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깜짝놀랄 전화를 받았습니다
안양 병현이 형님이라고 하는데...
사실인지 ,아니면 사칭하는 분일지 모르나
고림리 사람들이
종중 땅을 말아 먹을 작정으로
일을 꾸미고 있다면서....어쩌구 저쩌구.
막아야 한다며.
사실을 사실대로 말해야 합니다
고림리는 어떤 곳인지 알아야 합니다
1500년대부터
9세손 서손 할아버지 부터 살았고
묻히신 곳입니다
현재 인정 피렌체 아파트가 지어진 단사골 잔남배기(바우배기)에
맨위에 묻히시고
10세, 11세 12세 14세가 나란히 묻히시고
13세 할아버지는 이동면 심성골에 묻히셨습니다
그리고 15세 기(寄) 할아버지가
사실기 현재 무송윤씨 선대 묘소라고 조성해 놓은 곳에 묻히셨습니다
기 할아버지는 아들 넷을 두셨으며
그 첫째는 임신
둘째는 흥신
셋째는 달신
넷째는 창신이었으며
임신은 고림리를 고림리를 떠나
용인 소학동(김량장리)에 묻히고 그후손들도
고림리에 묻힌분이 없고 백암면 용천리등에 묻혔습니다
둘째 흥신은 벼슬을 하여
충북 진천으로 떠나 진천에 묻히셨으며
셋째 달신 할아버지와
넷째 창신 할아버지가 고림리에 사셨으며
달신할아버지 자손들이
고림리에 집성촌을 이루며 살아 왔으며
매년 음력 10월 10일에 시제를 모셔왔습니다
창신 할아버지는 용자터(고림리 임원)에 묻히셨으며 나중에 손이 끊기셨슴
즉 고림리를 지켜 오신 분들이
달신 할아버지 자손 들입니다
그래서
무송윤씨 장령공파 용인 문중에는 과거부터
용인파(고림리에 사신분들)
진천파(흥신자손으로 진천에 사신분들)
용천파(임신 자손들로 백암면 용천리 사신분들)
라고 불리어 왔습니다
매년 음력 10월 10일이 되면
고림리에 모여 시제를 모셔왔습니다
시제를 모시려면 위답(윗토)이 있어
그 수확으로 시제를 모셨습니다
그 윗토는 고림리 임원 부락 앞 224-1,2,3,4번지의 전답이
9세 서손부터 14세 까지의 윗토로
상열, 명렬 명헌등이 농사 지어 모셨으며
명헌이 양평으로 이사후에 광모가 지었지요
(그런 윗토를 세완이 개인 명의로 전환하여 팔아 착복)
15세 기 할아버지의 윗토는
사실기에 있어 희열(병국)이 지어 시제 모셨으며
16세 달신 할아버지의 윗토는
통미 밭이어었으며 기열(병혁),한모등이 지어 시제 모셔왔습니다
그러던중
1960년대 중반에
병찬씨가 나서서 윗토들을 확인하게 되었고
조상 대대로 9세부터 14세가 모셔진 산 고림리 산 73번지는
임신 자손 5명, 달신 자손 5명으로 공동등기하고
고림리에 윗토들은
달신 자손들이 대대로 조상 뫼시고 시제 모시고
봉분 관리등을 하였기에 윤기열 외 10인 11인으로 등기하고
산 23번지 즉 기 할아버지가 모셔진 사실기 산은
계속 조상을 모시기로 되었던 것입니다
해서
병찬씨는 윗대어른들으 묘소를 산 23번지에 모시게 되었고
기열, 희열등의 묘지도 그곳 산에 모셨고
종산으로 알고 있었으나
경기도 용인의 땅값이
수도권 개발과 길지라는 소문이 퍼지자
급등하게 이릅니다
1990년대초
인정 피렌채 아파트가 부지로 고림리 산 73번지를 팔고부터
문제가 발생합니다
거액이 종산을 팔아 생기자
소위 종손이라는 자는
인천시 교육위원회 근무시절 하급자인 윤병현을 총무로 하여
패악질을 하기 시작합니다
1912~24년 까지 일제가 토지 임야조사를 하게되자
그당시 종중을 인정하면 우리 민족이 뭉치는 것을 방지하기위해
종토(종중땅)은 종손 명의 사정하는 것이 관례였습니다
그래서 윤정열 명의로 사정되어
토지 임야대장이 작성되게 되었고
1990년대에는 땅주인이 바꾸지 아니한 경우에는
그 상속자에게 등기해주는 것이 대법원 판례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종손은 고림리 224-1.2.3.4의 전답을 개인 명의 전환하였고
고림리 산 23번지도 개인 명의로 전환하게 됩니다
솔직히 말하면
