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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수정(淸水亭)에 머문 하루

작성자팬다|작성시간12.05.30|조회수10,928 목록 댓글 108

 [12.05.27~28]

일상의 곤함이 첩첩 산너울과 같구나.
그 분 세상 버린 5월의 하루도 아직은 마음 에인다.

부러 피할 용기도 없으니
이윽고 무작정의 행장 꾸릴 밖에.

먼 길 작정할 여유도 난망이라
지척의 별서, 청수골 청수정(淸水亭)에서 옛사람 뜻한 바 좇아

반드시 옹색한 심신을 다스리고
찰나언정 한 수 시로 풍월의 주인이 되어 봐야지.

바쇼의 하이쿠 한 수 읊조릴 제격의 때가
바로 지금임을 기억해야지.

얼마 동안은 꽃 위에 달이 걸린 날이겠구나.

 

 


청수정(淸水亭) 가는 길.

좁고 넓은 암반이 때로 아이의 개구진 장난 처럼
때로 조숙한 청춘의 붉은 심장 처럼 이어진다.

무심한 듯 계류는 용케 길 내어 때를 기다리며
신록의 숲과 구름 한 점 하늘은 늘상의 온기로 어여오라 반긴다.

와중에 명심하기로 저 계류 소심하다 얕보지 말아야 할 것.
머지 않은 장마철엔 고려 문신 양촌(陽村)의 말 처럼

천상의 은하수가 터진 듯
노호로 쏟아져 내릴테니 말이다.


청수정 이르는 길,
옥빛 소가 곳곳 자리하여 쉬어감도 마땅하다 권한다.
 
그럴 적엔 초록 잎새의 잔가지 두서넛 앞다투어 고개 내밀어
반 평 그늘 자리 마련도 해주는 것이다.


내 쉬어간 소(沼)

옥녀탕이라 할까. 선녀탕이라 할까.
아무렴 천상의 사랑인들 아무 나뭇꾼일까. 부질없다.


 


어느덧 초록의 독재.

햇살 한 줌 머금은 잎새는 자체로 청춘이다.
내 생애의 어느 푸르던 봄날도 저랬을까.

부럽고도 부러운 한 때에 한참을 머물러
퇴색해버린 나의 한 때를 형형색색 채색도 해볼 것을,

나는 차마 시선 조차 오래 두지 못하고 만다.
자연에 든 사람의 옹색함이 이러하다.

 


명경의 소.

잎새 외면하여 시선 돌린 그 곳, 하필 나를 비추인다.
내 졸작의 세월, 흑백의 필름으로 속속들이 영사한다.

부끄럽구나.
하나 마지막 도리는 잊지 말 것.

그 세월, 후회 아닌 반성 삼아
남은 세월, 베풀며 즐겁게 살아낼 것.

 


이윽고 닿은 청수정.
어느 해 볕 좋은 봄날 오늘을 대비하여 마음으로 올린 내 별서.


옛선비의 야외아집(野外雅集)을 좇아볼까.
산수(山水)를 경계삼는 도(道)를 궁구할까.

마음은 그들의 수신과 탐구를 배우고자 하나
일개 촌부로 고작 와유지소 삼는 것으로도 호사.

그저 옅은 속내로 띠집의 정자 하나 뚝딱 상량하여
여말 문인 안축(安軸)이 이른 바를 받든다.

천하 만물이 형체가 있는 것은 모두 이치가 있으니,
크게는 산과 물, 작게는 주먹만한 돌, 한 치의 나무라도 그렇지 않은 것이 없다.

그러므로 유람하는 사람은 이런 물건을 보고 흥을 느끼며 즐거워 하는 것이다.
이것이 누(樓)와 정(亭)을 짓게 되는 이유이다.

 


풍월대(風月臺).
청수정 곁 한 뼘 반석이 얻은 이름이다.

세간의 말로 쌍청(雙淸)이라 하여 맑은 것 두가지 있으니 바람과 달이라 하며
사람의 본성이 또한 그와 견줄만 하다는데 내겐 그저 우주 밖의 의견인 듯 하다.

한시도 가만 있지 않고 사방 훤한 청수정을 자유롭게 길내는 바람에게 배우랴.
숲너머 한 켠 수줍어 고작 별과 밤을 돋보이게 하는 초승달에게 배우랴.

 


어쩔 것인가.
수신의 도(道)일랑 미련한 박생원에겐 식후 나부랑이일 뿐.

좋은 치맛살이 가르쳐주는 지혜를 모른 체 하는 것은
산이 좋아 산에 든 어진 이의 도리가 아니라고 했다.


수선(睡仙)을 꿈꾸는가.

소심한 계류 자장가 삼고 두어 줄 숲그늘 이불 삼아
찰나의 백일몽으로 망아의 지경에 닿아볼까.

아서라.
도끼자루만 축낼 것.

 


산수에 들어 세상의 이치를 얻으려는 것은 순간의 일일망정
수신의 한줄기 방법임에 틀림없다.

