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곱은 집으로 돌아가는 귀향길에서 형 에서의 보복이 너무나 두려운 나머지 나름의 방법으로 에서의 마음을 누그러뜨릴 꼼수를 생각합니다. 하나님 앞에 먼저 매달리기보다는 자기의 방식으로, 꼼수로 위기를 해결하려고 하는 야곱의 모습입니다. 이제 하나님으로부터 새롭게 비전을 확인하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야곱이지만 아직도 그 밑바닥에는 인간적 의도가 살아있습니다.
이러한 야곱을 이제 하나님은 결정적으로 다루실 기회를 만듭니다. 어떻게 야곱을 다루시는지 볼까요?
“홀로 남았더니”(24절)
다른 사람들을 다 보내놓고 혼자 남아 다시 고민하는 야곱의 모습입니다. 야곱이 홀로 남은 이 시간에, 하나님은 야곱을 만나기로 결정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렇게 홀로 있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이 홀로있음은 다른 사람을 의식할 필요가 없이 자기 자신을 성찰할 수 있는 삶의 자리를 말하는 것입니다. 적나라하게 자기 자신을 정직하게 볼 수 있는 삶의 자리입니다. 그런 의미의 홀로 있음이 우리에게는 반드시 필요한 것입니다. 공동체예배와는 또 다르게 홀로만이 우리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이 반드시 필요한 것입니다. 경건의 시간, 혼자 기도하는 시간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야곱이 홀로 이 밤에 무엇을 하고 있을까요? 기도했을 것이라고요? 너무 야곱을 과대평가하는 것이 아닐까요? 아마도 야곱은 형 에서로 인해 고민하며 두려움에 떨고 있을 것입니다. 초조한 마음을 가눌 길 없어 망연자실하게 어찌할 바를 모르고 쪼그리고 앉아 있었을 것입니다.
홀로 남아있는데 누군가가 야곱을 공격하여 들어옵니다. 아마 야곱은 ‘아, 형이 사람을 보내 나를 치려는구나’하고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한 야곱은 힘을 다해서 목숨을 건 싸움을 시작합니다. 싸움을 하는데 야곱이 결사적으로, 목숨을 걸고 달려드니까 이 사람이 야곱의 허벅지 관절(환도뼈, 고관절)을 칩니다.
사실 하나님이 야곱을 이기지 못했다는 표현은 힘이 없어서 졌다는 표현이 아닙니다. 아무리 꼬꾸라트려도 다시 일어나서 달려드니, 끝이 없는 싸움이 계속되었다는 표현입니다. 싸움을 잘하는 사람도 이를 악물고 끝까지 달려드는 사람을 질려할 수 있거든요. 야곱이 그렇게 끈질기게 하나님을 붙들고 늘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야곱의 허벅지 관절을 치신 것입니다. 성경에 허벅지 관절을 쳤다고 기록하고 있지만, 히브리어 원어로 보면 “나가”(נָגַע)라는 단어가 사용되는데, 이 말은 “만지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슬쩍 건드시더라도 엄청난 위력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야곱이 자신만만하여 스스로 뭔가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보시고, 힘을 도저히 쓸 수 없도록 치신 것입니다. 이제 야곱은 스스로 그 무엇도 기대할 수 없는 처지에 이른 것입니다. 이제는 절대적 좌절, 절대적 낙망을 할 수밖에 없는 지경에 이른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은 묻습니다. “네 이름이 무엇이냐?”(27절)
야곱이 대답할 때 무엇을 느꼈겠어요? “야곱입니다.” “제 이름은 ‘속이는 자’입니다.” 얼굴이 확 달아올랐을 것입니다. 자기 자신을 온전히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속이는 자 야곱, 자기 스스로 뭔가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야곱, 그러한 야곱의 실체를 보게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도 우리 자신의 실체를 볼 줄 알아야 합니다.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에 내 삶이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고 있다면 할 수 있다는 나의 능력 자체가 결코 축복이 아니라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하나님 앞에서의 항복, 이것이 나로 하여금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게 하는 시작이 될 수 있습니다.
이제 하나님이 야곱의 이름을 새롭게 지어주십니다. “이스라엘.” 이 이름은 하나님과 겨루어 이겼다라는 의미라고들 알고 있습니다만 더 정확하게 말한다면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 싸우는 자“라는 의미가 더 맞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다스리심, 하나님이 통치하심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야곱이 하나님과의 씨름에서 이겼지만, 사실은 하나님이 야곱을 치신 것입니다. 야곱의 힘을 끊으신 것입니다. 이제는 하나님만을 의지할 수밖에 없는, 하나님의 통치를 받아야만 살 수 있는 자가 되었습니다. 야곱은 속이는 자에서, 속여가면서 자기 스스로 살아가려고 발버둥 치는 자에서 하나님만을 의지하며 하나님의 지배를 받는 자로 바뀐 것입니다.
하나님이 치신 상처가 있지만 이것은 상처가 아니라 오히려 훈장이었습니다. 얍복 나룻터의 이 새벽, 찬란한 태양이 비춰오는 속에서 어둡고, 고통스러운 밤을 지냈지만 이제는 하나님의 다스리심에 맡긴 담대함으로 진정한 의미에서의 평안을 가지고 절뚝거리며 내딛는 야곱의 마음은 어땠을까요? 상쾌한 아침이었을 것입니다. 몸은 아프고, 절뚝거리는 몸이 불편했어도 그 마음에는 기쁨이 솟아나고 있었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홀로 주님을 만나는 자리를 갖고 있는지요?
여러분은 우리 하나님을 직면하는, 하나님을 대면하는 브니엘을 경험하셨는지요?
얍복 나룻터의 치열한 상처가 여러분에게 있는지요?
그리고 그 아침, 절뚝거리면서도 밝아오는 환희 속에서 앞을 향해 당당히 걸어가는 아침을 맞이하고 있는지요?
지난 주일, 공동체예배의 설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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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트하우스 고양 공동체예배 설교
2026년 6월 21일(주일)
제목/ 야곱에서 이스라엘로! ⑦
"얍복강 나룻터에서의 깨어짐”
성경본문/ 창세기(Genesis) 32:21~32
설교자/ 안창국 담임목사
https://youtu.be/cwgdhvYnmeM?si=Gabom4raXj6qhJ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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