 냄새의 힘으로 새는
사나흘쯤 굶어도 어지러워하지 않고
뻑뻑한 하늘의 밀도를 견뎌내며 전진할 것이다
왜 나는 꽃 냄새를 맡고 어지러워서
일어나지 못하는 것일까
그늘에 누워
올려다보는 하늘에는 구름이 이동하고 있었다
구름이 머물렀던 자리가 움푹패어,
그자리에 햇살들이 피래미처럼 와글와글
꼬리를 치며
놀고 있었다
아니,
황금의 등을 가진
고래 한마리가
물결사이 출렁거리고 있었다
마흔도 되기전에, 내 눈엔 벌써
헛것이 보이기 시작하는 걸까
사후의
어느 한적한오후에
이승으로 유배와 꽃멀미를하는기분,
저승의
가장 잔혹한유배는
자신이 살았던 이승의 시간들을 다시금
더듬어 보게 하는 것일지도 몰라, 중얼거리며
이 꽃 냄새,
이황홀한꽃의내장,
사후에는
기억하지 말자고
진저리를 쳤다

◇꽃멀미 / 문영규

진해 장복산
벚꽃터널 지날때면
턱에 차던 숨
마구 피어난
꽃 앞에서는
감기약처럼 어지럽던 꽃 멀미
눈감고 깊은 숨 들이 쉬어도
다투어 꽃피는
이 봄날은 어지러워라
우리 첨 만나
두근두근 꽃 같던 그때
마주 바라보면
아스라한 현기증
그러니까 그것도
꽃 멀미였네~~

◇봄,꽃멀미/석여공

햇빛 좋은 날
그대 발등에서 진달래가 피는지
일지암 유천을떠다 매화차를 먹었네
봄을 다 먹고도
그대를
여의지 못하는것은
꽃봄에 마실가듯 쓸쓸한 것이라네
그대 뜨락의
환한 목련은
바람이 무서워 꽃등을 버렸나
눈썹을 치고 가는 바람보다 더가볍네
산깊더니 물깊더라
사랑 깊더니 상처도 깊더라
내안에 짙은신열의 이 꽃멀미는
그대가 주인인가
내가 주인인가

◇꽃멀미 / 이문재

봄꽃들은 우선 저질러놓고 보자는 심산이다
만발한
저 어린것들을
앞세워놓고
있는 것이다
딸아이
돼지 저금통깨
외출하는 봄날아침
안개가
걷혔는가 싶었는데
저런
저기 흰 벚꽃
박물관 입구
큰 벚나무
작심한 듯 꽃을 피워놓고 있었다
희다 못해 눈부시다 못해
화공약품 뿌린듯한 오래된 벚나무
흰빛은 모든 빛을 거부해서 흰빛
가까이 가면 내가 표백될 것 같았다
동창 녀석은 확답을 주지않았다
왼쪽 구두코에는 발자국이 찍혀있고
웃저고리에서는 아직도
삼겹살 냄새
나트륨등 켜져있는
농업박물관 입구
수화 하듯이
흰 꽃잎 두어 장
새벽 한시 근처로 떨어지고 있었다
그 말만은
하지 않았어야했다
야 임마
내가 이렇게 떳떳한 것은
내가 이 가난을 선택했기때문이야, 라는 그 말만은
하지 말았어야했다

◇꽃 멀미 /노금선

짧은 환상의
빛으로 다가와
황급히 떠나가는 저 영혼
찰나의 청춘
서럽도록 아름다운
청춘이 있었다
안개인 듯
구름인 듯
환생인 듯
피고지는 꽃차례에
내 마음
늘 울렁이고
그대 꽃 입술 바라보면
어느새
말갛게 씻겨내리는
마음결이 보인다
사랑하는 이여
천만년 살기보다
한순간을 살아도
황홀하게
피었다 가고싶구나
꽃 다 진 등걸에 걸터앉아
아직도 나는
꽃 멀미에 취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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