깎이고 패여도 천년을 말없이 그 자리인 천석(泉石)의 가르침은 어떠하며
때로 모질고 때로 부드런 숨결로 타협하여 반드시 전진하는 계류의 가르침은 어떠한가.

시간 남겨 명상하여야했다.
 재잘재잘 계류소리 쫑알쫑알 바람소리에서 단 한가지의 지혜나마 얻어야했다.

하지만 이 역시 도리 없다.
한 잔 맥주가 과하였던가.

언젠가의 밤은 차마 아까워 잠들 수도 없었던 것인데
오늘의 밤은 별무리 마냥 쏟아지는 졸음이 대세.

순리를 배운 셈이라 명분 삼는다.
숙면의 개운함을 얻은 셈이라 위안 삼는다.


그리고 저 멀리 우뚝한 수미봉, 사자봉

하늘 억새길 열렸고
얼음골 케이블카도 머지 않았으니 곧 대처가 될 모양.

사람 발 길 잦아 산 신음할 것 근심이지만 그런 날에 무릎 안좋은 내 부모도
사자평의 억새 춤사위에 덩실덩실 하실 날 있을테니 욕심 내려 놓기 쉽지 않다.

 


'사도세자가 꿈꾼 나라'(2011/역사의 아침)
이덕일 선생의 거칠고도 유쾌한 도발이다.

10년 전 초판을 읽었다.
세상이 쫓아가지 못하는 잰 걸음의 호소에 가슴 답답하였다.

그리 강산의 세월 더하여 새로 접했다.
세상이 얼추 쫓아 온 탓인가 가슴 시원하다. 재미있다.

산수간에 읽어내리기로 서문 '사도세자를 두 번 죽이는 사람들'의
 저자의 거친 입담이 거슬리지만 세월 더한 비주류의 설움이려니 한다.

그 이의 증언대로라면 끊어질 듯 이어진 역사가 슬프지만
 여지 남겼으니 기쁘다고 해야겠다.

그날과 같이 마음에 사람 묻은 슬픈 날 오늘에도 있어
꽃향 흐드러지는 찬란한 5월 조차 우울하게 나고 있지만

그 이가 꿈꾸었고 또 그 이가 꿈꾸었고
 오늘 우리가 꿈꾸고 있는 사람 사는 세상이

저 계류와 같이 더딘 듯 멈춤없이 흘러 흘러 대해로 모이고
이윽고 스스로 대해를 이루어냄이 자명하듯 그리 사람의 길 내고 있을 것이다.

 


남은 책장 넘겨줄 바람 제 홀로 두고 왔으니 또 가야지.
다음 걸음엔 반권 남짓 읽을 동안에도 탁족 멈추지 않아도 되리.

아직은 물 찼다.
한쪽 넘기는 동안 참기를 몇번 시도했으나 모두 실패.

  

티끌세상으로 나아가는 순간,
비장한 심사로 여전한 무게의 봇짐을 지는데

여전할 천석과 여전할 계류가 웃어 권한다.
하릴없다. 웃어라, 권한다.

*******

거문고와 책을 벗 한지 마흔 해
몇 번이나 산중의 손이 되었던가
 

어느 날 띠집 한 채 지으니
여기가 바로 편안한 내 세상이로세
(주자(朱子)의 무이정사잡영(武夷精舍雜詠)중 '정사(精舍)' 편)
 
음풍농월의 원조 주자(朱子)의
시 한수 읊어 하산의 길 잡는다.


산수에 들어 자연을 닮으려 하는 노력과
세상의 이치에 대한 탐구는 과유불급.

탁족으로 한순간 삶의 시름 잊고
오수로 한순간 기운 구하면 전부.


청수정에 들어 세상사 놓아두고
풍월대에 올라 음농의 즐거움 얻었으니

박생원의 5월 봄날의 하루는
이만하면 되었다가 이로써 51점.

음악은 표시되지 않습니다.



이상 행복팍팍 사랑팍팍 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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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답댓글 작성자팬다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2.07.02 사는게 뭔지 ㅠ.ㅠ 그리 흔히 다니던 제주길 이건만 형님 들어가신 후부터는 일정이 안되네요. 일간 함 보입시더^^
  • 작성자의자왕 | 작성시간 12.07.17 무어라 할 말이 없네요~~
    감히 위치 좀 부탁 드려도 될까요? 쪽지 부탁 드리겠습니다~
  • 답댓글 작성자팬다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2.07.18 장마철입니다. 항시 건강 유의하세요^^
  • 작성자그래가자 | 작성시간 12.08.29 혼자만에 여행에 부럽기만합니다 가입한지 얼마안되었지만 꼭한번 가보고 싶은곳이네요 어디인지 가르쳐 주실수있는지요 쪽지로 부탁드립니다
  • 답댓글 작성자팬다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2.08.30 예^^ 행복하게 가을 맞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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