고림리의 달신 자손들은 그런 사실들을 까맣데 모르고 살아왔으며
농번기에는 소작을 하고 농한기에는 숯무지로
생계를 유지하고 자식들 가르치며
조상이 물려준 윗토들을 지키고 조상묘를 지키며 조상모시며 살아 온겁니다
고림리를 떠난 임신 자손 이를테면 종손
용천파의 종손은 달신 자손인 윤병현과 맞추어
별의 별짓을 다하게 됩니다
산 73번지의 땅을 판돈과
이동면 심성골, 용인 소학동(김량장리)등의 조상토들을 판돈을 가지고
여럿 행위를 하게 됩니다
그런 행위들의 대표적 예만 들면
고림리 224-1.2.3.4번지를 착복후 팔아먹은것
산 23번지를 개인 명의로 돌린것(윤병현을 특별대리인으로 지정)
산 73번지를 팔아 조상묘 천묘하고 개인별로 나누고 난 나머지금액 5억여원
조상묘 천묘시 종손묘는 모시고 나며지 묘는 파묘한 패륜적 행위
금년 시제때는 총회를 하지 않는다고 선언후에 용천파만 모여 엉뚱한 결의를 하는
종원들의 권리를 침해하는 행위등
상세한것은 다음에 자세하 하기로 하고
이제 1969년도에
고림리 살아오신 어른들께 등기한것을
종중땅 위탁한것이라고 위탁해지 하니 소유권 이전 하라고 소(訴)를 한것입니다
지난해 6월 19일 소를 제기하여
8월 11일에 고림리 윤병국 집에 모여
이게 어떻게 된사실이라며 의논하는 자리에서
병현이 참석하여 윤세완의 패악질 자료를 내놓고 한말이
"내가 고림리 편을 들으면 뭘 해주겠는가?"
고림리에는 해줄수 있는게 뭐가 있겠느냐구
결국 고림리에서는 재판에 대비키위해 대비위원을 정하고...
이땅은 곧 우리 달신 할아버지 자손들의 땅이라고 생각 되기에
2013년 2월 10일에 무송윤씨 장령공파 통정랑 달신공 소종중을 결성하게 되었고
용인 시청에 종중 등록, 그 고유번호를 용인 세무서에 단체등록을 마치고
재판시 마다 종중 임원들이 참석하여
대응해온것입니다
즉 이땅 재판에 결려있는 이땅은
고림리를 지켜온 달신 할아버지 자손들의 몫이며
그를 대변하는 것이 이 소종중임을 알아야 할것입니다
지금 1심에서 패소한(각하 판결)
소위 종손이라는 자와 그 용천파와 그를 빌붙어 먹는 자들이
각하 판결을 받은 이유가 총회를 거치지 않았으므로
이소는 무효라고 했기에 그들은 틀림없이 다시 총회를 열것입니다
그 총회가 성립되는 것은 종원에게 전원 통보하는 것이며
이 총회에서 가결 되어야만 할것입니다
그것을 위해 별의 별짓을 다할것입니다
우리 달신할아버지 자손들을 상대로
갖은 모함을 다할것입니다
분명히 밝혀 둡니다
재판에 결려있는 이땅은
고림리를 지켜온 달신 할아버지 자손들의 몫이며
이를 대표하는 것이 이 소종중입니다
무송윤씨 장령공파 용인 종중이라고 윤세완과 윤병현이 만든
종중의 땅이 아니고
고림리를 지켜오고 조상 모셔온 우리들의 몫이란것을 우리는 알아야하며
우리것은 우리가 지켜야만 합니다
틀림없이
윤병현을 비롯 윤세완등은
고림리 달신 할아버지 자손들이 이땅을 통째로 먹으려하니
이를 막아야한다고 감언이설을 할것입니다
절대로 속지 마십시오
그리고
그런 전화 연락을 받는다면 연락 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땅이 정상적으로
무송윤씨 장령공파 용인종중(윤세완과 윤병현)의땅이라면
1985년, 2005년 발행한 무송윤씨 족보에 실려야할것이나
윤세완과 윤병현이 참여한 족보위원이면서도
자기들이 팔아먹을 땅들은 일체 싣지 않았으며
족보 내용도 임의로 바꾸는 사람들
돈을 훔치는데는 일가(一家) 친척도 없는 사람들임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절대로 속아서는 아니됩니다
다시한번 말씀 드리면
저쪽(윤세완과 윤병현)은 재판에 이겨 또 이땅을 팔아먹기위해
총회를 할것이며 이를 위해 우리(달신공 소종중)을 협박하고 모함할것입니다
이런 내용의 전화를 받은 분들은
연락해 주십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