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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비박/백패킹

역대급 운해 / 충주 고봉

작성자몰디브.|작성시간23.04.23|조회수825 목록 댓글 12

https://youtu.be/tgQfAzG-8Io

 

 

 

 

 

 

 

 

 

 

 

 

 

 

 

 

 

 

 

 

 

 

 

 

 

 

 

 

 

 

 

 

 

 

 

 

 

 

대구 비슬산을 오르다 몸이 좋지 않아 산행을 포기한지 20일 만에 다시 산을 찾습니다. 이제 몸이 아프지 않던 예전으로 돌아왔습니다. 마음과 함께.

 

쌓여 있는 책을 정리하다 홀로서기 2’ 서정윤의 시집을 발견합니다. 30여 년 전에 빨간 볼펜으로 밑줄을 그어가며 읽었던 시집입니다. 마치 오래된 소중한 빛바래 사진을 찾았을 때의 기분입니다.

 

오랫동안 책갈피에 끼어 있던 낙엽의 시간 만큼이나 청춘의 시간도 그곳에 그대로 머물러 있습니다. 책을 뒤적이며 깨닫습니다. 그때의 감성이나 지금의 감성이나 별반 달라진게 없다는 것을.

 

그 책을 챙겨 멋진 충주호가 조망 되지만 많이 알려지지 않은 충주의 고봉이라는 산으로 향합니다. 최근 김영하의 여행의 이유라는 수필을 2년 만에 다시 읽었습니다. 여행에 관하여 여러 가지 정의를 해 놓았는데 그 중,

 

여행은 내가 누구인지를 확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누구인지를 잠시 잊어버리려 떠나는 것”, “어둠이 빛의 부재라면, 여행은 일상의 부재라고 이야기합니다. 참 공감 가는 글입니다. 여행을 산행으로, 특히 산에서 밤을 지새우는 의식으로 바꾸어도 그 의미가 퇴색되지 않습니다.

 

정상에 다다를 무렵 먹구름이 몰려오더니 갑자기 예보에도 없는 돌풍을 동반한 소나기가 내리기 시작합니다. 급기야 우박으로 변하며 바람이 더 거세지기 시작합니다. 우천 대비를 하지 않고 집에서 입던 후드티를 걸치고 나와 어쩔수 없이 오랜만에 그냥 비를 맞아 봅니다. 시원합니다.

 

그렇게 요란스럽던 돌풍과 소나기, 우박도 거짓말처럼 한순간에 사라지고 하늘이 열리기 시작합니다. 텐트를 피칭하고 가지고 온 시집을 정독하고 있는데 인기척이 나서 뒤돌아보니 한 분이 박배낭을 메고 올라오십니다.

 

배낭도 내가 메고 온 배낭과 같고, 텐트도 똑같은 것을 가지고 있어 신기하다고 생각하였는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학교 2년 선배님이었습니다. 얼마전 은퇴 후 저처럼 혼자 백패킹을 다니신다고 합니다.

 

술도 먹지 못하고 피곤하여 일찍 잠을 청하고 일출 시간에 맞춰 눈을 떳는데 발아래 세상이 온통 운해로 뒤 덮여 있습니다. 충주호와 산그리메도 운해 속으로 숨어들었습니다. 역대급 운해입니다. 그 운해 위로 해가 솟아 오르고 이런 장관은 좀처럼 보기 힘든 광경입니다. 그 자리에서 넋을 잃어버렸습니다. 둘 다.

 

운해가 걷히기 전 선배님은 악수를 청하며 먼저 하산을 하십니다. 나는 운무가 걷힐 때까지 바위 돌침대 위에서 잠도 자고, 읽었던 시집도 다시 읽고, 음악도 듣고, 드론 태일이도 다시 날려봅니다. 내가 누구인지를 잠시나마 잊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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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답댓글 작성자몰디브.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3.04.23 감사합니다.
    멋진 곳에 살고 계십니다.
  • 작성자dolphin | 작성시간 23.04.25 헐 자리도 좁은데...
    곧 똥밭 되겠네요
  • 답댓글 작성자김모씨 | 작성시간 23.04.25 깊게 공감,
    산척부터 잔차타고
    고갯마루에 세워두고
    한호흡으로 오르면
    그야말로 천국이었는데~

    전국 각지의
    화장실문화가 소개되는
    명소가 되겠네요.
  • 작성자위스키[정유석] | 작성시간 23.04.26 와~ 정말 멋진 운해입니다. 잠시라도 더 붙잡고 싶어지죠^^
    멋진 풍경 잘 보았습니다~~
  • 답댓글 작성자몰디브.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3.04.26 감사합니다.
    제가 봐왔던 운해 중
    몇 손가락 안에 드는 운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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