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영국 - 다이애너 장례식장이었던 웨스트민스턴 사원

작성자백선영|작성시간16.01.07|조회수262 목록 댓글 0

 

 

웨스트민스터 사원(Westminster Abbey)

 국회의사당의 서쪽, 팔러먼트 광장 남쪽에 위치하고 있다.

또한 웨스트민스터 사원(Westminster Abbey)은 영국에서 가장 유명한 고딕 건축 사원으로 2000년의 역사를 갖고 있으며 영국의 역사에서 빠질 수 없는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데 트라팔가광장과 팔러먼트광장 사이에 자리잡은 이 지역은 튜더왕가와 스튜어트왕가가 거주했던 지역으로 지금은 복잡한 현대의 물결로 여행객들이 몰려드는 지역이기도하다. 13세기에 착공에 들어가 약 250여년에 시간동안 만들어져 16세기(1503년)에 완성된 사원 건물은 최고의 걸작으로 영국에서 가장 높은 고딕 양식의 중세교회로 평가받고 있다.



영국의 상징 빨간 2층버스가 사원 건물을 가리고 있다

다이애나 황태자비 .. 그 모습이 아름다워 신문에 난  사진을 오려서 지금도 지갑에 보관하고 있다.


  

 




거리에는 오래전에 깐 듯한 보도블럭 위에 촉초한 비가 내리고 있다

수시로 변하는 영국의 날씨 인증 샷도~~

 


 

Westminster Abbey 사원의 유래

 

 

헨리왕과 엘리자베스여왕, 초서, 바이런등 위인의 묘와 기념비도 있고

영국을 정복한 프랑스 노르망디공 윌리엄은 자신이 잉글랜드의 정당한 후계자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이 사원을 지어 대관식을 치렀던 곳이기도 하다.

 

그러나“1245년 헨리 3세에 의해 고딕식 건물로 건축” 되었고

 “바이킹이라고 불리는 노르만족은 게르만족의 침입으로 로마 제국이 위험에 처하자

  영국을 300여년간 다스리던 로마군이 철수하게 된다.

그러자 원래 로마군의 침략  이전에는 같은 민족(켈트족) 이었던 북쪽 스코틀랜드

가 남침을 시작하고 네덜란드 북쪽 지방의 앵글족과 섹슨족의 침입으로

혼란한 가운데 덴마크 바이킹인 데인족들이 뒤따라 영국을 침략

 

(예전에 세느강을 거슬러 올라 파리를 위협함으로써 프랑스왕의 양보를 강요해서는

세느강 하류 노르망디에 정착했던 노르웨이에서 온 바이킹 노르만족의 후예들인

 

  노르망디공 윌리엄이 교황청의 후원 아래 할머니가 영국에 시집갔던 과거사를 명분

으로 내세워 5천명의 기사를 모아 1066년 바다를 건너 침입해 헤이스팅스 전투의 승리로

영국을 정복 했던 것이다

 백성들은 예전에 게르만족의 이동기에 영국을 침략한 앵글로색슨족으로 게르만언어의

한 갈래인 영어를 사용하고,

 

 노르망디에서 온 새로운 정복자인 과 지배귀족들은 프랑스어를 사용하니

서로 언어가 통하지 않는 신분제 국가 영국 이 탄생한 것이다.)

이어 노르망디인들은 영국 최초의 통일왕국 노르만왕조를 열고 피지배자와 언어가

다름에도 천년을 가려는 뜻에서 이 웨스트민스터 사원 을 지었고

 

다른 한갈래 바이킹 노르만족은 러시아를 침략하여 흑해에 이르러 최초의 러시아 국가

키예프 공화국 노보고르드 공화국을 세우고

다른 한갈래는 프랑스와 스페인을 돌아 지브롤터 해협으로 들어와 이탈리아의

시칠리아와 나폴리를 점령하고 왕국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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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스트민스터사원 옆에 자리한 아름답고 견고해 보이는 건물이   The Sanctuary


 


도로건너 빅뱅 시계탑이 건물넘어로 보인다.

 

Methodist Central Hall(감리교 중앙교회)



펄러먼트 광장

(지팡이를 들고 서있는 처칠과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아만다대통령 등의 동상들이 서있는 광장으로

웨스트민스터사원 바로 앞에 위치하고 있다. 이곳은 1750년에 광장이 조성되어졌다.)


윈스턴 처칠의 동상 잘 보이지 않아 아래에 펀글과 사진 올려본다.


세계2차대전을 이끈 주역중의 한사람인 윈스턴처칠경의 동상이 팔러먼트광장 앞쪽에 세워져있다.

어린시절 말썽장이에 낙제생이었던 처칠은 생활기록부에 따르면 그는 ‘품행이 나쁜 믿을 수 없는 학생으로,

의욕과 야심이 없고 다른 학생들과 자주 다투며, 상습적으로 지각하고 물건을 제대로 챙기지 못하며 야무지지 못하다.’ 라고 되 있었는데 그가 영국의 위대한 수상으로 오르기까지 그는 종군기자로 남아프리카 보어전쟁에서 포로로 잡혀있다가 탈출한 일로 전쟁 영웅으로 각광을 받기도 하였다.

 그후 총리로 임명되면서 "내가 바칠것은 피와 땀과 눈물뿐"이라고 했던 그의 애국심으로 전란의 소용돌이 속에서 국민들의 신임을 받고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으며 노벨문학상 수상함

 

 

글러스 헤이그 [ Douglas Haig, Earl Haig ]의 동상

 

영국 군인, 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해외파견대의 사령관으로 벨기에와 프랑스에서 복무하였고,

 독일의 패전에 결정적인 공격을 가함으로써 1차 대전의 승리에 견인차 역할을 하였다.

육군원수로 임명이 되어 독일군에 막대한 피해를 입힌 그는

후에 백작 작위를 하사 받아 1대 헤이그백작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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