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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비박/백패킹

겨울왕국 방장산

작성자몰디브.|작성시간22.12.29|조회수1,367 목록 댓글 14

https://youtu.be/pJs9Tj7_g1k

 

 

 

 

 

 

 

 

 

 

 

 

 

 

 

 

 

 

 

 

 

 

 

 

 

 

 

 

가뭄으로 걱정인 서남부 지역에 큰 눈이 온다는 예보를 접하고 고창 방장산으로 향합니다. 정읍 근처에 다다르자 폭설이 내리며 도로가 눈으로 뒤덮입니다. 차도 거의 다니지 않고 간간히 보이는 차들은 바퀴가 헛돌고 미끄러져 애들을 먹고 있습니다.

 

백양사 IC를 빠져나오자 도로 사정은 더욱 안 좋습니다. 이 지역에 17년 만의 강설이라고 합니다. 최고 60cm까지 눈 폭탄이 쏟아집니다. 들머리인 양고살재까지 올라갈 수 있을까요. 적토마 종봄이를 믿어봅니다. 거의 도로를 러셀 하다시피 하며 천천히 올라갑니다. 다행히 상단부에는 희미하게 나마 제설이 되어 있습니다.

 

간신히 차를 주차하고 산행을 막 시작하려고 하는데 30만 유튜버 도토리님과 다람쥐님을 만납니다. 전날 백패킹을 하고 막 하산을 하던 차입니다.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서로 안전운전과 안전산행을 기원합니다.

 

두 분이 내려오면서 길을 내주어 편안하게 오름질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산행 중반쯤부터는 눈발이 굵어져 박지까지 러셀을 하면서 길을 만들어갑니다. 지난번 백운봉 산행보다 더 혹독합니다. 하지만 겨울산행은 역시 혹독해야 제맛입니다. 그야말로 엄동설한입니다.

 

외솔봉 박지에 도착하니 눈보라에 바람이 더욱더 거세집니다. 바람을 등져가며 간신히 텐트를 설치합니다. 강풍에 정상을 포기하고 숲으로 들어간 적은 없습니다. 그냥 탁트인 정상이 좋습니다. 다행히 소리에도 불빛에도 민감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산에서 혼자서도 여러명도 함께 밤을 잘 보낼 수 있는 모양입니다. 주변 쉘터에서 들리는 소음도 크게 신경 쓰이지 않습니다.

 

오후 늦게 중년 부부 한 쌍, 젊은 연인들 한 쌍이 근처 숲 언저리에 자리를 잡습니다. 이들이 내가 낸 길을 따라 올라왔다고 생각하니 맘이 흐믓해 집니다. 차가 어떻게 양고살재까지 올라왔는지 궁금해서 물어보니 씩씩하게 대답합니다. “제 차는 4륜구동입니다.”라고 아마 적토마 종봄이처럼 튼튼한 놈인가 봅니다.

 

민희, 종봄이, 어흥이 산에 갈 때 항상 같이 하는 친구들입니다.

내가 붙인 애칭도 있고 후배들이 붙여준 애칭도 있습니다. 민희는 새의 눈을 갖게 해 주는 작은 드론이고, 종봄이는 전국 곳곳 험지에 저를 데려다 주는 JEEP 자동차이고, 어흥이는 아직까지는 튼튼한 제 다리입니다.

 

오늘이 23일이니 크리스마스 3부입니다. 제가 저에게 말하고도 썰렁한 아재 개그에 얼굴이 붉어집니다. 내일 24일이 크리스마스 2부이고, 모레 25일이 크리스마스 1부 아닌가요?

 

새벽녘 빼꼼히 텐트 문을 열어보니 일출은 기대하기 힘들 것 같습니다. 늦잠을 자봅니다. 눈 비비고 텐트 밖으로 나가보니 중년팀은 이미 철수를 했고 젊은 부부들도 내려갈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날이 개어서 그런지 몇몇 등산객들이 올라옵니다. 그래도 늦장을 피워봅니다. 오늘은 크리스마스 2부니까요.

 

사실은 바람이 잦아들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드론 민희를 올려보내고 싶어서입니다. 하지만 바람이 멈출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민희를 잃기 싫어 포기를 합니다. 지금 이곳은 덜렁 내 텐트 한동이지만 크리스마스 이브이며 동시에 주말인 오늘 오후가 되면 전국의 화이트 크리스마스 백패커들로 분주해 지겠죠?

 

하산길에 반가운 분들도 만납니다. 반야. 지아님 그리고 또 다른 두 분, 이 산을 오르고 내리며 아는 분을 여섯 분이나 만나니 세상 참 좁은 것 같습니다.

 

하산길 파란 하늘과 쨍한 햇살이 눈에 반사되어 눈이 부십니다. 빛 때문에 그런 것인지 아직까지 곡기를 채우지 못해서 그런 것인지 몽롱함이 찾아옵니다. 나쁘지만은 않은 몽롱함입니다.

 

어제 오늘 나는 참으로 고독스러웠습니다.

나의 고독은 번잡스럽고 거짓된 인생에서 벗어나고 싶은 몸부림입니다.

 

※ 영상 자막에 고창 방장산이 고흥 방장산으로 잘못 표기 되어있네요.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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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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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답댓글 작성자몰디브.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2.12.31 감사합니다.
    새해 복많이 받으세요.
  • 작성자들길따라서 | 작성시간 23.01.01 대단한 설경을 만나셧군요
    차는 네려갈때가 더 위험한데 무리 없으셧나 봅니다
  • 답댓글 작성자몰디브.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3.01.02 감사합니다.
    내려올 때 오르내리는 차들이 힘들어하긴 했는데
    제 차는 무난히 내려왔습니다.
    전날 올라갈 때가 다니는 차도 없고 눈이 깊어 힘들었습니다.
  • 작성자비박천지 | 작성시간 23.01.02 겨울산의 제대로된 설경속에서 하루를 즐기셨네요.
    대단한 열정에 박수를 보냅니다.
  • 답댓글 작성자몰디브.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3.01.02 감사합니다.
    이렇게 깊은 눈 속에서 하룻밤
    보낸게 참으로 오랜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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