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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청궁/민비시해 장소, 최초 전기불이 밝혀진 장소.

작성자바람(양은석)|작성시간10.02.27|조회수703 목록 댓글 0

경복궁 건청궁(乾淸宮)

* 명성왕후 시해현장, 98년만에 경복궁 복원사업의 일환으로 복원. 최초 전기시설*

 

1. 개요 : 1868년 경복궁이 완공되고 5년뒤인 1873년 고종이 사비를 들여 아버지 흥선대원군(이하응)의 영향에서 벗어나 자주적인 정치를 하려는 자립의지의 소산으로 경복궁내 가장 북쪽에 아버지 몰래 건립해 자주적인 정치, 근대화의 꿈을 펼치며 각국(미, 영, 러 등) 대사를 접견하고 신문물(전기시설, 서양식 서재(집옥재), 관문각(최초의 서양식 건물, 러시아 사바틴 개축, 사바틴 기거하다 민비시해사건 목격 외부에 고발)-왕비의 병궁으로 외국사신 접견, 연회장소 등)을 수용, 자주적인 근대화를 시도 한 바 있으나 1895년 10월 8일 묘시 미우라 일공사에 의해 민비가 시해 되면서 물거품이 된 역사적 슬픔이 서린 장소이다. 이후 1909년 일제에 의해 철거, 일시적으로 총독부 미술관, 광복후 국립현대미술관 등으로 사용되다 1998년 완전철거후 2007년 10월 18일 경복궁 복원 사업의 일환(2004년 6월 18일 시작)으로 복원되어 일반인에 공개(20일) 되기에 이르렀다.

 

2. 건청궁(건천궁으로도 불림)

 

가. 궁같지 않은 사대부집을 연상케 하는 궁 : 고종과 민비가 한가롭게 휴식 및 거처를 목적으로 아름답게 지은 궁. 민비가 거처하는 곳이요. 고종이 민비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화려하게 치장 된 곳. 흥선대원군과 민비의 갈등이 없었다면 역사를 다시 써야 되지 않을까?  상념에 잠겨 본다. 우리가 알기에는 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가 좋지 않다고들 하는데 말이다.

- 장안당 : 고종 거처하는 사랑채 격

- 곤녕함 : 민비 침전, 곤녕(땅이 편안하다).

- 옥호루 : 민비가 미우라와 일본인 무사(아다찌 선본부대)에 의해 85년 10월 8일 아침 묘시(5시반에서 6시 반) 시해 된 장소. 옥호(옥으로 만든 병)

 

* 참고 : 명성왕후(1851년 ~ 1895년) 

- 경북 영주군수 민치록의 딸, 16세 왕비에 책봉 됨, 1874년 아들 순종 출산, 1895년 45세때 을미사변으로 사망.

- 명성황후 생가는 경기도 여주군 여주읍 능현리 250-2번지에 있고 8세 까지 삶.

- 죽은 뒤 폐위, 10월에 복호 되었고 1897년 '명성"이란 시호 내려짐.

- 1897년 11월에 국장이 거행되어 청량리 국립수목원 자리에 모셔져 있다 1919년 경기 남양주 홍릉으로 이장 고종황제와 합장 함.

 

- 녹산(사슴을 기르는 산) : 민비가 불태워진 건청궁 뒤 야산. 자선당(동궁-왕세자, 세자비가 거처한 곳) 옆 야산

- 관문각 : 최초의 서양식건물 2층, 미에디슨전기회사 전기시설, 왕비의 별궁, 외국사신 접견, 연회 장소, 사바틴 기처, 러시아 건축가 사바틴 민비시해장면 목격, 고발

- 기타 : 향원지(아름다운 연못) 및 정자(향원정), 정원

 

나. 1873년 고종이 신하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사비를 들여 아버지 흥선대원군의 슬하에서 벗어나 스스로 정치를 하려는 자립의지의 소산.- 궁안에 궁이 세워질 수 있을까? 없다 보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고 이는 고종의 자립의지의 소산이라 봄.

 

다. 을미사변(乙未事變)이 일어난 장소(양력 1895년 10월 8일 묘시) : 건청(하늘이 맑다)궁 곤녕함 옥호루에서 일본인 미우라(삼포오루)공사와 일본무사가 명성황후 민비시해-대원군과 민비의 이해대립을 볼때 자작극인지 실제 일본에 의해 저질렀는지?

 

라. 최초 전등 밝혀짐(1887년) : 미국 에디슨전기회사가 발전기를 건청궁에 설치 우리나라 최초로 전등이 밝혀진 장소-향원지 물을 이용 전기를 생산했으나 발전시설이 부실해 전등이 깜박거려 도깨비불이라 했고, 향원지 물을 이용 전기를 생산 수온이 상승 연못에 물고기가 떼죽음을 당하기도 했다함. 관문각에 전기시설

 

3. 건청궁의 역사

- 1873년 :  고종이 경복궁내에 건립.

- 1887년 최초 전등 밝혀짐.

- 1895년 10월 8일 민비시해 발생.

- 1896년 2월 11일 민비시해 4개월여만에 신변위험을 느껴 러시아공사관(중구 정동, 현재 러시아대사관 위치, 서울시립미술관 옆)으로 거처 옮김(아관파천).

- 1897년 경운궁(덕수궁)으로 돌아와 대한제국 건국

- 1905년 일본 침탈로 나라 빼앗김.

- 일본이 경복궁 건물을 하나하나 해체하더니 마침내 1909년 관리소홀로 자연스레 일제에 의해 철거됨.

- 일시적으로 조선총독부미술관으로 이용됨.

- 1945년 광복후 국립현대미술관으로 사용.

- 1998년 미술관 완전철거.

- 2004년 경북궁 복원사업 일환으로 복원시작.

- 2007년 10월 18일 98년만에 복원 완료해서 20일부터 일반인에게 공개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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