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굉지신
서 휴
고굉지신(股肱之臣)이라는 말은
넓적다리 고(股). 팔뚝 굉(肱). 갈지(之). 신하 신(臣)으로
가장 믿고 중히 여기는 신하가 되어, 진심으로 주군의 팔다리가
되어 주는, 지극한 신하가 되겠다는 뜻이다.
서경(書經)의 익직(益稷) 편에 나온다.
개자추(介子推)가 말한, 고굉지신(股肱之臣)이란 말은
온몸을 바쳐 중이(重耳) 공자의 팔다리 역할을 하겠다는
지극한 맹서(盟誓) 이며, 희망이었으리라.
진헌공이 아름다운 여희의 꾐에 빠져, 세자 신생을 자결케 하고
기어이 여희의 어린 아들 해제(奚齊)를 세자로 세운다.
나머지 공자들은 모두 흩어지게 되며, 두 번째 공자
중이(重耳)는 책나라에서 망명 생활을 하게 된다.
진헌공이 죽고 11살짜리 해제(奚齊)가 즉위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이극 장수가 반역하며, 해제(奚齊)와 추종세력을 모두 죽인다.
이극 장수는 우유부단하여, 쉽사리 주변의 말에
넘어가게 되며, 바라던 중이(重耳)를 다시 부르지 않고,
꾀 많은 중이(重耳)의 동생 이오를 부르게 된다.
이오 공자는 옆 나라 진목공에게 영토의 30%를
주기로 약조하고 도움을 받아 진혜공이 된다.
진혜공은 국정 운영에 걸림돌이 된다며, 이극 장수를 자결하게
하고, 국정을 제대로 운영하지 못하자, 백성의 원성을 사게 되며,
진목공에게도 약조한 영토의 30%를 주지 않는다.
진혜공은 집권 5년 동안 내내, 흉년이 들어 백성들이 굶어 죽자,
할 수 없이 진목공에게서 수십만 가마의 양곡을 도움받는다.
그 후 진목공이 흉년이 들어 도움을 청하자, 섭섭했던
감정을 드러내면서 침공하겠다는 엄포를 놓으며
도움청하러 왔던 사신을 쫓아낸다.
약이 오른 진목공이 침공하여 한원 전투가 벌어지며,
진혜공은 포로가 된다.
진목공이 진혜공을 죽여 하늘에 제사를 올리려 하자, 진목공의
부인이며, 진혜공의 이복 누나인 목희가 살려주게 만든다.
진혜공은 귀국하자, 군주 자리를 빼앗길까? 하는 겁이나게 되며,
형인 중이(重耳)를 죽이려고, 발제와 암살자들을 책나라로 보낸다.
중이(重耳)와 가신 일행은 대우받으며
머물던 책나라에서 긴급히 달아나게 된다.
그때 막 책나라를 떠나려는 데, 심복이면서
아주 성실하게 살림을 잘 살던 두수가
금붙이 비단 등, 모든 걸 가지고 달아난다.
이 과정에서 공자 중이(重耳)와 40여 명의 가신 일행은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급하게 쫓기며, 제나라로 망명길을 떠나게 된다.
며칠을 걷는 중에 적적(赤狄) 인들이 침공해 10여 명이
살해당하며, 그나마 하나의 수레도 불에 타버린다.
도움을 받으려 배를 곯으며 찾아갔으나, 위나라에서 냉정하게
쫓겨나며, 허기진 배를 움켜쥐고 며칠을 걷다가 오록 땅에서
농부들이 밭에서 점심 먹는 광경을 만나게 된다.
밥을 구걸하자, 한 농부가 직접 농사지어 밥해 먹으라며, 한 사발
흙을 담아준다. 중이(重耳)가 분개하고, 젊은 가신들이 농부들의
밥을 뺐겠다고 하자, 좌장격인 호언(狐偃)이 급히 만류한다.
공자님, 그렇습니다.
강도가 되어서는 아니 됩니다.
공자님, 밥을 얻기는 쉽사오나!
흙을 얻기는 참으로 어렵습니다.
흙을 준 것은 나라를 얻으라는 큰 뜻이옵니다.
이 흙은 하늘이 내려 주신 보물입니다.
오히려 저 농부에게 절을 올려야 합니다.
중이(重耳)가 농부를 때리려고 높이 추켜올렸던 채찍을 내던지자,
호언(狐偃)은 조롱하던 농부 앞에 스스로 무릎을 꿇고 앉았다.
이를 본 가신들 모두가 호언(狐偃)의 뒤를 이어
농부에게 무릎을 꿇자, 살벌했던 분위기는
삽시간에 엄숙하게 변해버리고 말았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농부는 얼이 빠졌으며, 중이(重耳) 일행이 멀리
간 다음에도 멍한 눈길로 바라보자, 다른 농부가 말한다.
정말 미친놈들이로구나!
너무 굶어 돌았나 보구려?
허기진 중이(重耳)와 가신 일행은 또다시 한 동안을 걷게 되자,
모두 정신이 몽롱해지며 더는 걸을 수 없게 되었다. 맨 먼저
중이(重耳)가 비틀거리면서 일행을 돌아보며 힘없이 말하였다.
잠시 나무 밑에서 쉬었다 갑시다.
공자님, 그리하소서.
며칠 후에는 개자추(介子推)가 보이지 않더니, 바가지에 고깃국을
가지고 와 내놓으니, 중이(重耳)는 허겁지겁 꿀꺽꿀꺽 삼켰다.
아. 이 맛있는 고깃국이 어디서 생겨났소?
개자추(介子推)는 이 맛있는 고깃국을
어디서 얻어온 것이오?
아니? 허벅지에 왼 피가 그리 많이 묻어있소?
개자추(介子推)는 고단한 망명길에서도, 지극한 정성으로 중이(重耳)
공자를 모시며, 자기의 허벅지 살을 베어내 대접을 한 것이다.
중이(重耳)와 가신 일행은 개자추(介子推)가 자기 허벅지살을 베어내
국 끓인 것을 알게 되자, 모두 큰소리로 통곡하며 한없이 흐느꼈다.
그대에게 너무 많은 신세를 지는구려!
장차 무엇으로 이 은혜를 갚을 수 있겠소?
신 개자추(介子推)를 비롯한 우리 가신들은
공자를 모시고 귀국하게 되면, 공자의
고굉지신(股肱之臣)이 되고 말 것입니다.
개자추가 자기의 허벅지 살을 베어내 국을 끓여 중이(重耳)에게
바쳤다는 일화는 사실이 아닐 수 있다.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나, 좌구명(左丘明)의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과 국어(國語) 등에도
이 일화가 실려 있는 내용은 하나도 없다.
다만 장자(莊子)의 도척(盜蹠) 편에, 개자추(介子推)는
충성이 지극한 사람으로 자신의 허벅다리 살을 베어
배고픈 주인을 먹였다.라고 기술되어 있을 뿐이다.
장자(莊子)가 서술한 것은 중이(重耳) 일행이 제(齊) 나라로 가는
망명길의 고통과 시련이 얼마나 참담(慘澹)하였는가를 보여주는
가장 좋은 예로써, 이야기한 것이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