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송윤씨가 용인에 살게된것은
유추해보면
여강 처사이신 충보 할아버지가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창건되니
벼슬을 버리고(지안성군사) 여주로 내려가
고려의 공양왕을 모셨다는 것임
해서 여주로 내려가시고
9세손 부터 용인에 묻히셨으니
1500년대 부터이다
15세손 기 할아버지가 고림리 산 23번지
현재 용모재 자리에 묻히신것이 1756년이다
기 할아버지 아들을 네분 두셨는데
큰아들이 임신으로 통정랑 벼슬을 해 용인 소학동에 묻히시어
고림리를 떠났고
둘째아들 흥신은 벼슬(동지공)을 해 진천으로 떠났으며
셋째아들 달신은 통정랑 벼슬을 하셨으며 고림리 뒷동산에 묻히시고
넷째 창신은 벼슬은 하지 않으셨고 용자터에 묻히셨으나 절손됨
해서 임신 자손은 용천파가 되어 지금에 이르렀으나
조상묘는 고림리에 묻힌 사실이 없었슴
흥신 자손들은 당연히 진천에 묻혀계시고
달신 자손들만이 고림리 일대에 묻히셨습니다
이는 1700년대부터는 달신 자손들만이 고림리에 살면서
조상 모시고 분묘관리를 하며 살아고 있는 것입니다
수도권에 지가가 상승하고
병찬씨가 조상 묘들을 안수버니, 사실기에 모시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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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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