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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이야기

무송윤씨 이야기

작성자인암|작성시간13.12.27|조회수230 목록 댓글 1

 

우리 무송윤씨는 본래 소호씨이다

상고시대 소호김천씨의 둘째 황후의 아들 반이 궁정이 되었는데 임금으로 부터 옹주의 윤성에 봉해진 것이 우리성씨의 시초인 것이다. 오계시대에 후손인 학사 경이 변란을 피하여 동쪽으로 와서 정착 한 곳이 무송현(현전북 고창군)으로 하여 관적이 된 것이며, 그러나 이후 의 내용이 실전 되었다가 후손인 양비공이 향리로서는 처음으로 고려 16대 예종 때에 보승랑장을 역임하여 무장현호장의 택호를 받게 되면서 시조가 된 것으로 시조 양비공께서는 두분의 아드님을 두셨는데 맏이는 해 로 벼슬이 대사성에 이르시어 대사성공파로 둘째는 의 로 장령을 지내시어 장령공 파로 이어 내려오게 되었다.

 

전 국사편찬위원장이셨던 신석호 박사에 의하면 우리나라가 성씨를 쓰기 시작한 것은 삼국시대로서 주로 중국을 왕래하던 사람들이 사용하였고, 고려 11대 문종 9년(1055년)에 성을 붙이지 아니 한 자는 과거에 급 할 자격을 주지않는 법령을 시행 한 것을 보면 이때부터 성씨가 정착 한 것으로 볼수 있으나 노비 등 천인계급은 조선초기 까지도 성을 가질 수 없었다.

족보란 일족의 혈통과 가계를 알고 동족의 단결과 보다나은 활동을 추진하기 위한 값진 씨족의 보감인 것이다.

 

그러면 우리 성씨의 조상중에는 특별한 분은 누구인지 알아보면 고려말 조선건국의 신흥세력이 일어나기 시작한 대변혁기에 근본적으로 고려의 한계를 지적하며 새로운 나라의 이념을 준비한 이가 바로 우리 집안의 윤택(1289-1370)할아버지로 중국 송나라 진덕수가 1222년에 지은 대학연의를 경연에서 읽도록 공민왕에게 최초로 권한인물로 기록되고 있다.

그 시대까지는 정치지침서는 당태종을 이상적인 모델로 하는 패도정치 철학서인 정관정요 였다면 왕도정치를 주창하는 대학연의로서 윤택할아버지의 손자인 윤소종(1345-1393)은 공민왕이 정관정요 대신 대학연의를 읽게 만든다.

 

조선조가 건국되고 세종대왕때인 1418년 10월 17일 첫 경연을 열때 첫교재로 대학연의가쓰이게되고 이때 감독관으로 참석한 분이 바로 거위와 선비로 유명한 윤희(1380-1436)할아버지다, 윤회 할아버지는 세종대왕과도 친분이 두터워 많은 에피소드도 많지만 특히 술과 관계된 이야기가 지금까지 전해되어 오면서 술을 못하면 무송윤씨가 아니라는 말이 이어오는 설 중의 하나이다,

특히 윤회 할아버지는 세종대왕께서 친히 윤회 할아버지의 이름을 부르면서 친구사이임을 강조한 사실이다, 은 잔을 내리면서 꼭 한잔을 드시라고 권유 하였으나 잔을 은장이를 통하여 크게 만들어 한잔술에 취하실 정도로 유명하게 되었으며 한글창제에 혁혁한 공 을 세우신 신숙주를 사위로둔 유명한 일화에 한 토막으로 회자되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될 사실임을 명심하고 조상님에게 어긋남이 없는 후손이 되어야 한다는 점을 명심해야 될 것이다. 특히 가문의 영광과 발전에 더욱 분발 할 것을 우리는 새롭게 다짐하여야 한다.

                                                      

                                                                            윤 병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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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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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윤병영 | 작성시간 13.12.30 소호(少昊)는 중국의 전설속의 임금을 뜻하는 것으로)
    즉 왕손이라는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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